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10월 03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268] 북중, 북러 관계의 변화와 우리의 과제 ⑦
(이어서)
2) 파산한 대북 정책들
앞서 미국의 대북 정책이 총파산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파산하였는지 살펴보자.
● 북한 비핵화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 저지
미국은 지난 30여 년간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그것이 결국 자기를 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여섯 차례 이상의 핵시험을 통해 실질적 핵보유국이 되었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여섯 차례 핵시험으로 핵보유국이 되었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1차, 2009년 5월 25일 2차, 2013년 2월 12일 3차, 2016년 1월 6일 4차, 2016년 9월 9일 5차, 2017년 9월 3일 6차 핵시험을 하였다. 이 가운데 1차 핵시험은 플루토늄 원자탄, 2차 핵시험은 고농축우라늄 원자탄으로 추정되며, 3차 핵시험은 소형화·경량화 시험이었고, 4·6차 핵시험은 수소폭탄 시험이었으며, 5차 핵시험은 핵탄두 시험이라고 발표했는데 수소폭탄 핵탄두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북한은 2018년 4월 20일 조선노동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에 “첫째, 당의 병진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 과정에 임계전 핵시험과 지하 핵시험,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초대형 핵무기와 운반 수단 개발을 위한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여 핵무기 병기화를 믿음직하게 실현하였다는 것을 엄숙히 천명한다”라고 명시하였다. 북한이 처음으로 ‘임계전 핵시험’을 했음을 공개한 것이다.
임계전 핵시험(subcritical test)이란 연쇄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만 시험을 진행한 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나머지를 모의(시뮬레이션)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임계전 핵시험은 포괄적 핵시험 금지 조약(CTBT)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미국 등 핵보유국들이 종종 하는 핵시험으로 일각에서는 임계전 핵시험도 핵시험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5대 핵보유국만 개발(인도, 이스라엘도 수소폭탄을 개발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당사국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추정에 불과하다)한 수소폭탄까지 개발에 성공했고 이를 실전에 사용할 수 있게 소형화·경량화·규격화도 했으며 이미 ‘화산-31’이라는 이름의 전술핵탄두를 대량 생산하고 있다. 이 전술핵탄두는 총 8종의 무기에 탑재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정책은 완전히 파산했다.
미국은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도 막으려 했다.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 본토까지 날아온다면 미국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북한은 화성포-13형, 화성포-13형 개량형, 화성포-14형, 화성포-15형, 화성포-17형, 화성포-18형 등 6종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였다.
화성포-13형은 2012년 4월 15일 열병식에 처음 공개되었고, 화성포-13형 개량형은 2015년 10월 10일 열병식에 처음 공개되었다. 다만 두 미사일은 북한이 시험발사를 공개한 적이 없고 우리 군도 포착한 적이 없다. 북한이 2021년 개최한 국방발전전람회 영상을 보면 북한이 공개하지 않고 우리 군도 포착하지 못한 미사일 시험발사도 꽤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북한은 2017년 화성포-14형(7월 4일), 화성포-15형(11월 29일) 두 종류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또 2022년 3월 24일에는 화성포-17형, 2023년 4월 13일에는 화성포-18형을 시험 발사했다.
이처럼 북한은 다양한 종류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미국 본토 전역을 다양하게 타격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화성포-17형의 경우 다탄두 미사일로 미국 주요 목표물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고 심지어 남극을 거쳐 미국 남부를 타격하는 부분궤도폭격체계(FOBS)라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미국 본토 공격을 막겠다는 미국의 북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 저지 정책은 실패했다.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외에도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다른 수단들을 여러 방향에서 개발했다.
북한은 요격이 불가능한 극초음속 미사일을 2종 개발했는데 이는 미국도 미처 개발하지 못한 최첨단 무기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저고도로 비행해 레이더 포착을 조기에 할 수 없으며, 중간에 수직·수평 궤도를 바꾸는 능력까지 갖추어 요격이 불가능하다.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과 이에 맞는 신개념 핵공격잠수함도 개발했다. 잠수함은 한 번 물속으로 들어가면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미사일을 발사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어 궁극의 보복 무기로 꼽힌다.
북한은 사거리가 1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핵 수중 드론 ‘해일’도 개발했다. 바다 밑에서 핵폭탄을 터뜨려 쓰나미를 일으켜 함대나 항구를 공격하는 무기를 개발한 나라는 러시아를 제외하고 북한이 처음이다. 북한이 ‘해일’을 공개하기 전까지 아무도 북한이 핵 수중 드론을 개발한다는 정황을 몰랐고 가능성을 생각한 사람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의 급격한 무력 증강을 전혀 막지 못하고 있다.
● 대북 제재
미국은 대북 제재로 북한 경제를 무너뜨려 내부 혼란과 봉기를 유도하고 북한 정부를 굴복시키려고 했다.
미국의 대북 제재는 70여 년 전부터 있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대공산권 수출 통제위원회(COCOM)를 만들어 사회주의 국가에 경제 제재를 시행했으며 이를 이어 1996년 바세나르 협정을 체결해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에 경제 제재를 지속했다.
또 1950년 12월부터 적성국 교역 금지법을 북한에 적용하였고, 비슷한 시기 수출통제법도 적용해 경제 제재를 하였다. 1962년부터 대외원조법에 따라 대북 원조 제공을 제한하였으며 1988년부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지정해 별도의 경제 제재를 하였다.
이처럼 북한이 핵개발을 하기 전에도 미국은 11개 항목에 달하는 대북 제재를 하고 있었다.
이후 북한의 핵개발을 명분으로 미국은 독자 제재,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한 제재, 이른바 ‘제삼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를 통한 제3국 정부와 기업 압박 등 전방위적인 대북 제재를 시행했다.
특히 미국은 2016년 북한만을 겨냥해 ‘북한 제재와 정책 강화법(H.R.757)’을 제정하였고 2017년에는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H.R.1644)’을 추진했다가 ‘제재를 통한 미국의 적성국들에 대한 대응법(H.R.3364)’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또 각종 행정명령을 통해 북한을 이중, 삼중으로 차단했다.
이에 따라 각국은 북한과 거의 대부분 품목을 거래할 수 없으며 금융 거래, 노동자 파견도 할 수 없으며 북한 여행도 제한되었다. 심지어 해외에서 활약하는 북한 운동선수들도 연봉 지급이 대북 제재 위반이라는 이유로 퇴출당했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도 수익금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게 제재 위반이라며 채널이 폐쇄되었다. 아이들 예방접종을 위한 주사기 바늘도 금속이기 때문에 제재 대상이다.
인도적 지원은 면제 대상이라지만 절차나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2017년 12월부터 2019년 4월까지 면제받은 인도적 지원 사업은 21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승인 과정도 몇 개월씩 걸려서 긴급 지원이 필요한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같은 경우 제대로 지원할 수도 없다. 또 유엔 제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도 개별 회원국의 승인이 필요하고 미국에 미운털 박힐 것을 두려워하는 금융 기관과 민간 업자들의 장벽도 넘어야 한다. (정동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대북제재 연속기고 ①] 북한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제재 일괄 철회해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2019.4.11.)
심지어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 같은 국제기구도 북한 주재 사무소 운영을 위한 자금을 송금할 수 없어 직원들이 현금 뭉치를 들고 북한을 오가는 형편이다. (「WFP “대북제재로 7개월째 송금 막혀”」, 자유아시아방송, 2014.2.5.)
그런데 70년 넘게 이중, 삼중의 포위망을 구축했음에도 북한 경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북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기현상까지 보인다. 미국이 원했던 사회 혼란이나 정권 위기 징후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한국은행을 비롯한 국내외 기관과 전문가들은 북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다, 경제 상황이 지속해서 악화한다,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그러나 정작 북한 내부의 평가는 정반대로 나온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 영상을 봐도 경제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시골과 산간 오지까지 최고급 주택이 들어서는 등 몇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발전 양상이 눈에 띌 뿐이다. 또 주요 기념일마다 진행하는 기념행사를 보면 그 규모나 형식, 내용 전반에서 경제 상황이 좋다는 인상을 준다.
북한에 오랜 기간 거주했던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러시아 대사 역시 지난 6월 23일 대사관 페이스북에 공개한 글을 통해 “현재 북한 내에선 기근의 징후조차 찾아볼 수 없다”라면서 “식료품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지금도 충분히 있다”라고 증언했다.
결정적으로 미국 내에서조차 대북 제재가 실패했다는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2016년 9월 9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또 다른 제재를 통해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겠다는 한·미·일의 대응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의 의도는 북한이 협상에 나서도록 고통을 주겠다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명백하게 작동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오바마 정부에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총괄했던 데이비드 코언 전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2019년 12월 16일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주최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미국의 대북 제재가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는데 “이미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클린턴, 오바마 정부에서 대북·대이란 제재 업무를 담당한 전직 외교관 조지프 디토머스는 2022년 11월 5일 로이터통신 보도에서 “정책 실패다. 세대에 걸친 정책 실패다. 한 세대 전체가 대북 제재 업무에 투입됐는데 실패했다”라고 개탄했다. 같은 보도에서 바이든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대북 제재가) 북한의 프로그램을 막지 못했다는 건 절대적으로 사실이지만 제재가 없었다면 북한은 훨씬 더 나아갔을 것”이라며 ‘핵개발 속도는 늦추지 않았느냐’고 변명했다.
아에프페(AFP)통신이 2016년 2월 8일 입수한 330쪽 분량의 유엔 기밀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 전문가들은 “제재들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확대를 막지 못했다”, “북한이 제재에 불복하는 데 성공했다”라고 분석했다. 대북 제재를 진행하는 유엔조차 대북 제재가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다.
● 정치 공작을 통한 체제 붕괴 전략
미국은 여러 방대한 정보기구를 운용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정치 공작을 해왔다. 북한에도 이러한 정치 공작이 들어갔으며 체제 붕괴를 노린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미국의 공작은 미국 정보기관 단독으로도 이루어졌고 한국 정보기관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2012년 7월 19일 평양에서 특이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영철이란 탈북자가 나와서 한미 정보기관의 임무를 받고 김일성 주석의 동상을 파괴하려다 체포되었다고 자백한 것이다. 그는 한국에 이른바 동까모(동상을 까는 모임)라는 조직이 있으며 정보기관이 제공한 폭발물 투척기와 원격 조종기를 가지고 북한에 잠입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 씨가 동까모의 핵심 인물로 지목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한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이 2009년 연말 주요 탈북자 단체 대표 모임에서 ‘동상을 까는 모임’을 제안했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동까모’라는 약칭을 지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동까모’ 명의의 은행 계좌까지 만들어 공작금을 모았으며 2011년 9월께 미국에 가서 연방의원 관계자에게도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또 박상학 대표는 과거에도 다른 탈북자 단체가 동상 폭파를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미국은 동상 파괴를 통해 북한 내 혼란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2년 적발과 함께 북한이 강력한 보복을 경고하였고 이후 비슷한 이야기가 더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런 방식의 공작은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황장엽과 같은 고위급 탈북자를 이용한 공작도 시도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은 2001년 황장엽을 내세워 미국에 ‘북한 망명정부’를 세우고 이들을 앞세워 북한 내 혼란이나 내란, 내전을 유도할 구상도 있었다. 이는 미국이 쿠바를 상대로 이미 써먹은 수법이다. 미국은 1961년 미 중앙정보국이 훈련한 쿠바 망명자 1,500여 명을 무장시켜 쿠바를 침공하게 했다가 참패한 적이 있다.
그런데 ‘북한 망명정부’ 구상은 제대로 시도조차 못 했다. 탈북자들은 황장엽파와 반황장엽파로 나뉘어 미국의 지원금을 차지하려는 아귀다툼과 권력다툼에 빠졌고 이에 따라 어떤 사업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미국은 이른바 ‘김정남’을 이용한 공작도 시도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초기에 장성택을 앞세워 군사 정변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전 발각돼 장성택은 2013년 12월 체포, 처형되었다. 당시 국내 한 전문가는 장성택이 국내 정보기관을 접촉해 정변 준비를 암시하며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음을 공개하기도 했다.
탈북자 단체를 앞세운 대북 전단 살포도 정치 공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미국은 국무부 산하 ‘인권과 민주주의 기금(HRDF)’, 국립민주주의기금(NED), 디펜스포럼재단(DFF) 등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며 대북 전단 살포를 독려한다. 심지어 수잰 숄티 디펜스포럼재단 대표와 회원들이 직접 와서 탈북자 단체와 함께 대북 전단을 살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십 년째 계속된 대북 전단 살포가 어떤 효과를 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이처럼 북한 내부를 혼란에 빠뜨려 정권 붕괴까지 유도하려는 미국의 정치 공작은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북한에서 김정은 체제는 상당히 안정적이며 동요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는다. 2019년 베트남 방문이나 올해 러시아 방문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장기간 북한을 떠나 있어도 북한 사회에 별다른 조짐이 없는 것을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외교 고립 정책
미국은 북한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켜 외부 지원을 끊고 고사시키려 하였다.
1988년 테러지원국 지정이나 2017년 테러지원국 재지정, 2002년 부시 정부의 ‘악의 축’ 발언,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완전 파괴’ 유엔 연설 등은 북한에 등을 돌리라고 국제사회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마치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해 어떤 나라도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지 못하게 차단한 것과 마찬가지다.
또 미국은 틈만 나면 탈북자들을 앞세워 북한에 엄청난 인권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을 고립시키려 하였다. 심지어 일부 탈북자는 미 의회 청문회나 유엔 무대에 나가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인권 공세는 큰 힘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일단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의 인권 공세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게다가 미 국무부가 매년 발행하는 인권보고서가 각국의 반발을 불러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중국은 미 국무부의 인권보고서에 맞서 미국의 인권 실태를 폭로하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총기 사고, 인종 차별, 마약 범람, 거리에 넘치는 노숙자와 굶주리는 아이들 등 미국의 처참한 인권 실태가 알려지면서 미국의 인권 공세는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게다가 탈북자들의 증언이 허위라는 게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대북 인권 공세는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정치범 수용소’ 출신이라고 주장해 유명해진 탈북자 신동혁이 2015년 1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핵심 증언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시인하면서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신동혁의 증언은 유엔 인권결의안의 핵심 증거였기 때문에 이 결의안을 채택한 유엔 인권이사회의 권위도 땅에 떨어져 버렸다. 마찬가지로 ‘정치범 수용소’ 출신임을 자처한 이순옥이라는 탈북자의 증언도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나중에 이 씨가 사기꾼이며 증언도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미국은 북한과 우호적이었던 중국, 러시아를 회유해 대북 제재에 동참시켰다. 중국과 러시아마저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많은 나라들이 북한과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 사이의 단결, 반미 국가끼리의 협력 강화의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였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정치에서 자주를 강조하고 자립 경제를 추구해 왔기 때문에 대외 관계가 열악해졌다고 해서 체제가 붕괴한다거나 미국에 굴복하지는 않았다.
북한의 대외 관계는 미국의 대북 정책 파산과 함께 개선되고 있다. 중국, 러시아가 북한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베트남 등 여러 나라가 북한과 다시 손을 잡고 있다.
(계속)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