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11월 03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150] 체제통일론을 배격해야 한다
1. 서로에 대한 적대의식을 없애야 한다
현재 남북관계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는 이야기는 많이 나오고 있지만 막상 한반도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종전선언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북한은 종전선언에 앞서 적대시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전선언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사실 종전선언만으로는 한반도 평화나 남북관계 개선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한미와 북이 서로에 대한 적대의식과 적대정책을 없애야 비로소 종전선언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면서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1) 불가침합의 후 찾아온 최악의 전쟁위기
1991년 12월 13일, 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 즉 불가침합의를 맺었다. 불가침합의엔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말자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남과 북은 서로를 전복시키려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고 무력으로 침략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불가침합의엔 한국의 정원식 국무총리와 당시 북한 행정기관인 정무원(내각)의 연형묵 총리가 서명했다. 고위급 인사 간에 이뤄진 무게 있는 합의였다.
불가침합의를 체결했으니 당연히 남과 북은 전쟁위기에서 벗어나 평화를 실현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펼쳐졌다.
불가침합의는 영변 핵시설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체결됐다. 프랑스는 1989년 인공위성 사진을 내밀며 북한이 영변 원자력 발전소에서 핵무기에 사용할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북한은 부인했지만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영변 핵시설을 사찰하겠다고 주장했다. 공방 끝에 미국은 북한을 핵무기로 공격하거나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북한은 해당 시설에 대한 IAEA의 사찰과 검증을 받겠다는 내용의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남북 사이에서도 불가침합의를 체결한 것이다.
그러면 불가침합의 후엔 어떤 일이 펼쳐졌을까?
미국은 북한 핵시설을 사찰했지만 북한이 핵물질을 빼돌린 정황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미국은 안전조치협정에서 합의한 사찰 대상이 아닌 별도의 북한 군사시설을 특별사찰해야겠다고 우겼다. 북한은 미국이 요구한 대상은 핵과 관련 없는 군사시설이고 안전조치협정에서 정한 사찰대상이 아니라며 미국의 특별사찰 요구는 “우리의 군사대상과 기지들을 개방함으로써 우리를 군사적으로 무장해제 시켜 보려는 불순한 정략적 목적”이라고 반발했다.
사실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의 사찰 요구는 전쟁을 불러오곤 했다. 영변 핵위기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이지만 이라크, 리비아를 보면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2년 미국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며 사찰을 요구했다. 이에 이라크는 대통령궁까지 살펴보도록 허용했다. 우리로 치면 청와대 지하시설까지 낱낱이 살펴볼 수 있도록 내어주는 두손 두발 다 드는 굴욕적인 조치였다. 사찰 결과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없었지만 미국은 이듬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리비아의 경우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 핵프로그램을 넘겨주고 사찰까지 받았다. 하지만 2011년 미국은 영국, 프랑스 등을 이끌고 리비아를 공격했고 결국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는 죽음에 이르렀다.
반면 이란은 미국이 핵사찰을 하던 중 일반 군사시설에 대한 사찰까지 요구하자 이를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사찰을 받아들인 이라크와 리비아는 미국에 공격을 받고 사찰을 거부한 북한과 이란은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니 미국이 사찰을 요구하는 건 상대방이 미국의 침공을 막아낼 능력이 있는지 확인 후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하여튼 북한은 미국의 안전조치협정을 벗어난 사찰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미국은 북한이 특별사찰을 받지 않으면 전쟁을 불사하겠다며 위협했다. 그리고 한미연합훈련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한국과 미국은 1991년 안전조치협정과 남북 불가침선언을 채택한 후 1992년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한 바 있었다. 그런데 1년 뒤인 1993년 다시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면서 전쟁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에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하며 반발했다. 군사위기가 끝없이 고조되다가 1994년에 와서는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기로 결정하고 폭격할 날짜와 시간까지 정하기에 이르렀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1994년 3월 하순 북한의 심각한 핵위기가 시작됐다.…나는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결심했다”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나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양측이 입을 막대한 피해 규모에 관해 정신이 번쩍 드는 보고를 받았었다”라고 회고했다. 그 보고는 전쟁 발발 시 90일 이내에 미군 5만 2천 명, 한국군 49만 명이 사상하고 궁극적으로는 100만 명 이상이 죽고 전쟁비용은 610억 달러에 이를 거라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피해가 엄청날 것으로 판단되자 결국 공격 계획을 접었다.
1953년 한국전쟁이 중단된 뒤 지금까지 한반도엔 크고 작은 전쟁위기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1994년 위기는 가장 심각한 최절정의 전쟁위기였다. 당시 한국 국민은 정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 각종 마트가 텅텅 비는 일이 일어났다. 코로나19로 세계적인 사재기 바람이 불 때도 한국 국민이 침착함을 유지했던 걸 고려하면 1994년에 느낀 위기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전쟁위기가 바로 불가침합의를 체결한 지 2년 만에 일어난 사건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불가침조약을 맺은 뒤에 오히려 전쟁이 발발하거나 전쟁위기가 고조된 경우가 많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25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이 모여 맺은 로카르노 조약, 1939년 독일-소련 불가침조약 등 여러 불가침조약이 맺어졌다. 여러 조약을 맺어가며 전쟁하지 말자고 반복적으로 약속했으나 이 약속은 모두 깨지고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고 말았다. 독일과 폴란드는 1934년에 10년짜리 불가침조약을 맺었는데 단 5년 만에 전쟁이 일어났고 1939년 독일과 소련 사이에 맺은 불가침조약은 단 2년 만에 깨졌다.
애초에 불가침조약이라는 건 전쟁 위험이 있는 나라끼리 맺는 법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스위스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과 스위스 사이엔 전쟁위기가 없기 때문이다. 불가침조약은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맺는 것이다. 그래서 불가침조약국 사이에 갈등요소도 많다. 게다가 어느 한쪽이 불가침조약을 어기면 그건 곧 ‘침략의사’를 뜻하기 때문에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불가침조약이 오히려 전쟁의 전조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역사에서 심각하게 교훈을 찾아야 한다. 상황과 조건을 생각하지 않고 종전선언만 추진했다간 과거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무척 크다.
2) 찾아야 할 교훈
그렇다면 우리가 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은 무엇인가. 불가침합의를 체결하기에 앞서 서로의 적대정책을 실천적으로 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적대정책을 제거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불가침합의가 정말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실현시키고 담보할 수 있게 된다.
남과 북은 1991년에 불가침합의를 체결했고 이어 미국이 1992년 1월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같은 해 2월 불가침합의가 예정대로 발효될 수 있었다. 만약 1992년 한미연합훈련이 그전처럼 강행되었다면 불가침합의는 발효되지도 못하고 바로 폐기되었을 것이다. 1993년 미국이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하자 북한이 준전시상태 선포와 NPT 탈퇴 선언으로 대응하며 사실상 불가침합의는 파탄 났다.
이를 볼 때 종전선언을 하려면 한미연합훈련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북한은 올해만 해도 여러 차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해야 할 대북적대정책으로 지목했다.
그래서 지금 종전선언을 논의하려면 최소한 지난 8월 한미연합훈련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야 종전선언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8월에는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해놓고 9월에는 종전선언을 하자고 하면 북한이 종전선언을 하자는 의도를 믿을 수가 있겠는가. 심지어 11월 1일부터는 200여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전투준비태세 종합훈련’이라는 한미연합훈련을 또 실시하고 있다. 종전선언을 하자고 제안하는 와중에 한미연합훈련을 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런데 노덕규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0월 25일 종전선언에 대해 “대북 적대적 정책이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대북적대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국 당국이 종전선언의 당사자인 북한의 주장을 못들은 척 외면하면서 무턱대고 우기는 건 철부지 떼쓰기밖에 안 된다. 이런 식으로는 북한을 설득할 수도 없을 것이고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도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것이다.
추측건대 북한은 종전선언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당국이 종전선언을 정말로 할 생각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2022년부터 한미연합훈련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 정도는 해야 한다. 최소한 이런 조치를 해야 종전선언을 이야기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종전선언을 하면 그 이후엔 어떻게 서로의 적대정책을 폐기할지 계획표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종전선언이 실질적인 평화와 안전을 담보하고 실현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종전선언이 의논되는 요즘 상황에서 우리는 상호 적대정책을 어떻게 철회할지 진지하게 구체화하여 실천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2. 남북은 민족적 동질성에 기초해 서로를 대해야 한다
1) 민족적 동질성
남과 북은 한민족이다. 민족이란 건 이론으로 규정하거나 교육을 통해서 개념을 주입해야 비로소 만들어지고 느끼는 게 아니다. 민족은 그냥 존재한다. 아무리 분단이 되어 수십 년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남과 북은 한민족임을 부정할 수도 없고 민족성이 약화하지도 않았다. 그걸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논란 속에 출범했지만 일단 팀이 만들어지자 남북 선수들은 서로 끈끈한 민족애를 보여주었고 국민은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느꼈다.
남북 선수들은 서로의 훈련을 삼삼오오 도와주고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함께 노래를 듣고 춤을 추며 가까워졌다. 남측 주장 박종아는 “처음 북측 선수들이 합류했을 때 그 선수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할지 몰랐지만 지금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친근해졌다”라고 이야기했고 신소정 선수는 “같이 어울리고 같이 운동하면서 ‘남측이다’, ‘북측이다’를 따로 느끼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김희원 선수는 “(북측 선수들이) 친언니처럼 잘해주었다”라고 했고 이은지 선수는 “북한 언니들이 나에게 ‘재미지게’ 생겼다고 했다. 언니들한테 장난을 많이 쳤다”라고 있었던 일을 소개했다. 엄수연 선수는 “북한 언니들이 나를 깜찍하게 생겼다며 귀여워해 줬다”라고 했다.
이런 감정은 북한 선수들도 똑같이 느꼈던 듯하다.
3월 19일 조선신보가 보도한 기사에서 김향미 선수는 “어려움을 겪는 것은 몇 주일 정도가 아니고 단 며칠이었다”라며 “내 생일에 지연이가 노래를 불러줬는데, 그때 그가 정말 내 친동생처럼 여겨졌다”라고 느꼈던 점을 말했다. 황충금 선수는 “차이보다도 통하는 것이 더 많았다”라며 “이별의 날이 점점 가까이 오는데 그전에는 만나면 서로 웃고 막 떠들던 것이 앞으로 얼마 안 있어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남측 선수들을 보는 순간에 저도 모르게 섭섭하기도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남북단일팀이 헤어진 2018년 2월 26일엔 눈물바다가 만들어졌다. 남측 선수가 울고 있는 북측 선수에게 “고마워 진짜”라며 “언니 그만 울어요. 안 울기로 했으면서…”라고 다독이고 “나중에 보자”라며 인사를 건넸다. 최지연 선수는 SBS와 인터뷰에서 “다들 정이 많이 들어서 보고 싶을 거라고,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꼭 다시 보자고 얘기했어요”라고 말했다.
남북 선수들이 만나고 나니 그 자체로 좋았다. 남북 선수가 경기장에 같이 입장할 땐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했고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함께 구호를 외치니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가 됐다.
2020년엔 유튜버 김세은 씨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가 우연히 북한 사람과 동석하는 영상을 올려 화제가 됐다. 영상에는 김세은 씨가 탄 객차에 남성 40여 명이 몰려와 앉으며 이렇게 대화의 물꼬를 틔운다.
“한국?”
“네. 한국 사람이에요.”
“어디?”
“남한, 서울.”
“같이 갑시다.”
북한 사람들은 특별한 경계심을 보이지도 않고 ‘제주도에는 가봤는지’, ‘대학을 안 나오면 직업 구하기 힘든지’ 같은 일상생활을 묻고 ‘결혼은 했는지’ 등의 안부를 나눴다. 한번은 북측 사람이 감기에 좋다며 마늘을 주며 김세은 씨를 챙겨주기도 했다. 김세은 씨는 갑작스레 마늘을 받아 당황하는 듯 했지만 그 마음은 느꼈던 것 같다.
김세은 씨는 “떨어져 있는 세월이 길다 보니까 우리랑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동네 어른들과 비슷했다”라며 “잔소리도 사실 엄청 많이 듣고. 아, 이게 설날의 풍경인가 (싶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을 동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챙겨주고 딸처럼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를 전했다. 김세은 씨는 북한 사람과 헤어지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감정은 여행 중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났을 땐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영상에 나온 북한 사람들도 김세은 씨를 만나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다.
“같은 동포하고 딱 만났으니까 우리 여행이 진짜…”
“동포 챙길만 하지.”
“이건 정말 완전 복이야.”
“우리 딸이랑 같다.”
영상 속 북한 사람들은 한국 동포를 만난 걸 ‘복’으로 여기고 민족애를 드러냈다. 그리고 열차에서 내리면서 “통일되는 날 다시 만납시다”라고 김세은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각에서는 분단으로 갈라져 산 지 수십 년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남과 북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지금 젊은 세대는 분단과 통일에 대한 생각이 적고 민족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유튜버 김세은 씨나 평창 올림픽 단일팀 선수들이 바로 10대에서 20대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특별히 북한이나 통일, 민족 문제에 관심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 청년들은 비록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새 북한 사람들과 뜨거운 정을 나누었다.
이런 사례에서 남북 국민이 직접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민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민족의식과 민족애는 인위적으로 교육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자연스레 솟아나는 것이다. 남과 북이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민족애를 그저 인정하고 내세우면 된다.
우리는 남과 북이 서로 한민족이고 한 핏줄을 나눴다는 데서부터 서로를 대해야 한다. 통일하면 물론 경제와 안보를 비롯해 다양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은 그 무엇보다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세대인 아이들을 귀여워하고 아끼듯, 연인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듯 헤어진 민족이 서로를 그리며 다시 만나고자 하는 것은 인륜이다.
민족이라는 생명체는 분단되어서는 살 수가 없다. 인류 역사를 보면 무수한 민족이 존재했지만 사라지기도 했다. 우리가 갈라져 살다 보면 언젠간 민족성을 잃고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통일은 민족이라는 생명체를 살리는 길이며 우리의 운명이다.
2) 체제 중심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것은 곧 자본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는 곧 북한을 체제 붕괴 후 자본주의화 해서 흡수통일하겠다는 것을 국시로 삼는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대단히 반민족적인 조항이다. 북한을 동포로 보는 게 아니라 체제 중심으로 보는 대결적 시각이다. 우리는 북한을 동포로 봐야지 단순히 사회주의 국가로만 보면 안 된다.
물론 남과 북은 각각 자본주의, 사회주의로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다. 남과 북은 서로 자기 체제를 좋아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때로는 서로의 체제를 반인간적이라고 여기며 적대적으로 여길 수도 있다.
원래 이론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적대적 성격을 갖고 공식적으로도 서로 적대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자본주의는 자기 국가가 사회주의로 넘어가지 않도록 여러 노력을 하며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다.
그래서 체제를 중심으로 서로를 대하면 남과 북은 서로 적대적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 국민이 북한 국민을 단지 사회주의 ‘인민’으로 바라보고, 북한 국민이 한국 국민을 단지 ‘자본주의 국민’으로만 여기면 통일이 불가능하다.
이런 대결 구조를 명문화한 게 바로 한국의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국가로도 인정하지 않고 반국가단체로 치부한다. 국가보안법은 북한 ‘인민’을 모두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 보기 때문에 한국 국민이 북한의 그 어떤 사람을 만나면 모두 ‘적’을 만난 것으로 간주해 회합통신죄로 처벌한다. 유튜버 김세은 씨는 영상을 올린 뒤 북한 사람을 만나면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마도 공안당국이 김세은 씨가 어떻게 북한 사람을 만나게 됐고 영상을 올렸는지 조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세은 씨의 영상은 400만 명이 넘게 시청했고 공중파 방송에도 소개됐지만 그럼에도 공안당국이 김세은 씨를 처벌하고자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야말로 체제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북한 전체를 적대하게 만드는 체제 대결 구조의 뿌리다.
한국에서 벗어나 세계로 시선을 돌려보자.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사람과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은 공존할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세계 여러 나라를 보면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공존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핀란드, 일본, 인도,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에 공산당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서는 사회주의 바람이 생각보다 거세다. 미국에는 공산당이 있어 2019년 시의원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선에서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가 출마해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거기다 미국인의 사회주의 지지도 심상치 않다. 2019년 3월 미국 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43%가 “사회주의는 국가에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2018년 8월 미국 갤럽 조사결과에서는 30세 미만 미국 청년 중 51%가 사회주의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자본주의를 선호하는 청년은 45%로 사회주의를 선호한다는 답변보다 적었다.
사회민주주의까지 범위를 넓히면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하기까지 했다.
중국의 경우 일국양제를 해서 본토는 사회주의, 홍콩은 자본주의 체제를 각자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다.
만약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서로를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적대관계로 여겼다면 이 나라들에서는 이미 유혈사태와 내전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국가보안법을 통해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서로 공존할 수 없다며 죽일 듯 싸우라고 강요한다.
북한의 경우 이미 1970년대부터 연방제를 주장해왔다. 연방제는 북한의 사회주의와 한국의 자본주의를 서로 인정하면서 민족을 중심으로 통일하자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이런 주장으로 보면 북한의 입장은 체제보다 민족을 우선시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북한은 자본주의자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우호적이고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과는 손잡는 것이 자신의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지금이야 삼성이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1위 기업이지만, 정주영 명예회장 당시 현대그룹은 1977년부터 2000년까지 24년 동안 1위 기업으로 군림했다. 정주영 명예회장과 현대그룹이야말로 한국의 대표적인 독점자본가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 정주영 명예회장은 분단과 체제대결에서 대척점의 끝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손잡았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89년 한국 기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방북해 고향에 가서 친척을 만나고 북한과 금강산관광과 합작회사 설립 등 경제협력에 합의했다. 그 후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8년 소 500마리를 몰고 방북하기도 했다.
북한은 정주영 명예회장을 성심껏 대한 것 같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정주영 명예회장을 방북할 때마다 접견해주었다. 직접 숙소에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북한은 새로 지은 체육관의 이름을 류경정주영체육관이라고 지어 정주영 명예회장을 오래도록 기리게 했다. 북한의 청년단체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이 올해 4월 10차 청년동맹 대회를 개최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류경정주영체육관이었다. 북한 청년이 한국 자본가 이름을 딴 경기장에서 대회를 여는 건 체제 대결의 관점에서 보면 모순처럼 여겨지지만 민족단합의 관점에서 보면 하등 이상할 것 없고 긍정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정주영 명예회장만이 아니다. 한국 육군 중장 출신이자 박정희 정권 때 외무부 장관을 했던 최덕신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을 토벌하며 반공 최일선에 섰던 인물이다. 북한은 이런 최덕신과도 손을 잡았다. 최덕신은 1986년 북한으로 망명했고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선골프협회 회장 등을 맡았다. 사후엔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
북한에서는 사상이론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자본주의의 한 개량형태라고 분석한다. 이론적으로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에 적대적인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은 독일의 대표적인 사민주의자인 루이제 린저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를 보면 북한은 사상이론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적대적인 사상으로 보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자를 덮어두고 적대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소개한 정주영, 최덕신, 루이제 린저가 사회주의자로 전향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그들과 손잡고 가깝게 지냈다. 북한의 행동을 놓고 평가하자면 체제를 서로 인정한 채로 민족을 내세워 하나의 국가를 만들자는 연방제안엔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체제 대결론을 주창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우리의 GDP는 북한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북한의 400배를 넘는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10월 5일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체제 경쟁이나 국력의 비교는 이미 오래전에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이미 한국이 체제대결에서 승리했으니 북한더러 굴복하라는 취지다.
이런 체제 대결적인 시각과 정책은 시급히 버려야 한다. 이런 시각으로는 남과 북이 화해를 할 수 없고 평화통일도 실현될 수 없다. 한국이 한국의 자본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것과 사회주의 제도를 적대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북한과 공존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에 공통성을 찾고 이 공통성에 집중해야 된다.
이는 어려운 게 아니다. 그저 흐름을 그대로 따르면 된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나 유튜버 김세은 씨는 북한 국민에게 통일되면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건넸다. 이 인사엔 통일해서 단일팀을 꾸리면 경기력이 향상되기 때문에 이익이라는 계산적인 생각이나, 너희 체제를 붕괴시켜 흡수통일 한 뒤에 만나게 될 거라는 체제 대결적 속심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그저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니 아쉬웠던 것이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궁금했고 통일이 되어 다시 만나길 바랐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인위적일 필요가 없다. 억지로 감동할 필요도 없고 체제 차이를 내세워 감정을 고의로 차단할 필요도 없다. 남과 북이 만나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체제대결은 사라지고 민족애만 남게 된다. 평창동계올림픽의 감동이 4.27 판문점을 지나 9월 백두산에 가 닿았듯 그렇게 자연스레 우리는 통일로 가게 될 것이다. 체제를 앞세우지 말자는 건 단지 이뿐이다.
이렇게 체제우선론을 철저히 극복하고 민족우선론을 절대화해야 한다. 그럴 때 남북은 서로를 적대하는 걸 넘어 서로를 존중하고 공정하게 대하면서 관계를 개선하고 힘을 하나로 모아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
바로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민족을 우선시하는 민족우선주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