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8.


1. 상황

북한이 6월 5일 미사일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오전 9시 8분부터 9시 43분까지 평양 순안, 평안남도 개천 등 4곳에서 각 2발씩, 총 8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쏘았다고 밝혔다. 북한이 미사일을 8발이나 동시다발적으로 발사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는 한미 당국의 허를 찌른 듯이 보인다.

5월 25일 북한이 미사일 3발을 발사했을 때 한국은 징후를 미리 포착하고 전날 코끼리걸음(Elephant Walk) 훈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완전무장한 F-15K 전투기를 활주로에 늘어놓음으로써 북한이 군사행동을 강행하면 이 전투기들을 띄워 원점을 타격하겠다는 의미의 시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미 당국이 사전에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는지 사전대응을 하지 못했다.

한국 당국은 9시 8분 첫 미사일이 발사된 후 9시 10분께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공개 봉사활동 일정을 취소하고 대통령실 청사에 출근한 시각은 오전 10시였다. 첫 미사일 발사 후 출근까지 52분이 걸린 셈이다. 국민은 “52분이면 상황 끝났을 것 같다”라며 질타했다.

- 네이버 포털, 조선비즈, <尹대통령, 北 탄도미사일 발사 52분 만에 대통령실 출근>, 2022.6.5.


정부가 사전에 징후를 포착해 대비하고 있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봉사활동 일정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리 출근해 대응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만이 아니라 지난 북한 미사일 발사도 한미 당국의 허를 찌르는 면이 있었다.

5월 25일 미사일 발사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을 순방한 후 전용기를 타고 귀국하는 중이었다. 애초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방한 기간에 북한이 핵시험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대피 대책까지 세워놓았다. 하지만 북한은 바이든 대통령 방한 기간에 군사행동을 하지 않았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비행기에서 어느 기자로부터 북한에 대한 예상이 빗나갔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자 설리번 보좌관은 “솔직히 예측하기 어렵다”, “(북한에 대한 예측은) 어떤 형태로든 틀린 것으로 입증되는 경향이 있다”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상대방의 군사행동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원래 어렵다. 그러니 설리번 보좌관은 ‘언제든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당연한 듯 대답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설리번 보좌관은 난처한 듯 쩔쩔매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당황한 설리번 보좌관의 태도로 보아 미국은 북한이 정말로 핵시험을 할 거라고 확신하고 초긴장상태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한미정상회담과 일본 순방을 마칠 때까지 북한은 군사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긴장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귀국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귀국하는 도중에 북한 미사일이 날아올랐다.

미국은 군사·외교적으로 북한에 완전히 당했다.

미국 대통령은 위기 상황 발생 시 지하벙커로 피신한다. 그런데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하늘에 있었기 때문에 대피할 수도 없고 미사일을 방어할 대책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방비상태였다. 군사적으로 완전히 허를 찔렸다.

외교적으로는 북한 미사일 발사로 한국·일본 순방에서 얻은 성과가 무위로 돌아갔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순방에서 뭘 했는지는 가려지고 북한 미사일 발사 정국이 세계를 뒤덮었다.

2. 강대강 국면

현재 한반도는 강대강으로 가는 형국이다.

북한의 태도는 두말할 것 없이 ‘강(强)’이다. 언론은 북한이 올해 벌써 18차례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ICBM은 6차례나 쏘았다고 보도했다. 그 어떤 나라도 ICBM을 이렇게 단기간에 많이 쏘지 않는다.

또 미국도 이제야 실험단계에 있는 극초음속미사일을 북한은 이미 발사했다. 북한이 5월 25일에 쏜 미사일 중엔 두 개의 호(arc) 모양의 궤적으로 움직인 정체가 불분명한 미사일이 포함되어 있다. 5월 27일 CNN이 보도한 복수의 미 정보당국자의 증언에 따르면 “미국이 아직 본 적 없는 미사일”이다.


 

▲4월 25일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포 17형



한국과 미국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으로 나오는 추세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선(善)’이었던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도 한미연합훈련을 지속하고 북한을 겨냥한 미국산 첨단무기를 사들였으며 군비를 확장하고 미사일 발사 훈련을 이어갔다.

다만 윤석열 정권 들어 한미 당국은 전보다 더 센 ‘강’으로 나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북한을 선제타격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고 규정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고 부르며 적대감을 더 강하게 표출한다.

행동으로도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공동 미사일 발사로 맞대응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시절이던 3월에는 한국군이 혼자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국은 참여하지 않은 바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들어서 5월 25일 북한 미사일 발사 때 단거리미사일 2발을 쏘았고, 이번 6월 5일 북한 미사일 발사 때엔 숫자를 맞춰 단거리미사일 8발을 대응 차원에서 발사했다.

또한 한미는 6월 2~4일 전략무기인 핵항공모함을 동원해 한미 연합 항모강습단훈련을 진행했다. 한미가 합동으로 대규모 실기동훈련을 벌인 건 4년 7개월 만이다.

북한과 한국·미국이 모두 ‘강’으로 가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상이 다소 미묘하다. 북한은 거침없이 강으로 가고 있는데 한미 당국의 행보는 어딘지 찝찝하다.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에 맞서 전략자산을 전개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필요시’에 ‘시의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리고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도 실기동훈련을 하겠다고 못 박지 않고 훈련의 범위와 규모에 대해 “협의를 개시”하겠다고 했다. ‘강’으로 나갈 거면 확신을 갖고 밀어붙여야 하는데 미국은 살얼음판을 딛듯 조심스러워한다.

이런 태도는 실제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5월 25일의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ICBM 발사에 단거리미사일 발사로 대응했다. 원래 맞대응이라고 하면 상대방의 행동에 급을 맞춰야 의미가 있다. 한쪽에서는 포를 쏘는데 상대방이 총을 쏘며 맞대응하면, 위협을 가하는 게 아니라 얕보이고 비웃음을 사게 된다. 그러니 북한이 전략무기를 발사했으면 한미 당국도 전략무기 급으로 대응해야 적절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미국은 5월 25일 전략폭격기 B-52H를 출격시키기도 했다. 이상한 건 B-52H가 북한을 향해 비행한 게 아니라 일본의 동쪽 해안을 따라 북한에서 멀어져가는 방향으로 날아갔다는 점이다. 북한으로 진격하는 게 아니라 북한에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꼴이다. 자신으로부터 멀어져가는 B-52H를 보며 북한이 위협을 느꼈을까?

한편으로 B-52H가 일본 해안선을 따라 비행하는 게 마치 북한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위협비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 본토에서 B-52H가 있던 방향으로 쭉 가면 진주만이 나온다. 미국이 진주만 공습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일본에 상기시켜 주려던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5월 25일 전략폭격기 B-52H 비행경로



6월 초 한미 해군 연합훈련이 벌어진 장소도 이상하다. 일본 오키나와의 남쪽 공해상이었는데, 이 정도면 말이 일본 아래이지 사실 대만에 더 가깝다. 지리적으로 보면 북한을 겨냥한 군사행동이라기보다는 괌이나 대만 방어훈련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은 미국이 왜 동해에서 대북 군사행동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5월 24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동북쪽으로 날아든 일이 있었다. 일본에 대한 시위라는 분석이 있다. 또한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서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정상회의를 진행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미국과 쿼드에 대한 시위라는 해석도 있었다. 그런 목적의 군사행동이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가 군용기를 일본에 접근시킨 것이다.

만약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다면서 시베리아나 북극해에 군용기를 출격시켰으면 어땠을까? 미국과 일본을 압박하긴커녕 비웃음만 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행태가 딱 그 꼴이다.



▲빨간 원 부근이 6월 2~4일 한미 해군이 연합훈련을 한 오키나와 남쪽 바다.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오히려 대만과 가깝다.



외교적 측면을 봐도 북한과 한미 당국의 발언에 차이점이 있다.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수행하는 육군 특수임무여단이 5월 12일 미국 본토에서 미군 특수부대용 수송기와 연합훈련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북한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5월 30일 “함부로 날뛰지 말아야 한다”, “비열하고 악랄한 도발 책동으로 초래될 것은 비참한 파멸과 재앙뿐”이라며 강도 높게 경고했다.

한편 미국은 5월 28일 한·미·일 외교부 장관 공동성명에서 북한을 향해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히 규탄”한다면서도 “협상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6월 5일에도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가 북한을 향해 긴장 고조 행위를 조속히 중단하고 대화에 복귀할 것을 주문했다. 북한은 미국에 “파멸과 재앙”을 안겨주겠다고 하는데, 미국은 ‘북한이 잘못했으니 이제 대화하자’라고 말한다.

한국과 미국의 행보가 이런 식이니 한미 당국의 행동이 ‘강’이긴 한데, 꼭 겁먹은 개가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소리만 요란하게 짖는 것처럼 느껴지며 찝찝하고 개운치 못한 맛을 준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도 한국과 미국의 행태가 찝찝해 보이는 것 같다.

B-52H가 일본 상공에 출격했다는 기사에는 “일본 지키러 출동한 건가”, “도대체 강력 대응이라는 게 뭐지. 문재인 정부 때와 별다른 게 없네. 사기 쳤나” 등으로 비아냥대는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 포털, 중앙일보, <북 도발 직후, 미 전략자산 B-52H폭격기 일본 상공 출격>, 2022.5.26.


6월 5일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한미 당국의 대응에 대해서는 “미국 바이든까지 끌어들이면 뭐 하나. 말짱 도루묵”*, “솔직히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만날 규탄한다고만 하지”** 등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버 포털, 조선일보, <韓美 항모훈련 끝난 다음날… 北, 동해로 탄도미사일 8발 쐈다>, 2022.6.5.
** 네이버 포털, 연합뉴스, <北 '무더기 탄도미사일' 발사에 한미 북핵대표 서울서 긴급회동>, 2022.6.5.


3. 전망

강대강 국면이 이어지면 대결 강도가 계속 상승하게 된다.

합참은 5월 25일 미사일 발사를 하면서 “북한 추가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연합전력의 신속한 타격능력을 현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11일 후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국군의 군사행동이 북한의 군사행동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실 역사적으로 한국과 미국은 강경대응을 통해 북한의 행동을 제지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한다는 게 북한의 전통적인 입장이다. 그러므로 한미 당국이 강하게 나서면 대결이 끝나는 게 아니라 대결 강도가 더욱 상승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렇게 대결이 계속 고조되면 끝내 전쟁이 날 수 있다.

1) 전쟁이 나지 않는 경우

전쟁이 나지 않고 강대강 국면이 끝난다면, 그건 어느 한쪽이 대결을 포기하고 발을 뺐다는 뜻이다. 이 경우 발을 빼는 쪽은 과연 누구일까?

지난 경험을 살펴보자. 1990년대 초반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를 두고 다투다 전쟁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준전시상태를 선포해가며 맞섰고 미국은 북한을 폭격할 날짜와 시간을 정하기까지 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전쟁에 제동을 건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특사로 보내 북한과 포괄적인 합의를 본 것이다.



▲1994년 6월 김일성 주석(오른쪽)과 지미 카터 특사(왼쪽)



미국이 특사를 보낸 이유는 전쟁 개시일을 앞두고 모의전쟁(워게임)을 해보았더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전쟁 발발 시 90일 이내에 미군 5만여 명, 한국군 50만여 명이 죽거나 다친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정신이 번쩍 드는 보고”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미국은 피해가 막대할 것임을 알고 전쟁을 포기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자기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전쟁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북한 붕괴론을 맹신하며 대화를 반대하고 대결을 고집했다. 그렇게 전쟁 불사를 외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인제 와서는 자기가 전쟁을 막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전쟁 불사를 외치다가 갑자기 전쟁을 반대했다면 그건 꼬리를 내렸다는 말과 같다. 김영삼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자기가 꼬리 내렸다는 것을 자랑처럼 내세운다.

살펴봤듯 1990년대 전쟁위기 때 먼저 발을 뺀 건 한국과 미국이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정권 때도 북미대결이 전쟁 직전으로 치달았다. 2021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서 당시 전쟁위기가 고조되어 2017년 4월 “항모(항공모함) 3척 배치. 전쟁 1분 전”이라는 정보가 나돌거나 4월 27일 전쟁이 난다며 구체적인 날짜가 지목될 정도였다고 밝혔다.

-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4월 위기설’에서 종전선언 제안까지…“오직 평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1.12.6.


이때도 전쟁을 피하고자 대화를 시도한 건 미국이었다.

2017년 12월 5~9일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방북했다. 펠트먼 사무차장은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한 대화 통로 긴급 개설, 남북 간 통로 복구,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등을 북한에 제안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정상회담을 할 의사를 전달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펠트먼 사무차장에 따르면 리용호 외무상은 북미정상회담 의사를 전해 듣고 “당신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이때 펠트먼 사무차장이 “유엔이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맡았고, 내가 그 전달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펠트먼 사무차장은 미국의 특사 같은 역할로 북한을 간 셈이다.

결국 강대강 담력 싸움에서 연거푸 패배한 건 미국이었다. 이런 전례를 봤을 때 앞으로 강대강 국면에서 어느 한쪽이 발을 뺀다면 그건 북한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일 가능성이 크다. 한미 당국이 일본에 전략폭격기를 띄우고 대만 앞바다에서 연합훈련을 하는 걸 보면 벌써 그런 기미가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다. 1994년, 2017년 등 과거 사례를 보면 북한의 요구사항은 대화였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는 것만으로 북한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고 대결 국면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오늘날 ‘조건 없는 대화’를 바라는 건 미국이고 북한은 대화를 거부한다. 한국과 미국이 군사행동을 멈추고 대화에 나서는 것만으로는 강대강 국면을 끝낼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이 강대강 국면을 끝내려면 북한의 요구조건을 들어줘야 한다. 북한의 요구조건은 무엇인가? 북한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철회해야 비로소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말하는 적대정책 철회란 한미연합훈련 완전 중단,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 중단, 대북 제재 해제, 주한미군 철수 등이다. 이건 사실상 한국과 미국의 완패를 의미한다. 심지어 이걸 수용하면 북한이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제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대화 자체가 북한의 요구조건이던 과거에 비해 지금 북한이 내건 대화 재개 기준은 매우 높아졌다. 이렇게 상황이 달라진 건 그만큼 북한의 힘이 세지고 한국과 미국은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게 엄연한 현실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오늘날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으로 북·중·러 반미 국가들의 힘이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보다 더 강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이 군사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건 미국이 스스로 인정한다.

예를 들어 존 하이트 미국 합참차장이나 랜드연구소 등 미국의 정책연구소들은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모의전쟁을 하면 “침소봉대 없이 비참하게 실패”한다거나 “손쉬운 먹잇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2018년 2월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은 “미국이 지난 8년 동안 F-35 전투기 단 한 종류를 개발하는 동안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경쟁국 및 적국은 34종의 새로운 핵 운반 시스템을 개발했다”라며 미국이 첨단무기 개발 경쟁에서 패배했음을 인정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2021년 10월 27일 중국의 극초음속미사일 시험에 대해 ‘스푸트니크 순간’에 매우 가까워졌다고 이야기했다. ‘스푸트니크 순간’이란 1975년 미국보다 먼저 소련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사건을 말한다. 그때처럼 오늘날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가고 있다는 뜻이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22년 1월 2일 정치매체 더힐 기고문에서 미국이 하릴없이 있는 동안 북한은 핵·탄도미사일 기술 완성에 더 가까워졌으며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에서도 기술적 진전을 이룬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제관계를 움직이는 제1법칙은 힘이다. 정의와 부정의, 옳고 그름에 앞서 힘 대 힘의 대결로 좌우되는 게 국제관계다. 그래서 국제관계는 철저히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2) 전쟁하는 경우

강대강 국면에서 아무도 물러서지 않으면 결국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전쟁이 나면 결과는 ▲핵전쟁으로 남·북·미 3국 공멸 ▲한국과 미국의 승리 ▲북한의 승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전쟁은 현실이다. 이념이나 네 편 내 편 따지며 무턱대고 행동할 문제가 아니다. 전쟁에서 가장 주의할 건 기분주의, 정신승리다.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해서 전쟁을 벌였다가 힘이 달려 참패하는 일이 벌어져선 절대로 안 된다. 패배한 후에 ‘졌지만 잘 싸웠다’, ‘피해는 컸지만 사실상 우리가 이긴 거다’와 같은 정신승리를 해봐도 소용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제 힘 대 힘 대결에서 누가 이길지 냉철하고 정확하게 봐야 한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역사적, 현실적 사례를 놓고 판단해보자.

먼저 북한과 한미가 실제로 맞섰던 한국전쟁을 보자. 북한과 한국, 미국은 모두 자기가 한국전쟁에서 이겼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승리한 건 누구인가?

북한은 전쟁에서 이겼다고 주장하는 대로 실제 행동을 한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맺은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로 삼아 기념하고 경축 열병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북한은 1953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나고 처음 맞는 광복절에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열병식을 열기도 했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한국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7.27이 아니라 침공을 받았다는 6.25를 기념한다. 한국은 엉뚱하게 7.27을 유엔군참전기념일로 정했다. 유엔군이 처음 참전한 날이 7월 27일인 것도 아니다. 정전협정일을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승전기념일’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적당히 둘러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협상을 반대해 정전협정 당사국에서 배제되었고, 협정에 서명한 미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는 “나는 역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 사령관”이라며 자조했다. 주한미군 제2여단 공병대대는 한국전쟁 패배의 치욕을 되새기기 위해 매해 부대기 전소식을 진행한다.

이를 보면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승리하고 한국과 미국은 패배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듯하다.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클라크 사령관



미국이 2001~2021년까지 무려 20여 년에 걸쳐 벌인 아프간 전쟁을 보자.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하겠다며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전쟁이 끝났을 때 결국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미국이 세운 친미 정권은 무너졌고 아프간에 주둔했던 미군은 쫓겨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패배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을 비꼬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국익을 위해선 철군이 불가피했다고 변명했다. 패배했음을 부인하진 않는다.

한반도 상황과 비교해 보자. 당시 아프간 친미정권은 현재 윤석열 정권보다는 약체다. 하지만 북한과 대결하는 미군은 2021년에 아프간에서 쫓겨난 미군과 같은 존재다.

북한에 대해 말하자면 탈레반 등의 아프간 반미세력보다 5천 배 쯤은 더 강하지 않을까? 탈레반은 슬리퍼 신고 소총을 들고 미국과 싸웠지만, 북한은 일단 핵보유국이라는 점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북한은 ICBM으로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고 극초음속미사일도 있다. 전차, 방사포, 전투기 등등에서도 북한과 탈레반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미국은 탈레반에게도 졌는데 북한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전쟁이 벌어지면 아프간에서 그랬듯 주한미군이 본토로 야반도주할 수 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프간의 탈레반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자. 미국은 마치 전쟁이 나면 참전해서 우크라이나를 지켜줄 것처럼 굴었다. 2021년 32개국 군대를 모아 우크라이나를 보호하는 내용의 시 브리즈 21(See Breeze 21) 훈련을 한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정작 전쟁이 발발하니 미군과 나토는 참전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5월 31일 뉴욕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이 공격받지 않는 한 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군을 파견하거나 러시아를 공격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재차 확언했다. 직접 참전뿐만 아니라 무기 지원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한다.

그 사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산업의 중추였던 동남부 지역을 러시아에게 빼앗기고 더 나아가 남쪽 해안지대까지 내줌으로써 곡물 수출이 막혀 큰 경제 타격을 받고 있다.

최근 한국군은 6월 29일~8월 4일 열리는 다국적 환태평양훈련(RIMPAC)에 참여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 전력을 출항시켰다. 그런데 림팩 훈련을 한다고 한국이 보호받을 수 있을까?

2022 림팩 훈련에는 총 26개국이 참가한다. 시 브리즈 21 훈련에는 32개국이 참가했었다. 2022 림팩 훈련보다 참가국이 6개국 더 많다. 그런데도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자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니 림팩 훈련을 한다고 해서 한국이 보호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도 우크라이나와 같은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국은 초강대국을 자처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전쟁에서 제대로 이긴 적이 없다. 북한과의 대결에서는 역사를 통틀어 봐도 미국이 승리한 사례가 없다. 이를 토대로 판단하자면 전쟁이 나면 북한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누가 옳고 그르냐를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현실을 예측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4. 결론

대한민국 입장에서 강대강 국면은 그 어떤 경우에든 좋을 게 없다.

강대강 국면에 들어가면 북한이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므로 한국과 미국이 굴복하지 않는 한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과 미국이 승리할 가능성은 적다. 그렇다고 전쟁을 피하자니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굴복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는 어느 모로 봐도 한국과 미국이 필패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혹시 윤석열 정부가 북한을 확실히 이길 수 있는 대책을 가지고 있다면 공개해주길 바란다. 필패한다는 결론을 뒤집을 논거가 있다면 언제든 환영하고 진지하게 살펴볼 의향이 있다.

이기고 싶다는 욕망, 강하게 나가니 보수언론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어 좋다는 기분주의에 휩쓸리면 안 된다. 또는 싸우면 아무래도 한국과 미국이 이기지 않겠냐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전쟁에 뛰어들어서도 안 된다.

강대강으로 들어서면 필패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뭔가 새로운 대책을 세우는 게 간절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