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2.

(이어서)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일, 강릉 경포대 근처 주문진에서 미국 해군과 북한 인민군 해군 간 해상전투가 있었다. 북한은 주문진 해상전투에서 미국의 중순양함 볼티모어호를 격침했다며 “세계 해전사의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주장한다.

 

볼티모어호. [사진 출처: Wikipedia]



주문진 해상전투에 관한 미국과 북한의 평가는 완전히 엇갈리는데 먼저 북한의 주장을 살펴보자.

 

 

1. 북한의 주장: 어뢰정 4척으로 중순양함 격침한 기적

 

 

조선중앙텔레비전은 2016년 8월 6일, 주문진 해상전투를 다룬 「세계해전사의 기적과 더불어 영생하는 삶 -공화국영웅 김군옥-」 영상을 공개했다. 아래는 정리한 내용이다.

1950년 7월 1일, 김일성 주석은 속초 앞바다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제2어뢰정대에 전투 명령을 내렸다.

김일성 주석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조국의 령해에 침입한 미제침략군함선들을 격침시킬데 대하여」에서 “조국의 영해에 침범하여 야수적인 함포 사격으로 평화적 건축물들을 파괴하고 인민들을 살해하여 우리 인민군 지상 부대들의 진격을 저지시켜 보려고 책동하는 미제 침략군 해군 함선들”을 “묵호항 해상에서 어뢰 야간 공격으로 격침시킬 것”을 지시했다.

북한 해군사령부 정찰보고서에 따르면 묵호와 강릉, 삼척 앞바다에 미국 7함대 소속 중순양함 볼티모어호(1만 7,300톤급), 경순양함 자메이카호(1만 4,000톤급), 원양 구축함(3,500톤급)이 진입했다.

당시 북한 어뢰정 21호는 길이 19.3미터, 너비 3.7미터, 승무원 7명, 무장 장비 어뢰 2발과 12.7밀리미터 기관총 1정을 갖추고 있었다. 길이 205미터에 탑승 인원이 1,700명이고 각종 포 69문이 실린 볼티모어호는 물론, 길이 180.5미터에 탑승 인원이 1,300명인 자메이카호와도 규모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았다.

격침 명령을 받은 한 해군 지휘관은 “우리 해군 무력을 다 동원해도 힘에 부칠 것”이라며 “최소한 수십 대의 어뢰정이 비행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합동 타격을 해야 가능하다”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김일성 주석은 어뢰정의 이점을 살리고 적 함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작전을 제시했다. 작고 빠르며 타격력이 강한 어뢰정의 특징을 이용해, 적 함대가 마음 놓고 있는 야간에 기습 공격하자는 것이었다. 또 김일성 주석은 공격 시간, 공격 장소, 타격을 위한 진출 경로, 전투 방법 등을 제시했다.

명령에 따라 7월 2일 정각 0시 어뢰정 21호정을 앞세운 22·23·24호정이 속초항을 떠나 묵호항 해상으로 적 함대를 찾으러 출발했다. 마침내 새벽 4시 53분경 어뢰정 4척은 적 함대와 맞닥뜨렸고 전투를 시작했다.

김군옥 정대장은 ▲무전 호출 금지 ▲함선에서 연기가 뿜어 나오는 방향을 따라 접근할 것 ▲적들의 중순양함부터 타격할 것 등 김일성 주석의 작전 지시를 그대로 수행했다.

그 결과 볼티모어호가 격침됐고, 자메이카호는 파손됐다. 이에 관해 김군옥 정대장은 “역량 상 대비조차 할 수 없는 놈들의 전투함선 집단을 순간에 소멸해 버릴 수 있는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특이하고 기묘한 작전 방안”에 놀랐다면서 “최고사령관이 가르쳐주신 빨치산식 전법”의 승리라고 했다. 

김군옥 정대장은 볼티모어호를 격침한 공로로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북한이 어떤 이유로 볼티모어호 격침을 기적이라고 칭송하는지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체격이 다르듯 함선에도 규모에 따라 체급이 있다. 체급대로라면 어뢰정은 도저히 중순양함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주문진 해상전투 당시 17톤으로 추정되는 북한 어뢰정이 1만 7,300톤인 볼티모어를 격침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던 셈이다.

당시 기준으로 중순양함 건조 비용은 북한 어뢰정 1만 3,000척의 건조 비용과 맞먹었다고 한다. 볼티모어호와 어뢰정은 체급뿐만 아니라 건조 비용, 드는 시간 등 모든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였던 셈이다. 김일성 주석은 “어뢰정을 타는 해병들은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하고 높은 공격 정신을 소유해야 한다”라고 밝혔는데, 북한 어뢰정의 승리 배경은 이와 관련이 있을 듯하다.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북한은 주문진 해상전투를 특별히 기리고 있다.

북한은 2023년 9월 공격형 전술핵잠수함에 ‘김군옥영웅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만큼 주문진 해상전투 승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북한이 오늘날까지 볼티모어호 격침을 특별한 승리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미국의 반론: 볼티모어호는 동해에 간 적도 없다

 

 

미국은 볼티모어호가 7월 2일 당시 동해 근처에는 간 적도 없다면서 북한의 주장을 완강하게 부인한다. 미국의 기록에 따르면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14척이 1943년 임무를 시작했는데, 볼티모어호는 이 가운데 1척의 이름이라고 한다.

볼티모어호는 1951년 11월 28일 미 대서양함대에 배속돼 지중해에서 활동하다가 1955년 2월~8월 사이 동아시아지역에 배치됐다. 이후 1956년 5월 31일부터는 워싱턴에 내내 정박하다가 1971년 2월 15일 해군 명단에서 제외된 뒤, 1972년 5월 10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해체됐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영문판 ‘USS Baltimore (CA-68)’ 항목)

미국은 이를 근거로 볼티모어호의 활동 시기는 주문진 해상전투와 겹치는 때가 없다고 주장한다.

다만 미국은 주문진 해상전투 자체는 사실로 인정한다. 전투 당시 유엔군의 일원인 영국과 함께 북한 어뢰정 4척을 상대했다고 한다. 

7월 2일, 미국의 경순양함 USS 주노호(6,800톤급), 영국의 순양함 자메이카호와 호위함 블랙스완호(2,000톤급)로 구성된 합동 함대가 한반도 동부 해반에 모였다. 함대의 공격을 받은 북한 어뢰정 가운데 1척은 격침, 다른 1척은 대파됐고 다른 2척은 각각 해안과 해상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즉, 북한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미국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해에 볼티모어호를 보내지 않았다는 미국의 주장을 마냥 사실로 보기에는 의아한 점이 있다.

북한 어뢰정을 상대한 자메이카호와 블랙스완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과의 전투에서 활약한 함정이다. 반면 이들 함선을 지휘할 주노호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에 임무를 시작했다. 미국으로선 실전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함선을 한반도에 보낸 것이다. (「How British and American Cruisers Shut Down the North Korean Navy in a 10-Minute Battle in 1950」, THE NATIONAL INTEREST, 2019.9.7.)

이와 관련해 의문이 제기된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미국에서 만들어진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은 ▲초중량탄 ▲40밀리미터 기관포 등 강한 화력을 갖춘 ‘최강의 중순양함’이었다. 그런데 이런 중순양함을 한국전쟁에서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특히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굵직한 전쟁을 여러 차례 치렀다. 이렇게 전쟁을 벌이면서도 볼티모어호를 방치해뒀다는 미국의 주장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문이 제기될 만하다. 미국으로선 억울할 수 있겠지만, 1972년에 볼티모어호를 폐기했다고 하면서 스스로 증거를 없애버린 꼴이 됐다.

이런 점에서 ‘볼티모어호가 동해에 가지 않았으니, 북한의 주장은 가짜’라는 미국의 논리는 입증이 어려운 일방적 단정으로 볼 수 있다.

볼티모어호가 주문진 해상전투에 참전하지 않았고, 20여 년이 지난 뒤 해체했다는 미국의 해명에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정반대로 북한이 미국의 볼티모어호를 콕 집어 격침했다고 밝혀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북한의 격침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3. 제3의 주장

 

 

한편, 일부에서는 미국이 북한 어뢰정에 의해 볼티모어호가 격침당한 것을 숨기려 기록을 날조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미국이 주문진 해상전투에서 북한에 패배한 수모를 감추고자 볼티모어호가 동해에 갔다는 기록을 아예 삭제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은 1964년 8월 북베트남 어뢰정이 통킹만에서 미국의 정보수집 함선을 격침했다는 이유로 베트남 전쟁에 직접 참전했다. 이를 통킹만 사건이라고 한다. 그런데 훗날 통킹만 사건은 전쟁에 끼어들 명분을 쌓기 위한 미국의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례를 볼 때 미국은 주문진 해상전투에서도 얼마든지 패배를 숨기려 기록을 날조했을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이런 주장을 펴는 대표적 인물이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이다. 

한호석 소장은 미 태평양함대에 속해 있던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4척 가운데 USS 보스턴호가 주문진 해상전투에 참전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측 기록에 따르면 보스턴호는 1946년 10월 29일부터 1952년 1월 4일까지 해군 조선소에 정박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시기 보스턴호를 찍은 사진에서 육지를 알아보지 못하게 조작한 정황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호석 소장은 이를 근거로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중에서도 보스턴호가 바다로 나가 주문진 해상전투에 투입됐으리라 추정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격침당한 함정과 똑같은 복제함을 만드는 관행이 있다며, 미국이 격침당한 기존 보스턴호를 대신할 복제함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동해에서 격파된 미영연합군 소함대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65)」, 한호석, 통일뉴스, 2009.6.29.)

미국이 볼티모어호 격침과 관련한 진실을 속 시원히 밝히지 않는 이상, 볼티모어호 격침은 “세계 해전사의 기적 중의 기적”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부각될 듯하다.

(계속)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