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2년 07월 26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186] 미국 자이언트 스텝, 경제 파국으로 가나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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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서)
6. 미국 경제 위기의 요인
1)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다
미국 정부도 그렇고 많은 경제 전문가도 현 미국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꼽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심지어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미국 경제가 지금쯤 경제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는 많았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회장은 2018년 초 하버드대 강연에서 “현재 미국 경제는 거품 직전에 있으며 머지않아 거품이 생성되고 곧 터지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면서 “2020년 다음 대통령 선거 전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이 70% 정도”라고 예측했다. 달리오 회장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2011~2012년 유럽 재정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미국 경제가 2020년에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블룸버그통신, 2018.9.18.). 세계적 투자기관인 JP모건도 미국의 다음 금융 위기 시점은 2020년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KBS 뉴스, 2018.9.21.).
최상위 8명의 부자가 세계 인구 절반의 재산과 맞먹는 부를 소유하고 있는 극단적 빈부격차,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밀려났다가 건당 알바로 밀려나는 식의 열악한 고용 환경, 실물 경제(GDP)의 7배에 달하는 금융 거품(파생상품) 그리고 금융 거품으로도 부족해 유행처럼 번지는 가상화폐(암호화폐) 시장, 이런 것들은 모두 경제 파국을 예고하는 징조였으며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미 나타난 현상들이다.
다만 미국의 독점자본가와 그를 대변하는 미국 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숨기기 위해 코로나19와 러시아 탓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꼴인데, 전쟁 때문에 경제 위기가 온 게 아니라 경제 위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보는 게 맞다.
앞선 글(아침햇살184호)에서도 언급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도록 부추긴 것은 미국이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미어샤이머 교수 등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사실이다. 미국은 전쟁을 빌미로 대러 제재를 가해 러시아 경제를 무너뜨리려 하였다. 러시아 경제는 세계 12위 수준이며 특히 에너지와 식량 부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국은 이런 러시아를 무릎 꿇리고 에너지와 식량을 약탈해 자국의 경제 위기를 넘기려 한 것이다.
그런데 전쟁은 미국이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러시아가 무릎을 꿇지도 않았고, 강력한 경제제재가 오히려 미국과 서방의 경제를 타격했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2)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주의가 문제다
가. 재정의 군사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쓰는 나라다. 미국의 국방비는 2022년 기준 7,780억 달러로 전 세계 국방비의 40% 가까운 엄청난 금액이며 2~12위 국가 국방비 총액보다 많은 수준이다. 또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7%, 연방정부 재량 예산의 49.5%에 달한다. 연방정부 재량 예산 대비 비율은 그나마 2021년의 52.7%보다 많이 낮아진 게 저 정도다. 국방비에 너무 많은 예산을 할당하기 때문에 민생과 경제 발전을 위해 쓸 돈이 부족한 것이다.
미국이 저렇게 막대한 국방비를 쓰는 이유는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막대한 군사력을 갖추고 전 세계 곳곳에서 미군기지를 운영한다. 미국이 자랑하는 항모전단(항공모함을 중심으로 구성된 해군 함대) 1개를 갖추는 데 20조 원 정도의 돈이 들어가며 항모전단의 하루 운영비만 1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이런 항모전단을 9개나 운영한다. 항공모함 1년 운영비만 25조 원 정도다. 미국이 한반도를 긴장시키기 위해 종종 출동시키는 전략폭격기 B-52의 경우 시간당 운영비가 9천만 원 정도다. 괌에서 한반도까지 왕복하는 데 10시간 정도 걸리니 한 번 출동에 9억 원을 공중에 뿌리는 셈이다.
만약 미국이 자국 방어만 한다면 이렇게 엄청난 국방비가 필요 없다. 원래 국방이란 말은 나라를 지킨다는 뜻인데 미국은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국방비’라는 말도 맞지 않는다. 군사비가 정확한 표현이다.
미국의 막대한 군사비는 미국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그렇다고 함부로 군사비를 줄일 수도 없다. 물질 중심의 관점을 가진 미국은 군사비를 줄이는 게 곧 군사력 약화로 이어지며 군사력이 약해지면 세계 패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군사비를 줄인 적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었는데 이 때문에 연방정부 부채가 치솟았다. 정부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오바마 정부와 의회는 정부 예산 자동 삭감, 이른바 ‘시퀘스터’를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2013년부터 10년 동안 최소 4,870억 달러의 군사비를 삭감해야 했다(「‘10년 전쟁’ 국력 소모한 제국 ‘명백한 운명’의 몰락」, 주간동아, 2012.1.30.).
그러나 미국은 군사비를 쉽게 축소할 수 없다. 2012년 2월 15일 자 한겨레 보도 「무늬만 감축인 미 국방예산」에 따르면 2003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군사비가 급격히 올라간 것에 비하면 2013년 군사비는 크게 줄어들었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이라크 전쟁 때문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병력을 원래대로 줄였기 때문에 군사비의 30%를 차지하는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으며 이걸 고려하면 오히려 전체 군사비는 늘어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위 보도에서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딘 베이커 소장은 “삭감이 아니라 지출의 내용이 바뀌는 것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군사비 삭감을 거부해버렸다. 2017년 3월 취임 첫 예산 편성에서 국방예산 자동삭감 제도를 폐지해버리고 기존 국방비 상한선보다 10% 늘어난 5,740억 달러의 군사비를 편성한 것이다. 비상작전 예산을 더하면 전체 군사비는 6,390억 달러에 이르렀다. 반면 다른 부처 예산은 줄줄이 삭감했다. 정부 빚이 쌓이고 경제가 휘청여도 군사비는 못 줄이겠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경제가 힘들다는 명분으로 한국에 주한미군 지원금(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요구했다. 날강도나 다름없는 요구를 한 것이다. 나토나 일본에도 무리한 증액 요구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실제로 철수할 생각도 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마크 에스퍼는 5월 10일 출간한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로 주한미군을 철수하려 했고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그건 두 번째 임기 때 우선순위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해서 겨우 막았다고 서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나 한국의 군사주권을 생각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려 한 데에는 다른 의도도 있었다. 바로 중국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전쟁을 할 경우 북한이 주한미군을 공격하는 양동작전을 할 수도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을 미국 측으로 더 끌어당겨 중국과 멀어지게 하려고 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런데 주한미군 철수 구상이 미국 내에서 반발을 샀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동북아 지역의 미국 패권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당시 미 의회는 국방수권법에 주한미군을 2만 8,500명 이하로 감축하는 것을 제한하는 조항을 삽입해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했다.
군사비, 군대, 군사기지를 축소할 수 없는 건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제국주의 속성에서 나오는 근본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나. 약탈 경제의 한계
미국은 다른 나라를 약탈해 부자가 된 제국주의 국가다. 이라크처럼 자원이 많은 나라를 직접 쳐들어가 점령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와 불공정무역을 하거나 투기자본이 대거 들어가 마음껏 약탈한다. 앞선 글(아침햇살184)에서 소개한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사건을 보면 어떤 식으로 다른 나라들을 약탈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면서 산적질, 해적질이나 다름없는 약탈로 손쉽게 부자가 되다 보니 자기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을 육성해 경제발전을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갈수록 약탈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경제 위기가 닥쳐도 더 많은 약탈로 위기를 넘기고 자본주의를 유지하려 하였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예를 들어보자.
그동안 유럽은 러시아에서 각종 자원을 값싸게 수입하였다. 2020년 기준 유럽연합 회원국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는 38%, 원유 의존도는 33%나 되었다. 특히 체코, 핀란드, 독일의 경우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각각 100%, 67%, 65%나 되었다. 이 밖에 유럽연합의 팔라듐 의존도는 40%, 바나듐은 32%, 알루미늄과 니켈 의존도는 17%나 된다.
유럽은 경제 규모에 비해 지하자원이 부족한 지역이다. 주요 자원의 매장량 순위들을 보면 10위 안에 드는 유럽 국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유럽에 있어 자원 수입처를 확보하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가운데 지금 가장 쟁점이 되는 천연가스를 살펴보자. 유럽이 처음부터 러시아에 천연가스를 의존한 건 아니었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영국 북해 가스전과 네덜란드 흐로닝언 가스전에서 생산하는 천연가스로도 충분히 자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해 가스전이 고갈되고 네덜란드 가스전은 지진 때문에 폐쇄되면서 러시아 천연가스에 의존하게 되었다.
값싼 러시아 천연가스를 확보한 덕분에 유럽은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석탄발전소를 급격히 줄이는 강도 높은 탄소 저감 정책을 펼치고, 독일이 2011년 원자력법에 따라 핵발전을 전면 중단한 것도 모두 러시아 천연가스가 있어서 가능했다. 베를린공대 에너지기술연구소 에너지시스템부의 게오르크 에르드만 전 학장은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가장 저렴할 뿐 아니라 러시아산 가스 매장량도 인근 어느 곳보다 많았다”라고 말했다(「유럽은 도대체 왜 러시아 천연가스에 ‘코가 꿰었나’」, 연합뉴스, 2021.2.25.).
이처럼 유럽이 러시아 천연가스를 수십 년 동안 저렴하게 수입하여 막대한 이익을 봤다면 러시아에 고마워하고 러시아를 존중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유럽은 러시아를 무시했다. 2000년 3월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 후보가 러시아의 나토 가입을 언급했고 6월 클린턴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의 나토 가입을 제안했지만,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무시했다. 2010년에는 당시 총리였던 푸틴이 유럽연합 가입,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나라) 가입을 제안했지만 이 역시 무시당했다.
이런 유럽의 모습은 유럽 내에서 서로 적대적이었던 나라들끼리 발 빠르게 화해와 협력을 한 것과 대비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했던 프랑스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50년 독일에 ‘석탄철강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는 유럽연합의 씨앗이 되었다. 이걸 보면 유럽은 러시아를 같은 유럽 국가로 보지 않고 2등, 3등 국가로 치부했음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존중하고 공존하려 하기는커녕 전쟁을 유도해 러시아에 타격을 가하고 대러 제재를 통해 러시아 자원을 약탈하려 하였다. 약탈로 유지되고 성장하는 경제는 더 이상 약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노린 외국 자본이 중국에 물밀듯 들어갔다. 중국은 순식간에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덕분에 미국의 서민은 중국산 저가 생필품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미국에는 모든 물건을 1달러에 파는 달러 트리(Dollar Tree)와 같은 가게들이 생겼다. 우리로 치면 천냥마트나 다이소 같은 곳이다. 물론 중국산 제품들이 가득한 가게다. 미국의 독점자본가와 정부 입장에서는 중국인 노동자의 희생으로 값싼 상품을 미국 서민에게 공급해 국민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중국은 미국에 수출하고 받은 달러로 다시 미국 채권을 구입해 미국이 계속해서 중국산 물건을 살 수 있게 하였다. 중국은 일본과 함께 미국 채권 보유 1, 2위를 다투고 있다.
사정이 이러면 미국이 중국에 고마워하고 중국을 존중하며 상호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자 무너뜨릴 생각을 하였다. 중국을 고립시키고 경제전쟁을 일으켰다. 최근에도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쿼드, 오커스 등을 만들었고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반도체 동맹 칩4 같은 것들을 만들어 경제 봉쇄, 기술 고립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과 봉쇄에 순응하고 무릎을 꿇을지 아니면 저항하고 국가 발전을 지속할지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미중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처럼 미국은 다른 나라와 공존, 공리, 공영을 추구하지 않고 일방적인 약탈만 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냉전을 선언하면서 미국의 동맹을 끌어모아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를 고립, 붕괴시키고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잘살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게 오히려 자기 발등을 찍고 있다. 얌전히 약탈당하던 과거와 달리 중국, 러시아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고 미국이 힘에서 밀린 것이다.
대러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기는커녕 미국과 서방 경제만 치명타를 입었다. 뉴욕타임스는 6월 24일 자 보도 「미국 주도 동맹, 대러 제재로 좌절과 고통에 직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넉 달이 지난 지금 대러 제재와 에너지 금수조치가 푸틴 대통령의 군사 행동이나 정치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대러 동맹국의 경제적 고통은 커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경향신문 7월 14일 자 보도에 따르면 “안보·경제 분야의 역풍에 휩쓸려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속속 후퇴”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과의 경제전쟁도 마찬가지다. 한겨레는 2020년 11월 13일 “‘무역전쟁 4년’ 트럼프의 패배…대중국 적자 되레 늘었다”라고 하였다. 블룸버그통신은 2021년 1월 12일 “중국이 트럼프의 무역 전쟁에서 승리”했다면서 미국 기업이 중국의 방대한 제조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미국의 대중 직접투자는 2016년 129억 달러에서 2019년 133억 달러로 오히려 늘어났다고 밝혔다. 또 중국에 공장을 둔 미국 제조업체 200개 가운데 4분의 3 이상이 공장을 옮길 생각이 없다고 밝혔으며, 상하이 미 상공회의소의 커 깁스 회장은 “트럼프 정부가 아무리 높은 관세를 인상하더라도 미국 기업이 투자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자본은 결국 당장 돈 되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은 1980년대 플라자합의를 할 때처럼,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할 때처럼 러시아, 중국을 약탈해 자기 경제 위기를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3) 관료주의의 한계
관료주의란 관료제 사회에서 쉽게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현상들을 말한다. 대체로 형식주의, 획일주의, 권위주의, 무사안일, 책임 전가, 규칙에만 얽매여 비효율적인 현상, 창의성이 없이 하던 대로 하려는 모습 등으로 나타난다. 관료주의가 만연한 사회는 노쇠하고 망조가 든 사회다.
지금 미국이 관료주의에 빠져 있다. 마치 멸망을 앞둔 로마 제국을 보는 듯하다.
로마 제국은 말기에 이르러 권력 찬탈을 위한 내전과 관리의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또 귀족과 시민들은 노동을 천시하고 경제 활동도 하찮게 여겼다. 노예가 도맡은 생산에 가치를 두지 않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들은 사치와 방탕, 퇴폐향락 문화에 미쳐 있었는데 심지어 매일 밤 식도락을 위해 밤새워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는 광란의 연회를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제국을 떠받치던 중간층과 하층민에 많은 부담이 갔고 이들의 애국심도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게르만 이주민이 반란을 일으키자 순식간에 멸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노동을 천시하고 황금을 숭배하는 문화가 만연해있다.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국민 다수가 열심히 노동하며 서로 돕고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투기로 떼돈을 벌어 호화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돈 없는 사람은 깔본다. 또 미국 사회에 만연한 마약 문화는 아편으로 망가진 청나라 후기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미국의 관료주의는 미국의 과학기술이나 첨단무기 개발에도 영향을 주었다. 고위 관료, 권력층, 독점자본가가 자기 밥그릇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결탁하다 보니 실제 나라 발전을 위한 노력은 없고 자만에 빠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미국 자동차 산업을 보자. 한때 제너럴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는 세계 자동차 산업을 지배하는 ‘빅3’로 불렸다. 미국이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다 보니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는 것도 손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자만에 빠져 기술개발에 소홀한 결과 1970년대부터 일본, 독일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다. 제너럴모터스는 세계 생산량 1위에서 4위로 밀려났고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 기업인 피아트에 팔려 가는 신세가 됐다.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제조업 전반이 비슷한 처지였다. 결국 미국의 자랑이던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시를 비롯한 오대호 인근 공업지대는 ‘녹이 슨 지대’(러스트 벨트)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첨단무기 개발도 마찬가지다.
국방부와 군부, 군수 자본이 결탁한 ‘군산복합체’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편하게 이익을 나눠 먹었다. 군은 군수업체에 군사기술을 이전해 군수산업을 육성하고, 군수업체는 군에 첨단무기를, 정부에는 세금과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구조다. 정부는 여기저기 전쟁을 일으키거나 위기를 키워 무기 판매를 촉진한다.
막대한 군사비를 투입해 만든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 곳곳을 침략하면서 미국은 점차 자만과 관성에 빠졌다.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에 첨단무기 개발에도 소홀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군수 자본이 이익공동체가 되어 결탁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누구도 넘볼 수 없을 것 같던 미군의 첨단무기들이 어느 순간 추월당하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 21일 존 하이튼 미 합참차장은 국방부의 관료주의와 군부의 ‘실패에 대한 공포’ 때문에 미국의 첨단무기 개발 속도가 느려졌다고 한탄했다. 반면 중국이나 북한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쉼 없이 무기 개발에 도전한 결과 충격적인 군사력 증강 속도를 보인다고 하였다.
관료주의는 사회를 노쇠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창의성, 진취성도 사라진다. 인재들은 나라 발전보다는 개인의 돈벌이를 위해 월가에 몰린다. 첨단산업은 기피업종, 3D 업종 취급을 받는다. 이 빈자리를 중국, 인도, 아랍권의 인재들이 차지하였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인, 아랍인들이 미국의 첨단 기술을 훔쳐 간다며 견제하였다. 실제로 기술 유출 사건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기술 유출은 미국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미국은 로마 제국의 전철을 밟아 빠르게 몰락하고 있다.
김민준 주권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