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04월 06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238] 무기 경쟁에서 뒤처진 미군 ④
(이어서)
4. 미군이 무기 경쟁에서 밀린 원인
2002년 미국의 부시 정부가 ‘탄도탄 요격미사일 제한 조약(ABM 조약)’을 일방적으로 깨버리고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북·미·중·러 사이에 무기 경쟁이 시작됐다.
이는 마치 1983년 레이건 정부가 전략방위구상(SDI), 이른바 ‘스타워즈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소 간 군비 경쟁이 시작된 것과 비슷하다. 둘 다 적국의 미사일을 요격하겠다는 계획이었으니 거의 판박이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스타워즈 계획’은 오늘날 현실성 없는 사기 행각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련 붕괴를 촉발한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미국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미국의 승리로 끝난 셈이다.
하지만 2002년 시작한 무기 경쟁은 미국이 패배하는 분위기다. 그 원인을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미국에 만연한 관료주의를 꼽을 수 있다.
미 국방부의 관료들은 ‘첨단 무기 개발한다고 고생하고 실패하면 욕먹을 바에는 최대한 일하지 말자’는 생각에 빠져 있다.
존 하이튼 미 합동참모본부 부의장은 “중국이 새로운 군사·우주 기술을 계속 내놓는 동안 관료주의적 관성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미 국방부의 혁신을 좌절시키고 있다”라며 국방부를 비난했다. (「Hyten blasts ‘unbelievably’ slow DoD bureaucracy as China advances space weapons(하이튼, 중국이 우주 무기를 발전시키는데 ‘믿을 수 없게’ 느린 국방부 관료주의를 비난하다)」, 스페이스뉴스, 2021.10.28.)
미 공군 및 우주군의 첫 최고설계책임자를 맡았던 프레스톤 던랩은 2022년 4월 19일 자신의 SNS에 “국방부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잠재적인 적에게 기술 우위를 잃을 수 있다”라며 사직서를 올렸다. 그는 “부임 첫날 (국방부는) 예산이나 권한은 물론 사람이나 비전도 없다는 걸 알았다”라며 국방부를 “세계 최대 관료 집단”이라 불렀다. 던랩 이전에 미 공군 첫 최고보안책임자이자 국방부 소프트웨어 최고담당관인 니컬러스 체일런도 2021년 10월 “국방부의 관료주의와 과도한 규제가 절실한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라며 사임했고, 최고자료책임자 데이비드 스파이크도 2022년 4월 초 비슷한 이유로 사임했다. (「“미군은 거대한 관료집단, 中에 따라잡힌다”…고위간부 또 사임」, 국민일보, 2022.4.20.)
미 국방부의 관료주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던 사항이다. 2001년 9월 10일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미 국방부 장관은 국방부 연설에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은 소련이나 불량국가의 독재자가 아니라 펜타곤 내부에 자리 잡은 관료주의”라면서 관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성공적인 기업은 혁신에 대해 보상하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데 국방부는 1층과 2층 사이에도 정보가 교류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장관 책상까지 오는 데 17단계나 거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美국방, 관료주의와 전쟁선포」, 매일경제, 2001.9.11.)
관료주의는 조직 이기주의도 낳았고 이는 부서별, 군종별 협력을 가로막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하는데 미 국방성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3종류, 육군이 1종류, 해군이 1종류, 공군이 4종류를 개발하고 있다. 미 의회 연구원(CRS)은 2021년 7월 9일 발간한 연구보고서 「미국의 극초음속 무기 개발현황: 배경과 의회에 대한 이슈」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이처럼 복잡하고 중복되며 각 군 전력 구조에 따라 다르게 개발하는 문제에 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둘째, 국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가 있다.
미국은 첨단 무기 개발에 막대한 돈을 쓴다. 그런데 그 목적이 실제 첨단 무기를 개발해 ‘적’을 이기려는 게 아니다. 첨단 무기 개발이 군수업체에 많은 이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또 고위 관리‧장성들은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무기를 개발하고 지휘해야 경력에 도움이 돼 진급도 빠르고 전역 후에도 군수업체에서 일할 수 있다. 역사사회학자인 리처드 라크먼 뉴욕 주립대 올버니 캠퍼스 교수는 “이성적인 장교라면 개발에 수십 년 걸리는 하이테크 무기를 중심으로 경력을 쌓지, 간헐적인 반란 진압에 군 경력을 쏟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첨단무기 집중이 오히려 독? 최강 미국이 전쟁 못이기는 이유」, 조선일보, 2021.8.20.)
개발에만 수십 년 걸리는 첨단 무기들은 ‘돈 먹는 하마’다. 그런데 개발에 실패해도 큰 문제가 안 된다. 개발을 시작한 사람은 이미 다른 부서나 업체로 가서 책임질 일이 없고, 나중에 개발 책임자가 된 사람은 선임 탓을 하면 그만이다. 이는 장기 개발 사업의 폐해다. 실제로 북·중·러가 개발한 첨단 무기들은 미국도 오래전부터 막대한 돈을 투자해 개발하던 것들이다. 하지만 대부분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고 예산 문제를 핑계로 중단해버렸다. 예산이 없어 개발을 중단한 것으로 정리해버리니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군수업체는 기업 이익이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돈 되는 사업에 투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군수산업은 기업 이익 측면에서 장단점이 있다. 일단 국방부 입찰에 성공하면 떼돈을 벌지만 실패하면 막대한 개발비용을 날리게 된다. 한마디로 위험부담이 큰 분야다. 심지어 M16, 카빈 소총으로 유명한 총기 회사 콜트도 몇 차례 군납에 실패한 후 파산하고 체코 기업에 넘어갔다. 그래서 첨단 무기 개발이라는 모험에 뛰어들기보다는 기존 무기의 성능 개량에 치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북한 압박을 위해 틈만 나면 출격하고 바로 어제(4월 5일)도 출격했던 전략폭격기 B-52는 무려 1952년 처음 공개된 유물 수준의 무기다. 이걸 계속 개량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데 지금 사용하는 B-52H의 마지막 납품이 1962년에 있었으니 환갑이 넘은 비행기를 무슨 첨단 무기인 것처럼 포장해서 날리고 있는 셈이다. 다른 무기들도 비슷한 처지다.
또, 의외로 군수산업 규모가 작아 기업 이익이 많지 않은 문제도 있다. 민수품은 전 세계를 시장으로 삼지만, 군수품은 자국 군대나 일부 국가에만 판매해야 한다. 시장이 너무 좁은 것이다.
게다가 첨단 무기로 갈수록 단가는 높지만 납품도 적게 한다. 미국이 ‘세계 최강’이라 자랑하는 전투기 F-22 랩터는 대당 가격이 무려 1억 5천만 달러나 하지만 총 200대도 납품하지 않았으니 총매출액은 3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F-22보다 10여 년 전에 개발된 여객기 보잉 777은 단가가 3~4억 달러이며 1,500대 넘게 판매해 총매출액을 4,500억~6,000억 달러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군수업체들도 군수분야보다 민수분야 비중을 늘리고 있다.
기업이 국익을 신경 쓰지 않기에 돈이 안 되면 정부에 협력하지도 않는 문제도 있다. 니컬러스 체일런 전 미 국방부 소프트웨어 최고담당관은 2021년 10월 10일(미국 시각)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정보통신 기업들은 정부에 협력하지만 미국 기업은 그렇지 않다며 구글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미 국방부와 협조하기를 꺼리는 사례를 들었다. (「미 국방부 사이버보안 책임자 사임…"중국과 AI전쟁 이미 패배"」, 연합뉴스, 2021.10.11.)
셋째, 관료주의에 빠진 관료 집단과 자기 이익에 충실한 기업이 결탁한 군산복합체가 문제를 키웠다.
군, 국방부 관료, 군수업체, 의회, 로비스트가 한통속이 되어 이익을 공유하는 게 군산복합체다.
“일단 (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개발된 무기의 성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와는 무관하게 이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무기마다 이와 관련해 활동하는 이해관계자들이 있고, 이들은 프로그램이 실제로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이 필사적으로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한다. 여기서 이해관계자들이란 관료들, 국방부의 관련 부서, 군수업체, 로비스트, 그리고 너무나 쉽게 국방예산을 자신의 지역구 및 지역주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의원들이다.” (스티브 포브스, 「미 국방부의 예산낭비 스캔들」, 『포브스』 2017년 6월호, 2017.5.23.)
군산복합체의 이익 공유는 심지어 국방부조차 국방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게 할 정도다. 국방부가 2018년 자체 감사를 실시했는데 국방예산의 90%에 관해 의견을 낼 수 없다고 밝혔다. 국방예산의 90%가 어떻게 쓰였는지 모른다는 얘기다. 의회도 국방부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의원들은 군수업체의 로비에 녹아나고, 국방부 고위 관료들은 군수업체 임원들로 채워진다. 임기가 끝난 관료들은 다시 군수업체로 돌아간다. 정부감시프로젝트(POGO)는 2008~2018년 기간 국방부 고위 관료와 군 장교 380명이 군수업체로 자리를 옮겼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95명(25%)은 록히드 마틴, 보잉, 레이시온, 노스럽 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 미 5대 군수업체로 갔다. (「미국 국방부도 모르는 미 국방예산 사용처」, 경향신문, 2019.12.21.)
이런 이유로 아무리 막대한 국방예산을 투입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며 북·중·러와 무기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끝)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