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9.

‘승인’ 거부하면 미국의 보복으로 경제가 망한다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1. 문재인 대통령 2020년 대북 구상의 현황

 

(1) 신년사에서 밝힌 대북 구상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7일 신년사에서 “지난 1년간 남북협력에서 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고 하면서 “북미대화가 성공하면 남북협력의 문이 더 빠르게 더 활짝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북미대화를 앞세웠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는 북미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과 북 사이의 협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겠다고 하였다. 특히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갈 것”이라고 하면서 “지난 한 해, 지켜지지 못한 합의에 대해 되돌아보고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친 이유를 되짚어” 볼 것이라고 하였다. 

정리하자면 작년 한 해 북미관계만 바라보며 남북관계를 뒤로 미뤘는데 그에 대해 반성하고 올해는 북미관계와 무관하게 남북관계에 속도를 내겠다는 말이다. 즉, 미국 눈치를 그만 보고 독자적으로 대북정책을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특히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개별관광이다. 개인이 여행사를 통해 북한여행을 하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개별관광이 대북제재와 무관하기 때문에 당장 가능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이끌어가겠다는 대통령의 신년사는 반가운 소식이다”라고 환영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역임했던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올해는 일을 벌이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대통령이 이 정도 말씀했다면 금년에 통일부 장관은 직을 걸고 일을 벌여야 한다”, “우리는 (미국과 다른)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라며 기대를 보였다. 박지원 민생당 의원도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대북 개별관광 추진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라고 했다. 

(2) 미국의 ‘승인’ 요청

그런데 미국이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해리스 주한미대사는 “남북관계 진전이 북한 비핵화 속도에 맞춰져야 한다”라며 독자적인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을 반대했고 “한국이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남북협력을 위한 어떤 계획도 미국과의 워킹그룹을 통해 논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도 미국의소리(VOA)의 관련 질문에 대해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라고 답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미국이 반대 입장을 내자 정부와 여당, 청와대가 한꺼번에 반박하였다. 특히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대사가 무슨 조선총독인가”라며 분노했고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도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겉으로 항의한 것과 달리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 최종건 청와대 평화기획비서관이 2월 초 연달아 미국을 방문했다. 청와대가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특히 개별관광에 대한 ‘승인’을 받기 위한 행보였을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기존 워킹그룹이 있는데도 청와대가 직접 움직인 것은 “남북 협력사업, 특히 개별 관광 추진하는 것에 대한 답을 좀 듣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2월 10일에는 한미워킹그룹도 열렸다. 원래 이 회의에는 외교부가 참가하는데 통일부 정책실장이 별도로 미국측 워킹그룹 대표인 알렉스 웡 미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를 만났다. 어떻게든 미국을 설득해 ‘승인’을 받으려 노력한 것이다. 

(3) 북한에는 제안조차 하지 않아

그래서 대통령 신년사로부터 2달 가까이 지난 지금 독자적인 남북관계, 특히 개별관광은 어떻게 됐을까? 한 마디로 아무런 진척도 없었다. 

지난 2일 통일부 창설 51주년 기념사에서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남북관계 소강국면이 길어지는 가운데 코로나19까지 더해져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쉽지만은 않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개별관광은 아무것도 추진되지 않았다. 

언론은 대체로 ▲제3국을 경유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과 시간 문제 ▲미국의 ‘승인’ 문제 ▲북한의 호응 문제 등 3가지 문제가 풀려야 개별관광이 가능하다고 풀이한다. 이 가운데 비용과 시간 문제는 북한 관광을 할 수만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또 제3국을 경유하지 않고 육로관광을 하면 풀리기 때문에 결국 미국의 ‘승인’이 관건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이 미국을 방문하고, 한미워킹그룹에서 호소도 했지만 미국은 ‘승인’을 할 것 같지 않다. 미국 내에서 긍정적인 기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가. 흥미로운 건 통일부가 아직 북한에 개별관광을 제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2달 동안 계획만 만지작거리고 미국만 바라봤을 뿐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통일부는 3일에도 제3국 여행사를 통한 북한 개별관광을 추진하겠다고 언론에 홍보를 했다. 정작 사업 대상인 북한에는 제안조차 하지 않고서 금방이라도 사업을 시작할 것처럼 분위기만 띄우면 결과는 뻔하다. 결국 사업이 무산된 후 ‘우리는 열심히 했는데 북한의 호응이 없어서 사업 진척이 안 됐다’고 책임전가하지 않을까싶다. 

북한에 직접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언론을 통해 북한도 문재인 정부의 개별관광 구상을 알고는 있다. 지난 2월 16일 북한 매체인 ‘조선의 오늘’이 칼럼을 통해 “남조선 외교부 당국자는 미 국무성 대북정책 특별부대표와 한미실무팀 회의를 열고 저들의 대북제안에 대한 상전의 승인을 얻으려 했다”라며 미국의 ‘승인’을 받으려는 행태를 비판했다. 

(4) 미국의 ‘승인’ 절차는 불가피한 과정인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의 ‘승인’에 연연하지 말고 대통령 신년사에서 말한 것처럼 독자적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2월 11일 ‘개성공단 전면중단 4년, 이제는 열자’ 행사에서 “우리는 그동안 충분히 (미국과) 보조를 맞춰왔다”라고 언급하며 부시 정권 시절 개성공단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만의 독자적인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한국 정부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상임이사도 2월 19일 ‘북한지역 개별관광 실현을 위한 법적·제도적 검토’ 토론회에서 “북한 개별관광을 미국에 허가받는 식의 행태를 보며 북한은 우리가 미국의 간첩을 보내겠구나 판단할 것이다”라며 미국 눈치 보지 말고 독자적으로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나오면 항상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현실에서 미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특히 미국에 경제를 의존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미국과 엇서면 경제보복을 당해 나라가 망하는 꼴이 날 것이라 우려한다. 

사실 이런 주장의 뿌리는 식민지근대화론이다. 당시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들은 일본이 강하기 때문에 일본의 속국이 되어야 우리도 살아남는다는 논리를 펴면서 독립을 주장하는 백성을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취급했다. 

그렇다면 정말 미국의 ‘승인’ 없이 대북정책을 추진하면 미국의 경제공격을 받아 한국 경제가 망하는지를 따져보자. 

2.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의 외환위기 극복 사례

(1) IMF 구제금융과 모라토리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 외환위기 속에서 IMF의 돈을 빌려 국가부도를 면했지만 IMF에 경제주권을 내주는 치욕을 겪으면서 많은 이들이 ‘경제신탁통치’를 받게 된 처지에 울분을 토했다. 

그런데 당시 국내에서는 IMF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모라토리엄을 선포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모라토리엄이란 ‘지불 유예’란 뜻으로 일시적으로 빚을 갚기 어려워진 나라가 일정기간 빚을 갚지 않는 것을 말한다. 1931년 미국 후버 대통령이 1년 간 유럽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후버 모라토리엄 등 세계 여러 나라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적이 있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보통 채권국과 협상에 돌입한다. 그러면 채권국은 이자나 원금을 일부 탕감해주거나 만기를 연장해주는 양보를 하게 된다. 만약 채권국이 일정한 양보를 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나오면 채무국이 아예 한 푼도 갚을 수 없다고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보다는 채무국이 다시 경제를 회복해 조금이라도 돈을 더 갚는 편이 채권국 입장에서는 나을 것이다.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는 속담처럼 채무자가 주도권을 쥐는 일은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난다. 

모라토리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아예 빚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채무 불이행’은 디폴트라고 한다. 디폴트는 사실상 국가부도를 의미한다. 디폴트의 가까운 사례로 2015년 그리스, 2017년 베네수엘라의 디폴트 선언을 꼽을 수 있다. 한번 국가부도를 선언하면 그 나라 신용도가 바닥에 떨어지기 때문에 국가 사이의 금융거래나 무역거래에서 큰 불이익을 받게 된다. 

디폴트는 경제적 문제로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뿐 아니라 외교적 문제로 경제보복을 하는 경우에도 쓰인다. 예를 들어 1979년 이란혁명 후 미국은 이란과 국교를 단절하면서 미국 내 이란 자산을 동결했고 이란 계좌를 보유하고 있던 체이스 은행은 이란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했다. 즉, 이란 돈이지만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처럼 적대적 관계가 되어 더 이상 금융거래, 무역거래를 할 일이 없어지는 경우 디폴트 선언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모라토리엄은 디폴트와 달리 일시적으로 빚을 갚지 않는 것이지만 1997년 한국에서는 진지한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IMF 협상을 이끌었던 임창열 전 경제부총리는 “우리가 모라토리엄하면 어떤 상황이 오겠느냐. 우리는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고 식량자급도가 30%밖에 안 되는 나라에요. 그런데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누가 우리 기름을 주고 누가 식량을 외상으로 주겠습니까. 한국은 외환도 기름도 신용도 없는 나라인데, 우리가 앞으로 당신네 빚은 못 갚겠소 선언하는 그때부터는... 기름이 다 끊어진 한국경제를 생각해 보세요. 공장 다 서고 자동차 다 서고 엘리베이터 다 서고, 식량을 70% 수입해서 국민 먹여야 되는데 70% 국민 굶겨야 되는 거 아닙니까. 누가 식량을 그냥 줍니까”라고 주장했다. (「“저는 예방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프레시안, 2007년 11월 21일.)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 초 브라질은) 포클랜드사태 이후 돈을 못 갚겠다며 지불불능을 선언했다. 그 대가는 실로 컸다 물가가 매년 1,000%씩 올라갔다. 외식을 하려면 돈을 자루에 넣고 가야할 지경이었다. 가계소득은 오히려 줄었다. 기업이 도미노로 무너졌다. 실업이 이어졌다. 한 푼의 달러를 벌기위해 양가집 처녀들까지 외국인 매춘에 나서는 기막힌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라토리엄’으로 가선 안된다」, 매일경제, 1997년 12월 24일.)

이런 논리 속에서 한국은 IMF 경제신탁통치를 받아들였다. 

(2) 마하티르의 ‘아시아적 가치’

하지만 같은 시기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달리 IMF 구제금융을 거부했다. 지금이야 다 아는 얘기지만 IMF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기에 미국은 외환위기에 빠진 나라에게 IMF 구제금융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지금도 미국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가 김영삼 정권 시절이던 당시에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말레이시아는 반미국가가 아닌 친미국가임에도 IMF 구제금융을 선택하지 않았다. 

당시 말레이시아가 겪은 일을 다룬 한겨레21 제834호 「IMF 구제금융 대신 모라토리엄 선언했다면」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말레이시아는 당시 외환위기를 해외 투기자본의 일시적 시장교란 행위로 간주했다. 따라서 한국과 달리 무턱대고 IMF와 손잡기보다 내부시장 보호에 힘을 기울였다. 위기가 본격화한 뒤에는 외환 유출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은 물론 외국에 나가 있는 자국 통화를 회수하며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국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린 것도 한국과 정반대였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이런 대응에 IMF는 코웃음을 쳤지만,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함께 외환위기에서 가장 빨리 벗어난 국가로 꼽힌다. 다만 IMF 이후 한국이 부동산 가격 폭등과 엄청난 공적자금 투입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말레이시아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도 않았고 물가도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그 당시 말레이시아는 외국인 주식투자를 규제한 한국과 달리 외국인 주식 투자가 활발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외국인 자금 유출을 전면 차단하여 해외 투자자들이 자기 자금을 회수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사실상 모라토리엄과 비슷한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으면 경제가 망한다는 한국의 확신과 달리 말레이시아는 성공적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입헌군주국인 말레이시아의 실권은 총리에게 있다)는 마하티르 빈 모하맛이었는데 1981년 취임해 외환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2003년까지 재임했다. 그에 대한 국민의 신임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2018년 5월 야당 후보로 재출마해 92세의 고령임에도 총리에 당선돼 말레이시아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는 기염을 토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아시아적 가치’의 주창자로 유명하다. 그는 서구 식민지배 잔재에서 벗어나 말레이인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적 전통과 정신에 의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철학이 서구 중심의 IMF를 거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는 경제주권을 지켰고 경제도 살렸다. 국제사회에서 말레이시아의 위상도 올라갔고 마하티르 총리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미국은 마하티르 총리의 자본통제를 비난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말레이시아에 경제공격을 퍼부어 망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레이시아 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적당히 타협하였다. 말레이시아 경제를 무너뜨려봐야 그동안 투자한 자본도 날리고 시장도 축소되고 해서 자신들도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이 경제공격을 한다고 말레이시아가 속절없이 무너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국가며 영연방 회원국인데다가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밀접하고 러시아와는 군사적으로 밀접하기 때문에 도와줄 나라가 많은 것이다. 

3. 김대중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이행 사례

(1) 6.15 공동선언 이행 정도

남북관계의 역사는 2000년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는 지대하다. 6.15 공동선언은 내용도 심오하지만 실제로 상당부분 이행되었다는 점에서 합의만 하고 거의 이행되지 못한 2007년 10.4선언이나 2018년 4.27 선언, 9월 선언과도 대비된다. 이는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 비해 김대중 정부의 남북합의 이행 의지가 훨씬 컸음을 의미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에서 돌아오는 즉시 정부 각 부처에 6.15 공동선언 이행 대책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 임기 내내 남북장관급회담이 꾸준히 열렸으며 여러 분야별 실무회담, 고위급회담도 열렸다. 이 성과로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업무를 재개했으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 남북 사이의 소득에 관한 이중과세방지 합의서, 남북 사이의 청산결제에 관한 합의서, 남북 사이의 상사분쟁해결 절차에 관한 합의서, 철도·도로 연결의 군사적 보장에 관한 합의서, 해운합의서, 통행합의서 등 다양한 실무 합의서들이 나왔다. 

또한 금강산 관광을 활성화하였고 개성공단,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등 굵직한 사업들을 시작하였다. 또한 공동 광산개발, 임가공 협력, 농수산물 반입 등 다양한 경제협력사업들이 진행되었다. 

민간교류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지식인 등 각계각층의 민간단체들이 남북을 오고가며 다양한 행사와 회의를 진행하였다. 또 이산가족 상봉,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곧바로 이루어졌다. 

특히 꾸준히 열린 장관급회담들과 부처별 고위급회담, 실무회담들,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은 통일로 가기 위한 기구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국회상설협의기구, 최고통수권자들의 협의기구까지 갖추면 곧바로 통일을 선포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1~2년만 6.15 공동선언을 이행했다면 그대로 통일 선포가 가능했을 정도의 대단한 성과였다. 

(2) 미국의 압박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승인’과 지원이 있었기에 이런 성과를 냈을까? 반대다. 미국은 처음부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주한미대사를 지낸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는 “2000년 초반, 임동원 국정원장의 대북 비밀접촉이 강화됐다. ...(중략)... 나는 당시 워싱턴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이 어느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깜짝 놀라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경고였다”고 회고했다. (「역대 주한·주미 대사들이 밝히는 한미관계」, 『월간조선』 2009년 5월호.) 즉, 미국이 김대중 정부를 의심하면서 주한미대사를 시켜 무슨 일을 꾸미는지 ‘실토’하게 압박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차량 동승을 한 것 때문에 미국이 분개했다는 후문도 있다. 미국과 국내 보수언론은 대체 차량에 동승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집요하게 파헤쳤고 심지어 미 중앙정보국이 감청했다는 주장까지도 나왔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고 하루 만에 미국은 국방부 대변인 브리핑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한의 통일 후에도 안정세력으로 한반도에 남아있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미국측에 피력했다”고 밝히고 “우리는 전진배치된 군을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혹시라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주한미군철수를 비밀리에 합의하지 않았는지 불안해 아예 쐐기를 박은 셈이다. 

2001년 3월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날아간 김대중 대통령을 부시 미 대통령은 ‘이 양반’(this man)이라고 호칭했다. 정상외교 석상에서 나올 수 없는 모욕적인 표현을 쓴 것이다. 그만큼 미국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김대중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했다. 

훗날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은 “김대중 정부와 미국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미국의 김대중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 불신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철도 연결된다는데 위기 왜 계속되나」, 오마이뉴스, 2003년 5월 27일.)

당시 미국 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이제 막을 수 없다’는 체념의 목소리도 나왔고 증권가에서는 미국의 김대중 암살설이 떠돌기도 했다. 

(3) 미국은 경제공격을 하지 않았다

미국의 압박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흔들림 없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나갔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한국은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역사, 현안, 전략」이라는 논문에서 “사실 김대중은 미국과의 정책적 이견이 확대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북관계 개선과 보다 자주적인 대미관계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한 철학에서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김홍걸 의장은 “(아버지는) 자기 철학이나 주관이 뚜렷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김 의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전쟁 당시 죽을 고비를 넘겼다면서 이를 “동포에 대한 사랑, 평화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켜서 어떻게 하면 다시는 비극을 겪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여 “우리가 다시는 전쟁을 겪지 않으려면 일단 외세가 아닌 우리가 자주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대북정책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즉, 대통령이 되기 전 30~40년 전에 이미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는 계획이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정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미국과 상의 않고 질러보는 배짱도 필요해”」, 오마이뉴스, 2019년 10월 17일.)

물론 당시에도 미국의 뜻을 거스르면 경제보복을 당할 수 있다, 제2의 IMF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IMF 사태로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은 직후라 만약 실제로 제2의 IMF 사태가 터지면 회복 불능의 경제 타격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는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고수했으며 미국은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만약 그때 미국이 경제공격을 했다면 한국은 가만히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남북경제협력에 더욱 속도를 내고 중국 등 다른 곳에서도 대안을 찾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한국을 통일로 떠미는 꼴이 되며 주한미군도 주둔 명분을 찾지 못하고 결국 철수하게 된다.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한국을 주변 적대국에게서 지켜준다는 것인데 한국이 미국 대신 주변국과 협력하는 길로 나가면 주한미군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의 동북아 패권을 허물 것이며 미국은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피해만 막대하게 입는다. 이걸 뻔히 알기에 미국은 한국에 경제보복을 하지 않은 것이다. 

4.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철학

(1) 미국은 절대 한국경제를 망하게 할 수 없다

한국정부가 독자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려 한다면 미국이 엄청난 압박과 간섭, 방해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한국경제를 망하게 하지는 못한다. 한국경제의 붕괴는 미국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상황이면 한국이 남북경제협력에 매진하면서 중국, 러시아와도 손을 잡고 동북아 경제협력을 추진할 것이기에 자칫 미국 자본이 배제된 신흥 동북아 경제권이 탄생할 수 있다. 

만약 남북이 통일을 하고 주한미군이 철수한 후에도 통일정부가 외국자본의 정상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정책을 편다면 미국은 그나마도 감지덕지할 것이다.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이 블루오션이라는 주장을 거듭 펼치면서 이곳 경제를 위해서는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자본가들도 무엇이 자신들에게 이익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통일 한반도가 한국 지역에서 미국자본을 다 몰수하고 미국과 경제관계를 전면 단절한다고 하면 미국도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끊어야 한다. 이 경우는 미국 자본가들이 엄청난 기회를 잃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정부가 미국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미국의 경제보복을 받는다는 논리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미국이 주입한 공포에 문재인 정부와 주변 인사들이 겁을 먹은 것뿐이다. 미국의 경제공격론이라는 유령에 언제까지 놀아날 것인가. 

(2)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철학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의 사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외교에서 국익을 앞세우려면 철학이 있어야 한다. 자기 민족, 자기 나라의 운명을 외세의 ‘승인’ 없이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자주의식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어떻게든 실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하고, 현실에서 펼쳐낼 정치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철학도, 의지도, 능력도 너무 빈약하다. 문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이게 김대중 대통령, 마하티르 총리와의 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족적 관점, 자주적 관점이 빠진 철학, 즉 친미사대주의와 체제우월반북의식에 젖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51일 만에 미국을 방문했다.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빠른 방미 기록을 세웠다. 당시 참모진은 인수위 기간도 없이 취임해 정부 정책을 완비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미국을 방문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반대했지만 이를 물리치고 방미를 강행했다고 한다. 그렇게 미국을 방문해 미군이 없었으면 자신이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2018년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대화를 전격 제의하기 전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와 정책은 박근혜 정부와 너무 흡사하여 남북관계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의 한숨과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2018년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한 뒤에도 각종 발언에서 통일을 언급하는 걸 극히 꺼려 과연 헌법 제66조 3항에 명시된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는 사명을 이행할 생각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였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경제를 강조해왔다. 통일을 배제한 평화경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평화경제는 민족적 관점, 자주적 관점에서 나온 게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장사꾼이 계산기 두드려 뭐가 자기에게 더 이익인지 고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남북경제협력과 한반도 경제공동체, 동북아 평화경제권 등의 희망찬 미래는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번영 전망이다. 이걸 문재인 대통령도 알고 선택한 것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4.27 선언, 9월 선언을 이행하지 못하는 근본 한계가 바로 이 지점이다. 대통령의 철학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친미사대, 체제우월반북의식이 문제다. 

5. 대안은 있다

문재인 정부에 한계가 있다고 해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 통일을 향한 우리 민족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방법은 없지 않다. 

첫째, 국민이 친미사대, 체제우월반북의식을 버리고 민족자주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은 물론 중요하지만 대통령이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나라의 진짜 주인인 국민이다. 

전 국민이 하루빨리 미국에 대한 공포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말을 듣지 않으면 경제보복을 당해 망할 거라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연장인 미국의 경제공격론을 배격해야 한다. 

그리고 6.15 공동선언, 4.27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하고 온 겨레가 전폭 지지한 것처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의 정신으로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생각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렇게 국민이 먼저 친미사대, 체제우월반북의식에서 벗어나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정신을 갖춰야 한국 정부도 그 길로 나아가도록 견인할 수 있다. 

둘째, 6.15 공동선언과 4.27 판문점선언을 잘 실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키워야 한다. 

미국 눈치 보지 않는 자주통일의 확고한 철학을 가진 정치세력이 힘을 가져야 남북합의도 이행할 수 있고 통일도 실현할 수 있다. 

현재 6.15 공동선언, 4.27 선언의 정신에 가장 가까운 정치세력은 민중당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중당에 정당투표를 집중해 힘을 실어줘야 한다. 

민중당은 6.15 선언, 4.27 선언에 철저히 근거해 민족의 요구를 실현하는 데 온전히 복무하는 정당으로 혁신하고 전진해야 한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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