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30.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1월 20일 취임식에서 취임 연설을 하며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많은 사람이 미국의 정치체제를 민주세계의 표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국제 비영리재단인 민주주의 동맹 재단과 설문조사 전문업체 라타나가 2021년 5월 5일 공개한 ‘민주주의 인식 지수 2021’ 보고서에서 미국이 민주적이라고 답한 미국 국민은 50%였다. 오히려 조사 대상 53개국 응답자의 44%가 미국이 자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미국을 진정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미국 민주주의의 실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자본이 중요한 미국의 선거


미국은 18세기부터 1인 1표제가 아닌 주마다 선거인단을 두어 간접선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민이 대통령 후보에게 직접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가 선거인단을 뽑고 그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마도 선거에 관해서 일 것이다. 미국의 선거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인 국민의 의사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의아해할 수도 있다.

미국의 선거는 기본적으로 자본이 성패를 좌우한다. 대선은 대개 선거 2년 전부터 활동을 시작하고 전국을 다 돌면서 유세를 해야 하기에 선거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미국의 TV는 95% 이상이 상업방송이고 일상 프로그램 중에 선거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선 후보들은 선거운동 비용의 많은 부분을 투자한 TV 광고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드러낸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선거가 돈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법정선거비용이라고 해서 일정한 금액 이상의 돈을 쓸 수 없지만 미국 선거에선 특정 후보가 돈을 얼마나 쓰든 비용지출에 상한선이 없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선거비용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것은 미국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공화당 의원 버클리 발레오가 1974년 만든 법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 정당이나 개인에게 낼 수 있는 정치헌금의 규모는 제한하되 선거에 쓸 수 있는 전체 경비의 규모는 제한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의 선거비용은 해를 거듭할수록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미국의 민간 비영리단체인 책임정치센터(CRP)는 2021년 2월 11일 2020 미 대선과 상·하원 선거를 합해 역대 최대인 144억 달러가 쓰였다고 밝혔다. 이 중 대선 비용은 약 57억 달러, 의회 선거비용은 약 87억 달러로 예상했다. 이는 4년 전인 2016년에 기록한 65억 달러의 2배가 넘는 액수다. 책임정치센터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선거에는 52억 달러, 2012년에는 62억 달러가 투입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거비용은 어떻게 마련할까?

2010년부터 특별정치활동위원회, 이른바 슈퍼팩(Super PAC:Political Action Committee)이란 것이 생겨났다. 슈퍼팩은 특정 정치인이나 법안 등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무한정으로 돈을 모으거나 쓰며 활동을 하는 단체를 말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기업이나 노동조합이 특정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지출하는 광고와 홍보비에 제한을 둘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기업이나 이익단체들은 정치자금 모금기구를 만들어 선거에 직접 뛰어들게 되는데 이것이 슈퍼팩이라는, 마치 돈을 마구 거두어들이는 공룡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미국 이익집단들은 선거자금을 기부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미국에서는 로비 활동이 합법이기 때문에 로비를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것이다. 연방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 자금 규모가 한 해에 30억 달러가 넘고 법무부에 등록된 로비스트만 12,000명을 넘는다. 미국 50개 주 정부 차원에서도 로비 활동이 이루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로비 산업의 규모는 훨씬 크다.

로비 활동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기업을 보면 각 산업 분야에서 기업 규모가 크고 가장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이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 화이자(Pfizer Inc)는 2015년 한 해에만 9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로비에 썼고 동시에 미국 정부로부터 많은 제약 관련 특허를 받았다.

민주당은 이번 2020년 대선에서 투자·법률·교육·미디어 등 10개 산업 부문 중 9곳에서 많은 후원금을 받았고 공화당은 부동산 부문에서만 민주당에 앞섰다. 

미국 IT기업들의 정치후원금 중 98%는 민주당에 전달되었다. 개인별로 보면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로 현재 경영 소프트웨어 등을 취급하는 ‘아사나’의 최고경영자 더스틴 모스코비츠가 정치 기부금으로 2,400만 달러(약 270억 원), 트윌리오 최고경영자 제프 로슨과 그의 아내 에리카는 약 700만 달러(약 78억 원), 구글의 전 최고경영자 에릭 슈밋은 약 600만 달러(약 67억 원)를 후원했다. 넷플릭스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아내와 함께 500만 달러(약 56억 원) 이상을 후원했다.

미 경제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 경영인들은 이번 2020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에게 7,400만 달러, 트럼프 후보에게 1,800만 달러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이처럼 미국은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에서부터 국민의 뜻보다는 자본의 유무가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 바이든 정부와 독점자본

 

바이든 정부가 취하는 행보는 자본력을 가진 세력의 이익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 마치 미국 대중들을 위하는 정책 같지만 이전 정부들과 같이 본질은 독점자본을 취한 세력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돈을 풀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부자증세와 국채 발행으로 돈을 만들어 코로나 피해도 메우고 인프라 시설, 태양광, 풍력 발전, 반도체 등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증세와 규제 강화는 달갑지 않지만 돈이 풀려 주가가 오르는 것은 이익이 된다. 그 돈들이 투자되는 곳에 많은 투자 기회들이 생겨날 테니 그것 역시 투자자들에게는 좋다. 이런 이유로 월스트리트 경영인들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유세 때 거대 IT기업을 향해 강력한 공격을 퍼붓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된 후 반독점 규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질적 해결보다는 가벼운 경고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반독점 규제는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었던 오바마 정부 때도 시행했던 것이지만 오바마 정부가 이후 기업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의도가 퇴색된 바 있다.

미 법무부와 연방무역거래위원회가 2020년부터 애플·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거대 IT기업들의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현재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기소하려면 시장독점이 실질적으로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끼쳤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거대 IT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상당수는 무료다. 또한 이들이 내놓는 서비스는 실제로 시장 가격을 낮췄거나 기존 제품보다 한층 개선된 것들이다. 구글의 검색, 유튜브의 동영상 공유 서비스, 아마존의 전자상거래, 페이스북의 소설네트워킹 등이 그 예들이다.

바이든 정부의 반독점 규제 압박이 들어오자 거대 IT기업들은 바이든 정부의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 정책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플은 향후 5년간 미국에서 신사옥 건립과 인공지능·5G, 독자 반도체 개발에 4,300억 달러(약 478조 원)를 쏟아부어 2만 명을 추가 고용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구글도 2021년에만 1만 명을 더 고용한다고 발표했고 아마존도 5,000명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의 대표 IT 기업들이 경쟁하듯 이러한 고용·투자안을 쏟아내는 의도는 분명하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자신들의 가치를 환기하고 이를 통해 거대 IT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 움직임도 최소한으로 줄여 피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 당시 이들이 보였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기업들은 바이든 정부와 로비를 함으로써 반독점 규제를 모면하려고 한다. 구글과 아마존은 2021년 1분기에만 정치권 로비 자금으로 750만 달러(약 83억 원)를 쓴 것으로 밝혀졌다. 블룸버그는 “구글과 아마존의 로비 자금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50%, 11%씩 늘어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와 군산복합체의 연결성도 주목해봐야 한다. 

미국의 국방 예산은 2020년 기준 7,500억 달러, 지출은 7,320억 달러로 전 세계 국방 관련 예산 중 부동의 1위였다. 하지만 정부의 국방비의 상당액은 언제나 무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군산복합체의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갔다. 바이든 정부가 2021년 국방 관련 예산으로 7,530억 달러를 책정한 것으로 보아 바이든 정부도 군산복합체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정권에서 일했던 외교 전문가들을 많이 등용했다. 이들은 군산복합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오바마 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국무부 부장관 역임)은 트럼프 정권 때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과 함께 컨설팅 회사 ‘웨스트이그젝’을 공동 창업해 대형 군수업체들과 손잡고 일했다. 웨스트이그젝에는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도 한때 일했다.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군수업체들은 한 해 평균 1억 2,700만 달러를 웨스트이그젝 등을 통해 의회 로비에 쏟아부었고 2020년 선거에서는 평균 2,500만 달러를 후원금으로 민주당 후보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미국의 외교 관계자가 군산복합체와 얽혀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핵심적인 무기제품 대부분은 미국 정부에 팔리고 외국 정부에게 제품을 판매할 땐 미 국무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같이 점점 비싸지는 현대 핵무기 대부분은 미국 정부가 유일한 구매자다.

 

3. 마무리

 

이처럼 미국 민주주의는 선거비용 무제한 정책으로 자본을 가진 세력에 휘둘리고 있다. 따라서 거대 IT기업과 군산복합체 등 막대한 자본을 가진 세력의 뜻대로 돌아가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 특파원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크리스 헤지스는 2020년 11월 5일 커먼드림즈에 기고하며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끝났다. 선거가 끝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capitalist democracy)가 끝났다. (중략) 그 실체는 소수의 과두세력이 자금을 지원하는 공들인, 그러나 공허한 ‘리얼리티 쇼’이다. 그 목적은 미국인들에게 마치 선택지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선택지는 없다. 장광설을 늘어놓는 트럼프와 언어 능력에 손상을 입은 바이든 사이의 공허한 대결은 진실을 가리도록 계획된 것이다. 과두세력이 항상 이긴다. 민중은 항상 진다. 백악관에 누가 앉아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메리카는 실패한 국가이다.”

 

 

이인선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