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6월 18일
기사 제목 : [군대 민주화·인권개선 시급하다] 1. 위력에 의한 성범죄
최근 공군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신고 후 해당 부대 상관들의 조직적인 회유와 압박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연일 부실 급식 논란이 터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국방의 의무가 있는 나라로 대부분의 남성이 군대에 갑니다. 이렇기에 군대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에 대해 군대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범죄를 비롯해 갑질 횡포, 부실 급식, 사건 축소·은폐 등으로 군대에서 장병들의 인권침해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대 안의 올곧은 민주주의 구현과 장병들의 인권 개선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이에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는 지난 2월 1일 국방부 판결문 열람 서비스에 공개된 판결문을 바탕으로 기획 글 5편을 연재합니다.
1. 위력에 의한 성범죄
회사나 군대에서 일어나는 성범죄 중에서는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위력’은 사전적으로 ‘상대를 압도할 만큼 강력함 또는 그러한 힘’을 말한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성범죄 중 대다수 가해자가 상급자이다. 상급자가 자신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운 하급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특히 군대는 상급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집단이다. 이런 군대의 특성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5월 1일부터 2021년 5월 1일까지 군사고등법원의 성범죄 관련한 판결문을 보면 군대의 성범죄는 대부분 위력에 의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사건1. ‘2019고6 군인 등 강제 추행,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폭행’
피고인은 **중대 특전정작부사관(중사)이었고 피해자는 같은 중대 특전의무부사관(하사)였다.
판결문에 의하면 “피고인은 같은 중대 선임이라는 지위와 피해자가 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급 부사관으로 피고인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앞으로의 군 생활이 어려워질 것임을 피해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추행하기로 마음먹었다”라고 나왔다.
또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약 20여 회에 걸쳐 피고인에게 뽀뽀를 하도록 요구하고 피해자가 이에 응하지 않자 피해자가 응할 때까지 같은 중대의 동료 하사 ㄱ을 시켜 엎드려뻗쳐를 시키는 등으로 피해자가 피고인의 입술 및 볼에 뽀뽀를 하게 되었다”라고 적시되었다.
◆ 사건2. ‘2019노24 군인 등 강제추행, 특수폭행, 폭행’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피고인의 계급은 상사로서 군 경력이 약 13년 정도인 중대 선임관이었고 피해자의 계급은 하사로서 군 경력이 약 2년 정도로 피고인과 피해자의 계급 및 군 경력 차이가 상당한 점”, “(가해자가) 술 마실 것을 권유하여 피해자는 이를 거절하지 못하였고(하략)...”
이 사건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술을 강요한 뒤에 성범죄를 저질렀다.
◆ 사건3. ‘2019고5 군인 등 강제추행’
이 사건은 남성 상관이 하급자인 여군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다. 피해자는 사건 발생 6개월 전 피고인이 근무하는 부서로 전입해 왔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은 군 복무 경력이 20년이 넘는 부사관”으로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지휘·감독하고 있던 피해자를 추행”하였다고 되어 있다.
◆ 사건4. ‘2019고24 군인 등 강제추행, 협박, 추행’
이 사건 역시 피고인은 부사관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후배 부사관에게 7차례에 걸쳐 성범죄를 저질렀다.
심지어 이 사건의 피고인은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강제추행하고 피해자가 교제하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말하며 협박까지(하략)...” 했다.
이 외에도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 장교가 부하 장교 아내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 전화기를 이용한 불법 촬영 등이 있다.
부사관급 이상이 벌이는 성범죄는 술을 이용한 범죄도 잦다. 피해자에게 술을 ‘강요’한 뒤에 성범죄를 저지르는 식이다. 군대의 성범죄는 동성, 이성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국방부를 비롯한 군 관계자들은 성범죄가 문제로 대두될 때마다 “‘술자리’를 갖지 말라”,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라는 식의 임시방편을 내놓고 여론의 비판을 피해 왔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지난 5월 10일 발표한 ‘2020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강간·준강간 상담 건수는 2019년 3건에서 2020년 16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성희롱은 44건에서 55건으로 증가했다. 성추행은 52건에서 44건으로 줄었다. 센터는 “지난해 특히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 사건이 전년에 비해 많이 접수됐다”라고 밝혔다.
군대 안의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첫 번째로 군대의 폐쇄적인 문화를 짚어볼 수 있다.
군대는 성범죄뿐만 아니라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숨기는 데 급급하다.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상급자에게 보고하면 상급자들은 자신들의 ‘인사고과’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덮기에 급급하다.
실제로 군대 내의 성범죄를 신고한 비율이 32.7%에 그친다는 국방부 발표 자료가 있다. 즉 10명 중 3명만 신고한다는 것이다. 성범죄를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44%가 ‘아무 조처도 취해질 것 같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즉 장병들도 군대의 조치를 신뢰하지 않고,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두 번째로 군사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도 있다.
군 형법의 처벌 수위는 대체로 민간보다 높지만 실제 결과를 들여다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성범죄 재판 약 1천700여 건 중 실형 선고를 받은 것은 175건에 불과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
또한 군대는 민간보다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도 민간 형법에는 있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처벌 조항이 군 형법에는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군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군대가 아무리 특수한 집단이라고 해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
군대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군대로 거듭나기 위해 오랜 악습을 끊어버려야 할 것이다. 군대는 악습을 끊기 위해 군대 안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김영란 자주시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