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05월 30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250] 전쟁 목표를 달성하는 러시아와 한계를 드러낸 미국 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요충지 바흐무트(러시아명 아르툐몹스크)를 함락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5월 20일 성명을 발표해 “아르툐몹스크 해방을 완수했다”라고 밝혔다. 러시아 용병 기업 와그너(바그네르)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도 “2023년 5월 20일 정오에 바흐무트 마지막 지역까지 완전히 점령했다”라고 발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21일 “현재 바흐무트는 우리 마음속에만 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며 바흐무트 함락을 인정했다. 다만 다음날 “우리 군의 전술적 판단을 공개할 수 없다”, “러시아군에 완전히 함락된 건 아니다”라며 모호한 태도를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언론과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바흐무트를 사실상 함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국내 언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을 하고 우크라이나가 승승장구하는 모습만 보도했다. 그래서 국내 언론만 보면 바흐무트 함락 사실이 상당히 당혹스럽다. 언론들도 부끄러웠는지 ‘사실 바흐무트는 요충지가 아니다’, ‘함락 과정에서 러시아 피해가 컸다’, ‘우크라이나가 곧 반격할 예정이다’는 식으로 둘러대기 바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국내 언론 보도는 믿기 어렵다는 게 확인되었다.
사실 전쟁 초기부터 국내 언론은 미국, 영국, 우크라이나 언론을 주로 인용하며 한쪽 시각으로 편향된 보도를 하였고 그 결과 오보가 쏟아졌다. 특히 올해 봄에 우크라이나가 춘계공세를 한다며 이를 위해 미국과 서방에서 엄청난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고 반년 가까이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여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춘계공세는 없다. 오히려 춘계공세는 러시아가 한 셈이다.
최근에도 언론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요격했다고 요란하게 보도하였지만 정작 우크라이나 키이우 시장이 공개한 미사일 잔해 사진을 보면 크기나 모양이 킨잘과 전혀 다른 무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진 속 무기가 콘크리트 관통 폭탄인 BETAB-500이라고 주장한다. 참고로 킨잘의 길이는 7미터가 넘고 직경도 0.9미터에 이르지만 BETAB-500은 길이 2.2미터, 직경 0.35미터로 절대로 둘을 헷갈릴 수 없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우크라이나의 발표만 주로 보도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요격하는 엄청난 전과를 올린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이런 언론 환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실을 알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 고기 분쇄기
장장 10개월에 걸친 바흐무트 전투에 와그너 그룹은 5만여 명의 용병을 투입하였고 우크라이나군은 8만 2천여 명을 투입했다. 와그너 그룹의 주장에 따르면 와그너 그룹에 전사자 2만여 명, 부상자 3만여 명이 발생했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전사자 5만여 명, 부상자 5만~7만여 명이 발생했다. 우크라이나는 와그너 그룹 전사자가 1만 명 이상이라고 추정했고 미국은 와그너 그룹 사상(전사+부상)자를 10만 명으로 추정했다. 우크라이나는 자신의 피해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측의 주장은 이번 바흐무트 함락을 통해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주장보다는 오히려 와그너 그룹의 주장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게다가 와그너 그룹은 러시아 정부의 돈을 받고 전투하는 용병 집단으로 바흐무트 전투 과정에서 계속 무기 부족, 러시아군 지원 부족 등을 호소하며 러시아 정부를 압박하였다. 따라서 자신들의 피해 규모를 굳이 축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와그너 그룹의 주장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병사 피해가 와그너 그룹에 비해 2배 이상임을 알 수 있다. 이게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데 와그너 그룹에 비해 우크라이나 병사의 전투 숙련도가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군 제46공수여단 대대장이었던 아나톨리 코젤 중령은 워싱턴포스트와 대담에서 “대대원 전원이 죽거나 다쳤다”라며 대부분의 대대 병사가 전투 경험이 없는 신병이었다고 토로했다. 코젤 중령은 총소리를 무서워하며 수류탄을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는 신병들을 지휘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하였다. 대담 후 코젤 중령은 훈련소 부대대장으로 강등되었다.
사실 바흐무트는 인구 8만여 명의 작은 도시다. 러시아가 이런 작은 도시를 단숨에 점령하지 않고 10개월이나 전투를 했던 이유가 있다. 와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은 바흐무트 전투의 목표가 점령이 아닌 “최대한 많은 우크라이나 군인을 제거하는 ‘고기 분쇄’였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바흐무트 전투에는 ‘고기 분쇄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장기간 격전이 벌어졌다.
전쟁 초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의 목표로 ▲우크라이나 무장 해제와 탈나치화 ▲돈바스 지역 내 러시아인 보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저지 및 중립화 등을 내세웠다. 우크라이나의 나치 세력은 군대에 주로 모여 있으므로 ‘무장 해제와 탈나치화’는 결국 나치가 장악한 우크라이나 군대를 해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군인을 제거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군대를 해체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군의 피해는 거의 없다. 와그너 그룹은 러시아군이 아니며 세계 각국에서 고용한 용병과 러시아 죄수 자원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미국 무기 재고 비상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 세계를 돌며 무기를 달라고 호소한다. 춘계공세도 무기가 부족해 못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 각국, 심지어 비살상 장비에 국한한다지만 한국과 일본도 무기를 제공하는데 역부족이다.
나토의 무기 재고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쟁점이었다.
2022년 4월 뉴스위크 일본판에 따르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 7,000개를 제공했는데 이는 미국 전체 보유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며 대공 미사일 스팅어는 전체 8,000개의 4분의 1을 제공했다고 한다. 통상 무기 생산에 13~18개월 걸리는데 미사일과 드론 등 첨단무기는 더 걸리며 미국에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큰 문제가 될 수준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국에 불똥‥탄약 재고 ‘경고등’」, 연합뉴스, 2022.8.30.)
2022년 8월 29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반년 동안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무인항공기, 미사일 및 기타 장비 등 135억 달러(약 18조 2천억 원) 규모의 군사 지원을 하는 바람에 미군의 무기 창고가 비워졌는데 그사이 미국 내 무기 생산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155밀리미터 포탄 재고가 전투를 치를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美 무기창고가 텅텅 덕분에 韓방산 ‘북적’」, 머니투데이방송, 2022.9.3.)
2022년 11월 나토의 한 관계자의 발언은 더 심각했다. 일단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2월 말 나토의 무기 재고량은 규정의 절반에 불과했다고 한다. 2022년 여름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는 하루 6천~7천 발, 러시아는 4만~5만 발의 포탄을 쏘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생산되는 포탄은 한 달에 고작 1만 5,000발이며 유럽은 더 형편없다. 그 결과 쓸 수 있는 무기 재고는 모두 바닥이 났다. (「아프간전 한달 포탄, 우크라선 하루에‥러·서방 무기고 바닥」, 한겨레, 2022.11.27.)
모든 나라는 국방에 필요한 무기 재고를 유지하려고 한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려면 추가 생산을 해야 한다. 군수업체가 무기 공장 가동률을 높이거나 추가 생산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모두 돈이 필요한 일이다. 군수업체는 공짜로 무기를 만들어 주지 않으며 정부가 돈을 줘야 무기를 만든다.
현재 미국과 유럽은 경제 위기로 인해 정부에 여유가 없다. 정부에 돈이 없으면 국채를 발행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국채를 추가 발행하는 것도 위험하다. 미국의 경우 최근까지도 정부 부채 한도를 늘리지 못해 국가 부도 위기를 겪다가 가까스로 면했을 정도니 추가 국채 발행은 꿈도 못 꾼다.
이때 한국이 미국의 고충을 덜어주었다. 미국에 155밀리미터 포탄을 무려 50만 발이나 대여한 것이다. 말은 ‘대여’지만 한미관계의 역사와 특성을 생각해 볼 때 한국이 필요할 때 미국에 ‘빌려준 무기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상 한국이 미국에 ‘기증’을 한 것이다. 이러니 바이든 대통령이 기뻐서 윤석열 대통령을 환대하고 기타를 선물한 게 아닐까 싶다.
한편 미국, 유럽, 한국, 일본이 열심히 무기를 모아서 지원해도 우크라이나는 무기 부족에 시달리는 반면 러시아에서는 무기 부족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종일관 왜곡 보도하는 언론은 러시아에 무기가 부족하다는 보도를 종종 한다. 특히 무기가 부족한 러시아가 소련 시절 구식 무기까지 사용한다고 보도한다.
예를 들어 글로벌경제신문의 5월 26일 자 보도 「러, 우크라 방공망 피하려고 ‘구닥다리’ 소련 시절 폭탄 사용」을 살펴보자. 무려 ‘대기자’나 되는 기자가 무기에 관한 기본 상식도 없이 썼음을 쉽게 알 수 있는 이 기사는 러시아가 소련 시절 제작한 폭탄을 활공폭탄으로 개조해 사용하는 것을 두고 ‘구닥다리 구식’ 폭탄이라고 깎아내렸다. 한국전쟁 때 쓰던 폭탄에 유도장치를 부착해 사용하는 미군의 합동정밀직격탄(JDAM)을 무슨 최첨단 무기처럼 떠받들면서 이보다 한 단계 발전한 형태인 활공폭탄을 두고 ‘구식’ 폭탄 운운하는 것을 보면 그저 한심할 뿐이다.
사실 전쟁에서 첨단무기는 매우 중요하지만 워낙 비싸기 때문에 구형 무기가 더 많이 쓰인다. 한국에서 세계 최강의 전략폭격기로 떠받드는 미군의 B-52H는 모두 제작한 지 60년도 더 된 낡은 무기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요구하는 전투기 F-16 역시 1970년대에 개발되어 지금까지도 꾸준히 개량, 생산되는 무기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소련 시절 무기를 사용하는 게 심각한 무기 부족 때문인 양 보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또 언론은 중국, 북한, 이란 등 친러·반미 국가들이 비밀리에 무기를 제공한다고도 하는데 모두 추정일 뿐 물증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물론 러시아와 관련국은 모두 무기 제공설을 부인한다. 이런 보도가 나오는 이유는 자신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니 러시아도 외부에서 무기를 제공받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니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명분을 쌓기 위해 러시아도 무기를 제공받는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이처럼 언론과 서방에서는 러시아도 무기가 부족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러시아 안에서는 무기가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러시아는 풍부한 자원과 연료, 소련 시절부터 발전시켜 온 높은 수준의 기계공업, 자체 무기 기술, 자국 과학기술자와 노동자가 자력으로 무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대러 제재를 해도 무기 생산을 막을 수 없다.
또한 미국과 달리 재정 걱정도 없다. 전쟁 이후 경제제재를 받고 있지만 수출액과 무역수지는 오히려 늘어났다. 서방에서는 러시아의 주력 수출품인 천연가스의 수출길이 막혀 피해가 클 것으로 추정하지만 러시아는 유럽 대신 중국과 인도로 새로운 시장을 넓혀 문제를 해결했다. 가스프롬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고 작년에 임금이 두 배 올랐다”라고 주장했다. (「최대시장 유럽 잃은 러시아 가스 수출, 향후 전망도 ‘먹구름’」, 연합뉴스, 2023.2.15.)
천연가스 부문 세계 1위 기업인 가스프롬은 사실상 러시아 국영기업이므로 러시아 정부가 재정 걱정을 하지 않는 이유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러시아의 군사력을 약화하려던 미국의 의도는 실패했고 거꾸로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의 군사력만 약해졌다.
(계속)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