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3월 11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96] 한반도 전쟁 위기, 어떻게 해소되었나
1. 2017년 전쟁위기
밥 우드워드는 신작 『격노』에서 2017년 북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뻔하였다고 밝혔다. 우드워드는 “이것은 진짜 위기였다”라고 적었다.
그해 8월 8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을 위협하면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11월에는 항공모함 3척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투입해 훈련을 하도록 했다. 12월에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발사될 경우 요격미사일로 격추할 권한을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에게 부여했으며 2017년 4월과 2018년 1월 “한국에 있는 미군 가족을 전부 데려오라”라며 비전투원 후송 작전(NEO)을 지시했다.
이처럼 당장 북한을 공격할 것처럼 큰소리치던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은 자신이 전쟁을 막았다며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려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막았다’거나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 했는데 아쉽게도 하지 못했다’라고 해야 말이 맞는데 ‘내가 전쟁 하자고 했는데 내가 막아서 기쁘다’라고 하니 말이 안 된다. ‘전쟁을 하고 싶다’와 ‘전쟁을 막아 기쁘다’ 사이에 뭔가 있어야 한다.
그 답은 『격노』에 실린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이 보여주었다. 그는 당시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워싱턴 국립대성당 2차 세계대전 추모 예배실을 여러 번 찾아 기도를 올렸다. 북한은 국가 핵무력을 완성했고 미국은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에도 미국은 여러 차례 북한을 공격하려 하였다. 하지만 끝내 전쟁을 개시할 수 없었다. 모두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그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 실시, 그리고 이에 맞선 북한 조선인민군의 3월 30일 전시상황 돌입 선언으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 그러다 4월 15일 케리 국무장관의 대북특사 파견 제안, 5월 1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제안, 5월 7일 북한의 1호 전투근무태세 해제로 전쟁 위기가 누그러졌다.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2013년 4월 1일자 USA 투데이에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 우리가 승리하지만 1차 세계대전 수준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왔다”라고 밝혔다. 1차 세계대전의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의 군 병력 사망자는 438만 명, 부상자는 838만 명, 그리고 실종자는 362만 명, 민간인 사망자는 314만 명에 달한다.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피해는 군 병력 사망자 552만 명, 부상자 1283만 명, 실종자 412만 명, 민간인 사망자는 360만 명에 달한다. 종합하면 4천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마 핵전쟁을 가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정도 피해를 감수하며 전쟁을 할 수 없었다.
2002년 부시 정부도 전쟁을 준비했다. 북한 정권을 교체한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이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전쟁 시뮬레이션을 실시하였는데 구체적 결과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2003년 5월 30일에 진행한 1차 워게임에 입회한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의 기자는 2003년 8월 18일 영국의 BBC 텔레비전에 출연해 “결국 참가자들은 중대 결단을 내리려다가 중단하고 말았다. 유효한 군사적 선택카드가 하나도 없다는 점 때문에 그들은 좌절감을 맛보았다”라고 밝혔다. 2차 워게임은 7월 중순에 진행되었는데 2003년 8월 1일자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기사에 따르면 “우리가 패배한다(we’re doomed)”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이 시뮬레이션 결과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2005년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북한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선제공격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중앙일보 2020년 9월 19일자 보도 「“서울 불바다 되지만 北선제공격” 美대통령마다 준비한 카드」를 보면 “북한을 제압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라고 한다.
1994년 클린턴 정부는 영변 핵시설만 제거하는 ‘외과수술식 정밀 폭격’을 준비했다가 포기했다. 앞의 중앙일보 보도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은 당시 모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면전 상황도 예측해 봤다. 그 결과 90일 이내에 주한미군 5만2000 명, 한국군 49만 명이 다치거나 죽는 것으로 나왔다. 민간인을 포함해 100만 명의 사망자가 예상됐다. 당시 결국 선제타격을 포기한 배경이다.”
물론 이 결과 역시 북한에 핵무기가 없다는 가정 아래 나온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68년 1월 23일 발생한 푸에블로호 사건이 있다. 미 해군의 최신예 전자첩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인 원산 앞바다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 북한 해군 함정에 나포된 사건이다. 미국 존슨 정부는 즉각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는 제7함대 주력 기동부대와 항공모함 3척을 비롯해 핵잠수함과 전투기 수백 대를 한반도에 급파하였다.
그러자 2월 8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 그러나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 그러나 평화를 구걸하지는 않겠다”라고 선포하면서 동시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복에는 보복, 전면전에는 전면전으로”라며 북한인민군과 각급 준군사조직, 전 인민에게 전시동원체제를 명령했다. 사태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은 푸에블로호의 영해 침범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1968년 12월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배는 북한의 전리품이 되어 아직도 북한에 남아있다.
당시 상황을 다룬 북한 소설을 보면 미국이 항공모함을 집결시켜 북한을 위협할 때 북한 지도부가 항공모함을 격침시킬 수 있는 미사일을 미국 정찰자산이 볼 수 있게 노출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뿐 아니라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핵공격에 대비해 주요 군사시설을 지하 깊이 마련하고 전국 곳곳에 지하 방공호를 건설했다. 또 군부대는 물론 주요 건물과 심지어 열차에까지 엄청난 수의 대공포를 배치해 폭격기의 접근을 막았다. 해안선을 따라 바위지대 속에 포와 미사일기지를 잔뜩 배치해 군함의 접근도 차단했다. 이런 상황을 정찰기와 정찰선으로 확인한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수 없었다.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 때도 미국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11 전투기 20대를 포함해 대규모 폭격기, 항공모함 등을 투입해 북한을 위협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북한은 유감성명을 발표했다. ‘유감’은 참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유감성명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며 거부했지만 결국 수용하고 사태를 종결지어야만 했다. 미군 대위 1명, 중위 1명이 사망하고 병사 4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미국은 아무런 보복도 응징도 못하고 나무를 자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북한과 전쟁을 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을 공격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끊임없이 반복됐지만 그때마다 이를 좌절시킨 건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지, 즉 전쟁능력이었다. 북한은 자신의 핵무력이 수많은 전쟁 위협을 막아낸 ‘평화의 보검’이라고 주장하는데 위의 과정을 보면 이런 북한의 주장에 객관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2. “한반도에 대한 무력 사용은 우리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
『격노』에서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다는 내용이 나오자 청와대는 “한반도에 대한 무력 사용은 우리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역사적 사례들을 보면 한국정부는 전쟁위기 고조와 해소 과정에 어떤 책임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상황이나 여지가 전혀 없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 1994년 전쟁 위기 당시 자신이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전쟁을 막았다고 썼다. 하지만 미국 정부나 평론가 중 김영삼 전 대통령 때문에 전쟁이 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앞의 중앙일보 보도는 “클린턴 행정부의 선제타격 방안 검토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배제됐다. 김영삼 정부는 미국에서 선제공격 논의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2017년 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도 한반도에서 죽는다”라며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에 호응해 반북공세를 펴며 위기를 부추겼다. 하지만 미국이 실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파악조차 못했다.
“당시 주한미군에 미 본토와 해외 미군 기지로부터 참모 인원을 중심으로 한 증원이 이뤄졌다.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들어왔다. 미군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군이 오면 입을 다물곤 했다. 그리고 한국군을 뺀 채 자기들끼리 비밀회의를 자주 열었다.” (중앙일보 9월 27일 보도 중)
미국은 결국 핵전쟁 피해를 감당할 수 없어 전쟁을 포기했다. 물론 이 과정에 문재인 정부가 영향을 미쳤다는 그 어떤 자료나 평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앞의 19일자 중앙일보 보도는 “한국은 이처럼 한반도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논의할 때 단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다. 미국은 전략무기인 핵무기에 관해선 사용 계획을 동맹국과도 협의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이번에 청와대가 얘기한 “한반도에 대한 무력 사용은 우리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라는 소리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저 ‘나도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외마디 비명일 뿐이다. 비참하지만 이게 우리 현실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나타내주는 징표는 여기저기 널려있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핵무기 반입 여부를 모른다. 심지어 미군이 몇 명 있는지도 모른다. 세균무기 실험을 하는지도 모르고 택배로 살아있는 탄저균을 반입해도 모른다. 주한미군이 국내에 들어올 때 코로나19 검사도 못한다. 이태원에 코로나19가 갑자기 확산됐을 때도 주한미군 연관설이 파다했지만 파악조차 못 한다. 경기도 포천에서 주한미군이 안전조치를 위반해 자국민이 4명이나 죽었지만 미군에 아무런 책임도 묻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미군 책임을 묻는 대학생의 입을 틀어막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걸 놓고 볼 때 한미 관계는 동맹관계가 아니다. 독일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해당 국가 정부의 승인 없이는 미군이 한국에서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독일 같은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식민지라고 누가 비난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미국 관련 일들은 식민지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그래서 비참하고 참담하다.
문재인 정권은 미국의 ‘승인’을 추구한다. 하지만 『격노』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를 거칠게 대하는 상대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 말 뜻은 줏대를 가지고 자기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하는 그런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트럼프 앞에 가면 기가 죽어 아부하고 굴종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개돼지로만 보고 그렇게 취급한다. 트럼프에게 저자세를 보인 아베 전 일본 총리는 미일정상회담 자리에서 레드카펫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기자들이 모두 보는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레드카펫에 못 올라오게 막아 망신을 준 것이다.
2019년 2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한국이 전화 두어 통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5억 달러 더 내기로 했다”라며 한국을 개돼지 취급했다. 2019년 8월 9일에는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에서 114.13 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 받는 것이 더 쉬웠다”라며 또 한국을 모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비참하고 참담한 현실을 제대로 알고 이를 혁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주권국가임을 과시하고 우리 동의 없이 누구도 한반도에서 전쟁 못한다는 것을 확립해야 하는데 그 시작으로 정부는 한미워킹그룹과 동맹대화를 해체하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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