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06월 06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252] 오발령 사태의 범인은 누구인가
1. 분 단위로 쪼개 본 오발령 사태
5월 31일 오전 6시 31분*,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가 발령되었다. 평소에 존재도 몰랐던 동네 확성기에서 요란한 경보음이 울려 단잠을 자던 시민들을 마구 깨웠다. 10여 분 후에는 서울 시민들의 휴대전화로 위급재난문자가 발송되었다. 시민들은 영문을 몰라 당황하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 사태는 20분도 더 지나 행정안전부가 ‘오발령’이었다고 공지하면서 진정되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경계경보를 해제하면서 오발령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사상 최악의 ‘자명종 소리’에 아침 출근길을 망친 서울 시민들은 어이가 없었다.
* 서울시 문자에는 6시 32분에 경계경보를 발령했다고 나오지만 사실 6시 31분에 이미 공중파 방송에서 경계경보를 보도했다.
이 사태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로 시작되었다. 시간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전 6시 27분: 북한, 정찰위성 발사 (합참은 6시 29분으로 파악)
6시 29분: 행안부, 백령도·대청도에 경계경보 발령.
6시 30분: 일본, 오키나와현에 전국순시경보체계(J-경보) 발령
6시 31분: 서울시, 경계경보 발령.
6시 32분: 합참, 북한의 ‘우주 발사체’ 발사 문자 통보.
6시 34분: 행안부, 백령도·대청도에 위급재난문자 발송
6시 41분: 서울시, 위급재난문자 발송
7시 3분: 행안부, 서울에 오발령 공지 문자 발송
7시 4분: 일본, 대피령 해제
7시 5분: 일본 해상보안청, ‘물체’가 이미 낙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
7시 22분 이후: 대통령실 안보상황점검회의 개최. 윤석열 불참
7시 25분: 서울시, 경계경보 해제 문자 발송
8시 1분: 백령도·대청도에 경계경보 해제
8시 6분: 백령도·대청도에 경계경보 해제 위급재난문자 발송
9시: 대통령실 안보상황점검회의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전환. 윤석열 불참
군은 여러 탐지 기관과 장비를 가지고 한국 주변을 감시한다. 그러다가 확인되지 않는 비행물체를 탐지하면 예상 경로와 낙하지점을 파악하여 군 지휘부와 정부, 공항·항구 등에 통보한다.
이번에 합참은 오전 6시 29분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포착했다. 북한이 6시 27분에 발사했다고 했으므로 2분 지체된 셈이다. 이런 시간 지체는 지구가 둥글어서 북한의 로켓이 일정 고도 이상 올라가야만 레이더로 포착할 수 있는 국군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다만 미국의 정찰위성은 제때 위성 발사를 포착했을 것인데 왜 한국군에 알려주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한편 군의 통보를 받은 행안부 민방위경보통제소는 여러 유관기관과 방송사에 정보를 전달해 경보를 발령한다. 경보에는 공습경보, 경계경보, 화생방경보, 경보해제 등 4가지 종류가 있다.
이번에 발령한 경계경보는 화생방 무기를 포함한 항공기·미사일 또는 지상·해상전력에 의한 공격이 예상될 때 발령하는 경보다. 반면 공습경보는 공격이 임박하거나 진행 중일 때 발령한다.
경보를 발령하면 소방서는 확성기로 경계음을 울린다.
또 행정안전부나 지자체 혹은 기타 송출 권한이 있는 정부 기관이 휴대전화로 위급재난문자를 보낸다. 위급재난문자는 안전안내문자, 긴급재난문자보다 높은 최상위 단계다. 안전안내문자는 폭염, 황사, 지역 실종자 발생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수신을 거부할 수 있다. 긴급재난문자는 지진, 홍수, 산불, 태풍 등의 경우에 발송하며 큰 소리의 경고음이 울려 주변 사람들까지 듣도록 한다. 긴급재난문자도 휴대전화 설정으로 수신을 거부할 수 있다. 반면 위급재난문자는 전시 상황이나 강진 발생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 보내며 수신을 거부할 수 없다.
휴대전화 사용언어를 영어로 설정한 이용자에게는 이번 재난문자가 ‘전시 경보(Wartime alert)’로 떴다. 각 경보의 영문을 보면 공습경보는 ‘Air raid Alarm’, 경계경보는 ‘Warning Alarm’, 화생방경보는 ‘CBR Alarm’, 경보해제는 ‘Alarm lifted’다. 왜 ‘Wartime alert’라는 표기가 떴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작 내용은 한글로 표기되었기 때문에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전시’를 염두에 둔 경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발령 사태의 전체 과정을 보면 누군가 전쟁을 예상했기에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위급재난문자를 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2. 백령도와 일본에 내린 경계경보
북한은 5월 29일 국제해사기구(IMO)와 IMO 지역별 항행구역 조정국인 일본에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통보했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경로와 잔해물 낙하 예상 지점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그리고 31일 발사 당시 1단계 로켓을 분리할 때까지는 통보한 대로 날아갔다.
북한은 2012년 4월 13일, 12월 12일, 2016년 2월 7일에도 이번과 비슷한 경로로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당시에도 경로를 미리 통보했고 거의 그대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번에도 초반에는 예고한 경로로 날아갔다. 이 경로는 백령도, 대청도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바다 상공을 통과한다.
따라서 한국이 백령도와 대청도에 경계경보를 내릴 필요는 없었다. 다만 북한 로켓이 오작동하여 경로를 이탈해 추락할 경우를 대비해 경계경보를 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경보를 내린 6시 29분이면 북한 로켓이 백령도 서쪽 바다 상공을 통과하는 시점이기에 경계경보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또 5분이 지난 6시 34분에 발송한 위급재난문자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6시 30분 오키나와현에 주민대피령을 내렸다가 7시 4분 해제했다. 일본 역시 북한 로켓이 오작동하여 추락할 때를 대비해 대피령을 내렸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5월 25일 한국이 발사한 누리호도 오키나와현 상공을 통과했지만 그 때는 대피령을 내리지 않았다.
사실 북한 로켓이 오작동한다고 해도 북한이 일부러 조준하지 않는 이상 태평양 망망대해에 있는 작은 섬인 오키나와를 맞추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황을 가정해 오키나와현 146만 명에게 대피를 명령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북한이 동쪽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때도 주민대피령을 종종 내린다. 따라서 이번에도 습관처럼 주민대피령을 내렸을 수 있다.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 혹은 발사체에 이토록 과민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일본은 과거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원래 피해자는 발 뻗고 자도 가해자는 발 뻗고 못 자는 법이다. 일본은 우리 민족이 앙갚음할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 잘 보이려고 꼬리를 흔드는 윤석열 정권을 보면 한국은 일본에 앙갚음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누리호가 오키나와현 상공을 통과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북한은 아직도 일본을 향해 ‘백 년 숙적’이라며 일제가 저지른 악행을 잊지 말고 되갚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일본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북한이 손만 들어도 자기를 때리는 줄 알고 움찔한다.
특히 일본은 북한에 당한 과거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만주에서 김일성 주석이 이끄는 항일유격대(조선인민혁명군)에 큰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해방 후 조선인민혁명군 세력이 북한 건국의 중추가 되었다. 따라서 일본은 더욱 북한의 행동 하나하나에 긴장하게 된다.
어찌 됐든 백령도와 일본에 내린 경계경보는 어느 모로 보나 과잉 대응이었다.
3. 서울 오발령 사태의 수수께끼
백령도나 일본에 경계경보가 발령된 것과 서울에 경계경보가 발령된 것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백령도나 일본은 만에 하나 북한의 로켓이 떨어질지 몰라서 대비하는 차원에서 경계경보를 발령했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안전에는 과잉 대응이 원칙”이라는 오세훈 시장의 발언도 그 자체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서울은 북한의 로켓이 떨어질 가능성이 애초에 없었다.
게다가 서울은 이미 북한의 로켓이 지나간 후에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북한의 로켓이 서울과 같은 위도를 지나간 건 6시 30분 전인데 서울시는 6시 31분에서야 경계경보를 발령했으며 서울시민에게 위급재난문자를 발송한 건 시간이 한참 지난 6시 41분이다. 즉, 하나 마나 한 경보를 내린 것이다.
따라서 혹시 모를 북한 로켓 추락을 대비해서 서울에 경계경보를 발령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의문은 누가 경계경보를 발령했느냐는 것이다.
서울시는 처음에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지시로 발송했다고 했다가 다음에는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 요청으로 재난문자를 보냈다고 했고, 그다음에는 행안부 중앙통제소 지령을 서울시 담당 공무원이 착각했다고 해명했다.
행안부 중앙통제소 지령은 “현재 시각, 백령면 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함”이었다. 여기서 ‘경보 미수신 지역’은 백령면, 대청면의 미수신 지역을 의미하는데 서울시 담당 공무원이 이를 서울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방위경보 현대화사업을 시행한 차 모 씨는 자신의 SNS에 경계경보는 “예비발령으로 파워 넣고 피드백 받고 암호전문 넣어서 유선과 위성 등으로 명령을 넣어야 동작”한다고 주장했다. 즉, 실무자의 실수로 경보를 발령할 수 없으며 상부의 검토와 승인이 있어야만 발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서울시는 경계경보를 발령하기 전에 행안부 중앙통제소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불통이었다고 주장했고, 반대로 행안부는 서울시의 위급재난문자 발송 후 다섯 차례 정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아 7시 3분 직접 오발령 문자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와 행안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속에서 어떤 체계와 절차를 통해 경계경보가 발령되었는지는 미궁에 빠졌다.
현재 오발령 사태의 실체에 관해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윤석열 정권과 오세훈 서울시의 무능 행정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의혹이 존재한다. 작년 말 무인기 사태처럼 진짜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경계경보를 울리지 않은 게 무능 행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애초에 북한이 정찰위성을 쏠 것이며 이게 서울에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임은 일반 국민조차 예상했던 일이다. 할 필요가 없는 걸 하는 건 무능 행정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 행정’이라 봐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과잉 행정을 한다고 해도 이미 지나간 로켓을 두고 경계경보를 울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경계경보를 울린 후 10분이 지나서야 위급재난문자를 보낸 것도 과잉 행정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무능 행정이나 과잉 행정으로는 해명이 안 된다.
다른 견해는 윤석열 정권이 전쟁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일부러 경계경보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여기에도 모순이 있다.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하리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하였으므로 윤석열 정권이 이를 이용해 전쟁 분위기를 띄우려 사전에 연극을 기획한다는 것은 누구나 상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연극을 한다면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전면에 나서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7시 이후 열린 대통령실 안보상황점검회의에도, 9시에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도 윤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아무리 평소에 지각을 밥 먹듯 한다고 해도 정국 운영에서 상당히 중요한 연극을 자신이 기획하고도 불참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사전 준비를 했다면 위급재난문자를 그렇게 늦게 보내 비판을 자초한 것도 이상하다.
이처럼 서울 오발령 사태는 풀리지 않는 의혹이 너무 많다.
4. 가능한 범인은 미국
여기서 한번 생각할 지점이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서울시 경계경보는 전시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한국에서 전시를 판단하고 그것에 맞게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은 국군도 아니고 정부도 아니다. 바로 미국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인도·태평양사령부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전시와 관련해 결정권자가 아니다. 물론 윤 대통령이 업무 시간이었다면 미국의 의도에 따라 얼굴마담이 되어 지휘할 것이다. 하지만 업무 시간이 아니면 미국 처지에서 굳이 윤 대통령을 깨워서 뭘 하게 할 필요는 없다. 미국은 군은 물론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정부 부처를 직접 움직일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인도·태평양사령부가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포착하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정해진 체계에 따라 경계경보를 발령하도록 지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일본의 경계경보도 그렇게 발령되었을 수 있다.
물론 서울에 경계경보를 발령할 필요가 없다는 점은 미국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경계경보를 내리게 했을까?
첫째, 전쟁 분위기를 고취하면 한국인의 반북 의식을 키울 수 있고 한·미·일 훈련의 명분도 쌓을 수 있다. 갈수록 한미연합훈련,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지고 있기에 이를 무마하려면 ‘북한의 위협’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둘째, 실전을 대비한 고강도 검열을 할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상정하고 한국 정부가 얼마나 제대로 대응하는지를 검열한 것이다.
평상시 한미는 전시를 가정한 행정부 훈련을 한다. 올해 8월 21~24일로 예정된 을지연습이 대표적이다. 중앙·지방 행정기관과 공공기관·단체, 중점 관리 대상업체 등 4천여 개 기관 58만여 명이 참여하는 을지연습은 전쟁이 일어난 비상사태를 가정한 뒤 국가 총력전 연습을 통해 비상 대비 태세를 확립하는 훈련이다. 또 매년 5~6개 시도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민·관·군 합동 지역단위 종합훈련인 충무훈련, 지자체장을 중심으로 민·관·군·경 통합방위 태세를 확립하기 위한 후방 지역 종합훈련인 화랑훈련도 있다.
미국은 이런 훈련을 통해 한국 정부가 전시 대비를 제대로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계획에 따라 하는 훈련과 실전은 전혀 다르다. 진짜 대비 태세를 확인하려면 불시에 검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흔치 않은 기회다. 미국은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미국을 오발령 사태의 장본인으로 보면 여러 의혹이 해명된다. 왜 불필요한 경계경보를 발령했는지, 왜 경보를 누가 어떤 절차로 발령했는지가 불분명한지, 왜 정부 기관끼리 우왕좌왕 헤맸는지를 다 설명할 수 있다.
정부를 움직여 전쟁 대비 태세 검열을 한 것을 보면 미국의 실전 준비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검열 결과는 어땠을까? 모두가 동의하겠지만 윤석열 정부의 전시 대비 태세는 낙제점이다.
일단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10분이나 지나서 위급재난문자를 보낸 것으로 이미 낙제다. 북한이 평양 이남에서 서울을 겨냥해 장사정포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걸리는 시간은 5분 미만이다. 위급재난문자 발송 전에 상황은 끝난다.
다음으로, 문자 내용도 엉망이었다.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른 경계경보 표준 문안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시가 보낸 재난문자는 이 표준 문안을 그대로 보낸 것이다. 두 문안을 비교해 보자.
표준 문안
[행정안전부] 오늘 ○○시 ○○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시 재난문자
[서울특별시]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즉, 서울시는 재난문자의 내용도 검토하지 않고 표준 문안에서 빈칸만 채워 보낸 셈이다. 형식주의, 관료주의, 무성의의 극치다. 심지어 시간도 틀렸다. 6시 31분에 이미 방송을 통해 경계경보가 나갔는데 32분에 경계경보를 발령했다고 한 것이다. 중앙의 지휘 없이 관련 부처와 기관이 제각기 움직여서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이 문자를 본 서울 시민들은 대체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였다. 대피하라고 했으니 대피소나 지하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지진이 발생한 상황이었다면 자살 행위가 된다.
반면 일본의 재난문자는 어떤 일이 발생했고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담고 있었다.
끝으로, 문자 내용이 부실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아는 서울 시민은 거의 없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3,222개소의 대피시설을 갖춰 모든 서울 시민이 대피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울 시민은 자기 주변에 대피소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5. 오발령 사태로 확인된 사실
이번 사태로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국민의 전쟁 공포심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한국인의 전쟁 불감증이 문제로 지적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계경보가 울리자 많은 이들이 ‘전쟁 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정도로 일상적인 전쟁 공포심이 큰 상황이었다. 아마 문재인 정부 시절에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많은 이들이 오발령이라고 여기며 별다른 혼란이 없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고 많은 국민이 실제 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북한이 미사일을 쏘더라도 막을 수 있다고 여기면 공포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는 오발령 사태 다음날인 6월 1일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L-SAM의 요격시험 성공 사실을 공개했다. 마치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충분히 요격할 수 있다고 여론을 달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뉴스를 보며 안심하는 국민은 별로 없었다. 미국의 패트리엇 미사일도 걸핏하면 고장 나고 한국이 자랑하는 현무 미사일은 거꾸로 날아가 우리 발사 원점을 타격하는 황당한 사고가 나는 판이니 믿음이 가지 않을 만하다.
또, 전쟁이 나도 충분히 대피할 수 있다면 공포에 질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했듯 정부가 제대로 된 안내 문자를 보낼 줄도 모르고, 대피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안심할 국민은 없다.
또, 전쟁이 나면 목숨 걸고 참전해 나라를 지키겠다는 각오가 사회 전반에 있다면 전쟁 공포심으로 혼란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 어디에도 이런 각오를 가진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모두 어디로 도망가야 살 수 있을지 고민할 뿐이다. 특히 젊은 남성의 경우는 징집과 예비군 소집에 걸리지 않을 방법을 고심한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과 그 자제들은 부동시 같은 믿기 어려운 핑계로 군대를 면제받는데 서민의 자식들만 나가서 희생하는 것은 억울할 만도 하다.
둘째는 정부와 국민 사이에 불신이 가득하다는 점이다.
전쟁이 나면 정부를 중심으로 국민이 단결해야 한다. 국민이 모두 정부 방침을 믿고 따라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대피 지침을 내려도 국민은 이를 믿지 않고 의심부터 했다. 많은 이들이 정부가 무슨 의도로 경계경보를 내렸는지 추리하기 바빴다.
이번 오발령 사태로 정부 불신은 더욱 커졌다. 이제는 진짜 전쟁이 터져도 사람들은 정부 말을 믿지 않을 기세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전쟁으로 피해를 보는 건 평범한 국민들이다. 이 땅에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려는 음모를 절대 좌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