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9.

어느덧 2021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는 지난 10월 북한의 전격 호응으로 다시 연결된 남북 통신연락선을 제외하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종전선언도 감감무소식이고 남북관계도 회복되지 못했다. 이런 때이니만큼 3년 전 한반도의 봄날을 다시 돌이켜보게 된다. 

지난 2018년 남과 북은 판문점선언에서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화해, 협력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남북관계는 적대관계를 끊고 거침없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을 맞았다. 이렇게 된 결정적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 합의, 그중에서도 군사분야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의가 깨지게 된 출발점에는 남측에서 사들인 ‘미국산 첨단무기’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남북 정상 간 합의에도 아랑곳없이 북한을 위협하는 미국산 무기를 사들이는데 몰두했다. 미국산 첨단무기를 지금처럼 계속 들여오는 이상 남북관계는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미국산 첨단무기 폐해 ① 한반도 평화 위협

 

 

 

미국산 첨단무기 구매, 반입은 한마디로 우리에게 백해무익하다. 한미연합사령부, 그러니까 한국과 미국 군 당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미국산 첨단무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애초 미국산 첨단무기가 우리나라의 군사주권을 훼손하고,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조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에 따른 가장 큰 폐해는 대북적대 군사행동이 강제된다는 점이다. 미국이 한국군을 지휘하는 한미연합사령부 체계에서 북한을 적대하는 군사행동은 철저히 미국의 의도대로 전개된다. F-35A 스텔스기와 글로벌호크 같은 미국산 첨단무기는 하나 같이 대북적대 군사행동에 목적을 둔 전투기, 정찰기다.

미국산 첨단무기는 대북 선제공격과 점령 작전을 명시한 작전계획 5015, 5027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대장’으로 미국산 첨단무기 가동을 명령하는 한미연합사령부에서, 한국군은 기초 작전부터 부대 편재까지 온통 미국 위주의 대북적대 방식에 알맞게 물들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미국이 첨단무기 가동 허락을 해주길 기다리는 일 정도뿐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73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누구도 흔들지 못하게 하는 힘,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포괄적 안보역량을 키우고 있다”라며 “힘에 의한 평화, 완전한 평화를 만들어 내겠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포괄적 안보역량과 힘에 의한 평화는, 미국산 첨단무기를 활용하는 한미연합훈련을 뜻한다. 한마디로 북한을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위험천만한 인식이다.

여기에 대북적대의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이다. 지난 12월 2일, 서울에서 열린 제53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새로운 전략지침”을 승인했다고 명시됐다. 새로운 전략지침이 어떤 내용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만 각종 첨단무기를 동원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한미 양국이 북한을 더욱 적대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한미 군 당국은 SCM 공동성명 8항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보다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필요시 대응을 위한 군사작전계획에 지침을 제공할 것”이라며 북한을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추정컨대, 북한을 적대하는 첨단무기가 국내에 더 많이 반입될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산 첨단무기 폐해 ② 남북, 북미 합의 위반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 1조.

“쌍방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관할구역을 침입 또는 공격하거나 점령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 1조 1항.



앞서 살펴본 9.19 군사분야 합의 내용에서 잘 드러나듯, 첨단무기 반입과 북한을 적으로 가정한 한미연합훈련은 명백히 남북 합의 위반이다. 그러니 북한에서 아래와 같은 다소 예민하고 거친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첨단 살인장비들의 지속적인 반입은 북남 공동선언들과 북남 군사분야합의서를 정면 부정한 엄중한 도발로서 대화에 도움이 되고 있는 일은 더해가고 방해가 되는 일은 줄이기 위해 노력하자고 떠들어 대고 있는 남조선 당국자들의 위선과 이중적인 행태를 다시금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일 뿐이다.”
-지난 2019년 8월 22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한 보도 중에서.

 

 

이후 지난 9월 28일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도 “진정으로 조선(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바란다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우리를 겨냥한 합동군사연습과 각종 전략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대조선 적대시정책 포기의 첫걸음을 떼야 할 것”이라며 전략무기 투입 영구 중지를 강조했다. 이는 2년이라는 세월 동안 남측의 대북적대적 군사정책이 한 치도 바뀌지 않았음을, 북측이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북한은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을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일로 규정, 강경한 대응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금도 ‘북한 도발 억제’를 이유로 미국산 첨단무기를 끊임없이 들여오고 있다. 이러니 갈등과 대립이 끊길 수 없다. 

분명한 건 북한은 한국이나 미국을 직접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군사행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0월 12월 조선노동당 창건 76주년을 맞아 열린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 기념연설에서 “조선(북한)의 주적은 전쟁 자체이지 남조선(한국)이나 미국, 특정한 국가나 세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이 북한을 적대하는 첨단무기 반입과 한미연합훈련에 매달리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행보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자. 앞에서는 한 민족으로서 평화롭게 지내자며 약속해놓고는 금세 뒤돌아서 미국산 첨단무기라는 칼을 꽂는 상대를 북한이 믿을 수 있을까? 적어도 북한은 한반도의 적대 위기를 깰 조치로써 남북, 북미 합의를 철저히 지켜왔다. 그 대표 사례로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지 않은 지도 2년이 훌쩍 넘었다. 

반면 한국은 북한을 사정거리에 넣는 첨단무기 도입과 함께 북한 선제공격과 점령을 명시한 한미연합전쟁훈련을 꾸준히 벌여왔다. 첨단무기 도입을 비롯해 남북 합의를 어긴 건 언제나 미국의 편에 선 한국이었다.



미국산 첨단무기 폐해 ③ 예속, 의존 국방

 


미국이 깡패처럼 첨단무기를 강매하는 현 상황은, 대미 종속국방·예속국방이라고 불러야 맞을 듯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 이후 내내 강조해온 ‘자주국방’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미국산 첨단무기는 남북관계를 깨트리는 것도 모자라 한국군을 대미 종속·예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 예시로 미국은 첨단무기 운용에 필요한 기술 이전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 때문에 한국이 구매한 미국산 첨단무기의 소유권은 한국에 있지만, 조종칸에는 미군이 틀어앉아 있는 기상천외한 꼴이다.

이를테면 한국군은 미국산 전투기의 조종은 물론 심지어 나사 하나를 조이는 것도 미국의 지원과 협조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심지어 수리나 페인트칠도 미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주력함인 광개토대왕급·이순신급 구축함은 미국산 대공 미사일로 운용된다. 한국군이 미국산 첨단무기를 조작하려면 무기 운용을 도와달라고 미국에 허락을 구걸하거나, 지휘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이 수입하는 무기 중에서 미국산의 비중은 50%를 넘어선다. 국내에는 때때로 KC-330 공중급유기 등 유럽에서 개발된 무기들이 반입되기도 했지만, 그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이 한국군의 해외 무기 도입 단계에서부터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상호운용성’을 구실로 미국 무기를 강매하기 때문이다. 전시작전통제권에 이어 무기 구매권, 무기 통제권마저 미국에 넘어간 한국의 비참한 자화상이다.



미국산 첨단무기 폐해 ④ 막대한 비용

 


지난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의 군사 장비를 구매함으로써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한 적이 있다. 엄청난 주권침해이자 치욕이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별일 아닌 것처럼 쉬쉬하며 대응 자체를 삼갔다. 한국이 ‘미국의 봉’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장면이다. 이러한 미국의 횡포와 갑질은 “동맹의 가치를 존중하겠다”라고 한 바이든 정권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미국이 만든 첨단무기를 잔뜩 사들이는 ‘큰손’이다. 사실 좋게 말해 큰손이지,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전 세계로 눈을 돌려봐도 이런 ‘글로벌 호구’가 또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미국산 첨단무기를 정확히 얼마나 많이, 어떤 기종을 사들였는지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군 당국이 ‘기밀’을 이유로 관련 정보를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국방기술품질원이 내놓은 ‘2019 세계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지난 2016년~2020년 사이 기준,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미국산 무기를 많이 수입한 나라로 드러났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군이 주둔한 일본과 비교해보면 한국이 미국산 무기를 얼마나 많이 사들이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2019 세계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매 비용은 대략 62억달러로, 36억 4천만달러인 일본보다 훨씬 높다. 

2만 8천 명이 넘는 주한미군에는 세계 최대 규모 초호화 평택 험프리스 기지를 비롯한 온갖 특혜가 제공된다. 한국 정부는 여기에 더해 매해 1조 원이 넘는 방위비분담금을 미국에 퍼주고 있다. 미국의 무례한 요구를 모조리 들어주는 것도 모자라, 값비싼 무기까지 왕창 구매하는 나라는 한국 말고는 또 없다. 

2020년 한해 기준,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매 비용만 9억 1천만 700달러에 이른다. 한국은 미국에서 F-35A 스텔스 전투기 40대,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4대 등을 사들였다. F-35A나 글로벌호크는 한 대당 1,000억 원이 넘어간다. 

미국산 첨단무기의 판매 가격은 딱 정해진 기준이 없고 협상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갑’인 구조에서 미국 군수업체의 요구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미국 군수업체는 가격 협상에서 불리하다 싶으면 미국 정부에 협상 관여를 요구, 자신들이 원하는 금액을 끝까지 받아낸다고 한다. 예를 들면 미국 군수업체인 보잉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 정부에서 받아갈 돈만 12조 원이 넘는다. 

이밖에도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같은 군수업체에서 한국 정부에 팔기로 한 첨단무기를 더하면, 문재인 정부가 미국산 첨단무기에 쏟아부은 비용은 수십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 해 국방비에 버금가는 혈세가 국민의 동의도 없이 홀라당 미국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첨단무기 반입 중단, 남북 합의 이행만이 민족의 살 길



강조하건대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과 한반도의 평화는 양립할 수 없다. 한국의 군사주권과 무기체계가 미국에 볼모로 붙잡힌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의 분단과 민족 적대를 자신들의 돈벌이에 악용하는 미국의 갑질을 대체 언제까지 용인할 셈인가. 이럴 때일수록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바로 한국에서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 전면 중단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라도 판문점선언, 9.19군사분야 합의 정신의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앞에서는 평화를 말하면서 대북적대용 미국산 첨단무기를 끌어들이는 이중기준은 남북관계를 수렁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한국이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 중단을 선언, 민족자결과 민족자주의 길로 나서면 북한도 기꺼이 화답할 것이다.

이참에 한국에서 북한에 ‘동일한 수준의 요구’를 하면 어떨까. 한국에서 먼저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을 중단한 뒤, 북한에도 외국산 첨단무기를 반입하지 말자고 요구하자는 취지다. 북한은 아직 외국에서 한반도의 위기를 자극할 만한 무기를 들여오지 않았다. 다만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우방국에서 한국을 자극할 만한 무기를 들여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한국이 북한을 위협하는 미국산 첨단무기를 후방으로 물렸는데,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들여온 첨단무기를 가동하면 그 순간 평화는 허물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남북 양측이 함께 외국산 첨단무기 반입 중단을 약속하고 서로가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면 새해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적대관계가 해소된, 진정한 의미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도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적대 분위기가 해소된다면 남북 양군이 함께하는 독도수호공동훈련도 못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만 된다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평화와 번영의 새 지평이 열릴 것이다.

미국과 함께하며 민족을 적대하는 길은 절대로 답이 될 수 없다. 우리 민중, 우리 민족이 살길은 자나 깨나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한길뿐이다. 지난날 민중, 민족의 힘을 얕잡아보고 외세에 기대다가 일제에 나라가 망했던 구한말의 굴욕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국은 솔선수범해서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부터 중단해야 한다. 또 북한에도 첨단무기를 반입하지 말라는 동일한 수준의 요구를 해야 한다. 그렇게 평화, 번영, 통일의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이야말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가 사활을 걸어야 할 절체절명의 ‘마지막 임무’가 아닐까.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