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7.

 

 

 

차례

 

1. 시정연설로 본 북한의 대남정책
1) 남북관계 악화 원인
2)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
3)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원칙적 문제 제시

2. 평가

3. 대응 대책
1) 추가로 역제안을 해야
2) 전쟁 위기는 없는가?
3)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을 두려워한다
4) 한국은 북한을 이길 수 있나?
5) 미국을 믿고 대북강경책을 써도 될까?
6) 북한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까?
7) 역제안

 

 


 


최근 한미 당국이 종전선언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10월 24일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 뒤 “한국의 종전선언 제안을 포함한 다양한 의견과 계획을 모색하기 위해 노 본부장과 계속 협력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특히는 한미 당국이 종전선언 문안을 놓고 협의 중이며 미국 정부는 법률가를 동원해 종전선언이 어떤 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따져보고 있다고 한다. 매우 구체적으로 준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물밑에서 어떤 협상이 진전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종전선언이 실현되리라 기대하기도 한다.

이번 아침햇살에선 한반도 정세를 정확히 보기 위해서 현시기 북한의 대남정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국 정부가 북한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뤄보겠다.

 

 

1. 시정연설로 본 북한의 대남정책

 


북한의 대남정책을 알기 위해선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한 시정연설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당면투쟁방향에 대하여’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최고인민회의에서 최고지도자가 공식적으로 밝힌 정책은 북한 체제 특성상 다른 담화나 보도보다 중요하며 당면 정책을 규정하는 강령적인 의의가 있다. 따라서 시정연설을 보고 그에 맞게 대응해야 가장 정확한 대북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1) 남북관계 악화 원인

 


먼저 시정연설에서는 남북관계가 악화 상태에 놓인 원인이 밝혀져 있다.

시정연설엔 우선 “지금 남조선에서 우리 공화국을 ‘견제’한다는 구실 밑에 각종 군사연습과 무력 증강 책동이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우리를 자극하고 때 없이 걸고 드는 불순한 언동들을 계속 행하고 있다”라고 지적됐다.  

그리고 시정연설에는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계속 밝히고 있는 불변한 요구이며 이것은 북남관계를 수습하고 앞으로의 밝은 전도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도 선결되어야 할 중대과제”라고 밝혔다. 

북한은 남북관계 악화 원인으로 각종 군사연습과 무력증강 책동, 적대적인 언동을 언급했고 또 편견과 이중기준, 적대시정책을 꼽았다.

한미연합훈련은 북한이 줄곧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한미 당국은 올 8월에도 북한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했다.

무력증강은 요즘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22~26 국방중기계획’에서 무기 구매를 위한 방위력개선비로 106조 7천억 원이나 편성했다. 2026년 국방예산은 70조 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무력증강 중에서 북한이 특히 문제 삼는 건 외부에서 첨단무기를 사들이는 것이다. 북한은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첨단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한국 정부가) 계속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첨단무기 반입이란 한반도 외부에서부터 무기를 사들이는 것을 뜻한다. 국방기술품질원이 2019년에 발간한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2009년에서 2018년 한국은 약 63억 달러, 8조 원가량의 미국산 무기를 샀다. 세계 네 번째 미국산 무기 수입국이다.

문재인 정부는 무기개발에도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정부는 9월 15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했다고 발표했다. 무기를 국산화하고 자력 개발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태도다.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5일 SLBM 시험발사를 참관하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의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SLBM의 성격을 북한 공격용으로 규정하고 대북 적대적인 발언을 한 데 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은 9월 15일 문재인 대통령 발언 당일 바로 “기자들 따위나 함부로 쓰는 ‘도발’이라는 말을 망탕 따라 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하며 “한 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는 우몽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이중기준을 지적했다. 북한은 시정연설에서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라고 짚었다. 시정연설에 앞서 9월 25일 김여정 부부장도 “다시 한번 명백히 말하지만 이중기준은 우리가 절대로 넘어가 줄 수 없다”라며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이 지적하는 건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도발’이라고 표현했으면서 한국의 미사일 발사는 ‘억지력 확보’라고 표현했는데 왜 똑같은 행동을 두고 다른 입장을 보이냐는 것이다. 그 다른 입장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관점과 정책’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는 김여정 부부장 담화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고 표현하진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10월 19일 SLBM 발사를 ‘유감’이라고 했다. ‘도발’만큼 도발적인 표현을 피하려고 신경을 쓴 것 같긴 하지만 북한이 말하는 이중기준에서 벗어나진 못한 듯 보인다.

 

2)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

 


북한은 시정연설에서 “얼마 전 남조선이 제안한 종전선언 문제를 논한다면 북남 사이의 불신과 대결의 불씨로 되고 있는 요인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종전을 선언한다 해도 적대적인 행위들이 계속될 것이고 그로 하여 예상치 않았던 여러 가지 충돌이 재발될 수 있으며 온 겨레와 국제사회에 우려심만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며 종전선언이 시기상조임을 밝혔다.

북한의 주장은 남북이 대결하고 있는 원인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종전선언만 한다고 평화가 오겠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전선언을 했는데 한미 당국이 연합훈련을 계속 진행한다고 가정해보자. 북한은 종전선언을 했으니 전쟁이 끝났는데 왜 적대행위를 하느냐고 반발할 텐데, 이때 한국과 미국은 종전선언을 했으니 한미연합훈련은 대북적대행위가 아니라고 강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종전선언이 평화를 불러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갈등을 불러와 정세를 악화시킬 수 있다.

종전선언을 했는데도 적대행위가 계속되면 신뢰가 더욱 허물어지기 때문에 갈등이 훨씬 증폭될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이 시정연설에서 종전선언이 자칫하면 “예상치 않았던 여러 가지 충돌이 재발”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짚은 것이다.

 

3)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원칙적 문제 제시

 


시정연설엔 한국 당국의 남북관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남조선 당국이 계속 미국에 추종하여 국제공조만을 떠들고 밖에 나가 외부의 지지와 협력을 요구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라거나 “북남관계악화의 원인들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방치했으며 아무러한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정연설에는 남북관계에 대한 원칙적인 태도를 제시됐다.

먼저, “남조선당국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대결적인 자세와 상습적인 태도부터 변해야 하며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 민족자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자세에서 북남관계를 대하며 북남선언들을 무게 있게 대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앞서 소개한 대로 “종전을 선언하기에 앞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2. 평가

 


한국은 시정연설에 나온 대남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시정연설을 평가하려면 먼저 기준을 잡아야 한다. 똑같은 사안이라도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다. 다양한 정견을 넘어 함께 동의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리려면 공동의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울 기준은 무엇일까? 기준은 바로 남북이 합의한 공동선언이 되어야 한다.

남과 북은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결정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사회 특성상 두 선언을 100% 지지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 국민은 2018년 4월 30일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88.4%가 판문점선언을 잘됐다고 평가했다. 2018년 9월 정상회담은 같은 해 9월 24일 KBS 여론조사 결과 83%가 잘했다고 긍정했다. 

한국 국민 85%와 북한 국민 100%가 동의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전체 한반도 주민의 약 90%, 즉 전 민족이 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압도적이면 남북선언은 정치적으로 정통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으며 기준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다. 누군가 남북관계에 대한 견해를 내놓을 때 정당성이 있는 주장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려면 이 두 선언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두고 판단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시정연설에서 제시된 대남정책이 두 남북공동선언에 부합하는지 살펴보자.

북한은 남북관계 악화 원인으로 각종 군사연습과 무력증강 책동 그리고 편견·이중기준·적대시정책을 꼽았다.

판문점선언 2항에선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9월 평양공동선언 1항에선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를 해나가자며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적극 취해나가기로 하였다. 

상대방을 향한 군사연습과 무력증강 책동을 중단하자는 주장은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부합한다.

판문점선언 2항에서는 군사분계선 일대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구체적인 적대행위로 지목하고 이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따르면 상대방을 향한 적대적 발언도 지양하는 것이 남북공동선언 내용에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제시한 원칙적 문제들도 살펴보자.

북한은 시정연설에서 한국 당국이 미국을 추종하고 국제공조만을 중시한다며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 민족자주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문점선언 1항엔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이 규정돼있다. 평양공동선언 서문에도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한다고 명시됐다.

따라서 민족자주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두 선언 내용에 부합한다.

시정연설 대남정책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이에 부합하기 때문에 타당성을 가진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3. 대응 대책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어떤 대응 대책을 세워야 할까?

 

1) 추가로 역제안을 해야

 


먼저 원칙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대응은 첫째 철두철미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 기초해야 한다. 

둘째로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남과 북은 2018년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합의하며 관계개선의 기회를 만들었지만 아직도 남북관계는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전보다 관계가 악화됐다. 따라서 더는 말뿐인, 실현 가능성이 없는 대응은 지양해야 한다. 

셋째로는 실용적이어야 한다. 실용적이라는 것은 한국 국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적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기준으로 대응책을 논의해보자.

먼저 시정연설을 보면 그 내용이 남북공동선언에 부합한다는 점은 앞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한국도 시정연설을 가볍게 보지 말고 주목해야 한다. 시정연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더 나아가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북한에 역제안해서 대응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한국이 북한에 내밀 역제안엔 무엇이 있을까?

여기서 한국이 심사숙고해야 할 중요 과제가 있다. 한국이 남북관계에서 확실히 해두어야 할 절대적인 조건이자 대전제가 있는데 그건 바로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2) 전쟁 위기는 없는가?

 


일각에서는 전쟁 위험성을 얕보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은 시정연설을 보고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북한은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남조선에 도발할 목적도 이유도 없으며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라며 “남조선은 북조선의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망상과 심한 위기의식, 피해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10월 11일에 열린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 개막식 기념연설에서는 “남조선이 한사코 우리를 걸고 들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주권행사까지 건드리지 않는다면 장담하건대 조선반도의 긴장이 유발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두 연설은 한국과 미국의 대북적대행동을 당장 군사행동을 벌여 분쇄하겠다는 식의 위급한 내용이기보다는 충돌을 막고자 하는 평화실현 의지를 강력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현 상황이 언제 군사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은 아니라고 정세를 판단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남북관계가 당장 개선되지 않더라도 금방 군사충돌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며 지금처럼 그냥 애매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정세분석이라고 할 수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연설은 전 세계가 주목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설이 정세에 미칠 영향을 심중히 고려했을 것이다. 연설이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선 남북관계나 남북 민심, 민족 전체의 감정을 살펴야 한다. 

실제로 시정연설과 ‘자위-2021’ 연설을 보면 북한이 한국 정부의 태도를 지적하면서도 이것이 남북대결을 조장하지 않게끔 하고 북한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확신시켜주기 위해서 단어와 표현을 고르고 다듬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자위-2021’ 연설의 경우 언론은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는 말에 주목했다. 최근 북한이 연달아 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했고 연설 장소도 무기 전람회였지만 언론은 이 연설을 ‘평화’의 메시지로 해석한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9월 25일 “남조선이 북남관계회복과 건전한 발전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말 한마디 해도 매사 숙고하며 올바른 선택을 하여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북한도 이 말대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설은 평화실현 의지가 반영된 매우 정제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연설 표현 수위가 세지 않다고 해서 전쟁위기가 없다고 여기면 정확한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세의 위험성을 빼놓지 않고 설명했다. 시정연설에서는 “최근 미국과 남조선이 도를 넘는 우려스러운 무력증강, 동맹군사활동을 벌이며 조선반도 주변의 안정과 균형을 파괴시키고 북남 사이에 더욱 복잡한 충돌위험들을 야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위-2021’ 연설은 좀 더 수위가 높다. “조선반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야기시키는 적대세력들의 온갖 비열한 행위들에 견결하고 단호한 자세로 맞설 것이며 평화적인 환경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그 원인들을 차차 해소하고 없애버려 조선반도 지역에 굳건한 평화가 깃들도록 도모하기 위함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의 군사 긴장을 야기하는 원인과 적대세력으로는 미국과 주한미군 그리고 한국 내 대북강경세력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은 이를 제거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연설 전반이 매우 정제된 표현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발언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될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9월 25일 담화에서 남북관계를 논평하며 “앞으로 훈풍이 불어올지, 폭풍이 몰아칠지 예단하지는 않겠다”라고 표현했다. 폭풍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서로를 비방하는 ‘말 대 말’ 공격이나 미사일 시험 발사 정도를 두고 폭풍이라고 표현하진 않았을 것이다. 북한 군대에는 ‘폭풍’이라는 용어가 있다. 일종의 비상상태 선포인데 지휘관이 ‘폭풍’ 명령을 내리면 전 부대가 즉각 태세를 갖추고 행동에 나서게 된다. 김여정 부부장이 ‘폭풍’이라고 했을 땐 그런 비상상황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고, 이는 전쟁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당국이 전력을 다해 최우선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는 폭풍, 즉 전쟁을 막는 것이다.

 

3)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을 두려워한다

 


물론 전쟁은 당위적으로 피해야 한다. 하지만 전쟁을 막아야 할 더 현실적이고 절박한 이유는 전쟁에서 북한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전쟁에서 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주관적인 욕망과는 별도로 실제로 이길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전쟁은 근거 없이 무조건 이길 것 같다거나 혹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달려들어선 안 된다. 현실은 현실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세계초강대국이라는 미국도 북한을 대할 땐 모의전쟁(워게임)을 해가면서 심사숙고한다.

2020년 미국의 랜드연구소 육군연구부문이 모의전쟁을 해보았더니 1시간 만에 북한의 포격으로 한국 국민이 20만 명 사상당하는 결과가 나왔다. 사실 예전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곤 했다. 미국은 1994년에 북한 폭격을 몇 시간 앞두고 모의전쟁을 해보았더니 54만 명이 사상당하는 등 피해가 극심하다는 결과가 나와 폭격을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 2003년에도 두 차례에 걸쳐 모의전쟁을 진행했는데 “우리가 패배한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1차 모의전쟁을 참관한 기자는 영국 BBC 방송 인터뷰에서 “유효한 군사적 선택 카드가 하나도 없다는 점 때문에 좌절감을 맛보았다”라고 밝혔다. 북한이 핵보유를 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나온 결과였다. 2017년 롭 기븐스 전 미 공군 준장은 “미 국방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 남한에서 매일 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최근 북한은 최신 전략무기들을 과시하고 있다. 그중엔 9월 28일에 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도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한반도 남부지역까지 1분이면 도달할 정도로 빨라 요격하기 어렵고 위력적이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사일 방어체계에 경보를 울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미국은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했다. CNN은 10월 21일 미국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가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시험의 목적은 활공체의 성능 중 한 가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미사일은 로켓이 분출해 일정 궤도 이상으로 올라간 후에 활공한다. 그런데 미국은 미사일이 활공하기도 전에 일정 궤도에 올리는 단계에서 실패해버리는 바람에 원래 목적한 활공 시험은 하지도 못했다. 이번이 첫 실패도 아니며 올해 4월에도 B-52 폭격기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는 시험을 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이를 보면 미국이 첨단무기 분야에서 북한에 뒤처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미국은 북한을 매우 신중하게 상대한다. 과거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북한을 선제공격하겠다는 식으로 강경발언을 쏟아내며 당장 핵항공모함이나 전투기를 출격시켜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이런 일을 벌이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한다면서도 ‘전제조건 없이 만나자’라고 끊임없이 대화를 제안한다. 북한은 한두 번 거절한 뒤로는 미국이 제안해도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미국이 굴욕을 느낄 것이고 자존심도 상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자존심이 없어서 북한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북한과의 대결을 꺼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화를 구걸하는 것이다. 이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4) 한국은 북한을 이길 수 있나?

 


여기서 희한한 건 미국이 북한을 어려워하는 데 비해 한국은 북한을 너무 가볍게 대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9월 15일에 SL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에 이어 세계 7번째 SLBM 잠수함 발사시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2016년에 이미 SLBM 시험발사에 성공했는데 북한을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북한은 10월 20일에 신형 SLBM 시험발사를 하면서 5년 전에 SLBM 발사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여기에 더해 북한의 장창하 국방과학원장은 조선중앙통신과의 담화에서 남측의 SLBM 시험발사 장면을 분석한 결과 “분명 잠수발사 탄도미사일이 아니었다. 사거리가 500㎞ 미만인 전술탄도미사일로 판단한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이 발사한 건 SLBM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어떤 기자가 10월 20일 청와대 관계자에게 ‘북한이 우리 군의 SLBM을 평가절하했는데 이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청와대 관계자는 “심층적으로 분석을 한듯한 평가 멘트를 저도 봤다. (그러나 청와대의) 별도 의견은 없다”라며 반박하지 않고 침묵했다. 사실상 북한의 주장을 인정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 10월 21일에 자체 개발했다는 누리호를 발사했다. 안타깝게도 다소 부족한 점이 있어 인공위성 더미가 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 실패이긴 하지만 이런 기술진보 시도는 중요하며 향후 더 큰 성과를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1998년에 이미 자체 기술력으로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쏘았고 그 후 2009년, 2012년, 2016년 총 네 차례 쏘아 올렸다. 한국이 북한을 군사기술적으로 가볍게 볼 상황은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을 얕보고 남북대결을 조장하는 발언을 계속한다. 앞서 소개했듯 문재인 대통령은 SLBM 시험발사를 두고도 북한 도발에 대한 억지력이라고 북한을 적대하는 자극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심지어 북한과의 체제 대결론을 꺼내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우리의 GDP는 북한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북한의 400배를 넘습니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라고 말했다. 2021년 10월 5일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도 “체제경쟁이나 국력의 비교는 이미 오래전에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습니다”라고 또다시 체제경쟁을 언급했다. 

남과 북은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체제통일이 아닌 연합연방제 통일방안에 합의했다. 이미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체제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체제가 달라도 같은 민족임을 중시해서 통일하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여전히 체제 대결의 관계로 본다. 한국이 체제 대결에서 이겼으니 북한이 이제는 포기하고 굴복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정말 체제 대결은 한국의 승리로 끝났을까? 앞서 살펴본 극초음속 미사일과 SLBM과 인공위성 발사, 이 세 가지 사례를 보면 정말 체제 대결에서 북한을 이긴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북한의 체제가 붕괴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체제가 흔들리는 조짐도 없으며 군사기술력 부분에서 오히려 한국을 앞지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한국이 북한을 이겼다는 주관주의적인 오판에 사로잡힌 나머지 북한이 이룬 성과를 무턱대고 부정한다. 북한이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 SLBM을 선보이자 종이모형이라며 가짜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2012년에도 북한이 화성 13형을 선보이자 종이모형이라는 분석을 내기도 했었다. 물론 2017년 북한이 화성 15형을 발사해 미 전역을 핵공격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지금은 화성 13형이 모형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이는 정말 무책임한 대중선동이다. 이 미사일을 종이모형이라며 평가절하했는데 실제 전쟁이 일어나 종이모형이 아닌 실제 미사일로 공격이라도 받게 되면 그때 가선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문재인 정부도 북한의 SLBM 시험발사 성공을 평가절하하는데 무턱대고 우리가 다 이기고 있다는 식의 태도와 발언들은 굉장히 위험하다. 전쟁, 체제대결 같은 건 개인적인 호승심에 사로잡혀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게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오히려 미국은 북한과의 충돌을 우려해 신중하고 고심한다. 10월 21일 미국의 해리티지 재단은 “북한은 핵무기와 함께 아시아에 있는 동맹과 미군은 물론 미 본토를 위협하는 다양한 미사일 시스템을 갖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미 본토를 보호하는 미사일 방어망을 압도할 위험이 있”고 “한국은 현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한 방어망이 없다”라고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해리티지 재단이 친북단체이거나 미국이 북한에 지기를 바라서 이런 분석을 내놓았겠는가. 이런 부분에서는 자신의 바람이나 성향을 떠나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현실적으로는 굳이 체제대결을 따져보자면 한국이 과연 북한을 이겼는지 의구심 든다. 북한과 군사대결을 한다고 하면 위기의식과 열패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5) 미국을 믿고 대북강경책을 써도 될까?

 


한국은 주한미군에 안보를 의존한다. 한국의 주요 안보 실현 수단은 한미연합훈련이고 무력 증강을 하는 것도 F-35 전투기를 도입하는 등 미국에 의존한다. 그런데 정작 미국은 만약의 상황에서 한국을 보호해줄 수 있을까?

만약 북한이 미국에 몇 월 며칠까지 평택 미군기지에서 모두 철군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음 날 오전 10시에 평택 미군기지를 미사일로 초토화하겠다는 선포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서 워싱턴 앞바다에서 SLBM을 실은 잠수함이 잠시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등 미 본토를 언제든 공격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미국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북한이 시키는 대로 철수하거나 아니면 버티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북한의 경고를 듣고서 말로는 강경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발표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어떻게 할지는 또다른 문제다. 실제로 미국이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린 적이 있다. 이때 미국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첫째로 미국이 아프간에서 한 행동을 보자. 7월 2일 미군이 아프간 최대 미군기지인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장갑차 등 무기까지 내버려 두고 야반도주해 논란을 일으켰다. 바그람 기지의 아프간군 사령관인 미드 아사둘라 코히스타니 장군은 “미군이 떠난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우리는 (미군이 떠난 후인) 아침 7시가 돼서야 미군이 이미 바그람을 떠난 사실을 확인했다”라며 미군이 철수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만약 계획된 철수였다면 미군이 무기나 각종 물품을 내팽개치고 황급히 떠날 이유가 없다. 무기와 물품을 가지고 순차적으로 철수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아프간군에 인도해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미군은 그렇지 않았다. 

미군이 바그람 기지에서 왜 야반도주해야 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합리적으로 추론해보자면, 아침이 밝으면 당장 공격당할 예정이고 공격이 시작되면 피해가 막대할 거라는 첩보를 미국이 긴급히 입수한 게 아닐까 싶다. 이런 경우여야만 갑자기 도망친 걸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세계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이 보일 수 있는 행태인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중요한 건 미군이 야반도주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둘째로 크림반도 사건을 보자.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병합해버렸다. 미국은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를 체결해 우크라이나를 보호해주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할 때 미국은 그냥 지켜볼 뿐 우크라이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미국은 그 후 7년이 지나도록 크림반도를 되찾아줄 그 어떤 적극적인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로 대만 문제를 보자. 10월 2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방어해줄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미국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차마 중국이 대만을 공격해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거라고 답변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7월 26일 존 하이튼 미 합동참모차장은 미국이 작년 10월 중국을 상대로 대만해협에서의 모의전쟁을 해보았는데 그 결과 “침소봉대 없이 비참하게 실패”했고 “중국이 미국을 쉽게 무찔렀다”라고 밝혔다. 하이튼 합참차장은 미국의 패배 이유로 “지금 세계에서 초음속 미사일과 장거리 폭격이 모든 영역에서 아군을 둘러싸고 있”으며 “중국은 우리가 하기 전에 무엇을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라고 구체적인 정황을 소개했다.

10월 16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이 7월 비밀리에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했고 미 정보당국은 중국의 기술 발전에 깜짝 놀랐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이 기사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로버트 우드 미국 군축 대사는 해당 보도에 “우리는 이런 기술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모른다”라고 토로했다.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자인 밥 우드워드는 올해 발간한 신간 『위기』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었던 한 사건을 폭로했다. 작년 10월 30일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혹시 중국과 전쟁을 할까 봐 우려한 나머지 리줘청 중국 합참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당신들을 상대로 어떤 작전을 수행하거나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공격하면 미리 전화해 알려주겠다. 갑작스러운 공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내통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전시상황이었다면 즉결처분감이다. 미군 수뇌부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절대로 중국과 전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미국은 매우 허약하고 마치 종이호랑이, 나아가 종이고양이 같은 신세다. 이런 걸 보면 미군이 정말로 북한의 공격이 있을 거라고 여기게 된다면 북한에 맞서기보다는 도망가기를 선택할 수 있다. 미국이 도망간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되긴 하지만 실제로 미국은 꽁지 빠지게 도망가 본 전적이 있다. 미국이 만약 도망가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을 잃게 되는 건 물론이고 전 세계적 차원에서 완전히 2, 3등 국가로 전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만 철석같이 믿고 매달려온 한국은 상당히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6) 북한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까?

 


단순히 낭패를 보는 건 문제가 아니다. 최악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이야말로 남북관계의 절대적인 조건이자 대전제이다.

북한과의 전쟁은 결코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을 보자. 한국은 한국전쟁을 북한의 남침으로 알고 있지만 북한은 한국전쟁을 한국의 북침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1948년에 건국하고 2년이 채 되지 않은 신생 국가였고 군사력도 미비했다. 당시 북한군은 13만 5천 명에 소련 탱크 240여 대, 전투기와 폭격기 200대 정도를 갖춘 상태였다고 한다. 반면 북한이 상대해야 했던 건 미국이다. 미국은 당시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고 1945년 핵무기를 보유한 세계 최강국이었다. 

만약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이라면 소총과 탱크 몇 대 있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미국에 싸움을 걸어 승리한 셈이 된다.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배했다는 건 미국이 스스로 한 이야기다. 당시 미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는 “나는 역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 사령관이라는 영예롭지 못한 이름을 띠게 되었다”라고 패배를 자인했다.

북한은 70여 년 전 소총만 있을 때도 전면전을 벌여 핵무기를 가진 미국을 이겼는데, 지금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물론이고 극초음속 미사일 등 미국도 없는 최첨단무기를 보유하게 됐다. 북한은 해리티지 재단이 평가하기에 “미 본토를 보호하는 미사일 방어망을 압도”하는 나라인데 미국을 상대로 전쟁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 북한은 미국과의 전쟁을 ‘나를 건드리면 너도 무사하지 못한다’라는 너 죽고 나 죽기 식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 북한이 최근 SLBM,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철도기동미사일 등을 계속 시험발사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위력 시위가 아니다. 북한은 무기 시험을 통해 자신은 안전한 채로 미국만 초토화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순항미사일로 레이더를 무력화시키고 극초음속 미사일과 SLBM, 철도기동미사일 등으로 타격하면 미국을 무혈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식이다. 미국을 일방적으로 제압할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면 북한이 전쟁을 하지 못할 이유는 더욱더 없다. 

 

7) 역제안

 


우리는 북한보다 월등하다는 주관주의적인 기분을 내자고 무책임하게 전쟁을 도발하는 철부지 같은 언행을 할 때가 아니다. 

한국 정부가 국익을 우선한다면 절대적으로 우선해야 할 대북정책은 전쟁이라는 ‘폭풍’을 저지하고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훈풍’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게 책임적인 자세이고 국익을 실현하는 자세다. 그런 면에서 이번 북한의 대남정책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긍정적 내용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익을 관철할 대응책을 잘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제안에서 몇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

첫째는 북한 대남정책의 방점이 관계개선에 찍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남조선에 도발할 목적도 이유도 없으며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라며 “남조선은 북조선의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망상과 심한 위기의식, 피해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북한은 “경색되어 있는 현 북남관계가 하루빨리 회복되고 조선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온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남북연락선을 복원할 뜻을 밝혔고 실제로 복원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남북 불신과 대결의 원인을 해결한 뒤에 하자는 말이다. 바로 이런 북한의 평화 제안, 관계개선 제안을 우리가 놓치지 말고 낚아채야 한다.

둘째는 북한이 내건 전제조건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한국이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은 것들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이 정도를 전제조건으로 내건 건 다행스럽고 괜찮다고 볼 수 있다. 평소 주장과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보면,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첨단무기 반입 중단을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울 수도 있었다. 한국 정부가 무력증강을 하는 근거는 ‘국방중기계획’이다. 북한은 무력증강을 문제 삼으며 국방중기계획을 폐기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었다. 만약 북한이 이런 요구를 했으면 한국은 자체 국방력 강화라는 자주적 권리를 침해받게 되는 셈이었다.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사항이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이 난처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요구사항을 내걸지 않았다. ‘자위-2021’ 연설에서는 “우리의 주권행사까지 건드리지 않는다면 장담하건대 조선반도의 긴장이 유발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지 한국이 무장해제하라는 게 아니었다.

북한이 내건 상호 존중과 이중기준 철회, 적대정책 철회는 우리도 북한에 동등하게 요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반대한다면 한국도 똑같이 북한에 중국이나 러시아와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이 미국산 무기 구매를 반대한다면 우리도 북한에 중국 또는 러시아산 무기를 구매하지 말라고 동등하게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이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여러 국방과제를 정하고 추진하고 있고 한국도 국방중기계획을 가지고 있는 만큼 서로가 각자의 자주적인 국방력 강화 정책에 간섭하지 말자고 역제안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북한에 어떤 경우에도 힘을 동원한 체제통일을 추구하지 말고 정치적인 협의와 합의를 통한 통일을 추구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민족을 중시하고 체제의 차이점은 서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통일하자고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북한이 군사력을 동원한 체제통일을 시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2016년 8월 23일 박근혜 정권이 반북대결책동을 강화했을 때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발표해 “만일 괴뢰패당이 지난해 8월 사태의 교훈을 망각하고 또다시 가소로운 도발을 걸어온다면 우리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으로 넘어가 역적패당을 씨 종자도 없이 소탕하고 침략의 원흉 미제 본거지를 지구상에서 영영 없애버리고야 말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한국은 설사 북한이 군사적으로 더 강하더라도 군사력을 동원한 체제통일을 시도할 수 없도록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 정부가 북한에 서로 체제통일을 시도하지 말자고 역제안할 수 있다.

정리하면,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표방하는 북한의 대남정책을 적극적으로 받고 더 나아가 자체 국방력 강화를 자주적 권리로 상호 인정하며 그 어떤 경우에도 군사력을 동원한 체제통일을 추진하지 말자는 것을 북한에 역제안하는 게 북한의 대남정책에 대한 가장 실용적인 대응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