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19.

최근 공군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신고 후 해당 부대 상관들의 조직적인 회유와 압박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연일 부실 급식 논란이 터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국방의 의무가 있는 나라로 대부분의 남성이 군대에 갑니다. 이렇기에 군대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에 대해 군대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범죄를 비롯해 갑질 횡포, 부실 급식, 사건 축소·은폐 등으로 군대에서 장병들의 인권침해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대 안의 올곧은 민주주의 구현과 장병들의 인권 개선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이에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는 지난 2월 1일 국방부 판결문 열람 서비스에 공개된 판결문을 바탕으로 기획 글 5편을 연재합니다. 

 

 

 

 

 

2. 군대 내 범죄의 축소, 은폐 실태

 

 

지난 5월 21일 공군 부사관 ㄱ씨가 성추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세상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사건에서 ㄱ씨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에는 상관들의 무마 회유가 크게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족들은 숨진 피해 중사가 1년 전에도 다른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무마 회유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지켜보는 이들을 더 안타깝게 한다.

이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군대 내에서 일어난 범죄들은 상관, 주변인들이 피해자에게 사건을 축소, 은폐할 것을 강요하거나 목격자, 제보자에게 사건에 대해 증언 내지 진술하지 말 것을 강권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월 1일 시작된 국방부 판결문 열람 서비스에 따라 군사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판결문 중 두 가지 사건의 판례를 통해 이를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고등군사법원 홈페이지에 ‘2019노6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면담강요등), 허위보고’로 공개된 사건을 살펴보자. (게시물 제목은 ‘[19-6-3] 성폭력 피해자인 부하에게 사건과 관련하여 특정 내용의 진술 등을 할 것을 수차례 요구한 사안’이다.)  

이 사건은 피고인인 대대장(중령)이 성범죄 피해자인 자신의 부하 ㄴ에게 과거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건을 축소하여 빨리 마무리 할 것을 종용하고, 두 차례의 성범죄 사건을 축소해 한 건만 보고를 하도록 하였으며 목격자를 압박해 사건에 대한 증언 내지 진술을 하지 못하게 한  사건이다. 이에 대해 고등군사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은 ‘(전략) 피고인이 피해자 면담 후 같은 날 3차례에 걸쳐 빨리 사건을 마무리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점, 성적 수치심과 처벌의사가 없다고 말하여 빨리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 피해자의 군경력에 좋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점 등을 종합할 때, 피고인이 대대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족한 세력을 행사하였고, (중략) 위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였다. 

피고인이 지휘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 목격자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함으로써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 하였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유죄를 판결한 것이다.

다른 사건 하나를 더 살펴보자. 고등군사법원 홈페이지에 ‘2017노 186 강요’로 공개된 사건이다. (게시물 제목은 ‘하급자들에게 허위진술서 작성을 강요한 상급자를 엄단한 사안’이다.)

이 사건은 피고인(중령)이 피해자들(하사, 소위 등)에 대해 전 지휘관이라는 우월적 지위 등을 악용하여 피해자들로 하여금 성희롱 피해사실을 번복하는 취지의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하고, 피해자들이 허위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만들었다는 혐의로 공소가 제기되었다.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전략) 지휘관의 신분과 지위를 악용하여 부하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행은 단순히 피해자들 개인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하들의 상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부대 내의 사기와 단결을 저해하는 것인 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중략)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함(군검사 항소인용).

위 두 가지 사건을 통해 한국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대한 축소, 은폐 시도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5월 6일 오마이뉴스 보도 ‘[군사법원 성범죄판결 집중분석 ①] 실형 비율 10% 안팎 그쳐... 집행유예는 30~50%대’를 통해 이런 일이 일부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군대 내의 일반적 분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사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소개한다.
 
법으로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군대 내 성폭력은 또 다른 숫자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2019년 군 성폭력 실태조사' 국방부 비공개 자료에 따르면, 성희롱을 경험한 남녀 간부 230명은 성희롱 사건 발생 당시 군과 부대원들의 태도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중복응답).

- "사건을 축소·은폐했다" (25.2%)
- "내가 문제 있다고 비난받고 따돌림 당했다" (16.5%)
- "신고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14.5%)
- "이 일을 문제 삼으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 (10.9%)

많은 군인들이 분위기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거나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라는 압박을 받았고 그로 인해 실제 다수의 사건이 축소, 은폐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의 한국 군대는 특유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 문화, 사건·사고를 은폐, 축소하려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이 제대로된 구제를 받지 못하고 가해자·책임자들도 응당한 처벌과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대의 이런 실태가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르면서,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군에만 특수하게 적용되는 사법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처리돼 군 사법체계 개혁에서 일보 전진이 이뤄지길 바라본다.

 

 

신은섭 주권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