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10월 12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147] 지각변동: 몰락하는 제국주의①
지금 세계정세에는 근본적인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를 주도해 온 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였다. 그런데 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이 위기를 극복하려 북한, 중국, 러시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한,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반제자주 국가 사이의 신냉전 대결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향한 제재와 봉쇄를 강화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내세운 ‘가치동맹’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 가치동맹엔 신냉전 대결 체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에 맞서 북·중·러가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주의·반제자주 진영은 세 나라가 각각 자기 힘을 키우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그리고 세 나라가 서로 연대와 공조, 지원과 지지의 기운을 높이고 있다.
이 대결에선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반면, 북·중·러가 공세를 펴며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형세가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살펴보려 한다.
<몰락하는 제국주의> 차례
1. 서론
2. 제국주의 형성
3. 신제국주의 체제의 형성
4. 신제국주의 체제의 역사
5. 본질적 한계와 최후 위기
6. 전망
1. 서론
9월 15일 미국이 영국, 호주와 함께 안보 동맹 오커스(AUKUS)를 출범시켰다. 오커스는 중국을 겨냥한 군사동맹으로 앵글로색슨 국가 중심의 민족적 색채가 강하다.
미국은 오커스를 출범시키며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해주기로 했다. 이는 미국이 핵확산을 자행하는 것이라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문재인 대통령도 미국에 핵잠수함의 판매나 기술이전 등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문제는 호주가 2016년 프랑스로부터 디젤잠수함 12척을 77조 원에 구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했었는데 핵잠수함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프랑스와의 계약을 파기해버렸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하루아침에 77조 원이라는 큰 이익을 잃게 되자 격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예정되어 있던 연설까지 취소하며 유엔총회에 불참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국방장관은 “등에 칼을 꽂는 짓이다”, “분하고 마음이 쓰리다”라며 규탄했고 예정되어 있었던 영국과의 국방장관 회담을 취소해버렸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마크롱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을 돕고 영국과는 군사 작전을 함께 하고 인도‧태평양에서 호주를 도우며 ‘우리가 당신들 뒤에 있다’라고 했는데, 개처럼 취급당했다”라고 보도했다.
프랑스가 격분한 데는 77조 원의 이익을 빼앗긴 것도 있지만 좀 더 뿌리 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커스를 출범시키며 “영국과 호주가 미국의 가장 오래된 동맹”이라고 말했다. 이는 앞서 말했듯 앵글로색슨족끼리의 동맹을 두고 한 말이다. 앵글로색슨족은 프랑스와 줄곧 마찰을 겪어왔다.
과거 유럽 사람들은 국가·민족적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았다. 유럽은 다양한 민족이 존재하고 또 새로운 민족이 유입되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프랑스인과 영국인은 서로 같은 민족, 같은 집단은 아니었다. 언어만 해도 프랑스 민중은 프랑스어를 영국 민중은 영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과거 프랑스와 영국은 서로 뚜렷한 구분 없이 섞여 생활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공작 윌리엄 1세가 영국땅을 공격해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이 되었다. 그탓에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은 국왕이면서도 프랑스의 공작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영국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건 아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영토도 뒤섞여 있기도 했다.
그러던 중 프랑스와 영국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 동안 전쟁을 했다. 이 전쟁이 ‘백년전쟁’이다. 유명한 프랑스의 잔 다르크도 바로 백년전쟁 때의 인물이다. 백 년 동안 전쟁을 치르다 보면 너와 나의 구분이 뚜렷해지고 자신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정체성이 바로 백년전쟁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 프랑스의 공작이 영국의 국왕이 되어 왕실을 이루면서 영국 상류층은 영어 대신 프랑스어를 사용해왔다. 그런데 백년전쟁을 거치며 영국 상류층도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프랑스와 영국은 백년전쟁을 통해 서로를 구분지으며 정체성을 형성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정체성이 생겨났을 때부터 적대적 관계로 출발한 것이다.
적대관계는 백년전쟁 이후로도 계속됐다. 영국과 프랑스는 캐나다 식민지배를 두고도 충돌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1600년대에 각각 캐나다를 침략해 160여 년을 식민지배했다. 그러던 중 1763년에 7년 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프랑스는 쫓겨나고 영국이 캐나다를 지배하게 됐다. 당시 프랑스가 지배했던 퀘벡주엔 지금도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많이 있는데 1967년 샤를 드골 대통령이 퀘벡주를 방문해 “자유퀘벡 만세! 프랑스계 캐나다 만세! 프랑스 만세!”를 외쳐서 논란을 일으켰다. 드골 대통령의 분리주의 조장 발언 이후 퀘벡주에선 퀘벡당이 창당되고 분리주의 운동이 활발해졌다.
오늘날 오커스의 갈등 한복판에 핵잠수함 문제가 있는데, 과거에도 프랑스와 앵글로색슨족은 핵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은 바 있다.
미국과 영국은 함께 핵무기를 개발했다. 영국은 튜브 앨로이스 계획을 수립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다 미국에 핵무기 계획을 넘겨주면서 미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계획에 동참했다. 영국의 과학자도 맨해튼 계획에 대거 참여했다. 미국과 영국은 1944년 하이드파크 협정을 맺어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영국에 기술을 제공해주기로 했다. 중간에 미국이 핵기술 이전을 금지하는 맥마흔법을 만들어 영국의 뒤통수를 쳤지만, 나중엔 다시 핵협력 관계가 되었고 1958년 미-영 상호 핵무기 개발 조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프랑스는 영국과 동등하게 대우해달라고 미국에 요구했지만 미국이 거절했다. 결국 프랑스는 독자 핵개발에 나섰는데 미국과 영국은 이마저 막아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열어 프랑스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 영국, 캐나다는 핵무기의 원료인 우라늄공급통제조약을 맺어 프랑스가 우라늄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프랑스는 국내에 우라늄 광산이 발견되어 핵개발을 추진할 수 있게 됐고 1960년 핵실험에 성공했다.
1970년대에 이르자 미국은 이미 핵보유국이 된 프랑스에도 핵기술을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핵잠수함에 대한 기술만큼은 끝까지 지원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은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전해주기로 했다. 그 탓에 프랑스는 77조 원의 이익도 잃었다. 이러니 프랑스가 배신감을 더욱 강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앵글로색슨족과 프랑스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그리고 앵글로색슨족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본토 국가들과도 마찰을 빚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0년 2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서 유럽 본토와 멀어지는 일이 있었다.
오커스 출범을 둘러싼 이번 사건에서도 유럽연합은 프랑스의 편을 들며 함께 반발하고 있다. 유럽연합 26개국 외무장관은 미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9월 20일 “우리 회원국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대우를 받았다”라고 했다. 독일의 유럽연합 담당 장관인 미카엘 로스는 “이번 잠수함 사태는 정신을 확 깨게 만드는 벨소리였다”라고 반발했다.
프랑스와 독일·이탈리아, 유럽연합의 주요 3개국은 최근 미국에서 벗어나는 탈미행보를 하거나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다. 독일은 미국의 제재 위협에도 러시아와 천연가스관 연결을 강행해 탈미친러행보를 했다. 이탈리아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미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자본주의 세계를 지탱하는 동맹관계다. 하지만 오늘날 유럽의 탈미행보는 미국과 유럽의 동맹관계가 그리 굳건한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사실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들은 진정한 단합을 이룰 수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들은 제국주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특성상 공생과 단합을 추구하지 않는다. 독식하려하고 서로를 짓밟고 지배하려 한다.
세계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에 제국주의에 대해 다루는 연재를 하고자 한다. 국내외에서 주요 사안이 발생하면 제국주의 연재 중간에 해당 사안을 다룰 수도 있다.
2. 제국주의 형성
제국주의란 다른 나라 또는 다른 민족 등을 지배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가 발전한 결과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1916년에 발표한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근본적 특징의 발전이자 그 직접적 연장”,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라고 규정했다.
1) 자본주의의 발전과 독점의 형성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방직기와 증기기관이 개발됐다. 방직기로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일하게 되면서 면 생산량이 폭증했다. 증기기관으로 증기기관차와 증기선이 만들어지면서 운송수단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소위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는 급격히 성장했고 기업과 자본가가 늘어났다. 자본가들끼리 경쟁이 일어났고 패자는 도태되거나 거대기업에 흡수됐고 승자는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 결과 대기업이 형성되면서 소수의 자본가가 해당 산업 분야를 독점하게 되었다.
또한, 자본주의는 은행을 발달시켰다. 자본가들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장을 짓고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 생산량을 키워야 했다. 자본가들은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했다.
과거 은행은 돈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중개자’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그 자체로 권력이다. 자본을 갖고 있고 대출을 통제하는 은행은 권력 중의 권력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은행은 대출을 통제하고 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산업자본을 지배해갔다. 그리고 은행끼리도 경쟁 끝에 작은 은행들이 대형 은행으로 통합되어 독점이 형성됐다.
이런 과정에서 거대은행과 산업자본이 융합해 금융자본으로 성장했다. 레닌은 은행이 “소극적 중개자에서 강력한 독점기업으로 성장”해 “거의 모든 화폐자본과 대부분의 생산수단과 원료 자원을 지배”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 결과 “은행이 통제하고 산업자본가들이 이용하는” 금융자본이 성장했다고 지적했다.
산업과 자본을 동시에 틀어쥔 금융자본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국가 전반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소수의 금융자본이 한 나라의 경제, 정치를 지배하는 ‘금융과두제’가 일어났다. 금융과두제가 실현된 자본주의의 단계를 독점자본주의라고 한다. 레닌은 초기 자본주의에서는 자유경쟁이 사회의 특징이었다고 한다면 독점자본주의에서는 독점이 사회 특징으로 부각된다고 지적했다.
2) 제국주의와 세계대전
독점은 제국주의를 낳았다. 자기 나라에서 독점을 이룬 독점자본가들이 더 큰 독점을 이루기 위해서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가능한 한 간결하게 정의한다면 자본주의의 독점단계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제국주의로 발전해 식민지 개척에 나섰던 나라는 자본주의가 먼저 발전했던 영국, 프랑스 등이다. 제국주의 나라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지를 분할해 식민지로 삼았다. 지금도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의 국경이 부자연스럽게 직선으로 그어져 있는데, 제국주의 국가들이 땅따먹기하듯 아프리카를 나눠 가졌기 때문이다. 제국주의가 제멋대로 그은 국경은 여러 민족을 부자연스럽게 한 국가로 묶거나 한 민족을 갈라놓았다. 이는 오늘날 적잖은 아프리카 나라에서 분쟁이 발생하게 된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세계 식민지 분할이 거의 완료된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이탈리아 등은 비교적 늦게 제국주의로 발전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한때 앞서가는 제국주의 국가였지만 쇠퇴해가던 중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앞서서 식민지를 다 차지해버린 바람에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만들 수 없었다. 미국 작가 모리스의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식민지는 1860년 650만km²에서 1880년 2,000만km²로 늘었고 프랑스는 1880년 180만km²에서 1899년 440만km², 독일은 1880년엔 식민지가 없다가 1899년 260만km²로 늘었다. 독일이 영국에 한참 뒤처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독일은 생산력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따라잡은 상황이었다. 일례로 강철 생산량을 보면 1890년 영국은 800만 톤, 독일은 410만 톤이었는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영국은 1,100만 톤, 독일은 1,470만 톤이었다.
후발 국가들은 국력이 선발 제국주의 국가를 따라잡을 만큼 성장했는데 식민지를 넓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선발 제국주의 국가의 독점자본은 식민지에 기초해 더 큰 독점을 이루며 성장하지만 후발 제국주의 국가의 독점자본은 경쟁에 밀려 도태되고 몰락하게 될 것이었다. 독점자본이 살아남기 위해선 식민지를 가져야 했고 식민지를 갖는 방법은 다른 나라의 식민지를 빼앗는 것뿐이었다. 1,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레닌은 1차 세계대전을 ‘이미 분할되어 있는 식민지를 제국주의 국가 간에 재분할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에 발발해 1918년 11월까지 이어졌다. 영국은 부상하는 독일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 러시아와 손잡았고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등과 뭉쳤다.
어떤 이들은 1차 세계대전을 공교롭게도 우연이 연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총으로 암살한 사건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를 두고 한 발의 총성이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 총격사건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건을 계기로 전쟁이 발발했을 것이다. 예컨대 1차 세계대전에 앞서 독일은 프랑스와도 충돌한 바 있다. 1900년대 초 프랑스가 모로코를 식민지배하고 있었다. 그때 독일은 모로코의 문호를 개방할 것을 주장했고 1905년엔 모로코가 주권국가라며 독립을 선포하며 마찰을 빚었다. 1911년엔 모로코 민중이 프랑스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는데 독일이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구실로 군대를 파견했다. 다시 한번 프랑스와 독일이 충돌 위기를 맞닥뜨린 것이다. 이 갈등은 회담 끝에 프랑스가 모로코를 차지하도록 인정받는 대신 콩고의 일부를 독일에 넘겨주면서 종료됐다. 독일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본질은 독점을 실현하기 위한 식민지 쟁탈전임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4년 다보스포럼에서 한 말을 참고해보자. 당시 한 기자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냐고 질문했다. 이에 아베는 “당시 영국과 독일은 큰 경제관계가 있었음에도 제1차대전에 이른 역사적 경위가 있다. 질문한 것과 같은 것이 일어나는 것이 일·중 양쪽에 있어서 큰 손실일뿐 아니라 세계에 있어서도 큰 손실이 된다”라고 말했다.
아베의 발언은 독일이 성장하려는데 선발국가인 영국이 막았기 때문에 이해충돌이 발생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것처럼 오늘날 일본이 중국의 부상을 막고 있는 꼴이라 일본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취지다.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내비친 이 발언은 논란을 일으켰다.
아베의 발언은 지금도 제국주의 국가의 사고방식이 제1, 2차 세계대전 때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더라도 일본과 중국이 꼭 싸워야 하는 건 아니다. 일본과 중국은 얼마든지 공존하며 공동의 번영을 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베는 중국과의 공존을 상상하지 못하고 반드시 대결해야 한다고 여겼다. 제국주의 국가는 본질적으로 독점을 이루려 하지 공생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독점자본과 제국주의에는 독점에 실패해 몰락하거나 아니면 독점에 성공해 상대방을 지배하는 것, 둘 중 하나만이 있을 뿐이다.
2차 세계대전도 본질은 제국주의 간 식민지 쟁탈전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을 당긴 나라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게 되는 등 극심한 위기에 놓였다. 이 경우 흔히 혁명이 일어나거나 극우화되기 마련이다. 위기를 맞은 독일에서는 공산주의가 확산하고 있었는데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공격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독점을 실현하기 위해 또다시 식민지 쟁탈전에 나섰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폴란드와 소련 등을 침략했다.
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편을 들어 승전국 대열에 꼈다. 이탈리아는 1915년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런던조약을 체결해 영국편을 드는 대가로 일부 영토를 양도받기로 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영국과 프랑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식민지를 확보하지 못했고 독점 경쟁에서 또다시 도태되었다. 그 결과 이탈리아는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 알바니아를 병합하며 프랑스를 침공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배하고 1937년 중국을 침공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침략해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가 가지고 있던 식민지를 빼앗기 시작했다. 미국 등 다른 제국주의 국가는 일본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빼앗고 중국을 차지하게 되는 걸 저지하고자 했다. 그래서 일본을 막기 위해 석유 등 전략물자 수출 중단 조치를 했다. 일본은 다른 제국주의 나라들의 요구에 굴복해 중국 강점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제국주의 나라와도 맞서 싸워 식민지 쟁탈전을 계속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여기서 일본은 중국 강점 야욕을 포기하지 않았고 제국주의 국가와의 전쟁을 결심해 진주만 공습을 강행했다.
(이어서 계속)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