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1.



북한이 5월 25일 오전 6시, 6시 37분, 6시 42분 총 3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첫 번째 미사일에 대해 비행거리가 약 360km, 고도가 약 540km, 속도가 마하 8.9였다고 발표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했다. 합참은 두 번째 미사일의 경우 고도 20km 부근에서 사라졌고 세 번째 미사일은 비행거리 약 760km, 고도 약 60km, 속도 마하 6.6으로 탐지됐다고 밝혔다.

합참은 세 번째 미사일이 ‘상하기동’(Pull-Up) 변칙 비행을 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탄도미사일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기 때문에 궤도를 예측하기 쉬워 요격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피하고자 도중에 미사일을 다시 상승(Pull-up)시켜 궤적에 변화를 주었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북한이 ICBM과 다른 미사일을 섞어서 발사한 것은 처음이다.




1. 윤석열 정부의 대응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직접 주재해 대응책을 논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미사일 발사를 “중대 도발”로 규정하고 “한미 정상 간 합의된 확장억제 실행력과 연합 방위태세 강화 등 실질적 조치를 이행하라”라고 지시했다.

이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해 핵폭격기, 핵추진 잠수함, 핵추진 항공모함 같은 전략자산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한국은 2가지 군사대응을 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4시간 뒤 한국군은 탄도미사일 현무-2를, 미군은 탄도미사일 에이태킴스(ATACMS)를 1발씩 발사했다. 또한 전날인 5월 24일 국군은 머잖아 북한의 군사행동이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F-15K 전투기 30여 대를 동원해 ‘코끼리걸음(Elephant Walk)’ 훈련을 하기도 했다.

코끼리걸음 훈련이란 최대 무장을 한 전투기가 대형을 이뤄 활주로를 주행하는 훈련이다. 전투기가 이륙하거나 화력시위를 하는 건 아니다.

기사 댓글을 보면 “떠야 의미 있는 항공기를 지상에서 움찔거리고 사진 찍어서 언론 노출하는 게 심리전이 되긴 해요?”, “뭐 하는 건지? 북한이 느끼는 위압감이 있을까?”*라며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런 훈련을 대체 왜 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완전무장한 F-15K 전투기로 미사일을 발사한 원점을 공격하겠다는 경고 같다. 미사일 대응 발사도 마찬가지로 북한이 군사행동을 하면 미사일로 반격하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다음포털, 동아일보, <무장한 전투기 활주로에 등장..공군 ‘엘리펀트 워크’ 훈련 실시 [청계천 옆 사진관]>, 2022.5.25.


하지만 코끼리걸음 훈련 다음 날 북한은 버젓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코끼리걸음 훈련이 북한의 행동을 억제하지 못한 것이다. 코끼리걸음 훈련의 의미대로 F-15K를 동원해 원점타격을 하지도 못했다. YTN은 “선제적으로 실시했던 ‘엘리펀트 워크’가 아무 효과가 없었던 셈”이라고 꼬집었다.

- YTN, <대북 확장 억제, 효과는 ‘글쎄’..“北 핵실험 막지 못할 것”>, 2022.5.28.


2. 미국의 대응

미국은 앞서 소개했듯이 한국군과 공동으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했다.

한편, 미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요청에도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보내지 않았다.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필요시 미군의 전략자산을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하는 등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5월 25일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H가 일본 동쪽 해안을 따라 비행하는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일부 국내 언론은 윤석열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요청에 따라 북한을 압박하는 목적이었다면 마땅히 B-52H가 한반도로 와야 했다. 그러나 B-52H는 일본 본토 동쪽에서 심지어 북한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비행했다. 실제 군사적 압박이 되는 것도 아니고, 뭐하러 비행했는지도 알 수 없는 무의미한 행동이 되어 버렸다.

이런 와중에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인 에드가드 케이건이 5월 26일 미국 정책연구소 우드로윌슨센터 토론회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케이건 국장은 “우리에게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윤석열 정부가 확장억제에 대한 강력한 표현을 매우 분명히 요구한 점”이라며 “우리는 물론 기꺼이 그 표현을 제공”했지만 “확장억제 자체가 북한의 행보를 변화시킬 핵심 도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책 수단에) 변화를 주려고 한다”라고도 했다.

이 말은 윤석열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 제공을 강력히 요청하기에 약속해주긴 했지만, 미국의 본심은 부정적이라는 뜻이다. 미국이 윤석열 정부의 전략자산 전개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한미정상회담에서 한 약속은 다 거짓이란 말인가? 이쯤에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공동성명에서 “필요시 미군의 전략자산을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하고,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하며,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강조는 글쓴이)

미국은 전략자산 전개에 대해서 ‘필요시’, ‘시의적절’, ‘조율된 방식’이라는 단서를 붙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았다.

미국이 말하는 ‘적절한 때’는 언제일까? 5월 27일 한 기자가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에게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을 시급히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커비 대변인은 “북한이 이런 발사를 다시 계속하고 한반도에서 불안과 불안정을 계속 유발할 경우”에 “적절한 대응을 모색할 기회를 찾을 수 있고, 계속 찾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북한은 이미 올해 17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전략무기인 ICBM도 여러 차례 쏘았다. 그런데도 미국은 ‘앞으로’ 대응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군사행동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응책을 모색할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도 비슷하다. 협의체를 만든다고 해서 꼭 군사행동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도 미국은 훈련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확언하지 않고 ‘협의’하겠다고 했다.

악마는 ‘디테일’(세부사항)에 있다. 미국은 행동하겠다고 한 적이 없고, 논의하겠다고만 했다. 이러니 윤석열 대통령이 제법 호기롭게 전략자산 전개를 요청했어도 미국은 들은 체 만 체 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앞으로 북한을 강하게 대할 것처럼 포장했다. 하지만 북한 미사일 발사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허세라는 게 밝혀졌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딱 그 꼴이라는 게 입증됐다.

미국은 외교적으로도 대북 대응에 실패하고 있다. 5월 26일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려고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한다. 한·미·일 외교부 장관은 5월 28일 공동성명을 발표해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히 규탄”한다면서도 “북한이 협상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는 5월 25일 “북한의 도발에도 미국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라며 북한에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해주겠다고도 했다.

강력히 규탄했으면 이어서 응징을 해야 자연스러운데, ‘당신이 잘못했으니 이제 대화하자’라고 하고 있으니 미국의 모양새가 영 살지 않는다.


▲2022년 5월 25일 B-52H 비행 경로



3. 이전과 비교

지금과 문재인 정부 때를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먼저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를 두고 ‘도발’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2021년 9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도발’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으로부터 “기자들 따위나 함부로 쓰는 ‘도발’이라는 말을 망탕(되는대로 마구) 따라 하고 있”다며 “대통령까지 나서서 (상)대방을 헐뜯고 걸고 드는데 가세한다면 부득이 맞대응 성격의 행동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맹비난을 받았다. 그 후로 문재인 정부는 ‘도발’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쓴 것이다.

또한 한미 당국이 공동 미사일 발사로 맞대응했다. 올해 3월 24일 북한이 화성포-17형을 발사했을 때는 한국군이 주한미군에 공동 미사일 발사 훈련을 제안했지만, 주한미군사령관이 거절한 바 있다. 북한 군사행동에 한미가 공동대응을 한 것은 2017년 7월 이후 4년 10개월 만이다.

그 외에 북한을 규탄한다면서도 대화를 촉구한 점, 전략자산을 전개하지 않은 점은 예전과 그대로다. 한미 공동 미사일 발사 훈련도 부족하다. 북한이 ICBM을 쐈으면 그것에 맞게 전략적 수준의 군사행동을 해야 격에 맞지만, 미국은 그러지 않았다.

이 정도면 문재인 정권 때보다 조금 더 강경해졌지만 큰 줄기에서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자 뉴스 댓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뒤통수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터넷 기사엔 “윤석열 패싱(무시) 제대로 보여주네. 회담의 약속과 달리 전략무기도 안 보냈다”, “수십조 원을 퍼줬는데 뭐를 얻었냐?”*라는 것이다.

*다음포털, MBC, <일본과 훈련하고 한반도에 전략무기는 안 보낸 미국..수위조절?>, 2022.5.26.


이런 반응이 나올 법도 하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삼성은 미국에 2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고 현대자동차는 6조 원 이상을 추가로 투자하기로 했다. 그 대가로 윤석열 정부가 얻으려 한 것은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이었다. 그런데 정작 상황이 발생하자 미국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4. 북한의 행동 분석

1) 미사일 발사의 성격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눈에 띄는 건 북한이 서로 다른 미사일을 섞어서 발사했다는 것이다. ICBM과 중거리,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는데,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5월 27일 미국 CNN 방송은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3발 중 1발이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궤적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CNN은 복수의 미 정보당국자가 ‘이중 아치’ 비행을 했다고 묘사했다고 전했다. 두 번 상승한 다음 하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뜻이다. CNN은 “미국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미사일”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세 가지 미사일 중 무엇이 변칙 기동을 했는지는 불명확하다고 한다. 정체불명의 신형 미사일이 있었을 수 있는 것이다.

CNN은 이번 미사일 발사가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시험하려는 목적이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 미사일 발사는 성능 검증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성능 시험을 하려면 한 종류의 미사일만 발사했을 것이다. 여러 종류의 미사일을 섞어서 쏘면 시험하는 입장에서 분석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실전 성격의 시위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ICBM과 중거리, 단거리 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전이 벌어지면 한·미·일을 동시타격 하겠다는 의지와 계획, 능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AP통신은 2017년 5월 참여과학자연맹 세계안보프로그램의 데이비드 라이트, 독일 민간 우주기술 및 로켓 상담회사 ST 어낼러틱스의 마르쿠스 실러의 분석을 토대로 북한 미사일이 서울까지 6분, 도쿄까지 11분, 워싱턴까지 39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5월 25일 오전 6시, 6시 37분, 6시 42분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비슷한 시간에 각각 미국, 일본, 한국에 도달하도록 계산하여 발사한 게 아니냐는 추정도 가능하다.

2) 하늘에 있던 바이든 대통령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타고 하늘에 있었다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 순방 후 귀국하는 길이었고 워싱턴D.C.에 도착하기 2시간 전이었다고 한다.

올해 1월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미국은 서부지역 공항에 비행기 이륙 금지 명령을 내리며 비상사태에 들어간 적이 있다. 이번엔 대통령이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으니, 그보다 심각한 초비상상황이었을 것이다.

당시 에어포스 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당히 궁금하다. 미국이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 한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침착한 태도로 효율적인 대응을 했다면 미국은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당시 모습을 공개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바이든 대통령이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여유 있게 보고를 듣는 모습, 차분하면서도 주도면밀하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껏 사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상당히 당황하고 우왕좌왕했을 것이다.

원래 핵전쟁이 발발하면 지하 벙커로 들어가거나 잠수함을 타는 게 가장 안전하다. 그런데 보통 잠수함까지 갈 시간 여유가 없으니 지하 벙커로 피신하는 게 일반적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5월 18일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의 군사행동이 있을 시) 한미 정상이 즉시 한미연합방위태세 지휘통제시스템에 들어가도록 ‘플랜B’를 마련해 놨다”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만약의 경우 한미 정상이 지하 벙커로 이동하도록 대책을 세워놓았다는 것이다. 북한도 지하철을 지하 100m 깊이에 만들고 유사시에 대피소로 사용한다.

그런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 바이든 대통령은 하늘에 있었다. 하늘은 가장 무방비한 공간이다. 대공핵미사일로 요격당할 가능성이 있고 대피·방어 대책이 없다. 미국 대통령이 처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마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 보고를 받고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하늘에 있으면 안전도 안전이지만 지휘통제 체계를 발동하는 측면에서도 문제다. 에어포스 원에서도 기본적인 지휘는 가능하지만, 지하 벙커에 비하면 빈약하다. 게다가 전파방해를 받으면 에어포스 원과 미 본토와의 연결이 끊어질 가능성도 있다.

공중으로 오가는 전파는 다른 나라도 수집할 수 있다. 따라서 북·중·러도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미 본토와 나눈 교신을 포착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북·중·러로선 미국 대통령이 공중에서 비상 상황을 맞았을 때 어떻게 지휘하는지 분석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3) 현실 인식

북한이 이번에 한·미·일을 동시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3종을 동시에 발사했다. 기존에 없던 궤적을 보인 신형무기도 포함됐다. 게다가 그때 바이든 대통령은 공중에 있어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여러모로 미국에게 아찔한 상황이었다. 만약 정말로 전쟁이 발발했으면 어쩔 뻔 했겠는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건 5월 25일이다. 그런데 미국은 6월 1일 현재도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며칠 안에 승패가 갈리는 실전에서도 지금처럼 일주일이 다 가도록 분석만 하고 있을 셈인가?

미국은 일찌감치 북한이 군사행동을 할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연일 정찰기를 출격시켜 북한을 감시했다. 심지어 발사 전날엔 조짐이 있다며 한국이 코끼리걸음 훈련을 했다. 이렇게 대비하고 있었는데도 속수무책이다. 한미 당국은 북한이 도발하면 원점타격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대로면 실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미사일 발사 전날인 5월 24일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가 독도 동북쪽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들어왔다. 북·중·러가 함께 군사행동을 펴는 모양새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5월 26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져 대북 제재안을 무산시킨 뒤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전쟁의 불길을 퍼뜨리려고 한다면 중국은 결단에 나설 수밖에 없다”라고 발언했다. 전쟁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위협성 발언이다.

원래 전쟁위협을 일삼던 건 미국이다. 과거 미국은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거나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면서 전쟁위협을 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기껏해야 북한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자족한다. 전략자산을 전개하지도 못하고 북한이 대화에 복귀하길 촉구하는 게 전부다.

중국의 전쟁위협 발언에 대해서도 미국은 ‘한판 해보자’라는 식으로 맞서지 못했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중국과 러시아의 무책임한 태도가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고 있다며 꼬리를 내렸다.

미국이 대화를 구걸하며 저자세를 보이고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위협을 한다.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것이 엄연한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윤석열 정권이 북한을 강하게 대하고 있다며 추켜세운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이런 행태가 ‘우리가 밀리지 않았다’, ‘내 똥이 굵다’는 식으로 자족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윤석열 대통령도 언론 보도를 보며 자신이 강해 보인다고 즐거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만과 정신승리는 실전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을 착각하게 만들고 정확한 대응을 가로막아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게 만드는 마약, 환각제다.

우리는 현실을 냉철하게 봐야 한다.

한·미·일은 윤석열 대통령 집권 후 한미정상회담과 뒤이은 미일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그런데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체제는 실패했다는 게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현실을 외면하고 정신승리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비상 난국이라는 걸 빨리 인정하고 실효성 있는 새로운 타개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