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5.

북의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이하 당 제8차 대회)가 1월 5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는 당 제8차 대회 이해를 높이기 위해 주목되는 내용에 대해 공동 기획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10. 당규약에서 조국통일 부분 문구를 수정한 배경


“강위력한 국방력”‥당규약 개정과 통일전략

북측이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 셋째 의정에서 전원일치로 결정서 <조선노동당규약개정에 대하여>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당규약은 지난 2016년 제7차 당대회 이후 5년 만에 바뀌었다. 공개된 당규약 내용을 들여다보면 변화된 ‘조국통일’ 관련 문구가 눈에 띈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데 대하여 명백히 밝혔다. 이것은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안정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기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입장의 반영으로 된다.”

-개정된 당규약 내용이 담긴 <조선노동당규약개정에 대하여> 중에서


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문구는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라는 대목이다. 이는 당규약 개정 이전과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비교를 위해 제7차 대회에서 제시된 관련 문구를 아래에 소개한다.

 

“조선노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며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지난 2016년,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당시 당규약에서 언급된 통일 관련 내용.


앞서 제7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당시 남북이 합의한 조국통일 3대 원칙이다. 그런데 북측은 이번 제8차 당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을 일부 공개하며 국방력을 강화했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북측에서 당규약 개정안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이상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조국통일 전략’과 관련해 북측에서 ‘국방력 강화를 통한 해결’을 기조로 세웠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측이 “강위력한 국방력”을 강조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국방력은 “방위를 위한 군사적 힘”으로 풀이된다. 국방력과 대비되는 표현으로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의 군사력이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는 군사적 요소로는 북측을 겨눈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북측의 당규약 개정은 한미 당국이 벌이는 군사행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북측의 시선에서 “군사적 위협”은 큰 틀에서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로 ‘북한 점령’, ‘북한 지도부 제거’를 가정해 한미연합훈련을 벌이는 한미 당국의 행태를 꼽을 수 있다. 

둘째로는, 미국산 첨단무기 구입과 북측을 겨눈 무기 개발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군사비용을 쏟아붓는 문재인 정부의 군비증강 움직임이다.

특히 미국산 첨단무기 구입과 북측 지도부 타격에 방점을 둔 문재인 정부의 군비증강 기조는 대단히 심각하다. 그 예시로 지난해 책정된 군비는 무려 53조 원을 넘어섰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군비는 연평균 7.5%씩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는 북측을 대놓고 적대하던 이명박근혜 당시 연평균 군비 증가율마저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국방부가 발표한 2021~25년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군비로 302조 원을 쓰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막대한 금액으로 미국산 첨단무기인 글로벌호크를 비롯해 F-35A, F-35B 수십 대를 들이려 한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앞서 소개한 무기체계 가동을 위해서는 미국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수출하는 무기체계의 운영기술을 한국군에 넘기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를테면 미국산 무기체계에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한국군은 일일이 미군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군은 미군의 지휘·감시에 더욱 종속되고 만다.

이밖에도 정부는 한국형 아이언돔, 핵잠수함, 극초음속 미사일, 스텔스 무기, 북측 지도부를 직접 겨냥한 ‘벙커버스터’ 현무-4, 경항공모함 같은 위험천만한 무기를 자체 개발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이 역시 평화는커녕 북측을 자극해 군사대결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이대로라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 전역이 전쟁위기에 휩싸이게 될 지경이다.

한미 당국이 벌이는 군사행동은 남북·북미간 “평화체제 수립”과 “적대관계 청산”을 명시한 판문점선언, 북미공동성명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북측은 남북·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와 번영, 통일을 추구했지만 그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미국은 하노이 북미합의를 파탄내며 ‘쪼개기 훈련’과 대북 제재를 강화했고, 남측은 합의 이행 대신 오히려 군비증강에 속도를 냈으니 말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북측은 국방력을 통해 한미 당국이 적대행위 자체를 벌일 수 없는 평화적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했을 듯하다.

이러한 인식에서 북측은 당규약 개정을 통해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안정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기”겠다라는 문구를 넣지 않았을까 싶다. 그와 관련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살펴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대외관계 발전을 위하여> 보고를 통해 “진정으로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고 민족의 운명과 후대들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이 엄중한 상황을 더 이상 수수방관하지 말아야 하며 파국에 처한 현 북남관계를 수습하고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같은 보고에서 “남조선 당국이 비정상적이며 반통일적인 행태들을 엄정관리하고 근원적으로 제거해버릴 때 비로소 공고한 신뢰와 화해에 기초한 북남관계 개선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을 종합하면 북측 내부에서는, 최근 수 년 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깨는 한미 당국의 군사행동을 저지하려면 국방력을 강화해야겠다’라는 전 사회의 총의가 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측이 제8차 당대회를 통해 당규약을 개정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