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

동북아 질서의 기본축은 북미관계


​흔히 동북아 질서의 중심 행위자로 미국과 중국을 꼽는다. 미국이 자신의 경쟁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동북아에서 군사, 외교, 경제적 공격을 감행하는 게 동북아 정세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미 대결 역시 미국이 마련한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일 뿐이다. 중미관계는 동북아뿐 아니라 국제 정세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시작한 중미 무역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동북아 질서의 기본축은 어디까지나 북미관계다. 이는 본질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다. 

국제질서의 본질은 힘과 힘의 대결이며, 힘과 힘의 대결에서 가장 높은 단계는 군사적 대결이다. 외교적 대결이나 경제적 대결로 풀리지 않는 문제는 결국 군사적 대결로 해결한다. 물론 세계가 친선, 협조, 호혜, 평등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을 지배한다는 제국주의 노선이 남아있는 한 현실에서 국제질서는 엄연히 군사적 대결을 기본축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본질적 측면에서 볼 때 동북아 질서의 기본축은 중미관계가 아닌 북미관계다. 중국과 미국은 남중국해나 대만 등에서 군사적 대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대결이며 기본은 경제 대결을 하고 있다. 서로를 향해 대량의 핵미사일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적 대결은 최후의 수단으로 미뤄둔 채 경제 대결을 위주로 외교 대결(이를테면 인권논란)을 결합하고 있다. 

반면 북한과 미국은 군사적 대결이 기본이다. 미국은 핵전략무기를 대량으로 동원하여 북한을 압박해왔고, 이에 맞서 북한도 핵미사일을 개발해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대북제재 같은 경제 대결이나 인권논란 같은 외교 대결은 보조적 수단일 뿐이다. 

​물론 서로 핵미사일을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북미관계나 중미관계나 같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북한은 미국과 정전체제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국교도 맺지 않고 있고 경제관계도 없으며 기술적으로 교전 중인 관계다. 미국은 아직도 북한을 상대로 전쟁 준비를 포기하지 않았다. 북한 역시 중국과 입장이 다르다. 중국은 핵미사일이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쓸 일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유례없는 핵전쟁 위협 속에서 언제든 핵미사일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 성장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핵미사일과 비교할 수는 없다. 북한과의 대결이 미국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절박한 문제며 이 문제 해결 없이는 무역전쟁이나 다른 어떤 대결에서 이겨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본질적 측면에서 동북아 질서의 기본축은 중미관계가 아닌 북미관계다. 

현실에서도 동북아 질서는 북미관계가 좌우한다

현실에서도 이미 동북아 질서는 북미대결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국을 최우선 상대로 지목한다. 2017년 12월에 발표한 트럼프 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도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중미대결의 승리를 위해 쏟아 붓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은 그렇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머릿속에는 중국을 떠올리면서도 정작 손발은 북한을 상대하고 있다. 아마 미국은 자신들이 중국 같은 대국 대신 지구본에서 찾기도 힘든 북한을 최우선 대상으로 놓고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2016년 11월 22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바마 행정부가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에 미국 국가 안보 최우선 순위로 중국이 아닌 북한 문제를 꼽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중국과의 경제 대결로 인해 시진핑 주석이 대북제재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것을 우려했다. 중미대결을 위해 북한 문제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북미대결을 위해 중국 문제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대결의 승리를 위해 중국을 끌어들였다. 2017년 4월 1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번복한 이유를 묻자 “중국이 북한이라는 더 큰 문제를 풀기 위해 협력하고 있는데 무역전쟁을 벌여야 하느냐”고 말했다. 북한 문제를 ‘더 큰 문제’라고 말하면서 무역전쟁을 큰 문제 해결의 수단 정도로 표현한 것에 주목하자. 

그런데 이 입장이 12월로 가면서 바뀐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 문제에 있어 우리를 돕지 않는다면 내가 항상 하고 싶다고 말해왔던 일들을 정말로 하게 될 것”이라며 무역전쟁을 경고했다. 이는 인터뷰 전 트위터에 올린 “중국이 북한에 석유가 흘러 들어가도록 계속 허용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실망했다”는 글에 대한 설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무역 분야에서 우리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있지만 나는 중국에 대해 관대했다. 내게 무역보다 더 중요한 유일한 것은 전쟁이기 때문”이라며 “그들이 북한 문제로 나를 돕는다면 무역 문제를 약간 다르게 봐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즉, 북핵문제라는 ‘더 중요한’ 일을 위해 무역전쟁을 미루고 있지만 중국이 대북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무역전쟁을 감행할 것이라는 경고다. 그리고 끝내 무역전쟁을 개시했다. 

​북미대결을 위해 미국이 중국을 활용하자 중국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잇속을 챙겨왔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이 제출한 대북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미국에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을 리 없다. 아마도 경제, 외교적으로 많은 이득을 챙겼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MFN: 관세인하혜택)를 매년 연장해주는 것도 관련 있을 수 있다. 원래 미국은 최혜국대우와 인권을 밀접히 연계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인권문제로 중국을 공격하면서 한편으로 최혜국대우를 인정하는 것은 모순이며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심하다. 그럼에도 1980년 이후 매년 중국에 최혜국대우를 인정하는 이유는 중국을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하려는 의도와 함께 대북정책에서 협조를 요구하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 때문에 중국에게 양보를 한다거나, 무역전쟁을 건다거나 하는 현실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해에도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핵심 동맹국들의 회합인 주요 7개국(G7) 회의를 결렬시켰다. 당시 래리 쿠드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CNN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G7회의를 결렬시켰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가 동맹 관리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처럼 현실에서 미국 정부는 북미대결을 1순위에 놓고 있다. 아무리 중국 문제가 1순위라고 표방해도 생존본능 때문인지 어느 샌가 북한 문제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 국민들도 공감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미국 언론은 중미 무역전쟁을 집중 보도했지만 정작 연말에 미국 국민이 뽑은 2018년 최고의 뉴스는 무역전쟁이 아닌 북미정상회담이었다. 무역전쟁과 핵대결 중 무엇이 더 절박하고, 어디에 국력을 쏟아 부어야 할지를 미 정부와 국민이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동북아 질서의 기본축이 북미관계라는 점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북한이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란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을 끝내고 평화와 안정, 우호협력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과거 중국은 북한과 미국을 중재하겠다며 6자 회담을 열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6자 회담 9.19 공동성명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구상을 담고 있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서 회담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반면 북한은 미국과의 담판, 북중관계의 주동적 발전을 통해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네 번째 중국 방문을 통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왔다. 이는 단순히 북미대결에서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북중관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북미정상회담 등 북미관계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이른바 ‘차이나 패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수차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 북중관계를 강화하였다. 마치 항일운동 시기 동지를 얻기 위해 수백리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북한과 미국의 동북아 구상

동북아 질서의 기본축이 북미관계라고 할 때 양국이 동북아 질서에 대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아는 게 중요하다. 

먼저 북한은 공존, 공리, 공영을 표방한다. 공존, 공리, 공영은 자국의 힘을 내세워 다른 나라들을 약탈하는 제국주의 논리와 정반대로 모든 나라가 서로 존중하고, 함께 이익을 추구하자는 논리다. 북한은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시종일관 ‘공동번영’을 강조했다.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합의했다. 

공존, 공리, 공영을 위해서는 평화와 안정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남·북, 중국, 러시아를 기본축으로 하여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고 공존, 공리, 공영을 추구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남북철도를 이으면 경의선은 중국으로, 동해선은 러시아로 연결해 남-북-중-러를 잇는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철도연결이 주요 의제로 등장하는 이유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공존, 공리, 공영의 노선을 인정하고 동참을 원하면 받아준다는 게 북한의 기본 입장이다. 다만 일본에게는 과거사 해결을 엄격히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핵폐기만 하면 경제지원을 통해 북한을 잘 살게 만들어주겠다고 이야기하며 마치 북한이 미국의 경제지원을 절실히 바라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는 미국의 망상일 뿐이다. 북한은 어디까지나 내적으로 자립경제와 자력갱생, 외적으로 공존·공리·공영을 통해 함께 번영하자는 것이며 미국도 경제위기를 벗어나고 싶으면 여기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은 동북아에서 자국의 패권을 보장하는 것을 기본 노선으로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고 여기에 호주, 인도를 끌어들여 북한, 중국, 러시아를 분열시켜 각개격파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구상은 기본적으로 서유럽 국가들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만들어 구 소련과 동유럽을 압박한 것과 유사하다. 실제로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서는 미국의 동북아 구상을 두고 ‘아시아판 나토’라고 부른다. 

​한미일 삼각동맹은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미국이 추진한 매우 오래된 개념이다. 한미일 3국을 단일한 정치군사동맹으로 묶는 지역통합전략에 따라 1952년 미일안보조약을,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미국은 한일 양국을 압박해 1965년 한일수교까지 달성했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가 풀리지 않아 한일군사동맹까지 나아가지는 못하다가 박근혜 정권 시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면서 한 걸음 나아갔다. 

​호주는 원래부터 아시아판 나토의 대상국이며 이미 미국은 호주, 뉴질랜드와 태평양안전보장조약(ANZUS)을 맺은 상태다. 인도는 최근 들어 미국, 일본이 관심을 기울이는 나라다.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을 통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식화하였고 이후 12월 발표한 미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는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대신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였다. 또 2018년 5월 31일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개칭했다. 현재 인도-태평양 전략에는 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함께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에 동참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은 이처럼 한미일을 기본으로 호주, 인도까지 끌어들여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고 북한, 중국, 러시아를 압박하고 분열시켜 친미국가, 자본주의국가로 만들려고 한다. 

대세는 북한 주도로 흐른다

북미 두 나라의 동북아 경쟁은 2017년 하반기를 거쳐 2018년에 이르러 큰 흐름에서 정리가 되고 있다. 2017년까지는 북미 두 나라가 각축을 벌이면서도 미국의 구상이 일정하게 먹히고 있었다. 한국은 촛불항쟁을 통한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추종하며 북한과 대립하였고, 중국 역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도 유엔 안보리 등에서 미국의 대북결의안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대 최강이라는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은 주변국과 공리, 공영을 추진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러다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 발사 성공과 함께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미국의 구상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이후 2018년 1월 1일 북한의 신년사 발표, 3월 북중정상회담, 4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의 경제총집중노선 발표,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주도권이 북한에게 넘어갔다. 동북아 질서의 대세를 북한이 주도하게 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방명록에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쓴 것은 이러한 대세 변화의 상징적 표현이었다. 물론 이 모든 변화의 바탕에는 북한의 핵무력 완성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대세에 발걸음을 맞추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경제의 활로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중·러와 경제협력을 통해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송영길 위원장은 북방경제야말로 앞뒤가 막힌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블루오션이라며 “동북아지역 공동 개발을 통해 호혜적인 동북아 경제협력체제를 형성함으로써 공동번영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정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서 내세운 환서해 경제벨트나 환동해 경제벨트, 동북아 경제공동체 추진 등은 이런 구상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도 북한과 손을 잡고 경제번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거물 투자자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핵전쟁을 피할 수 있다며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자로 꼽히는 짐 로저스는 아예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사실 미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북한의 동북아 구상인 공존·공리·공영의 길에 합류해야 한다. 미국의 세계 패권은 갈수록 빠르게 무너지고 있으며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와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도 미국의 피해만 급증할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장담과 달리 중미 무역전쟁으로 인해 정작 미국 기업의 피해가 더 커서 트럼프의 지지층마저 불안해하고 있다. 매일경제 2018년 11월 5일자 보도 「미일도 무역전쟁 쇼크」에 따르면 7월부터 시작한 무역전쟁으로 미국 대기업과 일본 기업 피해가 본격화하고 있으며 2019년 기업 수익률이 2~3% 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승리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일본 역시 지난해 ‘재팬 패싱’ 논란에 시달리며 어떻게든 변화하는 동북아 질서에 편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북일 극비접촉도 하였고 최근에는 외교 결례를 무릅쓰고 스웨덴에 날아가 남·북·미 실무협상장을 기웃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 군국주의화 문제 등이 풀리지 않는 이상 일본은 동북아에서 영원한 따돌림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역전 시도는 성공할 것인가

​대세가 북한 주도로 흘러간다고 해서 미국이 속수무책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미국 내에서는 대세를 뒤집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역전 시도는 북한의 대응에 밀려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준비할 수 있는 작전을 몇 가지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 지도부를 겨냥한 ‘참수작전’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방부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이야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말 제13특수임무여단 흑표부대, 이른바 ‘참수부대’의 예산을 전년 대비 30배로 증액해 제출했다. 군사주권이 미국에 있는 한국 군부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는 국방부의 독자적 판단이라기보다는 미국의 구상이 녹아들어간 움직임일 것이다. 

지난해 군산 미 공군기지에 미군의 신형 공격형 무인기 ‘그레이 이글’을 영구 상시 배치한 것도 주목된다. 미군은 중동 지역에서 테러조직 지도부를 암살하는 데 공격형 무인기를 즐겨 사용해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의 그레이 이글 배치를 두고 유사시 북한 수뇌부를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미국은 과거 세계 곳곳에서 반미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암살, 테러를 자행하였으므로 북한에 대해서도 당연히 그러한 시도를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공작을 잘 알고 있고 이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특히 지도자 보위를 모든 것에 우선하는 사회다. 지난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북한 경호원들은 평화의집 1층 로비에 설치된 테이블과 의자, 방명록에 소독약을 뿌렸으며 탐지기를 이용해 폭발물과 도청 장치 설치 여부를 탐지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방명록에 글을 남길 때도 한국 정부가 준비한 펜 대신 자체 준비한 펜을 이용했다. 얼핏 너무 예민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지만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이 쿠바 카스트로 의장을 암살하기 위해 시가에 폭발물을 내장하거나 독극물을 바르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당연한 조치다. 

​둘째, 제2의 천안함 사건을 일으켜 트럼프식 전략적 인내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천안함 사건도 초기에는 북한과 무관한 사고로 간주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북한 소행으로 몰아가더니 이를 핑계로 모든 대화를 중단하였다. 마찬가지로 우발적 사고나 조작사건을 통해 반북여론을 조성하고 이를 빌미로 북한을 압박하거나 대화를 중단할 수 있다. 베트남전의 발단이 된 통킹만 사건처럼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충격적인 사건을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에서는 어려움이 있다. 일단 북한이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곧바로 전쟁에 돌입할 수 있기에 미국 입장에서 이런 시도는 매우 부담되는 위험천만한 작전이다. 한국 정부도 미국의 작전에 호응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 제2의 천안함 사건은 남북관계를 전면 파괴하라는 것인데 반북정책을 전면에 들었던 이명박근혜 정권이면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라면 정권 붕괴 위기로 번질 수 있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오면 문재인 정부는 이판사판으로 자기 살 길을 찾으려 할 수도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천안함 조작설을 주장하며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신상철 대표같은 인물을 진상조사위원장에 앉힌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셋째, 국제무대에서 인권 논란을 전면화하면서 북한을 고립, 압살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낡은 수법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 유엔총회 3위원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였는데 정작 12월 유엔 안보리에서는 북한 인권 논의가 무산되었다. 2014년 이래로 미국은 매년 유엔 안보리 안건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상정했는데 지난해는 안건 상정 기준인 9개국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해 상정 자체가 무산된 것이다. 강제성 없는 유엔총회에 비해 유엔 안보리 결정은 강제성이 강하기 때문에 안보리 안건 상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지난해 있었던 북한 인권 상정 무산은 미국의 대북 인권 논란이 설득력을 잃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같은 시기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북한 인권 상황을 비판하는 연설을 하려다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평소 북한 인권 문제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던 펜스 부통령마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자제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다시 북한 인권 문제를 터뜨려 대세를 돌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넷째, 제2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를 연출할 수도 있다. 미국은 2005년 6자 회담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 다음날 마카오에 있는 BDA를 전격 제재하였다. 북한이 BDA 계좌를 통해 자금세탁을 했다는 이유였다. 미국은 북핵문제로 북한을 직접 압박하면 9.19 공동성명 파기의 책임이 자신에게 오므로 재무부를 동원해 마치 북핵문제와 무관한 제재처럼 연출했다. 이로 인해 9.19공동성명 합의는 하루 만에 휴지조각이 되었고 6자 회담은 공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이런 작전도 이제는 효과를 내기 어렵게 됐다. 일단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를 이미 하고 있어서 추가 제재가 쉽지 않고, 한다고 해도 북한에 큰 타격이 없으며, 북한이 선제적 비핵화 조치를 했기 때문에 미국의 추가 제재가 국제사회의 호응을 얻기도 어렵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섣부르게 제재를 할 수도 없다. 

​이처럼 대세를 뒤집기 위해 미국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북한의 대비 때문에 실효성이 없거나 자칫 핵미사일이 날아가는 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동북아 질서가 북한 주도로 흘러가는 대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홍익인간 유토피아가 펼쳐진다

​2019년은 동북아 지역에 공존·공리·공영의 질서가 틀을 잡아가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평화와 안정이 공고해지는 해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의도 전변할 것이다. 그동안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의 중간 지점에 있는 요충지로서 예로부터 외침이 끊이지 않은 땅이었다. 우리 민족은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주변 강대국의 침략 속에서 단장(내장이 끊어지는 고통)의 아리랑을 불러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의 장점을 살려 동북아 지역의 공존·공리·공영을 선도하는 천혜의 땅이 될 것이다. 평화와 번영, 통일을 이루고 전 세계를 평화 번영으로 이끄는 세계의 중심이 되어 희망과 투지, 환희의 아리랑을 부르게 되었다.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과 촛불항쟁을 승리한 한국이 손을 잡아 민족의 힘을 응축하여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나아가 전 세계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다. 힘이 있다고 남을 괴롭히거나 약탈하지 않으며 서로 존중하고 이익을 나눠 함께 번영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단군의 홍익인간 사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또한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설파한 예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양에서 이상향으로 꼽는 상상 속의 유토피아가 현실에 나타나는 것이다. 

​인류의 꿈을 우리 민족이 주도하여 실현할 수 있다는 벅찬 감동과 자긍심 속에서 우리는 2019년 새로운 힘찬 전진을 시작한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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