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12월 16일
기사 제목 : ‘그곳에 분단은 없더라’ 통일을 그리는 조선사람들의 숭고한 이야기
‘분단 너머 평화와 통일로’ 조선사람의 의미
여러분은 혹시 조선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한국에서 살아가는 대다수에게 ‘조선사람’은 평소에는 전혀 생각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말일 것이다. 하긴 대체 언제 적 조선이란 말인가. 일제의 침탈로 조선 왕조가 사라지고, 그 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돼 어느덧 70여 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난 12월 9일에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라고 제목을 단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I AM FROM CHOSUN>으로 ‘나는 조선에서 왔다’는 뜻이다. 또 <私はチョソンサラムです-와타시와 조손사라무데스->라는 일본어 제목에서 ‘조손사라무’는 조선사람을 일본식 발음 그대로 읽은 것이다. 이쯤 되면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함이 일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조선사람은 어떤 의미일까?
‘조센징(朝鮮人)’이 일제가 우리 민족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표현이라면, 조선사람은 일본 사회의 온갖 차별과 탄압에도 민족의 얼을 올곧이 지켜온 우리 겨레의 숭고함과 존엄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언뜻 조선사람은 조센징과 뜻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 울림은 완전히 다르다.
동포들은 일제강점기였던 남북 분단 이전, 본래 하나인 조선 땅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삶을 일궜다. 그렇기에 동포들을 제대로 마주하려면 남과 북을 가르지 않는 하나의 잣대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야말로 재일동포의 역사를 상징하는 정말 탁월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대학생이던 2002년 10월, 금강산에서 처음 재일동포들을 만난 김철민 감독의 시선을 따라 진행된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을 계기로 수백 명이 넘는 남북·일본의 청년·학생들이 함께 금강산에 모인 자리였다. 이 만남은 김철민 감독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후 김철민 감독은 수시로 일본을 찾았고 동포들을 형, 누나, 동생이라고 부르며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영화는 동포들의 모습을 18년 동안 차곡차곡 카메라에 담아낸 귀한 기록의 '일부'다.
김철민 감독이 재일동포들에게 운명처럼 이끌린 또 하나의 이유는, 어쩌면 남북 분단에도 일본과 북한을 오가며 통일을 그리는 동포들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인지도 모른다. 김철민 감독은 전작인 <걸음의 이유>, <불안한 외출>에서 분단의 모순, 사람의 생각과 일상을 검열하는 국가보안법의 부조리함을 강하게 고발했다. 김철민 감독이 세 번째 작품에서 분단을 넘어 통일을 그리는 조선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조선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온 동포들의 삶을 엮은 영화다. 카메라는 동포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향한다. 도쿄와 오사카를 비롯한 일본 곳곳부터, 남녘의 서울과 평창, 북녘의 금강산까지 한반도와 일본열도 곳곳을 두루두루 비춘다. 영화는 총 4장으로 전개된다. 1장 ‘재일조선인’, 2장 ‘나를 찾아서’, 3장 ‘두 개의 조국’, 4장 ‘조선사람으로 살기 위해’ 순이다. 한반도의 분단에 따른 시련 속, 조선사람으로서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온 동포들의 모습을 담았다.
영화에는 여러 동포들이 나온다. 강종헌, 김창오, 박금숙, 서원수, 부만수, 이철, 이동석, 강륭세 등이다. 나이와 성별, 자란 배경은 저마다 다르다. 자신과 똑같이 조선학교를 다니는 아이의 부모가 된 엄마도, 조선학교를 나와서 한국 국적으로 활동하는 평화·통일운동가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재일동포 1세대가 거주해온 우토로 마을을 지키는 젊은 동포 활동가, 1970년대에 한국에서 유학할 당시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던 조작 사건의 피해자도 있다. 이처럼 영화에서 나오는 동포들의 배경은 조금씩 차이는 있다. 다만 모두 하나의 가지에서 뻗어 나온, 조선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온 한 겨레라는 점은 분명하다.
영화에서 재특회로 대표되는 일본 극우세력은 우리 동포 학생들을 조센징, 고키부리(바퀴벌레)라고 욕하며 대놓고 멸시한다. ‘조센징을 일본에서 살게 해주는 것 자체가 특혜이므로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해괴한 억지 논리를 편다. 역사의 진실은 이와는 정반대다. 재일동포들은 일본인과 똑같이 세금을 내면서도 선거권은 없고, 조선학교 학생들은 일본 정부의 그 어떤 재정 지원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선이름을 쓰는 조선적 동포들을 향한 취업 차별은 기본이다. 한마디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에게 가해진 차별과 탄압은 일본에서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기에 동포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하나 된 통일조국을 간절히 염원한다. 언젠가 남북이 함께 뭉친 통일조국이 등장하면 일본 사회의 차별과 혐오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조선사람의 정체성’을 지키며 산다는 것
“일본은 차별하고 한국은 외면했지만, 단 한 번도 조국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 당신은 누구인가요? 어디에서 왔나요?”
-다큐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
자기 의지를 가진 사람은 눈앞의 모순과 부조리를 뚫어내는 과정을 거치며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재일동포 1세로서 일제강점기를 고스란히 겪은 서원수 선생의 삶이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서원수 선생은 서울로 건너와 당시로서는 ‘꿈의 직장’인 조선총독부에 일본인 이름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가 동포들을 탄압하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조선인임을 자각, 독립운동에 나선다. 그 결과는 ‘감옥행’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서원수 선생은 영화 속 화면에서 이러한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노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렇듯 서원수 선생은 조선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은 사례다. 하지만 서원수 선생과는 완전히 다른 사례도 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경복궁 박물관에서 만난 사람’을 떠올렸다. 대학에 다닐 적, 경복궁 박물관에 온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라고 설문지를 건네며 물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한 남성에게서 정말 뜻밖의 답변을 받았다. “내 뿌리는 조선일지도 모른다”라고. 나중에서야 왜 이렇게 답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분은 이미 떠난 뒤였다.
내가 경복궁에서 만난 남성은 적어도 40대 중반은 훌쩍 넘어 보이는 분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뿌리일지도 모를 반쪽 조국, 한국을 그리며 일부러 경복궁을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일본에는 모진 차별과 탄압을 피하려 조선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일본인처럼 살아가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경복궁에서 만난 남성은 어린 시절부터 평생토록 자신의 진정한 뿌리가 어디인지 진실을 무척 알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사람임을 쉬쉬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끝내 답을 듣지 못한 채, 자신의 이런 답답한 속내를 혼자서 가슴 깊은 곳에 애써 묻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서원수 선생을 비롯한 영화 속 동포들은 ‘내가 경복궁에서 만난 사람’과는 대비된다. 집단 속에서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서로 배우고 익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우리는 조선사람’임을 끝없이 마주하고 되새기기 때문이다. 모진 차별과 탄압에도 동포들이 굽힘 없이 조선사람으로서 당차게 살 수 있는 비결이다.
영화에는 내가 예전에 일본을 찾았을 때 만난 반가운 얼굴도 눈에 띄었다. 내 물음에 “바이트(알바)하면서 활동하고 있다”라고 한 청년 동포다. 이 동포는 따로 취업을 하는 대신 통일운동과 알바를 병행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조선학교 교사들도 있다. 이들은 누가 봐도 힘들 상황에서 밝게 웃으며 묵묵히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조선사람의 정체성을 후대로 이어가겠다는 헌신과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에서 김창오 선생은 “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통일이 되면 큰 은혜를 받을 사람들”이라고 재일동포를 표현했다. 이렇게 말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한국 국적인 김창오 선생은 한때 한국 입국을 거부당했다. 일본에서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해왔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창오 선생은 이와 관련해 “사랑할수록 멀어지는 조국”이라고 말했다. 김창오 선생은 한국으로 오고 싶어 숱하게 입국 요청을 했지만, 정작 1990년 범민족대회를 계기로 방북 제안이 온 북쪽 조국(북한)을 먼저 찾게 됐다고 한다. 남녘땅만 조국이라고 생각해왔던 김창오 선생은 평양에 와서야 비로소 마음속에 ‘분단의 벽’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야말로 분단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 사는 조선사람으로서 남녘과 북녘을 모두 오간 김창오 선생은 “남과 북, 한반도 전체가 나의 조국”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김창오 선생을 비롯한 동포들은 지난 2016~2017년 겨울, 일본 도쿄 오쿠보 한복판을 행진하며 일본말로 “박근혜는 퇴진하라”라고 외치며 촛불혁명에 동참했다. 이 역시 조국의 앞날을 위하는 마음에서였다.
영화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간첩으로 조작한 재일동포 피해자들도 비춘다.
“분노하되 증오하지는 않아야겠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겠다.” 이는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로 자그마치 13년 동안 한국에서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다가 석방된 강종헌 선생의 말이다. 어떻게 저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강종헌 선생의 대답은 이렇다. “남도 북도 서울도 평양도 개성도 백두산도 다 내 조국”이라는 것이다.
강종헌 선생은 영화 개봉을 맞아 한국을 직접 찾기도 했다. 지난 11월 22일, 강종헌 선생은 김철민 감독과 함께한 사전 시사회 자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게 분단 바이러스다. 여기에 필요한 통일 백신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라고 우리 모두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김창오, 강종헌 두 분 선생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는 언젠가 찾아올 통일조국에서 온겨레가 함께 할 그날을 확신하기에 우러나오는 고귀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뿌리 깊고 생명력 넘치는 나무처럼
김철민 감독은 사전 시사회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냐”라는 물음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동포들과 술 마시고 노래할 때”라고. 그러면서 감독은 “재일동포들의 삶에 누가 되지 않게 언제나 꿋꿋하게 당당하게 조선사람으로서 살아가실 동포들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강조했다. 동포들을 향한 애정과 감사가 뚝뚝 넘쳐난다. 그래서였을까. 김철민 감독은 재일동포들의 삶을 나무에 빗대 특별하게 표현했다.
사계절에 따라 모습이 바뀌는 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영화 도입부에서 가지가 앙상한 나무는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혹독한 겨울을 맞는다. 그러다 영화가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싱그럽고 초록빛이 묻어나는 울창한 아름드리 ‘나무숲’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올곧이 꿋꿋이, 그리고 우뚝하게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며 끊임없이 행복의 뿌리를 내리는 사람들. 이야말로 김철민 감독이 바라보는 조선사람들의 진면모다.
영화가 끝나면 ‘나무’를 주제로 한 동포들에게 바치는 헌정 노래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동포들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우리말로 적힌 이름들과 겹쳐 올라온다. 이 이름은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의 완성을 돕고자 삼삼오오 도움을 준 사람들이다. 영화는 하나 된 통일조국에서 조선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는 밝은 앞날을 내다보고 있는 듯하다.
분단의 모순과 비극은 한반도와 일본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일본열도를 넘어 남북·해외 8천500만 온 겨레, 모든 조선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젠가 동포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꼭 이렇게 힘껏 인사하고 싶다. “나도 조선사람입니다!”라고. 영화를 보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느끼게 되리라 확신한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