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2년 03월 02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167]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본 교훈
1. 전황
1) 곧 러시아 승리로 종결될 듯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2월 24일 러시아군이 진격하기 시작해 현재 주요 도시를 포위한 상태다. 전황이 워낙 압도적이라 곧 러시아의 승리로 전쟁이 종결될 듯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개시 하루 만인 2월 25일 “러시아가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에 대해서도 대화할 수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고 2월 28일 첫 회담이 이뤄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스스로 말했듯 중립국화 논의에 나선 것은 러시아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월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를 핀란드화하자고 제안했다. 핀란드는 1948년 소련의 침공을 받지 않는 대신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체결해 중립국이 되었다. 러시아는 제안을 긍정하며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법적으로 보장해 줄 것을 서방에 요구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요구를 받지 않았다. 2월 14일 우크라이나 주영국대사가 BBC 인터뷰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 나토 가입을 포기할 수 있다고 발언한 일이 있었다. 러시아는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모처럼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훈풍이 불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해당 발언을 부인하며 나토 가입 강행 의사를 고수했다.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밀어붙이고 러시아는 이를 반대하면서 일어났다. 그러므로 우크라이나가 중립국화 논의를 받아들인 것은 러시아가 승기를 잡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회담이 러시아가 요구하고 우크라이나는 반대했던 벨라루스에서 열린 것도 러시아가 상황을 주도함을 보여준다.
2) 우크라이나가 이기고 있다?
언론을 보면 마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이기고 있는 듯한 보도가 쏟아진다. 일례로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전쟁 이틀째인 2월 25일 “전투 과정에서 러시아 군인 2,800명이 숨지고 러시아 탱크 80대와 장갑차량 516대, 전투기 10대, 헬기 7대도 파괴됐다”라고 주장했다. 약 9년에 걸친 이라크전에서 미군 사망자가 4,500명 수준이라는 걸 고려하면 엄청난 피해이다.
그러나 이는 우크라이나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우리는 직접 전황을 보지 못하니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장을 시인하거나 중립적인 제3자도 같은 주장을 해야 비로소 검증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군인 2,800명을 사살했다는 그날, 러시아 국방부는 군 지휘소와 통신소, 미사일 기지, 레이더 기지 등 우크라이나 군사시설 211곳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호스토멜 공항을 장악했다면서 이날 우크라이나 군인 200명 이상이 사망했고 러시아군 희생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누구의 주장이 사실일까? 24-25일 러시아 기갑부대는 전쟁 발발 10시간 만에 키예프 30km 지점까지 진출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2,800명씩 사살할 정도로 우세하면 거두기 힘든 전과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발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3) 거센 저항으로 러시아군을 저지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거세게 저항해서 26~28일 러시아군의 수도 진입을 막아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른 것 같다.
러시아군은 현재 키예프 점령을 시도하지 않는 듯하다. 현재 인터넷으로 키예프 곳곳을 생중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수도에 진입을 시도하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국방부도 현재 우크라이나 도시를 공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수도로 진입하지 않는 건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2월 25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중립국화 논의를 수용하며 협상에 나서겠다고 하자 기대감을 드러내며 진격을 일시 중단시켰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장소를 트집 잡아 회담이 성사되지 않자 2월 26일 오후 진격 재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우크라이나가 태도를 바꿔 회담 장소 합의에 성공했고 2월 28일 첫 회담이 열렸다. 그래서 러시아의 수도 진입이 아직 유예되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는 키예프를 점령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하고 전쟁을 끝낼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마치 치열한 교전 끝에 러시아군을 격퇴하여 수도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4) 범람하는 가짜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거짓말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SNS에 한 조종사 사진을 올리며 혼자서 러시아 전투기 6기를 격추했다고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이 영웅담을 가장 처음 SNS에 올린 사람이 ‘이런 상황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적은 거짓말이라고 실토하면서 진실이 밝혀졌다.
또한 흑해에 있는 지미니섬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 13명이 ‘결사항전’ 끝에 전원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목숨을 바친 모든 이들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란다”라며 최고 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미니섬 국경수비대원이 전원 항복해서 생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러시아 언론은 포로가 살아서 이송되는 장면을 영상으로 보도했다. 포로들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기도 한다.*
*영상링크 : https://youtu.be/0vZb0XClSuw
영국 BBC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를 폭격해 민가를 부쉈다며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 집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하려는 도네츠크 지역에 있는 집이며, 이 집을 폭격한 건 우크라이나군이라고 반박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집주소까지 자세히 공개했는데, 구글 지도로 확인하면 그 주소가 맞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바실리 네벤자 러시아 유엔 대사는 2월 28일 러시아의 행동이 왜곡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가짜뉴스가 120만 건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가짜뉴스를 퍼트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인되지 않은 뉴스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5) 초유의 전쟁
러시아는 폭격과 동시에 지상군을 투입해 개전 10시간 만에 수도를 포함한 주요 도시를 포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제공권을 장악했으며 3월 1일 현재 1,325개의 우크라이나 군사시설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아시아경제는 2월 27일 “개전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공군이 제공권을 상실하고 주요 방공망 시설이 대부분 파괴”됐다며 러시아군의 다각적인 전략을 모두 방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에서 전쟁 시작 후 48시간 동안 폭격을 퍼부은 후 지상군을 투입했다. 미 지상군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진입한 건 3주가 다 되어서였다. 1991년 걸프전에서는 미군이 5주 동안 폭격한 뒤에 지상군을 투입한 바 있다. 언론은 걸프전에 비해 이라크전의 전쟁수행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며 ‘속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라크의 면적은 우크라이나의 2/3 정도다. 그리고 미국이 이라크 대통령궁까지 샅샅이 사찰해서 이라크군의 실태가 모두 공개된 상태였다. 특히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 걸프전 등으로 연속해서 전쟁을 했고 오랜 제재를 받아 피폐한 상태였다. 이와 비교해보면 우크라이나는 이라크에 비해 더 버거운 상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러시아는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의 수도를 포위하고 이틀 만에 상대방을 협상장으로 끌어냈다. 초유의 속도로 진행된 초유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2. 교훈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어떤 교훈을 찾을 수 있을까?
1) 허세는 금물
첫 번째 교훈은 허세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허세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 특히 적대적 관계에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복잡하게 만든다.
미국과 나토 그리고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허세를 부렸다.
미국은 작년 6~7월 반러시아 연합훈련 ‘시 브리즈 21’을 벌였다. 2020년 9개국에서 2021년 32개국으로 규모를 대폭 확대했다. 한국은 불참했지만, 미국이 발표한 자료에 한국도 참가한다고 기재되어 있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올해 초에도 나토가 해상훈련 ‘넵튠 스트라이크 22’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군사행동으로 러시아를 압박했다.
이 훈련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 나토를 비롯한 서방세계가 총 대응할 것임을 암시하는 훈련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강행하기 위해 러시아의 간섭을 군사력으로 끊어내려는 의도도 있다.
그러나 정작 전쟁이 나니까 아무도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과 나토는 참전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강조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러시아를 조금이라도 더 압박하려면 참전 여부를 비공개로 해야 할 것 같은데, 굳이 군대를 보내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건 러시아 눈치를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동안의 군사훈련은 다 허세였던 것이다.
지금 미국과 서방세계는 러시아를 경제제재한다고 말하는데, 실상 제재로 피해를 받는 건 서방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유럽과의 갈등 고조로 유럽에 공급하는 천연가스를 줄였다. 그러자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2021년 초 1메가와트시당 17유로에서 12월 180유로로 10배 넘게 치솟았다. 헝가리 총리는 경제 피해를 우려해 이번 전쟁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2월 1일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규모를 늘려달라고 호소했다.
서방세계는 전쟁이 발발하자 대러 경제제재를 발표했지만 천연가스 수출 제한은 제외됐다. 아모스 호치스타인 미 국무부 에너지 안보 선임보좌관은 2월 25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에너지 제재는) 러시아는 고통을 받지 않지만 미국과 동맹국은 고통을 받게 된다”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들은 “석유와 가스가 핵심인데. 이러니 제재에 약발이 통하겠나”, “뭐 하자는 거냐. 러시아 완승이네”*같은 반응을 보이며 비웃는다.
*다음포털, 연합뉴스, 2022.02.26., [우크라 침공] 美 "러시아 원유는 제재대상서 제외"
전쟁이 났는데 군대는 안 보내고 제재를 해도 정작 피해를 보는 건 자신이니, 결국 모든 게 다 허풍인 셈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불이 났는데 강 건너에서 소리만 지를 뿐 정작 불을 끄러 가지는 않는 꼴이다.
미국의 허세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중 대결에서 아직도 미국이 핵무기로 공격하면 중국을 금세 제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북미 대결도 비슷하다. 윤석열 국힘당 대선 후보는 2월 25일 TV토론에서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북한을 공격하면 이길 것처럼 말했다.
그 외에도 한국은 K9 자주포, 에이태킴스, 현무 미사일이 북한 무기를 압도한다고 선전하기도 한다.
한국 정부는 2021년 9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해 시험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며 세계 7번째 SLBM 보유국이 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논란이 됐다. 북한이 먼저 SLBM을 개발하며 7번째 보유국이 된 지 오래지만, 이 사실을 한국 정부가 무시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북한은 바지선에서만 SLBM을 발사했고 잠수함에서 발사하지 않아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허세는 북한을 자극할 뿐 도움 되는 게 없다. 한국 정부가 인정하지 않으면 북한이 만든 SLBM이 없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현실은 냉엄하다. 특히 군사는 철저히 힘 대 힘의 대결이기 때문에 기분파로 행동해선 절대로 안 된다.
그렇게 보면 윤석열 후보의 선제타격, 사드 추가 배치 주장은 허세 중의 허세다.
윤석열 후보는 수도권을 방어하기 위해서 사드를 추가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사드가 실전 능력이 없다는 건 곳곳에서 확인된다.
미국의 군사전문매체 디펜스는 2022년 1월 22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사드가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됐다고 보도했다. UAE는 “미사일 일부는 무력화했지만, 나머지는 막아내지 못해 무고한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라고 발표했다. 미사일을 발사한 후티 반군은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드론 공격을 감행했는데 그중 탄도미사일 1발을 요격했다고 한다. 사드는 만능 방패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선제타격론도 문제가 심각하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2월 23일 “선제타격을 통해 (북한의 공격능력을) 일거에 무력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제타격이 오히려 핵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선제타격하면 북한이 반드시 반격할 텐데, 북한의 반격을 모두 방어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윤석열 후보의 선제타격론은 온 국민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는 대단히 위험천만한 주장이다. 이러니 허세, 허풍을 절대로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2) 국익 우선의 현실적 외교
국제관계에서는 국익을 우선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외교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자.
갈등의 쟁점은 나토 가입 여부였다. 우크라이나는 1990년 어떤 군사동맹에도 참여하지 않는 항구적 중립국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 친미정권이 들어서면서 나토 가입을 시도했다. 나토는 러시아와의 갈등을 폭발시키지 않으려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승인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2019년 개헌으로 나토 가입을 국가 주요 목표로 못을 박았고 2021년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나토 가입을 요청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이겠다는 취지의 ‘열린 문(Open door)’ 정책을 표방했다. 또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원조를 지속했다.
러시아의 반발은 예정된 것이었다. 러시아는 1990년 미국이 독일 통일 과정에서 안보 불안을 우려하는 소련에 “나토는 1인치도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라고 한 약속을 어겼다고 반발했다. 또한 1997년에 체결한 ‘나토-러시아 관계정립조례’에는 “현 상태, 혹은 예견 가능한 안보 상황에서 상당 규모의 전투 부대를 ‘현 경계선’을 넘어 추가로 영구 주둔시키지 않겠다”라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계속 추진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했어야 했다.
러시아가 실력행사에 나서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2008년 친미성향의 조지아 정부가 친러를 표방하며 분리독립하려는 남오세티야를 침공한 일이 있었다. 이때도 미국이 조지아 편을 들며 러시아를 견제했지만, 러시아는 주저 없이 조지아와 전면전을 벌였다. 2014년에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의 주민이 국민투표로 러시아에 편입할 것을 결정하자 러시아는 거침없이 군대를 투입해 자국 영토로 합병시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서 직접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2월 2일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크림반도를 공격하면 러시아는 나토와 싸울 수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2월 21일에도 “적대 행위를 즉각적으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앞으로 일어날 유혈 사태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우크라이나 정권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어느 모로 보나 실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여기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와 싸워 이길 수 있는지 따져봤어야 한다.
푸틴 대통령 집권 후 러시아는 군사력을 꾸준히 강화해왔다. 러시아는 핵무기와 ICBM 같은 전략무기 분야는 물론 첨단무기 분야에서도 극초음속미사일, 핵추진순항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세계 최선두에 서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월 1일 러시아군을 매우 숙련된 상태이며, 미국과 나토를 파괴할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군사력이 러시아에 밀린다는 건 분명하다. 전쟁 발발 시 미국이 도와줄 수도 있겠지만, 실상 미국은 아프간에서도 밀리는 처지이다. 과거에도 미국은 러시아와 충돌이 벌어졌을 때 번번이 후퇴했다.
2008년 조지아 전쟁 당시 조지아 정부가 남오세티야를 공격하면서 믿고 있던 건 미국이었다. 미국은 2008년 7월에도 조지아 현지에 미군을 두고 조지아군과 합동군사훈련을 했다. 그러나 정작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발을 빼고 침묵했다. 미국은 비겁했다. 전쟁은 5일 만에 조지아가 항복하면서 러시아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래도 그때는 미국이 러시아가 조지아를 공격하면 군사대응하겠다는 말이라도 했다. 구호품을 전달하는 것뿐이었지만 군함을 파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자기는 참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만큼 미국이 쇠퇴한 것이다.
이외에도 미군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징후는 많다.
미군의 전투태세는 갈수록 낮아진다. 2020년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조사 결과 ‘당장이라도 싸우면 이길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답한 미군은 14%에 불과했다. 2021년 10월 미국 정책연구소 헤리티지재단은 전투 부대의 58%만이 높은 전술적 대비 태세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2020년보다 16% 떨어졌다.
미군 내에서 자살하는 사람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미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미군 자살자는 580명으로 2019년보다 15% 증가했다.
미군 병사의 질도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미국의 입대 가능한 청년 중 71%가 범죄, 비만, 학력 미비로 입대에 부적합한 상태이다. 상황이 이러자 올해 1월 7일 미국 켄터키주 지방법원에서는 여성 재소자를 성폭행한 군인 출신 교도관에게 앞으로 한 달 이내에 재입대하면 집행유예 처분을 내리겠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혼자서는 물론이고 미국이 참전해도 러시아를 이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현실적으로 판단해서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할 방법을 찾았어야 한다. 나토에 가입하면서도 전쟁을 피할 방법을 강구해보고, 정 방안이 없으면 타협안을 모색했어야 한다. 중립화를 통한 안전보장 방안도 진작 검토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전쟁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나토 가입만을 고집했다. 국익 우선의 실용외교를 하지 않았다. 왜일까? 우크라이나 정부가 현실성, 실용성을 외면하게 된 건 친미·반러라는 이념논리, 진영논리에 빠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패권적 욕망에 몰두해 실현 가능성은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미국 중심의 패권 체제에 편입되기 위해 나토 가입을 밀어붙였다.
사실 미국과 나토는 2000년대 초반 러시아가 약했을 때만 해도 거리낌 없이 동진했다. 1999년 헝가리, 폴란드 등에 이어 2004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같은 러시아 접경국가까지 나토에 끌어들였다. 그런데 지금은 러시아가 강해졌는데도 옛날과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했으니 사달이 난 것이다.
우리 역사 속 병자호란이 꼭 이런 사례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만 추종하고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배척하다 청나라의 침략을 받고 패배했다. 인조는 청나라 태종에게 세 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 부근 나루터가 바로 그 굴욕의 장소다. 서울 롯데월드가 있는 석촌호수 근처에 삼전도비가 있다. 극단적인 이념에 사로잡혀 현실 인식을 못 한 점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비슷하다.
지금도 인조 같은 세력이 있다. 윤석열 후보가 대표적이다. 윤석열 후보는 미국과 일본에 빌붙으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사드를 추가 배치하고 미국에 핵공유를 요구하며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진출하게 해주겠다는 얼빠진 소리를 한다.
윤석열 후보 주장대로 했다간 북한과 중국의 반발을 사고 한국은 전쟁의 참화에 휩싸일 게 뻔하다. 윤석열 후보는 전쟁이 날 게 뻔한데도 나토 가입을 밀어붙인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다를 게 없다. 변화된 현실은 모르고 고장 난 레코드처럼 구태의연한 친미이념에 사로잡혀 미국 패권만 추종하다가 한국을 제2의 우크라이나로 만들 것이다.
만약 우크라이나 정권이 현실을 직시하고 타협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크라이나는 무리하게 나토 가입을 밀어붙이지 않고 중립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나토군을 주둔시킬 수는 없겠지만, 대신 친미정권을 공고히 유지했을 것이다.
원래 우크라이나에는 친러 정권이 있었는데 서방이 개입해 친미정권으로 뒤집었다. 미국은 힘이 없으면 타협해서 친미정권이라도 유지했어야 하는데, 이번 전쟁으로 그마저 잃게 생겼다.
3) 공존, 공리, 공영의 국제질서를 구축해야
우크라이나 전쟁은 앞으로 국제관계에서 다른 나라를 괴롭혀선 안 되고 공존, 공리, 공영을 국제질서의 기본으로 삼고 외교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미국은 자기 패권을 위해 다른 나라를 압박해왔다. 1997년 나토-러시아 관계정립조례에서 나토 동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서로 위협하지 않고 공존하자는 약속이다. 그런데 그걸 나토가 깨고 동진했다. 러시아는 궁지로 몰리게 됐다. 나토가 협정을 지켰으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옛날에는 미국의 강권이 통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개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은 유엔에서 이라크전을 승인받지 못했다. 프랑스, 독일 같은 친미국가도 반대했다. 하지만 미국은 독단으로 이라크전을 강행했다. 이라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전세계적으로 미국 비판 여론이 거셌다. 당시 임종석 의원도 한국 정부가 이라크전에 파병하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세계 각국이 이라크전에 참전했고 미국 비판도 잦아들었다. 그 정도로 미국의 패권이 국제질서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야수 같은, 정글 같은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봐도 러시아가 강하다. 미국은 참전조차 못 한다.
중국에서도 미국의 강권이 안 먹힌다. 2021년 7월 26일 존 하이튼 미국 합동참모차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대만을 배경으로 미-중 모의전쟁을 하면 중국이 미국을 쉽게 이긴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미국의 힘은 북한을 상대로도 안 먹힌다.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발사만 해도 기겁한다. 1월 11일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을 시험발사했을 때 미국은 미 본토로 날아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15분간 서부지역 공항의 비행기 이륙을 금지했다. 1월 16~19일 미 폭스뉴스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안보 위협으로 북한 미사일 발사가 꼽혔다.
이제 힘으로 상대를 괴롭히고 횡포를 부리는 시대는 끝났다. 공존, 공리, 공영을 추구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가 요구한 것도 공존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반러시아를 하지 말고 나토도 서로 합의한 규칙을 지키면 자기도 공격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서로 적대하지 말고 공존하자는 것이다.
지금도 러시아는 협상이 시작되자 진격을 멈췄다. 전쟁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건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결정이다. 공존 주장이 단지 명분 쌓기에 불과했다면 러시아군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진격했을 것이다.
대만을 두고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 맺은 합의가 있다. 1979년 수교를 맺으며 미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중국과의 합의를 깨고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행보를 점점 강화하고 있다. 대만에 무기를 수출하고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등 군사교류도 늘리고 있다. 미국이 공존하기로 한 합의를 깨니 군사 긴장이 고조된다.
북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북미는 4.27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6.12싱가포르공동성명에서 공존, 공리, 공영을 약속했다. 이 합의들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것 없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존질서의 틀을 만들었다.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런데 이 합의를 누가 깨고 있나.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을 지속하고 있다.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하며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또한 미국은 북한이 관계 개선을 촉진하기 위해 핵시험 및 ICBM 발사 유예, 핵시험장 폐기 같은 선제조치를 했지만, 그 어떤 상응조치도 하지 않고 북한의 양보만 강요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제재 해제 대 영변핵시설 폐기라는 일방적으로 미국에 유리한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미국이 걷어찼다. 그리고 미국은 대북제재를 연장하고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북한에 대한 적대행위를 지속했다.
미국은 북한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2월 27일 북한은 인공위성을 개발하기 위해 촬영체계를 점검하는 시험을 했다. 로켓으로 촬영체계를 우주공간에 쏘아 올려 잘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북한의 우주개발 행위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규탄했다. 이러니 북미합의는 유지될 수가 없었다.
한국도 한미연합훈련에 동참하며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금지한 판문점선언을 위반했다. 군사적 신뢰를 쌓고 평화체제를 구축하자고 했지만, 미국산 첨단무기를 대거 사들이면서 군사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렇게 한반도에서 남북미 합의가 지켜지지 않아 공존 질서가 깨지며 전쟁위기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세계 곳곳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미국이 상호 합의된 규칙을 하나하나 깨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면 안 된다. 상대를 못살게 괴롭히는 약육강식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는 걸 알아야 한다.
국민 속에서도 시대에 따른 변화가 관측되고 있다. 일례로 이제는 연예인, 체육인 등 유명인은 학교폭력 전력이 드러나면 유명인으로서의 경력이 끝난다. 배구선수로 인기를 끈 이재영-이다영 사건만 봐도 그렇다. 옛날엔 학교폭력이 별로 문제가 안 됐다. 스포츠계, 연예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군대식 선후배 문화가 만연해 폭력이 흔하게 일어났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그러자 십수 년 전 일도 터져 나온다. 옛날 일이어도 언젠간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정서가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에서도 공존, 공리, 공영의 질서가 구축되어야 한다. 대선도 공존, 공리, 공영이 이기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4.27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실질적으로 실천할 투철한 의지가 있는 정치세력이 성장하는 선거가 되어야 의미가 있다.
시대가 바뀐 것도 모르고 자기만 힘이 있다고 착각하며 무조건 선제타격하고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주의주장이 선거에서 이기면 남북 사이의 합의도 다 파탄 나고 한국은 우크라이나처럼 될 것이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