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3월 04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53] 미국에 노(No)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1. 11월 15일, 놀라운 하루
#1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 시한이 다가오면서 미국이 다급하게 나서기 시작했다. 미군과 미 국방부 관계자들이 너도나도 한국에 들어와 지소미아 폐기 철회를 압박하였다. 그 정점에는 지난 15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문재인 대통령 예방이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 면전에서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며 거절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조선일보는 16일 보도에서 “동맹국인 미국이 작심한 듯 지소미아 유지를 공개적으로 거론해왔음에도”, “문 대통령이 직접 ‘불가능하다’며 사실상 거절”했다고 전하면서 한미 동맹 자체가 흔들린다며 비명을 질렀다.
#2
같은날 국회에서는 여야 47명의 국회의원이 미국의 주한미군 지원금 증액 압박을 강하게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은 주한미군의 문제점을 열거한 후 “(미국이) 50억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협박하면, 갈 테면 가라는 자세로 자주국방의 태세를 확립해야 트럼프 행정부의 협박을 이겨낼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강경한 자세를 주문했다. 국회에서 ‘주한미군 철수도 상관없다’는 식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하루 전날인 14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73명이 주한미군 지원금 협상의 공정한 합의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소속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별도로 성명을 발표해 “(미국의) 불합리한 제안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회 내 미국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주도하는 게 여당인 것이다.
#3
15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는 ‘대북정책 전면 전환 촉구 각계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국선언에는 전국 492개 단체와 개인이 참가했다. 여기에는 진보·통일운동단체뿐 아니라 중도개혁 성향의 단체, 인사도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의 위기는 새로운 관계 수립을 약속한 북미 싱가포르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북 적대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에게 근본책임이 있습니다”라며 미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또 “정부의 대미의존 대북정책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라며 문재인 정부의 대미의존 자세를 질타하기도 했다. 중도개혁 성향의 단체, 인사들이 미국 책임론을 제기한 것 역시 흔치 않은 모습이다.
#4
주한미군 지원금 5배 인상과 지소미아 폐기 철회를 압박하는 미국의 행태에 대한 여론도 매우 들끓고 있다. 20일 M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군 지원금 인상에 대해 ‘작년 인상률인 8.2%를 넘어선 안 된다’가 52.6%, ‘더 이상 올려줄 필요가 없다’는 41.8%에 달했다. 미군 관련 뉴스 댓글엔 “돈 없으면 니들 땅으로 꺼져라 거지들아”, “토지 사용 값도, 전기세도 모두 내라고 해라”, “왜 우리 돈 내면서 미군 종노릇이야?” 같은 격앙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이번에 일시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늘어난 결과임을 주목해봐야 한다. 주한미군에 대한 여론이 이렇게까지 나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정부, 국회, 시민사회단체와 국민 여론이 이처럼 반미로 일색화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 같다. 물론 과거에도 백범 김구 선생이 미군정의 압력을 무시하고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참가를 위해 방북한 일이나,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감시를 피해 비밀 핵개발을 하다가 들통 난 경우도 있었지만 대놓고 국가 정책에서 미국과 엇선다거나, 미국이 압박을 가하는데 정부, 국회, 시민사회가 하나같이 노(No)라고 하는 현상은 처음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미국과 정책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도 한미 협의를 통해 합의를 이루었다.
2. 과거에는 왜 못했을까
(1) 세계 최강에게 순응하는 건 숙명
과거에는 모두들 미국을 세계 최강 국가라 여겼다. 소련도 무너뜨린 세계 최강 국가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 말을 거스르면 큰일 난다고 여겼다. 미국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걸 알아도 겁을 먹고 순응했다. 공미주의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2006년 9월 20일 한국일보 칼럼 「‘아버지’ 미국과 공미주의」에서 “국내정치에서 미국의 힘의 원천은 궁극적으로 공포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공미주의가 ‘미국이 우리를 버리면 어떡하냐는 공포’, ‘말을 안 들으면 벌을 받을 거라는 공포’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세계 최강인 미국에게 잘 보이고 미국 뒤에 줄을 서야 잘 살고 출세한다고 여기기도 했다. 자기 힘으로 잘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권력자, 부자의 환심을 사서 빌붙어보려는 사대의존성, 거지근성을 가진 친미파들이 바로 그들이다.
공미주의자든, 친미주의자든 미국에게 노(No)라고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2) 미국을 두려워하는 한국 정권
한국에서는 정권을 차지한다고 해서 자기 뜻대로 국정운영을 할 수 없다. 미국의 눈치를 보며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에 맞섰다가 비극적 최후를 마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정치인 안에 존재한다.
실제로 미국이 반미정권을 전복한 사례는 허다하다. 1953년 이란 모사데그 정권 전복, 1960년 콩고 루뭄바 정권 전복, 1973년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등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도 베네수엘라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쿠데타를 사주하기도 했다. 반미인사를 암살한 사례도 많다. 해외 암살 공작이 논란이 되자 1975년 미 중앙정보국(CIA)의 요인 살해를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2001년 9.11 사건을 계기로 CIA의 요인 암살이 재개됐다.
미국의 요인 암살 사례는 한국에도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미군정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가 끝내 암살당했다. 암살범 안두희는 미군 방첩대(CIC) 정보원이었다.
쿠데타나 암살이 아니더라도 경제적 압박으로 정부를 공포에 몰아넣는 경우 역시 흔하다.
2002년 대선에서 반미를 표방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취임 직전인 2003년 2월 11일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두 단계나 낮추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핵개발 우려 속에 한국 정권이 반미 성향이라 한반도 안보 불안이 커졌다는 이유였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외국 자본이 대거 이탈하면서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다. 공포에 질린 노무현 대통령은 반기문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 등 3인 대표단을 급파했다. 이들은 “제발 등급을 낮추지 말아달라. 노 대통령의 대미 정책은 확연히 바뀔 것이다. 대통령의 방미 때까지 두 달만 시간을 달라”고 읍소했다. 4월 2일 국회는 이라크 파병동의안을 통과시켰고 5월 11~16일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친미발언을 쏟아내야 했다.
미국의 이런 위협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 10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터키의 경제를 신속하게 파괴할 준비가 전적으로 돼 있다”고 하였다. 미국과 거리두기를 하는 터키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미국은 그날로 터키 경제 제재에 돌입했다.
친미세력을 동원해 정권을 공격하기도 한다. 친미야당, 친미언론, 친미 어용단체, 미국의 통제에 따르는 공권력 등 가능한 자원을 모두 동원해 정부를 압박한다. 그러면 이번 조국 사태와 같은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최근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성조기 부대(=태극기 모독 부대)의 공격 방향을 보면 ‘한미동맹 파괴한 문재인 정부 타도’로 모이고 있다. 미국이 정확히 원하는 방향이다.
(3) 국민 속의 친미 의식
과거 국민들은 미국에 대해 ‘구원자’, ‘보호자’, ‘선망의 대상’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북한, 중국, 소련 등 공산주의 세력의 침공을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 은혜를 베풀어주는 나라로 미국을 인식했다. 또한 경제발전을 하려면, 먹고 살려면 미국, 일본과 손을 잡아야만 한다는 생각도 강했다. 미국을 선진국으로 여기며 추종하는 문화도 있었다. ‘미국은 말이야~’라는 말을 흔하게 했다.
그동안 미국은 우리를 지켜주는 나라, 우리 경제를 살찌워주는 나라,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하는 나라였다.
3. 이제는 노(No)라고 할 수 있는 요인
(1) 세계 최강이 아니었다
미국이 세계 최강임은 의심할 수조차 없는 진리였다. 그러나 지금 이 환상은 산산이 깨졌다.
우리는 북미 대결 과정에서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는 진실을 매일 보고 있다. 북한의 강경 자세에 쩔쩔매는 미국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이 아니었다,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다, 우아하고 점잖게 후퇴하는 게 아니라 형편없이 깨지고 있다, 우리가 미국을 무서워만 할 일이 아니다는 생각이 급속히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싼 북미 대결 모습을 보자.
10월 5일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후 북미 사이에 긴장 상태가 유지되는 가운데 11월 4일 미국은 한미연합공중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틀 후인 6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담화를 통해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지 한 달 만에 미국이 연합공중훈련 계획을 발표한 것은 우리에 대한 대결선언”이라고 반발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곧바로 “우리는 북한의 분노에 기반해 훈련을 시행하거나 규모를 조정하지 않는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북한 국무위원회가 13일 이례적으로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였다. 북한은 “우리의 자주권과 안전환경을 위협하는 물리적 움직임이 눈앞에 확연하게 드러난 이상 이를 강력하게 제압하기 위한 응전태세를 취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당당한 자위적 권리”라며 “지금과 같은 정세흐름을 바꾸지 않는다면 미국은 멀지 않아 더 큰 위협에 직면하고 고달프게 시달리며 자기들의 실책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같은 날 한미안보협의회(SCM) 참석차 한국으로 향하던 에스퍼 국방장관은 한국행 비행기에서 기자들에게 “외교의 필요성에 따라 훈련을 더 많게 혹은 적게 조정할 것”이라며 훈련 조정 가능성을 내비췄다. 국방부 대변인 입장에서 후퇴한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 국무위원회 대변인 담화에 대한 질문에 “해외 지도자가 말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라는 다소 엉뚱한 답변을 하였다. 아마도 이 대답은 국무위원회 대변인 담화의 “미국은 또한 우리가 높은 인내와 아량을 가지고 연말까지 정해준 시한부도 숙고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내용에 대한 해명인 듯싶다. 북한이 ‘우리 경고를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고 하자 ‘아니다, 진지하다’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다.
다음날인 14일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담화를 통해 미국의 훈련 조정 가능성에 대해 “연습자체를 완전히 중단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싶다”면서 “(그러나) 우리를 자극하는 적대적 도발이 끝끝내 강행된다면 우리는 부득불 미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응징으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17일 훈련을 연기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많은 이들이 미국의 ‘참패’로 인식했다. 북한이 문제제기하자 10여 일 만에 아무 대가 없이 북한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한 셈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18일 기사 「북한이 시비 걸자 한미 공중훈련 연기」에서 “지나치게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답답해했다.
그런데 에스퍼 장관의 훈련 연기 발표 기자회견이 끝나고 2시간 만에 나온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많은 이들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났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문제 삼으며 “미국이 우리를 고립 압살하기 위한 적대시 정책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실증해주고 있다”, “더 이상 마주앉을 의욕이 없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결국 8시간 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통해 북미 대화를 다시 하자고 촉구했다. 하지만 17시간 후 발표된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의 담화는 여전히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김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두고 북미정상회담을 하자는 의미로 해석했다면서 “우리에게 무익한 그러한 회담에 더이상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라고 언급하고 “미국이 진정으로 우리와의 대화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면 우리를 적으로 보는 적대시정책부터 철회할 결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다시 촉구했다.
미국을 쉴 틈 없이 무자비하게 몰아세우는 북한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전율을 느꼈다. 북한이 이번에는 정말 미국을 잡겠다고 작정을 했구나, 미국은 세계 최강이라더니 북한한테 꼼짝을 못하는구나, 강하게 밀어붙이니 미국도 쩔쩔매는구나, 우리도 미국에게 노(No)라고 못할 게 없고, 이제는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 든든한 배경이 생겼다
정부나 국회가 미국에게 노(No)라고 할 만한 든든한 배경이 생겼다. 바로 촛불이다. 촛불이 모이고 상시적인 정치 동력으로 힘을 발휘하면서 미국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거꾸로 예스(Yes)라고 하면 촛불은 흩어지고 문재인 정권도 허물어진다. 나아가 한국 사회는 다시 적폐가 득세하는 엄청난 후퇴를 하게 된다. 이제 정권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미국에게 노(No)라고 해야 한다. 예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3) 경제적 측면에서도 노
15일 한미안보협의회(SCM) 직후 기자회견에서 에스퍼 장관은 “지소미아 종료와 한일 갈등으로 이익을 보는 곳은 북한과 중국”이라고 이야기했다. 북한, 중국에게 이익을 주기 싫으면 지소미아를 연장하라, 만약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를 이대로 종료하면 북한, 중국에 이익을 가져다준 정권으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압박이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다들 긴장할만한 색깔론 공세가 지금은 별다른 울림이 없다. 자유한국당도 이 논리를 받아 물고 떠들만한데 조용하다.
국민이 볼 때 에스퍼 장관의 주장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엉뚱한 소리다. ‘어쩌라고’, 이런 반응밖에 나올 게 없다. 경제만 놓고 보면 한국에게 미국, 일본보다 중국이 훨씬 중요하다. 일본 없어도 한국 경제는 돌아가지만 중국 없으면 망한다. 또 한국 경제의 미래는 남북경제협력, 평화경제에 있다는 게 상식처럼 퍼지고 있다. 경제를 위해서는 북한, 중국과 협력해야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에스퍼 장관은 고장난 레코드마냥 흘러간 노래만 부르고 있다. 옛날 빛바랜 반공 포스터 같은 시대착오적 소리가 먹힐 것이라 생각하는 에스퍼 장관은 그저 자신이 덜떨어진 것을 입증했을 뿐이다.
물론 지금 당장 미국과 경제 관계를 끊자는 극단적 얘기는 아니다. 다만 ‘미국이야, 중국이야?’라는 질문에 아무 고민 없이 ‘미국’을 선택하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황임은 분명하다. ‘둘 다 필요하다’는 게 지금 대체로 많이 하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꼭 미국에 매달려있어야만 경제에 도움이 되나?’라는 의문이 점점 커질 것이다.
(4) 안보 면에서도 노
지금 한미 사이의 쟁점인 지소미아 종료 문제나 주한미군 지원금 문제 모두 안보 문제다. 그런데 안보 문제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적대관계를 전제로 한다. 한미일이 뭉쳐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지금 국민 속에서 북한이 남침해서 적화통일할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으니 남침하기 유리해졌겠지만 북한은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자마자 평창올림픽 참가를 얘기했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군사적 위협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핵무기를 가지고 힘을 과시하고 전쟁 위기를 부추긴 것이 아니라 거꾸로 평화를 강화했다. 이렇게 볼 때 북한 핵무기는 남침용 혹은 한국에 대한 공격용이 아니다.
남북정상회담 등의 기회로 생방송으로 직접 본 북한의 모습 어디에서도 남침이나 적화통일을 떠올리게 하는 건 찾을 수 없었다. 오로지 평화통일, 평화경제, 평화번영 이런 것들만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지금 국민 속에서 북한에 대해 불안감이나 적대감이 별로 없다.
중국, 러시아에 대해서 적대감, 불안감을 느끼는지는 질문할 필요도 없다. 중국, 러시아가 한국을 쳐들어온다는 식의 주장은 황당하기만 하며 터무니없다. 오히려 북·중·러와 평화관계를 맺고 경제협력 관계를 맺는, 평화경제를 하는 게 한국의 안보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안보다.
그런데 미국은 여전히 북·중·러가 한국을 노리고 있으니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옛날 소리만 한다. 그러니 이런 주장이 국민들에게 안 먹히는 것이다.
이렇게 민심은 변했다. 민심 속에서는 냉전이 해체되고 있다.
(5) 미국이 노(No)를 자초한다
지금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이 주한미군 지원금을 10%도 아니고 무려 500%를 인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두고 노(No)가 아닌 예스(Yes)라 대답할 수 있을까? 지소미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만 일방적으로 감싸면서 한국의 양보를 강요하는 미국에 누가 동조하겠는가. 지금의 반미 열풍은 미국이 스스로 만들었다.
미국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자신의 취약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성향이나 전략이 아니라 미국 사회 자체의 취약성이다. 현실적 판단을 하면서 여유 있게 대응하기에는 미국의 현실이 너무 절박한 것이다. 자신의 추악함이 나날이 폭로되고, 허약상이 드러날 걸 알면서도 남을 쥐어짜고 착취해야만 하는 미국의 상황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
이런 여러 요인 때문에 지금 정부, 국회, 시민사회 등 한국 사회 전체가 미국에게 노(No)라고 할 수 있고 자유한국당도 더 시비를 걸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4. 향후 과제
(1) 정부
① 끝까지 물러서면 안 된다
정부는 국익을 지킬 때 존재 이유가 있다. 반드시 국익을 우선시해 미국에게 노(No)라고 할 건 확실히 노(No)라고 해야 한다. 이번에 지소미아 종료 문제는 잘 대처했다. 이런 입장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② 남북관계에서도 노(No)가 필요하다
지금 많은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답답해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의 ‘승인’ 정책에 쩔쩔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미국에게 과감히 노(No)라고 하고 판문점선언, 9월 선언을 이행해야 한다. 그럴 때 북미 비핵화회담의 속도도 붙는다. 왜냐하면 북미 비핵화회담의 궁극적 목표가 한반도 냉전 해체와 공존·공리·공영의 질서를 세우는 것인데 남북관계의 발전이 바로 그와 같은 방향이므로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걸 제대로 하려면 미국에게 노(No)라고 하고 남북관계를 과감히 전진시켜야 한다.
③ 암살에 대비하라
이번에 에스퍼 장관은 아마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수모를 느꼈을 것이다. 감히 미국의 국방장관에게 한국의 대통령이 노(No)라고 하다니, 그 동안 있어본 적이 없는 대 망신이다. 미국이 이를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을 절대 우습게보면 안 된다.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작전을 전개할 거점은 무수히 많다. 군도 통제하고 정보기관도, 공권력도, 언론도, 극우집단도, 기타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너무 많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참수작전’에 대해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한다. 어떠한 암살, 테러 시도도 무력화시켜야 한다. 광화문 난동 세력의 내란선동도 결코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과잉반응 보이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불과 3년 전 박근혜 탄핵 촛불을 계엄령 선포해 탱크로 진압하려고 계획한 게 지금 군부다. 그런데 미국은 그보다 더 잔인한 존재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2) 국민
① 자주정신으로 무장하자
우리 민족은 원래 높은 자주정신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반만 년 역사에서 무수한 외침이 있었고 이를 모두 자주정신으로 이겨내 오늘에 이르렀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한때 세계를 호령하다가도 흔적도 없어 사라진 민족이 많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끝내 살아남았으며 오늘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자주정신이 높기 때문이다.
수나라의 침입을 막아낸 고구려, 몽골의 침입에 끝까지 저항한 삼별초,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이 오늘에 이어져 대학생들이 주한미대사 관저를 넘고 온 국민이 주한미군 지원금 증액 강요와 지소미아 연장 압력을 부당하다고 규탄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생각할 때 매우 바람직하며 자주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야 한다. 온 국민이 자주의 기치로 단결해야 한다. 민족의 자주에는 여야가 따로 없고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민족문제에서는 모두가 뭉쳐야 한다. 자주정신으로 무장하자.
② 평화경제로 나아가자
한국 경제의 미래도, 우리 민족의 미래도 평화경제에 있다. 평화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이 속에서 민생도 꽃피울 수 있다. 남북경제협력을 기초로 광범위한 동북아 평화경제 - 일본은 빼고 – 로 가야 한다. 만약 미국이 이를 보장하면서 순응하고 한 담당자로서 참여한다면 배척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를 방해하고 냉전 체제를 유지하려 하고 한반도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이익을 가로채려 한다면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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