기사 작성 : 2023년 01월 30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219]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와 우리 대북 정책 검토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아래 전원회의)가 지난해 12월 26~31일 있었으며 거기에서 2022년을 평가하고 2023년 북한이 나갈 방향과 과제를 제시, 결정하였다. 이것은 예전의 신년사와 같은 것으로 보이며, 이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대북정책을 검토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1. 북한의 기본자세
1) ‘계속 혁신, 계속 전진’
이번에 전원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북한이 계속 배우고, 점검하고, 정책을 개선·풍부화하려는 자세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당 제8차 대회 이후 우리 당이 10년 투쟁과 맞먹는 힘겨운 곤란과 진통을 인내하면서 전당과 전체 인민의 투쟁 열의를 더욱 고조시켜 사회주의 건설을 더 힘차게, 더 폭넓게 진척”시킨 것을 평가하고 “이 과정에 조선혁명의 대내외적 환경의 특수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의 혁명원칙과 방법론, 전진 방향을 확증한 것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경험으로 된다”라고 하였다.
지난 시기 역경을 딛고 발전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고귀한 경험”이 대내외 환경의 특수성을 파악하고 원칙과 방법론, 전진 방향을 확증한 것이라고 하였다. 계속 배우고, 당 정책을 점검·개선·풍부화한 것을 가장 높이 산 것이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 당적으로 당 사업을 강화하는 데서 관건으로 되는 중요 고리들을 보강하기 위한 실속 있는 조치들이 실행되었으며 당의 백 년, 천 년 미래를 담보하는 새 시대 당 건설 이론이 정립되어 우리 당을 전도양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강위력한 무기가 마련되었다”라고 하였다.
흔히 북한 하면 사상과 이론, 방법론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 빈틈이 없으며 변화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반북주의자들은 북한의 관료주의가 심각하여 능동적인 변화가 불가능한 사회인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전원회의에서 ‘정확히 파악’, ‘확증’, ‘보강’, ‘새 이론 정립’ 등의 표현이 나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모습은 이번에 새롭게 나타난 건 아니다. 김일성 주석 시기부터 북한이 내건 구호 가운데 ‘계속 혁신, 계속 전진’이 있다. 일정한 성과를 냈다고 만족하며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혁신하고 전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구호다. 특히 이 구호는 ‘사회주의 혁명’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으며 대를 이어 계속 해야 한다는 요구를 담고 있다.
북한은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사회주의 체제를 만든 뒤 ‘계속 혁신, 계속 전진’을 하지 않고 심각한 관료주의에 빠져 무너졌다고 본다. 현재 세계 자본주의 위기도 자본주의권의 심각한 관료주의에 원인이 있다는 비판이 크다. 최근 자본주의 국가들이 혁신(이노베이션)을 중요하게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어느 체제에서나 관료주의와 그에 따른 사회 정체를 경계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필수과제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자만자족, 관료주의에 의한 정체를 경계, 극복하고 전진, 발전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나타난 계속 배우고 보강하려는 자세에서도 확인된다고 할 수 있겠다.
북한의 ‘계속 혁신, 계속 전진’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북한은 1990년대 선군정치를 전면화하였다. 원래 사회주의 이론에 따르면 혁명의 주력군은 노동계급인데 선군정치는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새롭게 규정하였다. 기존 이론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 변화에 따라 계속 사상이론을 보강하는 모습이다.
북한은 1960년대 사회주의 경제관리 방식으로 ‘대안의 사업체계’를 도입했다. 기존 지배인 유일 관리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집단적 관리제로 전환한 것이다. 2010년대 들어 북한은 ‘대안의 사업체계’를 새롭게 발전시킨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도입하였다. 이 역시 기존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북한의 노력을 보여준다.
2020년부터 열병식을 야간에 하는 것도 북한이 ‘계속 혁신, 계속 전진’하는 모습의 사례다. 야간에 열병식을 하면서 기존의 주간에 하던 열병식에 비해 시각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31일 밤에 진행한 신년 경축 대공연도 마찬가지다. 그전까지 김일성광장에서 진행하던 신년 경축 공연을 5월1일경기장에서 진행하여 더욱 다채로운 연출을 할 수 있었다.
최근 북한이 쌀과 옥수수 위주의 알곡 생산 구조를 쌀과 밀 위주로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늘 하던 대로 농사를 짓기보다는 끊임없이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무기도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화성포-15형을 개발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화성포-17형을 새로 개발하고, 또 최근에는 고체연료 로켓엔진을 새로 개발해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2) 객관 정세에 주도적 대응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대내외 형세의 급격하고도 준엄한 변화 국면에서도 주도적이며 영활한 영도 실천으로 전당과 전체 인민을 계속적인 전진과 발전에로 강력히 인도하였으며 과감하고도 기민하게 대응하는 영도 풍격을 철저히 유지하여 자기의 향도력을 더욱 세련시키고 혁명대오의 단결된 위력을 비상히 높은 경지에로 승화시키었다”라고 평가하였다.
대내외 정세가 급격히 변화하였지만 상황 변화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도적이며 영활”하게, “과감하고도 기민하게 대응”하였음을 강조하였다. 수동적, 피동적 태도를 반대하고 능동적, 주동적 태도를 강조하는 것은 북한의 전통적 특성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연말에 있었던 노동당 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도 “우리는 오늘의 투쟁에서 객관적 요인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순응하는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으로 뚫고 나가 객관적 요인이 우리에게 지배되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객관 상황에 주도성을 앞세운 사례로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한 모습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은 2019년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일찌감치 국경을 폐쇄하여 바이러스 유입을 원천 차단하였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코로나19가 퍼지는 정도를 쫓아가며 방역 단계를 조금씩 높였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지만 북한은 가장 오랫동안 코로나 청정국 지위를 유지한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코로나19가 북한에 유입되었을 때의 대처 방식도 비슷했다. 일단 바이러스가 유입되자 북한은 곧바로 최대 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고 발병 지역과 무관하게 전 국민을 검진하였으며 의료진이 부족한 곳에 군의관을 투입하는 등 신속하게 대응하였다. 이를 통해 빠르게 코로나19를 퇴치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불리한 기상·기후 조건을 기정사실화하고 농업생산 전반을 따져보면서 그에 맞게 농사를 과학적으로, 계획적으로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옛말도 있듯 농사는 날씨에 크게 좌우된다. 어느 나라나 한 해 날씨가 나쁘면 농사를 망치기 마련이다. 북한은 이를 운에 맡기지 않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점 심해지는 기상이변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이에 주동적으로 대처하려 하는 것이다.
2. 북한의 지난해 평가
1) 핵무력을 기본으로 ‘혁명사업’ 평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가장 적중하고 가장 중대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을 공식 법화 하여 만년대계의 안전담보를 구축하고 우리 국가의 전략적 지위를 세계에 명백히 각인시키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한 것은 우리 당의 투철한 자주적 대와 자위사상의 과시이며 세계 정치 구도의 변화를 주도하는 견지에서 보나, 국가 발전의 궤도를 새로운 높이에 올려세운 견지에서 보나 그 어떤 정치적 사변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다”라며 국방력 강화와 ‘대적 투쟁’에서 달성한 극적인 변화를 분석 평가하였다.
북한은 항상 ‘혁명과 건설’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 중 ‘혁명’은 주로 직접적인 ‘대적 투쟁’을 뜻한다. 여기서 북한이 말하는 ‘적’은 미국과 윤석열 정권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은 여러 기회에 확인할 수 있다. 전원회의 보고에서도 “우리 국가를 정조준하고 있는 미국과 적대 세력들의 우려스러운 군사적 동태”라고 하여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였으며, 지난해 8월 10일 전국 비상방역 총화회의에서 김여정 부부장이 “남조선 괴뢰들이야말로 우리의 불변의 주적”이라고 하여 윤석열 정권을 역시 적으로 규정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원회의에서 ‘건설’보다 ‘혁명’을 먼저 평가한 것은 그만큼 지난해 사업에서 ‘대적 투쟁’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적 투쟁’의 기본 형태는 핵무력을 통한 대응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세계에 명백히 각인시키고 세계 정치 구도의 변화를 주도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북한은 자기가 주도해서 세계 정치를 변화시키겠다는 구상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핵무력으로 미국을 굴복시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바꾸겠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우리 국방력 강화를 위한 줄기찬 투쟁을 전개하여 우리의 강세를 더욱 확실하게 하고 강대무비한 군사력을 키운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 인민의 크나큰 자부”라고 하였다.
북한이 국방력 강화를 가장 먼저 평가한 것은 선군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강대무비(무비: 아주 뛰어나서 견줄 데가 없는 것) 한 군사력’이라는 표현에서 북한은 자기 국방력이 한·미·일을 합한 것보다 더 강하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또 “국익 수호, 국위 제고의 기본 원칙이 훌륭히 관철됨으로써 당의 전략적 구상과 결단대로 미제국주의의 강권과 전횡, 대조선 정책에 심대한 타격을 안기었다”라고 평가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선군정치가 있어야 국익을 위하고 국가의 위상을 높인다는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이 말하는 ‘반미’는 미국 자체 혹은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적대 정책을 반대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은 대북 적대 정책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언제나 당의 전략적 구상, 즉 가장 중요한 국사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2) ‘건설사업’ 평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혁명사업’ 다음으로 “경제건설과 문화건설에서 이룩된 뚜렷한 성과들을 개괄”하면서 “2022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시간이었고 분명코 우리는 전진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
외부에서는 북한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주로 하지만 북한은 ‘뚜렷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북한이 경제 수치를 부분적으로만 공개하는 조건에서 북한 경제를 쉽게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경제 부문에서 전진하고 있음은 객관적 평가로 보인다.
북한은 매년 평양에 1만 세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이와 별도로 고급 주택단지인 경루동 다락식 주택구를 건설하였다. 지난해 4월 11일 완공한 송신·송화지구 주택에 관해 강순덕 동의과학대학교 교수는 2022년 4월 12일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살림집 건물을 굉장히 화려하고 과감한 형태 안에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같은 달 16일 최명기 동신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MBC 보도에서 “80층을 1년 안에 짓는다는 것은 세계 신기록”이라며 놀라워했다.
비교하자면 성남 분당구 대장동 개발 사업은 6천 세대에 부지면적 97만 제곱미터 규모로 2017년 6월 착공해서 2021년 5월 첫 입주가 시작됐다. 개발에 약 4년 정도 걸린 셈이다. 한편 송신·송화지구는 1만 세대에 부지면적 56만 제곱미터 규모의 개발을 1년 만에 완료했다. 이러니 “세계 신기록”이라는 평가가 나올 법한 속도다.
건설은 연관 산업이 매우 많기 때문에 이렇게 빠른 건설 속도가 나오려면 전반적인 산업이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 북한 경제가 전반적으로 원활하게 굴러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평양만 건설하는 게 아니다. 지난해 북한은 2021년 12월 노동당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새 농촌강령에 따라 농촌 환경 개선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북한 전역의 농촌에서 낡은 주택을 허물고 새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그런데 새 주택단지를 보면 알록달록 화려한 색깔과 함께 수많은 집의 모양이 다 제각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북한의 건축 역량이 그만큼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또 단순히 집을 빠르게 많이 짓는 게 목적이었다면 모두 똑같은 집을 지었을 것인데 이처럼 개성 있는 집들을 만든 것을 보면 생산자 위주가 아닌 사용자 위주의 건축 철학이 자리 잡았다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경제건설과 함께 문화건설의 성과도 언급하였다. 문화건설에서는 공연예술의 발전이 눈에 띈다. 지난해 12월 31일 밤에 진행한 신년 경축 대공연을 비롯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4월 25일), 전승 69돌(7월 2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4돌(9월 9일)을 계기로 진행한 경축 행사는 이전에 비해 훨씬 큰 규모와 참신하고도 수준 높은 연출을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있다. 또 4월 25일에 있었던 열병식도 단순한 군사력 시위를 넘어서 하나의 공연예술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또한 지난해 북한의 영상 편집과 방송 수준도 한 차원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3월 24일 발사한 화성포-17형의 발사 전 과정을 편집한 영상은 기존의 북한 영상에서 보기 힘든 편집 형식으로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4.25 열병식 영상도 국내에서 주목을 받았다.
3) 북한이 꼽는 발전 요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당과 국가의 제반 사업에서 이룩된 확실한 성과들은 혹독한 국난을 억척같이 감내해주며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력과 창조력을 발휘해준 위대한 우리 인민만이 전취할 수 있는 값비싼 승리이며 조국 청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공적”이라고 하였다.
또 북한 노동신문은 “총비서동지께서는 역사가 알지 못하는 가장 강인하고 용감한 투쟁으로 당정책을 견결히 옹호 관철함으로써 국가의 명예와 존엄과 위상을 만천하에 과시하고 2022년을 우리 혁명의 새로운 고조 국면을 열어나가는 데서 중요한 이정표로 되는 해로 빛낸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당중앙위원회를 대표하여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드리시었다”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북한의 지도자는 지난해 북한 발전의 주역으로 당원, 국민을 내세웠다. 그런데 신년 경축 대공연 등을 보면 당원과 국민은 지도자의 영도를 승리의 절대적인 요인으로 내세운다. 지도자는 국민을 내세우고, 국민은 지도자를 받드는 북한 특유의 ‘일심단결’을 엿볼 수 있다.
(계속)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