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04월 18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240] 한국 경제 현황과 과제 ①
1. 한국 경제 현황
여기저기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터져 나온다. 뉴스를 봐도 확실히 경제가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으로 보도하지는 않는다. 한국 경제는 예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는 뻔한 이야기밖에 없다. 정말 한국 경제는 ‘평소’와 같은 어려움에 부닥친 것일까?
1) 심각한 무역 적자
흔히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한다. 지난해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70%에 달했다. 따라서 한국은 무역 흑자일 때 경제가 살아나고, 반대로 무역 적자일 때 경제 위기에 빠진다.
그런데 지금 무역 적자가 심각한 수준이다.
2022년 477억 8,400만 달러의 무역 적자로 역대 최악을 기록했는데 올해도 3월까지 224억 100만 달러 적자로 벌써 작년의 46.9% 수준에 이르렀으며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배를 넘겼다. 3월 기준 13개월째 무역 적자 상황이다. 1996년 당시로는 역대 최대 무역 적자를 기록한 한국은 다음 해 외환위기 사태를 맞았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의 무역 적자는 1996년의 두 배를 뛰어넘었다.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도 크게 떨어졌다. 2022년 점유율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75%를 기록했다. 무역협회는 수출 점유율이 0.1%포인트 하락하면 약 14만 명의 노동자가 사라진다고 하였다.
정부는 에너지 수입 증가를 주원인으로 꼽았지만 세계 유가가 안정화되면서 에너지 적자는 줄어들고 있어 정확한 분석이라 할 수 없다.
진짜 원인은 한중 관계에 있다. 그동안 최대 무역 흑자국이던 중국이 최대 적자국으로 바뀌었다. 최배근 교수는 2월 2일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중국에 대한 수출은 165억 달러가 줄었다”라며 “(정부는) 중국 원인 얘기를 안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중국을 ‘적’으로 돌릴 때부터 예상된 상황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역 적자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다. 다른 나라들에 수출을 아무리 많이 해도 대중 수출이 줄어들면 무역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미중 갈등의 여파로 세계 경제권이 쪼개지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이 미국 측에 밀착하는 바람에 한중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2월 기준 대미, 대유럽 수출은 6.2%포인트, 13.2%포인트 늘어난 반면 대중 수출은 24.2%포인트 감소하였다.
한국은 중간재 수출 비중이 74%에 달한다. 지금까지는 중국이 한국에서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구조였는데 세계적 경기 침체로 중국이 중간재 수입을 줄인 데다가 국산화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제 중국은 한국의 경쟁국이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도 중간재 수출이 회복되긴 힘든 상황이다.
한국 수출의 주력 품목인 반도체도 전망이 어둡다. 세계 경제가 어렵다 보니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지는 등 반도체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1~2년 후 세계 경제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미국에 과잉 투자된 반도체 생산 시설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가격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3%에 달한다. 그런데 에너지 수출 대국 러시아와 관계가 틀어지면서 앞으로도 비싼 값에 석탄·석유·가스를 수입해야 하는 처지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세계화의 급속한 둔화로 인해 무역으로 먹고사는 구조는 갈수록 더 힘들어질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통계를 보면 2002~2011년 세계 상품 수출액은 182% 늘었지만 2012~2021년은 21% 증가에 그쳤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일직선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이던 한국이 최대 직격탄을 맞고 있다”라고 하였다.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도 “미국과 중국이 전면적인 전략 경쟁을 벌이고 상품·원료·부품 등 공급망 재편이 추진돼 최근 20~30년 한국이 누렸던 황금기는 다시 오기 힘들다. 우리나라 수출이 더 줄어들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반도체 호황’ 도취한 10년… 60년 만의 수출 위기 낳았다」, 조선일보, 2023.3.19.)
2) 대기업 적자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한국CXO연구소가 2021년 공개한 ‘국내 71개 기업집단 경영 실적 및 고용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자산이 5조 원 이상인 71개 대기업 집단의 매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83.5%에 이른다.
이들 71개 그룹 가운데 삼성의 매출 비중이 20.8%로 가장 높았고, 삼성의 매출 가운데 49.8%를 삼성전자가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GDP의 9.6%에 이른다. 삼성 다음으로 현대차와 SK, LG가 뒤를 이었다. 이들 4대 그룹의 매출 규모가 71개 그룹 매출의 48.5%를 차지했다.
순이익으로 따지면 71개 그룹의 37%를 삼성이 차지했고, 삼성의 75%를 삼성전자가 차지했다. 삼성의 뒤로 SK, 현대차, LG가 뒤를 이었다.
고용(고용보험 가입자 기준)도 삼성이 1위인데 71개 그룹에 고용된 노동자는 162만 1,958명 가운데 삼성의 노동자가 26만 2,127명으로 16%를 차지한다. 그 뒤로 현대차, LG, SK 순이다. 하지만 71개 그룹 노동자 수는 한국 전체 노동자 1,411만 명의 11.5%에 불과해 매출 규모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이렇게 보면 삼성, 현대차, SK, LG 4개 그룹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고, 특히 삼성전자 하나가 한국 경제의 10분의 1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런데 지난해 이들 대기업 성적이 대체로 심각하게 나쁘다. 특히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반도체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삼성전자 상황을 보자. 삼성전자가 1월 31일 발표한 2022년 경영실적에 따르면 매출액은 전년 대비 8.1%가 올랐고 순이익도 39.5%나 올랐지만 영업이익이 16.0% 감소해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 매출액은 기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총수익, 영업이익은 매출액에서 원가와 판매관리비(인건비, 연구개발비, 광고비 등) 등을 빼고 영업활동으로 순수하게 남은 이익, 순이익은 영업이익에서 금융손익·영업외손익(부동산 매매 등)·법인세 등을 반영한 것이다. 이 가운데 기업의 본업으로 생기는 이익인 영업이익은 기업의 장기적인 수익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다.
반면 순이익은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을 매각하는 등 기업의 본업과 무관한 내용으로 올릴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가 법인세를 깎아줘도 올라간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영업이익 43조 3,766억 원보다 순이익이 55조 6,541억 원으로 더 높았던 이유도 환차익 때문이었다. 원-달러 환율 변동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이익을 본 것인데 삼성전자는 외화거래와 환산으로 발생한 외환 차이를 금융수익·비용으로 인식한다.
삼성전자 분기별 영업이익은 더 처참하다. 2022년 4분기 영업이익은 4조 3,061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9.0%나 떨어졌으며 분기 영업이익이 4조 원 대에 머문 것은 2014년 3분기 이후 8년여 만이다. 나아가 2023년 1분기 영업이익은 6천억 원으로 완전히 폭락했다. 분기 영업이익이 1조 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14년 만이다.
삼성전자 안에서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크게 DX(가전제품, 스마트폰, 컴퓨터 등), DS(반도체, 네트워크 등), SDS(디스플레이), HARMAN(전자장비·음향 등)으로 사업부를 나눈다. 이 가운데 반도체를 담당한 DS 부문의 2022년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7%나 떨어져 가까스로 손해를 면했다. 그러다 2023년 1분기는 엄청난 적자로 돌아섰다. 삼성전자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증권가에서는 약 3~4조 원의 영업 적자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상상을 초월한 규모다.
스마트폰과 가전을 다루는 DX 부문도 2022년 4분기 실적이 51.47%나 떨어졌으니, 반토막이 난 셈이다. 특히 TV와 생활가전 부문은 600억 원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언론은 삼성전자가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매출 300조 원을 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애써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SK하이닉스도 심각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영업이익이 7조 66억 원으로 전년 대비 44%나 감소했다. 특히 4분기에는 영업이익이 -1조 7,012억 원으로 적자가 났다. 분기 영업 적자는 2012년 3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2023년 1분기에도 3~4조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물론 ‘대마불사’라는 말이 있듯 대기업이 일시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쉽게 망하지는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수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앞서 무역 적자를 살펴보면서도 나왔지만 지금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갈라지고 있다. 그동안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투자, 생산, 유통망을 거미줄처럼 얽어놓았는데 이걸 강제로 뜯어내어 반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거대한 변화는 미국이 자국 경제를 되살려 보겠다며 일으킨 것이다. 미국은 중국, 러시아를 세계 경제에서 왕따시키고 자국 반도체, 자동차 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계 1등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 러시아만 왕따시키면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동맹국의 반도체, 자동차 산업도 고사시켜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산업을 반강제로 미국에 옮겨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4월 17일(현지 시각) 발표한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 차종에 한국·일본·독일 전기차를 모두 제외하고 미국 차만 선정한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대로 가면 한국 대기업은 미국에 모든 것을 내주고 말 것이다.
휴대전화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2010년까지 판매량 세계 1위를 점했던 모토로라라는 미국 기업이 있다. 1928년 설립한 역사와 전통이 깊은 이 기업은 무선통신 분야는 물론 반도체 분야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그러나 2011년 1, 2분기 연속 영업 적자를 기록하더니 여름에 구글에 인수되고 2014년에는 다시 중국 레노버에 팔려 갔다.
지금 한국의 젊은 층에서는 모토로라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한때 세계 1위였던 기업이 사라지는 것도 한순간인 것이다. 노키아, 소니 같은 기업도 휴대전화, 가전 같은 대표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다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대마불사’도 항상 들어맞는 건 아니다.
한편 삼성전자는 4월 7일 반도체 감산을 공식 발표했다. 천문학적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감산을 해도 수요가 늘지 않으면 쉽게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한국 반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중국의 수요가 늘어야 하는데 윤석열 정권이 한·미·일 동맹에 매달리는 이상 한중 관계는 더 나빠질 일만 남았기에 만만찮은 일이다.
또 삼성전자의 반도체 감산은 반도체 소재·부품 기업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반도체 시장이 살아나지 않으면 감산은 장기화할 것이며 규모가 작은 소재·부품 기업은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또 삼성전자 직원에게 지급하는 성과급도 축소될 것이다.
삼성전자는 목표 달성 장려금(TAI)이라고 하여 매년 상·하반기에 월 기본급의 100%까지 지급한다. 또 초과 이익 성과급(OPI)이라고 해서 1년에 한 번 연봉 대비 최대 50%까지 지급한다. 따라서 연봉이 1억 2천만 원인 직원은 성과급을 최대 8천만 원까지 받아 연봉 2억 원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참고로 작년 삼성전자 1인 평균 급여액은 1억 4,400만 원이었다.
삼성전자는 작년 하반기에 반도체 실적이 나빠 반도체 부서의 TAI를 50%로 줄였다. 올해 감산 여파로 더 축소될 수 있다. 성과급이 수천만 원이나 줄어들면 직원들이 그만큼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한꺼번에 수백, 수천만 원의 성과급을 받으면 그걸로 차도 바꾸고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가구도 사고, 여기저기 투자도 할 것인데 그걸 다 못하게 된다. 소비가 줄어들면 그만큼 경기가 둔화한다.
(계속)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