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9.

1. 북한의 군사훈련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

2월 말부터 북한이 군사훈련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월 28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지도한 합동타격훈련이 있었다. 이 훈련은 전선과 동부지구 방어부대들의 기동, 화력타격 능력을 판정하고 군종 합동타격 지휘를 숙련하는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언론과 전문가들은 과거 훈련에 비해 규모도 작고 북한 언론 보도의 자극적 표현도 없다며 대외 무력과시보다는 대내 사기진작용에 무게를 두었다. 정부도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3일 후인 3월 2일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지도한 전선 장거리 포병 구분대의 화력타격훈련이 있었다. 여기에는 3일 전과 달리 사거리 240km에 달하는 초대형 방사포(다연장로켓포)도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군당국은 단거리 발사체 2발을 포착했다고 발표해 미사일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청와대는 북한을 규탄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곧바로 김여정 제1부부장의 강경한 반박 담화가 나왔고 더 이상 정부는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인 3월 9일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 아래 전선 장거리 포병 구분대의 화력타격훈련이 또 있었다. 북한 언론은 이 훈련이 “불의적인 군사적 대응타격능력을 점검하기 위한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되었다고 보도해 김정은 위원장이 예고 없이 긴급 명령을 내리고 포병부대가 얼마나 빨리 훈련에 돌입하는지를 점검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군 포병무력을 누구나 두려워하는 세계최강의 병종으로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이번에도 군당국은 단거리 발사체를 포착했는데 북한은 미사일인지 방사포인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3일 후인 3월 12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지도한 포사격대항경기가 열렸다. 제7군단과 제9군단 산하 포병 부대의 대항경기였는데 사실상 예고 없는 기습 훈련임을 알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총참모부가 앞으로 오늘과 같은 방식의 훈련을 자주 조직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처럼 2월 말부터 최근까지 북한은 포병의 자주포, 방사포 사격을 중심으로 하는 화력타격훈련을 연이어 진행하였다. 

특이한 것은 미래통합당 등 전통적 반북수구세력들이 북한의 군사훈련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반북수구세력들은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집중 부각해 ‘안보 장사’를 해왔으며 이는 특히 선거를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들의 주된 논리는 ‘북한이 군사력으로 우리를 위협한다’, ‘문재인 정권의 안일한 대북정책이 북한의 위협을 불렀다’, ‘문재인 정권은 친북정권이다’, ‘문재인 정권의 남북대화정책은 파탄났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번 북한의 연이은 군사훈련에 대해서는 의외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작년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작년에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만 하면 자유한국당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7월 말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긴급 브리핑을 열어 “우리 안보의 총체적 위기”라며 청와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고 북한 규탄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자유한국당은 북한을 규탄하면서 동시에 문재인 정권이 소극적 대응을 한 결과라며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나아가 9월 남북군사합의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며 파기하라는 주장도 하였다. 

그랬던 자유한국당이 올해 미래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꾸고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마 북한 문제를 부각하는 게 선거에 불리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2010년 지자체선거 당시 천안함 사건을 ‘북풍’으로 활용하려다 ‘1번 전쟁, 2번 평화’ 구도로 가서 역풍이 불었던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사실 당시에도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 내에서는 선거에 방해가 된다며 지도부에 항의하는 인사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당시의 교훈에 따라 북한 문제가 아예 부각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청와대와 정부여당도 3월 2일 훈련에 반응을 했다가 괜히 북한의 강력 대응으로 망신만 당하고 그 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반응을 하면 할수록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그 책임을 자기들이 져야 하기에 아예 반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을 떠나 일반 국민들도 북한의 군사훈련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가 워낙 사회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고, 또 총선도 다가오고 경제도 어렵고 이런 여러 문제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북한이 연이어 군사훈련을 하는데 거론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독특한 현상이다. 

이상이 북한의 군사훈련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이다. 

독특한 반응의 배경

정부여당이나 보수야당이나 북한의 군사훈련을 지지하고 응원할 리는 없다. 따라서 북한의 군사훈련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북한을 비난하고 규탄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 결과다. 즉, 북한을 비난하고 규탄하는 게 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선거에서 표에 도움이 되는가, 안 되는가는 민심이 결정한다. 민심이 북한을 비난하고 규탄하는 것이라면 정부여당도 보수야당도 북한을 비난하고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민심이 북한을 비난하고 규탄하지 않기 때문으로 추론할 수 있다. 

국민들 속에서 북한의 군사훈련이 화제로 오르지 않고 거론조차 되지 않는 현상 역시 민심이 북한의 행위를 도발로 보지 않기 때문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나아가 도발이라고 여기지 않으므로 보복조치에 대해서는 ‘필요 없다’가 아니라 ‘하면 안 된다’고 여긴다. 

실제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2017년 6월에 24.7%(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였던 반면 2년 후인 2019년 5월에는 41.9%(여론조사 공정 조사)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이게 북한의 군사훈련을 바라보는 민심지형이다. 이런 민심지형이 만들어진 요인을 규명하는 게 지금의 변화된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1) 북한 군사훈련의 성격에 대한 인식

그동안 미국, 일본, 한국의 정부나 언론 등은 북한의 군사훈련을 ‘도발’로 규정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군사훈련을 ‘한국이나 미국, 일본을 위협하는 행위’, ‘지역 불안을 조성하는 행위’, ‘상대를 공격하는, 하면 안 되는 행위’, 이런 식으로 인식한다. 북한의 군사훈련이 ‘도발’이라면 당연히 여론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 몇 년을 지나면서 북한의 군사훈련이 과연 ‘도발’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가장 흔한 의문은 ‘다른 나라도 다 군사훈련 하는데 왜 북한의 훈련에만 호들갑인가’,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쏘는 건 당연한데 왜 북한은 단거리미사일만 쏴도 비난을 받는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시험만 봐도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이 훨씬 많이 해왔는데 몇 차례 되지도 않는 북한만 비난받는 걸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 3 시험발사 장면. <사진-인터넷>

실제로 지난해 11월 1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자 “(우리도) 북한보다 적지 않게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우리도 미사일 시험을 하기 때문에 안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도 쏘는 미사일을 북한만 문제 삼는 건 공정하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게다가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의 군사훈련을 두고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있다,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한 자위적 성격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이런 논리가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됐다. 즉, 세계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훈련을 하면서 북한에게만 군사훈련 하지 말라고 비난해봐야 북한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게 자명하며 따라서 북한의 입장도 납득이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북한이 군사훈련을 해도 통상훈련이니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 생소하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해 5월 22일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의 잇따른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통상적 수준의 훈련”이라며 “세계의 모든 군은 특정 능력에 대한 훈련을 포함한 통상적인 군사활동을 전개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북한의 군사훈련을 두고 ‘도발’이 아닐 수 있으며 나아가 ‘도발’로 볼 수 없다는 인식이 생기고 상당히 확산됐다. 

(2) 북한과 미국의 힘 비교

민심은 명분과 함께 힘에 민감하다. 민심은 정의를 따른다. 정의로운 사람이 민심을 얻는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정의는 힘이 있어야 현실에 구현된다. 정의롭지만 힘이 없다면 패배하고 민심도 정의의 편에 계속 머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반대로 불의가 힘을 가지면 민심을 자기에게 복종시키고 추종하게 강요하면서 세계를 지배한다. 하지만 이는 영원할 수 없고 결국 몰락한다. 모든 독재자가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마치는 이유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정의와 힘의 결합이다. 

민심은 힘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정의가 결합된 힘에는 자발적으로 따라가지만 정의가 없는 힘에는 강요에 의해 굴복하고 추종하고 복종하는 경향이 생긴다. 

한국 역사에서는 대구, 경남 지역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지역은 예전에는 진보적 색채가 강한 도시였다. 그러나 그만큼 탄압을 많이 받았고 결국 힘에 굴복하였으며 나아가 힘을 추종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과거 이 지역에서는 자식이 똑똑하면 대학을 보내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학살당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2000년 노근리 학살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학살이 공개됐을 때도 이들은 침묵했다. 

이들은 오히려 앞장서서 독재권력에 충성했다. 남편이 진보운동을 하다 정권의 탄압을 받은 집안에서 똑똑한 자식을 둔 부인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부인은 남편의 정당함을 알면서도 자식이 연좌제에 걸려 출세하지 못할까봐 표창장을 받을 정도로 박정희 정권에 충성했다. 그렇게 진보운동을 하던 집안에서 독재권력에 충성하는 가족이 나오고 열렬한 친박 태극기 부대가 나온다. 공포전략이 먹힌 것이다. (대구의 왜곡된 민심에 대해서는 「[아침햇살60] 이 산이 아닌가 봐」 참조)

2003년 이라크 파병 논란도 마찬가지다. 당시 사람들이 이라크전의 진실을 몰랐던 게 아니다. 미국이 죄 없는 이라크를 약탈하려고 침공했음을 다 알았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진보진영에서만 규탄을 했을 뿐 민심은 침묵으로 동의했다.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잘못 보이면 끝장이다, 힘 센 나라에는 복종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렇듯 민심은 자의든 타의든 힘에 복종하고 힘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으며 지배세력은 이를 이용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원한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지배세력에 충성해야 먹고 살 수 있고 출세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힘있는 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심리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으며 이는 공미의식으로 이어진다. 

그간 이런 심리에 기초해 북한과 미국이 싸우면 미국이 이긴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고,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군사행동을 응징해야 한다는 민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국민의 눈에 비친 북미 대결 양상은 지금껏 생각한 것과 판이했다. 

가까운 사례로 지난해 11월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들 수 있다. 한미 군 당국이 예정된 연합공중훈련을 진행하겠다고 하자 북한이 11월 13일 강력히 경고했고 반나절 만에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군사훈련 조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래도 북한이 계속 문제 삼자 결국 4일 후 훈련 연기를 전격 발표하면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훈련 연기 발표 2시간 만에 “미국과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래도 미국은 별다른 항의를 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미국이 북한에게 굴복하고 망신을 당한 모습이었다. 

이제는 국민들 속에서 ‘미국이 북한보다 더 센 게 맞나? 오히려 미국이 꼼짝 못하는데? 북한이 더 강한데?’ 이런 인식이 많이 형성됐다. 힘이 더 센 북한을 응징하자는 생각은 이제 얼토당토않게 됐다. 길거리에 ‘북한 응징’ 현수막을 걸어놓은 태극기 부대를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바라보듯 한심하게 쳐다보는 이유도 여기 있다. 

(3)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북한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지를 살펴보자. 

만약 우리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대하는 것과 비슷한 정서, 부당함은 알지만 굳이 개입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는 정서가 있을 것이다. 만약 북한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라면 북한의 군사행동을 규탄하고 응징하자는 여론이 많을 것이다. 만약 북한의 힘이 압도적이어서 규탄하고 응징하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면 회피하려 할 것이다. 

이번에 북한이 군사훈련을 연달아 했지만 국민 속에서 규탄이나 응징 목소리가 없었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 친서는 크게 반기며 남북관계가 잘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두드러졌다. 아직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내포하고 있다. 즉, 북한이 두려워 회피하는 것도 아니며 북한을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북한을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존재, 우리와 매우 밀접한 존재로 보는 경우다. 

지금 많은 이들이 안보 위기보다는 경제 위기를 훨씬 심각하게 여긴다. 지금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답이 없다는 인식이 주류다. 

미국과 일본은 제 코가 석자라 한국을 약탈할 생각만 한다.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비를 대폭 인상하라고 위협하고 심지어 다른 나라에 주둔한 미군을 위한 경비까지 내놓으라고 압박한다. 일본은 경제 공격으로 우리를 위협한다. 

중국과는 지금까지 이익을 많이 봤지만 앞으로 중국에 밀리고 경제를 잠식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애플이 20년 걸린 연매출 150억 달러를 샤오미가 단 7년 만에 달성할 만큼 중국의 성장은 무서울 정도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 넘어가고 있다. 

이런 속에서 한국 경제가 살아남을 방법은 평화경제밖에 없다. 이는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갈구하는 주제다. 전문가들도, 정치인들도 이구동성이다. 심지어 수구적폐세력도 선거철에는 ‘북방경제’니 ‘유라시아 경제’니 하는 남북경제협력 공약을 내건다. 남북경제협력은 단순히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살아남는 길이다 정도를 넘어서 폭발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출로, 세계 경제를 선도할 도약대로 인식된다. 

이처럼 북한이라는 존재는 한국 국민 입장에서 볼 때 먹고살기 위해, 잘 살기 위해 손을 잡고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관계다. 이런 의식지형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전에는 남북경제협력이 아무리 좋아도 ‘북한은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고 적화통일을 해 한국 국민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려고 한다’는 인식에 가로막혀 있었다. 북한은 우리를 잘살게 할 존재가 아닌 못살게 할 존재로 여긴 것이다. 그러니 방법은 북한을 점령하고 지배하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박근혜가 ‘통일대박’을 언급한 것도 북한을 점령해 약탈하자는 의미였다. 모두 지배세력이 주입한 환상이다. 

그런데 2000년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지나면서 대북인식에 중대 변화가 생겼다. 

북한의 모습을 여과 없이 지켜보고 직접 만나보니 그동안 지배세력이 주입한 생각과 달리 북한은 적화통일 의사도 없고, 우리를 지배하고 수탈하며 노예로 만들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북한은 우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내세워주고 나아가 뜨거운 동포애로 혈육의 정을 나누고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를 대했다. 

2018년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북한 국민 앞에서 연설을 할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것도 연설문을 사전에 조율하지도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2018년 10월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달라거나 어떤 말은 하지 말아 달라거나 이런 요구가 없었다. 사전에 연설 내용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연설의 시간도 전혀 제약하지 않았다”며 “대단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라고 회고했다. 보수야당 의원조차 “한반도가 새로운 시대로 대전환한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모두가 감동했다. 북한이 얼마나 우리를 존중하고 내세워주는지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예술단의 교차 공연도 의미심장하다.

2018년 2월 8일 강릉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축하공연을 한 삼지연관현악단은 40여 곡을 불렀는데 이 가운데 한국 대중음악이 ‘J에게’(이선희), ‘여정’(왁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심수봉), ‘이별’(패티 김), ‘당신은 모르실거야’(혜은이), ‘다함께 차차차’(설운도), ‘사랑의 미로’(최진희), ‘해뜰날’(송대관), ‘최진사댁 셋째 딸’(윤형주), ‘홀로 아리랑’(서유석), ‘우리의 소원’, ‘사랑’(나훈아), ‘어제 내린 비’(윤형주) 등 13곡, 북한 노래 8곡, 나머지는 민요와 유명 해외 클래식 음악이었다. 

북한의 선곡 특징을 보면 첫째, 북한 노래보다 한국 노래를 더 많이 불렀으며(대중가요만 비교하면 한국 노래가 60%) 둘째, 한국 노래의 경우 국민적 인기가 높은 곡을 골랐고 셋째, 북한 노래의 경우 정치색이 없어 한국 국민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곡으로 골랐다. 철저히 한국 국민을 배려한 선곡이었다. 

반면 2018년 4월 1일 열린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 ‘봄이 온다’에는 조용필부터 걸그룹 레드벨벳까지 총 11명(팀)이 무대에 올라 26곡의 노래를 불렀는데 대부분 한국 대중가요였고 북한 노래는 서현이 부른 ‘푸른 버드나무’와 전체 출연진이 합창한 ‘다시 만납시다’ 단 두 곡(8%)이었다. 북한은 가사와 율동에 대해 수정 요구를 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남측 예술단이 알아서 공연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한국은 북한 국민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선곡을 한 반면 북한은 한국 국민의 정서를 최대한 고려해 선곡을 한 것이다. 북한은 한국의 문화, 한국 국민의 정서, 취향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내세워주는 반면 우리는 그게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의 모습을 생생히 보면서 우리 국민의 대북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지배세력이 오랜 세월 세뇌시킨 인식은 허물어지고 있다. 북한이라는 존재는 한국 국민에게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며 동포로서 손잡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따뜻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민심이 흐르고 있다. 

이런 인식 변화가 군사훈련을 도발로 보지 않고 규탄과 응징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배경이다. 

(4) 외부 환경의 변화

북한의 군사훈련에 대한 반응이 변화한 배경에는 미국, 일본 등 외부 환경의 변화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 일본 등 힘이 센 나라, 한국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를 자의든 타의든 추종하고 따라가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일본이 북한의 군사훈련을 맹비난하면 국내에서도 자연히 미국, 일본을 따라 북한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이 군사훈련을 해도 미국이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와 상관없다’, ‘통상훈련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는 식의 핑계를 대지만 누가 봐도 몸을 사리는 태도다. 미국이 변하자 일본도 목소리를 죽였다. 

이런 미국, 일본의 변화가 국민 의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일본이 북한 규탄 목소리를 내지 않는데 우리가 나서서 대북 비난을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훈련에 대한 민심의 변화는 대북인식이 얼마나 변화하였는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물론 아직도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무찌르자 공산당’ 같은 철지난 주장을 하는 반북수구적폐세력이 남아있다. 하지만 민심의 변화는 확고하기에 이들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은 지배세력이 세뇌한 거짓 반북 인식을 깨고 평화와 번영, 통일의 길로 힘차게 전진할 것이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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