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1.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대량학살



‘초토화작전’이라고 하면 제주 4.3항쟁·학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도민들을 ‘빨갱이’로 몰았고 적어도 3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시간이 흘러 2023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제주도에서 벌어진 초토화작전은 아직도 미군정의 개입을 둘러싸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공개된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미군의 초토화작전이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졌다는 내용을 다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다큐멘터리 영화 「초토화작전」



지난 10월 13일 서울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 초토화작전(SCORCHED EARTH)이 공개됐다. 여기에 ‘한국전쟁 민간인 폭격에 관한 기밀해제 미군 보고서’라는 부제목이 뒤따른다.

영화는 “기밀 해제된 미군의 문서 및 시청각자료들과 관련자들의 증언들에 기반하여 한국전쟁 시기 한반도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 대량 폭격, 민간인 폭격 사건들의 실체를 조명하는 아카이브 에세이(자료를 모아 엮은 수필 성격의) 다큐멘터리”라고 취지를 소개한다.

미국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국방비’를 들이부었다. 그리고 이 막대한 국방비로 네이팜탄, 로켓탄, 기총 같은 무기를 만들어 한반도 전역에 쏟아부었다.
 
영화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벌어진 3년 동안 미 공군의 공중 출격이 104만 708회, 기총 사격 1억 6,685만 3,100회, 네이팜탄 사용량 3만 2,357톤, 폭탄 총사용량은 63만 5,000여 톤에 이른다. 

특히 미군이 한국전쟁에서 처음 사용한 네이팜탄은 어디든 잘 달라붙고 불붙기 쉬운 점화성 물질로 만들어져 2차 피해가 극심했다고 한다. 네이팜탄이 떨어지면 불길이 온 마을을 덮치고, 사람 몸에도 옮겨붙어 그 끔찍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또 흔히 기관총(따발총)으로 알려진 기총 사격은 한 번 발사하면 여러 발이 동시에 나간다는 점에서 실제 발사된 총탄은 수억 발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 6월 27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에 병력을 급파했다. 이후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벌어진 전쟁으로 3,000만 명이 넘는 한반도 인구 가운데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숨졌다. 이 가운데 숨진 민간인만 2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 당시 인구 대비 사망자 비중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벌어진 모든 전쟁 가운데 가장 높다. 

다른 전쟁과 비교해보자면 한국전쟁의 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가늠해볼 수 있다. 한국전쟁은 1930년대 말부터 1945년까지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 일부, 동남아시아·태평양 일대가 전쟁터였던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보다도 인구 대비 사망자 비중이 높다. 한국전쟁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15년 동안 벌어진 베트남전쟁보다도 인구 대비 민간인 사망자가 많다.

영화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이렇게나 민간인 사망자가 많았던 이유는 미군 폭격기가 적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 무차별 대량학살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겪은 전쟁을 따라서

 

“통제관은 포항 이북의 모든 것이 적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민간인 폭격에 관한 기밀해제 미군 보고서 에 나오는 내용 중에서.



영화에서는 미군의 폭격과 기총 사격, 그에 따른 민중들의 희생이 두드러지는 장면마다 매우 불길하고 음산한 효과음이 흘러나온다. 영화를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전쟁터에 내던져진 것 같은 끔찍한 심리, 간접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간접 경험이 이미영 감독의 할머니가 직접 겪었던 참상과는 감히 비교할 바는 아닐 듯하다.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전쟁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았다.”

“나의 할머니가 겪으신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런 일을 왜 겪어야 했는지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위는 영화 초반에 소개되는 이미영 감독과 할머니의 이야기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이미영 감독의 할머니는 전쟁 당시 자식 3명이 죽었다면서도, 평생토록 자세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후 ‘할머니는 전쟁통에서 대체 무슨 일을 겪으셨을까’가 이미영 감독의 마음 한편에서 내내 맴돌았다. 어른이 되고 2017년 들어 캐나다에서 거주하던 감독에게는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북한이 미국을 겨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5형을 발사하자 외국인 친구들이 자신에게 ‘왜 북한은 저렇게까지 미국을 증오하는 것이냐’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이미영 감독은 잘 몰라서 답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할머니가 한국전쟁과 관련해 어린 자신에게 해주지 않았던 말과 외국인 친구들의 물음이 영화를 만들게 된 출발점이 됐다고 이미영 감독은 전했다. 그렇게 한국전쟁 당시 기록과 영상, 증언을 따라가다 보니 이미영 감독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미군이 벌인 대량학살’이 드러났다고 한다.

 

 

「초토화작전」 갈무리

 


미군이 충청북도 노근리 주민 수백여 명을 빨갱이로 몰아 폭격과 기총 사격으로 학살한 1950년 7월,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서의 무차별 폭격·기총 사격을 공식 승인했다. 이를 기점으로 한반도 전역의 온 민중을 대상으로 한 초토화작전·대량학살이 본격화됐다.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은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을 가리지 않고 네이팜탄·로켓탄 폭격과 기총 사격을 쏟아부었다. 그 때문에 한반도에 있는 도시 90%가 궤멸됐다.

안양, 포항, 인천, 대전, 의정부, 원주, 과천, 수원, 단양, 용인 등 38도선 이남에서 전쟁 초기 4개월 동안 100여 건이 넘는 폭격과 기총 사격, 그에 따른 대량학살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예를 들면 충북 단양의 한 마을에서만 오전 10시 25분부터 11시 정도까지 폭격이 이어졌다고 한다.

평양, 함흥, 원산, 신의주, 청진, 진남포, 수풍댐 등 38도선 이북에도 폭격과 기총 사격이 쏟아졌다. 38도선 이북에는 한국전쟁이 벌어진 3년 동안 ‘사례를 헤아릴 수 없는 폭격’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북한의 건물·사회기반시설이 모조리 파괴됐고 인명 피해도 극심했다. 미 공군의 폭격기 조종사가 상관에게 “거듭된 공격으로 쑥대밭이 됐다”라고 보고할 정도였다.

 

 

「초토화작전」 갈무리


영화는 화면과 소리로 미 공군의 행태를 잘 보여준다. 미군 폭격기에는 “보이는 것들은 모두 사격하라”라는 지휘부의 명령이 떨어졌고 효창공원, 원효로 등 사람들이 모여있던 지점을 폭격기가 정밀폭격했다는 구체적인 진술도 나온다.

미 공군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비행기에 강변의 피난민들을 기총 사격하라고 지시했다”라는 기록도 있다. 영화는 피난 명령을 받은 한 마을의 주민들이 잘 보이도록 흰옷을 입고 마을 하천에 모여있었는데도 미군 폭격기의 기총 사격을 받아 희생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증언을 보면 미군 폭격기는 땅에서 대략 50미터 위에 있었고 땅에 있는 사람들이 민간인인지 아닌지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냥 지나가는 듯했던 폭격기가 다시 돌아와 폭격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미영 감독이 만난, 전쟁통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는 영화에서 다음과 같이 참상을 전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성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천정(하늘)에서 뭐가 뚝뚝 떨어져서 보니까 다리와 팔이었다.”



더글러스 맥아더가 주도한 인천상륙작전을 이틀 앞둔 1950년 9월 13일 월미도 주변에는 15분 동안 쉼 없이 포탄이 떨어졌다. 하지만 주민들은 미군이 포탄을 떨어트린다는 경보조차 받지 못했다.

미군 조종사가 남긴 보고에는 1950년 12월 2일 평양 시내에 기총 사격을 가해 수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내용도 있다. 이미영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미국이 한반도 영공을 독점”한 한반도 곳곳에서는 미군에 의한 끔찍한 대량학살이 비일비재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미국의 작전은 현재진행형



한국전쟁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특징은 한반도 곳곳을 폭격한 미군의 B-29가 일본에 있는 가데나 미 공군 기지에서 날아올랐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미영 감독은 감독과의 대화에서 “당시 일본도 많은 관계가 있고 (미국이 중심이 된) ‘극동 공군’이라는 체계 하에서 한국, 미국, 일본이 연관된 자료들이 많이 발견됐다”, “한국은 미국 국방체제의 최전선”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쟁이 교착 국면으로 접어들고 정전협정이 논의되는 와중에도 미국은 북한을 겨눠 허드슨강 작전 등 ‘핵폭탄 시뮬레이션’을 가동했고 폭격기를 동원한 무차별 폭격과 기총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분위기는 크게 바뀌지 않은 듯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계획 5015에는 북한 선제타격, 핵심시설 공격 같은 위험천만한 내용이 나온다. 윤석열 정권은 대북 선제타격, 자위대의 한반도 독도 해역 개입을 용인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의 위험천만한 군사적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의 해상자위대를 ‘해군(NAVY)’이라고 표현하는 등 전범국 일본을 끌어들여 전쟁 위기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관점으로는 한국전쟁 내내 한반도에서 벌인 역사상 최악의 대량학살 범죄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일본의 전쟁범죄에 눈을 감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2001년 1월 11일 미국에서 열린 노근리 사건조사 기자회견에서 미 국방부는 “민간인 학살이 범죄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발뺌했다.

 

 

“증거 문서들이 있다면 수용했겠지만 전혀 보지 못했다.”

 


전범국 일본과 비교해도 심각한 ‘전시 대량학살 범죄’를 저지른 미국은 전쟁의 책임에서 멀찍이 비켜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과거사위원회는 실제 민간인 폭격의 5~10% 정도만이 증언으로 밝혀졌다고 추정했다. 

이와 관련해 영화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날 9월 15일 대전에 융단폭격이 있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증언이 거의 없다는 건 뭘 의미하는 것일까?”



미국은 그동안 대량학살과 관련한 정보를 기밀로 묶어 은폐해왔고 우리 측 기록도 남지 않았다. 한미동맹을 신줏단지처럼 받들며 국민을 ‘빨갱이’로 모는 군부독재 정권하에서 전쟁의 참상을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말하지 않으려 애썼던 분위기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겪은 참상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담아뒀던 할머니, 그 손녀인 이미영 감독은 미국이 감춰온 한국전쟁의 진실을 영화로 밝혀냈다. 하지만 아직 ‘일부’일 뿐, 미군의 대량학살과 관련해 아직 기밀이 해제되지 않은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며



이미영 감독은 미국의 영상과 기록을 살피고, 전쟁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할머니가 겪은 한국전쟁의 진실을 처음 알게 됐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한반도에서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이미영 감독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대량학살 범죄를 어떻게 더 영화로 밝혀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궁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영 감독은 감독과의 대화에서 이번 영화에 넣으려 했지만 덜어낸, 40분 남짓 되는 미군이 남한에서 벌인 대량학살 영상을 다음 영화에 넣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미영 감독은 미군의 대량학살이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 사건을 알리려면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참혹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 땅에 더 많은 평화가 있길 바란다”라며 영화를 널리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쟁 위기가 높아지는 현 국면에서 한국전쟁의 은폐된 진실, 미군의 대량학살을 주제로 다룬 「초토화작전」이 ‘문제작’임은 확실해 보인다.

 

아래는 홍보 영상이다.

 

https://youtu.be/jCIwIJlYtNM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