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2년 03월 23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169]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하여
북한은 올해 1월 조선노동당 제8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 탄생 110돌,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 80돌을 “승리와 영광의 대축전”으로 만들어 “성대히 경축”하기로 하였다.
미국 등지에서는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나 열병식을 할 것이며 경제 성과를 과시할 것이라는 등의 예측이 나오고 있다. 3월 13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4월 15일 북한은) 대대적인 행사를 할 것”이라며 “핵실험을 세게 하든지 아니면 정말 위력적인 ICBM을 또 한 번 발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오고 있는 예측의 공통점은 북한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의 국력 시위를 할 거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한은 전 세계를 들었다 놓을 정도로 큰 충격파를 일으키는 일을 종종 해왔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이 말하는 ‘대축전’이 어떤 대외적 파장을 불러올지도 관심사지만, 북한 내부의 시각에서 ‘대축전’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북한 내부의 시각을 보려면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가장 핵심이 될 수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리고 선대 수령을 잇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 북한 지도자의 생애와 활동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주체사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아침햇살에서는 북한에서 주체사상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학술적,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주체사상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의 근본문제
먼저 주체사상이 제기하는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철학의 근본문제란 철학의 다른 모든 문제를 푸는 데서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기초가 되는 문제를 말한다. 철학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을 근본문제로 제기하느냐에 따라 철학의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주체사상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세계와 사람의 관계 문제라고 규정한다. 세계와 사람의 관계 문제란 세계에서 사람이 어떤 지위와 역할을 갖는지를 말한다.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느냐 아니면 사람이 세계의 지배를 받느냐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이 근본문제에 대해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라고 결론짓는다.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이고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체사상 세계관의 핵심이다.
2001년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위원은 “주체사상은 사람 중심, 사람 위주의 철학사상이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람을 위주로 하여 세계의 면모와 그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히고 인간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힌 사상이라는 데 주체사상의 근본특징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통일연구원(2001), ‘김정일 연구: 리더쉽과 사상(Ⅰ)’
북한은 주체사상이 앞선 철학들과 다른 독창적인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이전 철학들은 사람을 철학의 근본문제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전 철학들이 물질과 의식, 존재와 사유의 관계를 근본문제로 삼았다고 말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저서 ‘포이어바흐론’(1886)에서 “철학 전체의 최고 문제는 물질과 의식, 존재와 사유 중 무엇이 근원인가, 물질인가 의식인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철학자들은 두 개의 큰 진영으로 나뉘었다”라고 규정했다.
엥겔스가 말한 두 개의 큰 진영이란 관념론과 유물론이다. 관념론은 의식이 먼저라고 주장하고 유물론은 물질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관념론은 마음, 정신, 의식에 의해 물질 세계가 형성된다고 이야기한다.
관념론의 대표적인 예로 프리드리히 헤겔의 절대정신을 들 수 있다. 헤겔은 우주의 근원이 되는 절대정신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헤겔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이 절대정신이 현실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를 두고 헤겔은 “역사는 절대정신이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묘사했다.
헤겔의 주장은 종교와 유사하다. 대체로 종교는 신이 있고 신이 모든 걸 창조하고 결정한다고 본다. 종교는 지배계급이 평민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지배계급은 자기가 신의 대리자라며 권력을 독차지하는 걸 정당화했고 피지배계급을 신과 지배계급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반면, 유물론에 따르면 의식은 물질이 활동한 결과다. 의식은 뇌라는 물질의 활동이다. 유물론은 사람 또한 물질의 일종으로만 보았다. 마르크스주의는 사람의 본질을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규정했다. 사람을 여러 사회적 환경과 조건의 산물로 해석한 것이다.
북한은 이전 철학이 사람 위주로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주체사상을 사람을 중심으로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한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철학에서 인간을 아예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북한은 과거 철학이 사람을 전면적으로 다루더라도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논하는 인생철학에 불과했다고 설명한다.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철학의 근본문제는 순수 인간 문제가 아니라 세계와 사람의 관계 문제이며 단지 인생관만이 아니라 세계관을 밝혔기 때문에 그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주체사상을 기점으로 철학의 근본문제가 완전히 달라졌다. 철학의 근본문제가 물질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사상은 어떻게 해서 이전 철학과 다르게 철학의 근본문제에 사람을 둘 수 있었을까?
2. 철학의 목적과 사명
주체사상은 철학의 사명을 “사람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김일성 주석은 1981년 10월 8일 가나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주체사상은 사람 위주의 철학입니다. 이것은 주체사상이 사람을 철학적 고찰의 중심에 놓으며 사람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하는 철학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했다.
과거 많은 철학자는 철학의 목적을 세계의 본질을 밝히는 것으로 여겼다.
먼 과거로 가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세계 만물이 흙, 물, 공기, 불로 이뤄져 있다는 4원소설을 주창했다. 관념론은 정신이 본질이고 물질은 형식에 불과하다고 본다. 종교는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본다. 저마다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 한 것이다. 이런 세계관에서 사람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사람도 다른 만물과 마찬가지로 4원소의 조합이거나 정신세계의 반영이거나 신의 피조물에 불과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세계는 물질로 이뤄졌다는 유물론을 주장했다. 사람도 물질의 한 종류로 여겼다.
북한은 세계가 물질로 이뤄져 있다는 것만으로는 사람의 운명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불충분하다고 본다. 세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운명 개척의 길을 알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철학이 세계와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 주장에 따르면 기존 철학자들은 인간 운명 개척이라는 철학의 목적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세계의 본질 규명이라는 수단에만 매달린 꼴인 것이다.
주체사상은 철학의 사명을 사람의 운명을 개척할 길을 밝히는 것으로 보았다. 사람 운명 개척의 길을 밝히려다 보니 철학이 풀어야 할 근본문제도 사람을 중심으로 설정하게 됐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지위, 위치, 분수를 알아야 한다. 사람은 일상생활에서도 자기 분수를 모르면 실패한다. 자기가 지금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를 알고, 무엇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나에게 맞게 변화,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한다. 사람이 운명을 개척하려면 자기의 지위와 역할이 어떤지 밝히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정대일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실장은 “주체사상이 제기한 철학의 근본문제는 사람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는 것을 철학의 사명이라고 규정한 것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의 운명 문제 해명을 철학의 사명이라고 규정하였기에,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주의 철학과는 달리 철학의 근본문제를 사람을 중심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정대일, ‘주체사상, 맑스주의를 딛고 일어서다’, 통일시대연구원, 2020.12.03.
종합하면 주체사상은 철학의 사명을 이전 철학과 달리 ‘인간의 운명 문제에 해답을 주는 것’으로 설정하였기에, 이전 철학과는 다른 근본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그 결과 주체사상이 완전히 새로운 독창적인 철학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3. 북한에서 주장하는 철학의 목적, 사명, 근본문제의 타당성
북한은 주체사상이 밝힌 철학의 목적, 사명, 근본문제를 가장 과학적으로 설정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주체사상이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백과사전적인 사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객관성과 타당성을 갖췄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북한은 두 가지 근거를 내세운다.
첫째로, 북한은 인간의 모든 활동이 자기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인간의 모든 인식활동과 실천활동의 근본목적은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 있습니다. 철학의 목적과 사명도 여기에서 예외로 될 수는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람이 하는 모든 활동은 잘살기 위한 것이다. 즉, 인간은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한다. 그러니 북한은 인간 운명 개척을 철학의 사명으로 삼는 것이 보편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북한은 주체사상이 밝힌 철학의 목적, 사명, 근본문제가 지금의 자주시대에 더 잘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자주시대란 북한이 하는 표현으로 ‘인민대중’의 시대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전 시대에는 사람의 힘이 미약했다고 말한다. 사람이 자연을 충분히 다스리지 못했고 문화적 수준도 낮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세계와 사람의 운명이 초자연적인 힘에 지배된다는 신비주의, 사람은 주어진 운명에 순종해야 한다는 숙명론에 빠지기도 했다.
북한은 지금은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한 자주시대라고 말한다. 그래서 주체사상이 제시한 철학의 목적과 사명, 근본문제가 자주시대의 요구를 가장 정확히 반영했다고 주장한다.
잠깐 한국 사회 현실을 살펴보자.
과거 한국 국민은 정치인을 좇아 정치적 견해를 바꾸는 일이 왕왕 있었다.
예를 들어 부산·경남에 기반을 두고 민주화운동을 하던 통일민주당 김영삼이 1990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했다. 이때 1979년 부마항쟁을 일으키며 강경하게 투쟁하던 부산·경남 지역 국민은 김영삼을 따라 보수로 돌아섰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김영삼이 어떻게 군사독재 일당과 야합할 수 있냐며 분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1992년 총선 때 3당 합당으로 태어난 민주자유당이 부산·경남 지역 39석 중 31석을 가져갔다. 1988년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23석, 민주정의당 13석을 얻어 민주진영이 압승했던 것이 완전히 뒤집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 이번 대선에서 국힘당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 의뢰로 에이스리서치가 2월 27~28일에 한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 후보 사퇴 시 안철수 후보 지지자 중 36%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해당 여론조사에서 각 후보의 지지율은 이재명 후보 43.7%, 윤석열 후보 44.6%, 안철수 후보 7.4%였다. 이를 단순히 계산하면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합은 50%를 넘어 이재명 후보를 압도한다. 그러나 실제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48.56%, 이재명 후보가 47.83%를 얻어 박빙의 결과가 나왔다. 안철수 후보 지지자의 표가 모두 윤석열 후보로 흡수된 건 아니라는 걸 추정케 해준다. 과거와 달리 이제 국민은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현재 민주당 앞에서는 매일 민주당을 개혁하자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선거에서 진 이유는 개혁을 회피한 민주당 때문”이라며 민주당이 조속히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 개혁조치를 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이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요구하는 개혁을 실천하라고 정치인을 압박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한국 국민의 주인성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더는 국민이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시대가 아니다. 아마 이런 게 북한이 말하는 자주시대의 개념과 비슷한 것 아닌가 싶다.
북한은 지금이 자주시대며 따라서 모든 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철학도 사람 중심의 목적과 사명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4. 결론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는 2020년 2월 17일 한겨레에 “북한은 한마디로 ‘주체사상의 나라’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주체사상을 모르면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제시한 철학의 목적과 사명을 이해하면 주체사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왜 이전 철학과 다른 근본문제를 제시했는지, 무슨 근거로 가장 우월하고 과학적으로 근본문제를 설정했다고 주장하는지 파악하는 데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