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30.

북러관계의 현재, 과거, 미래 ③

 

러시아의 허를 찌른 쿠르스크 침공


2024년 8월 6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쿠르스크주를 침공했다. 즉각 쿠르스크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러시아군이 급파되었다. 일주일도 안 돼 우크라이나군은 1천 제곱킬로미터의 러시아 영토를 점령했다고 발표했고 러시아도 28개 마을을 빼앗겼다고 인정했다. 1천 제곱킬로미터면 서울시 면적의 2배가 조금 못 되는 면적이다. 우크라이나의 진격은 10월까지 계속됐고 최대 1,300제곱킬로미터까지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쿠르스크주로 진입하는 우크라이나군 전차. [출처: 우크라이나 국방부]


(쿠르스크주의 행정중심 도시가 쿠르스크인데 우크라이나군은 쿠르스크까지 진격하지 못했다. 다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쿠르스크주를 쿠르스크로 통칭해 쿠르스크 전투, 쿠르스크 침공 등으로 표기한다.)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침공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왔다. 

우선 논란이 된 건 침공의 목적이었다. 전체 전선에서 시시각각 러시아에 영토를 빼앗기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엉뚱하게 러시아 영토를 침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이에 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두 가지 목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나는 러시아가 다른 전선에 있는 주력 부대를 쿠르스크로 이동하게 만들어 다른 전선의 진격을 더디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작전은 장기적으로 보면 성공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역시 쿠르스크 침공을 위해 핵심 부대를 끌어모아야 하므로 다른 전선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러시아가 이런 약점을 간파하면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에서 차지한 땅보다 훨씬 많은 땅을 빼앗길 수도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로서는 일종의 도박을 하는 것인데 어쨌든 단기적으로는 러시아군이 재배치하느라 혼란하게 만들어 시간을 끌어 보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조금이라도 확보한 상태에서 평화협상을 통해 러시아에 빼앗긴 동부지역과 교환한다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이 훨씬 넓으므로 모두 되찾는 건 어렵겠지만 어쨌든 평화협상을 할 때 우크라이나 손에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논란이 된 건 우크라이나가 예상외로 승기를 잡고 빠른 속도로 진격했다는 점이다. 물론 처음에는 기습을 당했으니 러시아가 당황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진격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쿠르스크에 투입된 우크라이나 부대가 정예 부대임을 파악한 러시아가 일부러 영토 깊숙이 들어오도록 방치 혹은 유인한 뒤 포위, 섬멸하려고 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러시아인이 피해(러시아 측 발표에 따르면 민간인만 358명이 사망했고 20만 명이 이주했다)를 봤고 외부에서 볼 때 푸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호되게 당한 걸로 풀이되면서 과연 러시아가 이런 걸 감수하면서까지 유인작전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러시아 처지에서는 이런 무리한 작전 없이도 우크라이나를 차근차근 제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쿠르스크에 투입된 우크라이나 부대가 최정예 부대라는 건 사실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에서 훈련받은 정예병을 각 부대에서 차출해 새로 부대를 꾸렸고 여기에 미국과 유럽이 제공한 각종 전차와 장갑차, 자주포를 대거 지급했다. 현지 소식통은 우크라이나가 3만~4만 명의 병력을 동원했다고 했다. 또한 미군과 유럽 군인들이 의용군이라는 형식으로 우크라이나군에 섞여 투입되었다. 러시아 측은 영상 등을 통해 이들의 존재를 여러 차례 공개했다. 

반면 러시아는 포크로우스크, 차시우야르, 하르키우 전선에 병력과 장비를 집중하고 있었다. 쿠르스크를 방어하던 부대는 대부분 징집병이었다. 러시아에는 징집병, 계약병(직업군인), 동원병(소집된 예비역), 용병(민간군사회사 소속)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징집병은 18~30세 남성이 1년간 의무 복무하며 해외 파견과 전투가 금지된다. 따라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계약병과 동원병만 투입하고 징집병은 제외했으며 후방 지원 업무만 하는 징집병은 실전 경험이 없다. 이런 조건에서 우크라이나 정예 부대의 기습 공격을 받는 바람에 징집병들이 큰 피해를 봤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전선에 있는 부대를 이동시키자니 우크라이나의 노림수에 걸려드는 꼴이라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투입할 수 있는 부대를 모았는데 심지어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태평양함대 소속 155 해군보병여단(해병대)까지 투입했다. 러시아의 반격 작전은 쿠르스크 침공 한 달도 더 지난 9월 10일에야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우크라이나의 진격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에서 본격적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것은 10월 중순에 들어서다. 그리고 이때부터 우크라이나 측에서 북한군 파병설을 갑자기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우크라이나 측이 제시한 증거는 조작 흔적이 뚜렷한 조잡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북한군 파병설을 반신반의했다. 아마 우크라이나 측은 분명히 북한군 참전을 확인했는데 정작 공개할 증거가 없다 보니 증거 조작에 매달린 듯하다. 

북한군 파병의 효과


쿠르스크 전투에서 북한군이 어떤 임무를 수행했는지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북한군이 투입되면서 전세가 역전된 걸 보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붉은색이 쿠르스크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참모총장은 4월 26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쿠르스크 전투 종료에 관한 보고를 하면서 “나는 북러조약에 따라 우크라이나 군대를 물리치는 데 상당한 지원을 제공한 북한 군인들의 국경지역 쿠르스크주 해방 참여를 특별히 언급하고 싶다”라고 하였다. 또 “북한 장병들은 러시아 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투 임무를 수행하며 우크라이나의 침략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높은 전문성, 강인함, 용기, 영웅성을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 

같은 날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텔레그램을 통해 “북한군 장병들은 쿠르스크주에서 우리 군인, 장교들과 같은 참호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며 적 침략자들로부터 러시아 땅을 해방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라고 밝혔다. 

북한 역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명의로 “쿠르스크지역 해방 작전에 참전한 우리 무력 구분대들은 높은 전투정신과 군사적 기질을 남김없이 과시하였으며 대중적 영웅주의와 무비의 용감성, 희생성을 발휘하여 우크라이나 신나치세력을 섬멸하고 러시아 연방의 영토를 해방하는 데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라고 발표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주력부대, 정예부대를 잃었다. 알렉산드르 스테파노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025년 4월 26일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최고의 병력과 수단 그리고 서방 장비를 갖춘 우크라이나 부대들이 이 작전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쿠르스크주 해방 작전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특별히 언급해야 할 것은 북한군이 러시아 영토를 해방하는 데 실질적이면서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러시아 언론은 “북한군 덕분에 우리는 다른 전선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고 돈바스에서 공세를 지속하며, 95개 대대로 구성된 대규모의 우크라이나-유럽 연합침공군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북한군 파병으로 러시아는 쿠르스크를 탈환하는 것은 물론, 돈바스 전선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병력과 무기 부족으로 어려움에 부닥쳤던 우크라이나군은 쿠르스크 전투 패배가 기폭제가 되어 급격히 붕괴하게 되었다. 

BBC는 2025년 3월 18일 쿠르스크에서 후퇴하는 군인들의 증언을 소개했는데 이들은 “공황에 휩싸였다. 전선이 붕괴하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 군인이 우크라이나군 장비 수십 대를 파괴했다. 이게 보급로를 막아 혼잡을 일으켰다”, “부상자와 사망자 규모가 엄청나다”, “상황이 매우 어렵고 위급했다가 이내 대재앙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여러 번 죽을 뻔했다. 하늘에는 언제나 적의 드론이 날아다닌다”, “쿠르스크지역에서는 모든 것이 끝났다.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2025년 5월에는 하루 평균 14킬로미터씩 전진했고 6월 들어 1주일에 2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18개 우크라이나 마을을 점령하는 등 러시아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드론과 미사일 공습도 거의 매일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황을 보면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리라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많은 이들이 휴전을 서두르는 게 그나마 러시아군의 진격을 멈춰 지금의 영토라도 보존하는 길이라고 여긴다.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를 침공할 때만 해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었던 이들도 쿠르스크 전투에서 패배하는 모습을 보며 기대를 접었다. 

이렇게 보면 북한·러시아의 쿠르스크 전투 승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러가 우크라이나를 꺾는 중요한 분수령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심지어 의용군 이름으로 직접 군인을 투입한 미국, 유럽 등 모든 서방 나라와의 대결에서 이긴 것이다. 

러시아의 평가


러시아 언론과 전문가, 블로거와 유튜버들은 북한군의 ‘활약상’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우크라이나군 관계자나 서방 언론도 북한군에 관해 평가했다. 일부를 소개해 본다. (날짜순)

북한군 훈련 장면. [출처: 마리나 김]

 

북한군과 교전해 본 우크라이나 군인은 북한군이 러시아군보다 더 전문적이고 잘 훈련되었으며 매우 체계적이라고 밝혔다. 또 야간 작전 중 북한군의 움직임은 매우 신속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군은 빠르고, 신체적으로 잘 준비돼 있으며, 교범에 따라 엄격하게 행동한다고 말했다. 
-에이피통신, 2025.1.12. 

 

바딤 스키비츠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 부국장은 “북한군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 현대적 전투 방식과 전술을 매우 빠르게 익혀 몇 개월 만에 초기와 전력이 완전히 달라졌다”라고 했다. 
-조선일보 2025.2.17.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은 북한군 5명이 러시아군 10명 전투력과 맞먹을 정도로 높은 전투력을 보유했다고 평가했다. 북한군을 상대해 본 우크라이나 군인의 공통적인 평가는 ▲강인한 체력 보유 ▲20세 어간의 젊은 청년층 ▲공포심이 없음 등이다. 또 북한군 대상으로 심리전 방송과 항복을 유도하는 전단을 살포하지만 효과가 미미하다며 개개인의 사상교육이 비교적 잘 된 것으로 평가했다. 
-유용원 국힘당 의원이 공개한 우크라이나 군 당국의 전황 소개, 2025.3.5.

 

쿠르스크 전선에 잘 훈련된 북한군이 등장하면서 전황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북한군은 매우 구조화된 군사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 2025.3.18.

 

뛰어난 조직력, 규율,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력 그리고 놀라운 인내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2025.4.26.

 

시민단체인 ‘러시아 장교단’ 상임위원회 위원이자 특수부대 참전용사인 티무르 시르틀라노프 예비역 대령은 쿠르스크 플레호보 마을 해방 전투를 언급하며 “북한군은 우크라이나군이 악천후로 인해 정찰 드론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 해당 지역을 정리한 후 게보(옆 마을)에 대한 공세를 계속했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북한군은 먼 국경에서 적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했고 불가능한 것도 했다”라고 했다. 그는 “북한군은 매우 빠르게 적응했다”라며 “이들은 자신이 어떤 명목으로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상당히 잘 준비된 사람들이었다”라고 밝혔다. 또 “북한군은 항복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다”라며 “그들은 군대에 장기 복무를 한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MK.ru, 2025.4.26. 

 

“북한 군인들은 훌륭했고,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산전수전 모두 겪은 러시아 군인들은 그들의 전투 능력과 용기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안드레이 콜레스니크 국가두마 국방위원회 위원, 2025.4.28.

 

북한군의 체력과 파괴적 위력이 우크라이나군에 큰 충격을 줬다. 오스트리아의 쿠리어와 대담을 한 우크라이나 군인은 “북한군은 완전 무장하고 무기를 든 채 2킬로미터를 달린 후 바로 총격전을 벌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증언했다. 또 “그들은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엄청난 공세가 압도적이었다”라고 했다. (일각에서 북한군이 인해전술로 무모하게 공격한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이와 다른 증언이다.) 
-리아노보스티, 2025.4.29.

 

“현시점에서 북한 군대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가장 전투 준비가 잘된 군대 중 하나가 될 것”, “그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무쌍한 전사들이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뛰어난 군사적 기량을 갖춘 세계에서 가장 대단한 군대 중 하나다.”
-마리나 김 국가두마 의원, 2025.4.29.

 

“우리는 북한 군인들에게 포로로 잡혔고 그들은 매우 빠르게 행동했다. 우리는 잡히기 전까지 사령관과만 연락했는데, 사령관은 ‘새’(무인기)로 우리를 보고 있으면서 괜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약 30초 만에 우리는 포로로 잡혔다.”
-비탈리 브로우코 (우크라이나군 포로), 2025.6.10.

 

“북한 특수부대가 쿠르스크주 플레호보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2시간 만에 마을을 장악했다. 그들은 태풍처럼 밀려왔다… 300명이 넘는 우크라이나군이 전사했다.”
-블라디미르 로마노프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

 

“북한군이 지뢰밭을 뚫고 2킬로미터를 진격해 신속하게 진지를 습격하고 우크라이나 점령 부대를 파괴했다.”
-보엔코르 코테녹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