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2년 04월 05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171]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하여②
북한은 올해 1월 조선노동당 제8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 탄생 110돌,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 80돌을 “승리와 영광의 대축전”으로 만들어 “성대히 경축”하기로 하였다.
미국 등지에서는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나 열병식을 할 것이며 경제 성과를 과시할 것이라는 등의 예측이 나오고 있다. 3월 13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4월 15일 북한은) 대대적인 행사를 할 것”이라며 “핵실험을 세게 하든지 아니면 정말 위력적인 ICBM을 또 한 번 발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북한은 3월 24일 화성포 17형을 발사했다.
나오고 있는 예측의 공통점은 북한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의 국력 시위를 할 거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한은 전 세계를 들었다 놓을 정도로 큰 충격파를 일으키는 일을 종종 해왔기 때문이다. 화성포 17형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편 북한이 말하는 ‘대축전’이 어떤 대외적 파장을 불러올지도 관심사지만, 북한 내부의 시각에서 ‘대축전’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북한 내부의 시각을 보려면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가장 핵심이 될 수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리고 선대 ‘수령’을 잇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 북한 지도자의 생애와 활동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주체사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아침햇살에서는 지난 [아침햇살169]에 이어 북한에서 주체사상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학술적,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주체사상에서 얘기하는 인간의 속성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2년 발표한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위키문헌에서 재인용) 참조
주체사상은 사람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고 주장한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자주성이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사람은 자주성이 있어서 자연과 사회를 자신에게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사람 외의 다른 존재는 자주성이 없으므로 그냥 자연에 순응해서 산다고 할 수 있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창조성이란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사람은 창조성이 있어서 낡은 것을 변혁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자연과 사회를 자기에게 더욱 이롭게 바꿔나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은 동굴에서 움막으로 나중엔 아파트를 지으며 자기 주거 형태를 계속 진화시켜나가지만, 벌이 만드는 벌집은 수천, 수만 년이 지나도 똑같은 모양이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의식성이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사람은 의식성이 있기 때문에 세계를 파악하고 자연과 사회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식성이 있어서 자주성과 창조성이 있을 수 있고 실천활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앞선 글 [아침햇살169]에서 소개했듯, 주체사상은 철학의 근본문제로 사람과 세계의 관계 문제를 제시하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체사상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하여 세계 유일한 지배자이자 유일한 개조자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2. 사회적 속성
주체사상이 말하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이들이 사회적 속성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냐를 규명할 때 사회적 존재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결론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사람은 동물이자 사회적 존재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동물 중에서 포유류, 영장류이다. 영장류에 속하는 동물은 사람, 원숭이,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등이 있다. 사람에게는 동물, 영장류와 공통적인 성질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먹고, 자고, 종족 번식을 하려는 동물적 특성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동물적 특성이 사람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미국 영화 ‘원초적 본능’(원제: Basic Instinct, 1992년 작)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은 살인 혐의를 받는다. 그런데 경찰관인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범인으로 의심하고 위험을 느끼면서도 주인공에게 유혹당해 헤어나지 못한다. 이 영화는 사람이 성적인 본능에 휘둘리는 동물적인, 원초적인 존재라고 역설한다.
동물적 특성이 사람의 본질이라는 견해는 정치 분야에서 약육강식을 정당화했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다는 약육강식은 지배층의 정치이론이다.
약육강식은 동물 사회의 일반적인 법칙이다. 풀이 토끼에게, 토끼는 여우에게, 여우는 사자에게 잡아먹힌다. 그렇게 해서 먹이사슬이 만들어진다. 힘센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 걸 두고 잘못되었으니 바로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약육강식을 인간세계에 적용하는 자들이 있다. 사람도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계급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도록 강요한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히틀러가 있다. 히틀러는 아리아 민족이 가장 우수한 인종이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좀 더 가까이에서는 이준석 국힘당 대표를 예로 들 수 있다. 이준석 대표는 3월 26일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비난하며 ‘언더도그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언더도그마란 ‘약자는 무조건 착하고, 강자는 무조건 나쁘다’라는 인식을 말한다. 이준석 대표는 ‘언더도그마’는 잘못되었다며 약자가 이야기하는 걸 다 들어줄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지배층의 사고방식이다.
약육강식을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첨예하며 심각하게 표현하는 건 미국 대통령 공식 의전차량이다. 미국 대통령 의전차량의 별명은 비스트(The Beast), ‘야수’다. 야수란 사자, 호랑이 등 동물 세계의 최상위 포식자를 말한다. 미국 대통령이 바로 야수, 약육강식의 정점이라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집어삼키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게 당연하다는 표현이다. 이것이 미국식 사고방식이다.
미국에서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한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모든 것이 개인 책임이며 약한 자는 먹히기 마련이고 강한 자가 진리라고 본다. 이것이 미국식 실용주의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성인 중 44%가 집에 총을 가지고 있다.
또 많은 미국인이 이른바 ‘몸짱’이 되는 데 치중한다. 주 2회 이상 근력운동을 하는 미국 성인 비율은 2017년 31%다. 한국은 22%다.
많은 미국인이 근력 위주로 운동하는 이유는 건강보다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몸집이 커 보이려는 것이다. 동물들이 적을 위협할 때 털을 곤두세워 몸집을 부풀리는 것과 같다. 미국이 바로 동물의 왕국이다.
미국 사회엔 약육강식이 만연해 있다. 백인이 흑인을 멸시하고 흑인이 히스패닉, 동양인을 멸시하며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투쟁한다. 대외적으로는 힘없는 나라를 함부로 침략해서 컴퓨터게임을 하듯 살육을 벌인다. 인간을 동물적 존재로 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다.
인간 사회에는 동물의 세계와 구분되는 자체의 고유한 법칙이 만들어졌다. 예로부터 인간세계는 도덕을 강조한다. 도덕은 사람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면서 생긴 규범이다. 도덕은 예의와 의리를 지키고 약자를 보살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도덕은 약육강식과 정반대다. 협동하고 서로 돕는다. 사람이 소통하고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 말과 글자가 생기고 기록을 통해 지식을 쌓으며 발전했다. 국가와 지휘체계가 만들어졌으며 사람들 속에 애국심과 민족애가 생겨났다. 인간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어떤 서양 철학자들은 인간 사회를 동물의 무리생활과 같다고 여긴다. 포유류나 개미, 벌 같은 동물도 사회를 이루고 산다며 인간 사회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사람을 사회관계를 맺고 집단 속에서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로 보며, 인간 사회를 동물의 무리생활과 다르다고 말한다. 북한은 “무리생활을 하는 생명물질은 무리의 질서에 의하여 규정될 뿐이고 그것을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하지 못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개조발전시킨다”라고 설명한다.
- 황병덕, 「주체사상과 맑스·레닌주의」, 통일연구원, 1995, 105쪽
주체사상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라고 짚었다. 동물적 속성보다 사회적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을 규명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속성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봐야 주체사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주성을 보자.
사회적 속성으로 보면 자주성은 집단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계급적 및 민족적 예속에서 벗어나야 자주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정치적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일제 강점 아래에서 한국인은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자주독립을 이뤄야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집단의 자주성이 실현되지 않고선 개인의 자주성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속성이 아니라 동물로서의 속성, 개인의 차원으로 이해하면 자주성은 자아실현의 의미가 된다. 자아실현과 북한이 말하는 자주성은 다른 개념이다.
자아실현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기 느낌대로 사는 것을 중시한다. 자아실현의 장점이라면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는 측면이 있지만,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자기를 앞세우고 다른 사람과 대립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우선하면 사회는 동물의 법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강자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약자를 짓밟고 패자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걸로 보며 약육강식을 합리화하게 된다. 또한 자아실현의 결과가 사회에 도움이 되느냐 피해를 끼치느냐는 관심 밖의 영역이 된다.
예를 들어 김건희를 보자. “자본주의는 돈이 없으면 죄인이다”라고 말했다는 김건희는 논문을 표절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가조작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남편을 통해 영부인도 됐다. 김건희 입장에서는 자아실현을 한 것이다.
김건희에 분노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수단과 방법이야 어쨌든 돈을 벌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욕망을 실현한 게 뭐가 문제냐는 시각이다. 그야말로 욕망의 세계다.
북한이 말하는 자주성은 이런 것이 아니다. 북한은 집단주의를 강조하며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북한이 말하는 자주성은 그들 표현으로 ‘인민대중’의 자주성,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속에서 개인의 자주성도 실현된다고 본다.
북한은 항일투사를 자주성이 발양된 사례로, 모범적인 인간의 전형으로 내세운다.
- 김동현, 「북한, 항일빨치산 애도하며 국가헌신·‘백두산 정신’ 강조」, 연합뉴스, 2020.01.18.
독립투사들은 개인의 안위를 위해 살지 않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북한은 3.1운동을 보며 그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평가한다.
따져보면 나라를 팔아넘긴 이완용은 잘살겠다는 자아실현을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저버린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독립투사는 개인의 안위를 위해 살지 않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독립투사가 집단을 위해 헌신했다고 해서 개인으로선 불행했을까? 그렇지 않다.
안중근 의사는 의거를 단행하며 자신을 희생했지만 자기가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여긴다. 의거를 결심하며 “여러 해 소원한 목적을 이제야 이루게 되”었다며 기뻐하고 형장에 서서도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죽고, 동양 평화를 위해 죽는데 어찌 죽음이 한스럽겠소?”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사람을 사회적 존재로서 바라보는지 아니면 동물적 존재로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주체사상이 말하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에 대한 해석이 사뭇 달라진다. 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속성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