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08월 29일
기사 제목 : [한·미·일 정상회의] ① 미국의 70년 숙원, 한·미·일 삼각동맹
지난 8월 18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세 나라 정상은 삼각군사동맹에 한층 다가가는 합의를 하였다. 한·미·일 정상은 공동성명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서 “3국 간 파트너십의 새로운 시대를 출범”한다면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간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고, 3국 안보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한·미·일 3국이 안보조약만 맺지 않았지 사실상의 군사동맹 수준으로 손을 잡은 것이다.
이런 한·미·일 삼각동맹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끈질기게 추진해 온 정책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세계 패권을 쥐기 위해 소련 봉쇄 정책을 폈다. 당시 주요 전선은 유럽이었으므로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가 미국에 중요한 동맹 기구였다. 이와 함께 아시아에서는 소련과 함께 중국까지 봉쇄해야 했다. 최전선에는 한미동맹(1953년)이 있고, 그 뒤에는 미일동맹(1951년), 더 멀리에는 호주·뉴질랜드와 맺은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1951년),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1954년)가 있었다.
1954년 존 포스터 덜레스 미 국무장관은 미국, 일본, 한국, 필리핀, 대만을 묶는 동북아시아 조약 기구(NEATO)를 제안했다. 그러나 두 가지 사안으로 인해 기구 창설은 실패했다. 첫째는 한국인의 반일 감정이 매우 크다는 점이고 둘째는 일본이 전쟁을 포기한 평화헌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은 이 두 사안을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국에 한일 수교를 하고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도록 압력을 가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한일 수교를 강행한 배경이 여기 있다. 또 일본이 개헌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지원했다. 일본의 평화헌법 폐기는 군국주의화를 의미하기에 주변국의 격렬한 반대가 뒤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은 각각 1977년, 1986년 해산하였고 동아시아에서 북한, 중국, 소련을 봉쇄하는 포위망은 한미동맹, 미일동맹만 남았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의 경제력이 팽창하며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등 동아시아의 질서도 크게 변화하였다. 세계적으로도 미국의 국제 위상이 추락하면서 유럽과의 갈등이 커지고 유엔에서 미국의 영향력도 축소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은 이런 변화 속에서 한·미·일 삼각동맹 완성을 위해 박차를 가했다. 한일관계의 변화는 대부분 미국의 중재와 압력에 따른 것이었다.
1994년 4월 한국 국방부 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병태 장관이 일본을 방문했고 이듬해 한일 국방부 장관은 회담 정례화에 합의했다. 이후 한일 고위 국방 당국자 교류, 국군과 자위대의 교류가 이어졌다. 1998년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채택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이 시기를 두고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유사 동맹’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동맹에 가까운 관계로 발전하였다. (조진구, 「한미일 안보협력: 현상과 전망」, 『한반도 리포트 2022/2023』,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2022, 177쪽.)
노무현 정부 시기 한일관계가 악화한 가운데서도 미국은 한·미·일 3자 고위 당국자 회담을 비공개로 열어 한·미·일 삼각동맹을 계속 추진하였다. 2006년 5월 11일 일본에서 열린 한·미·일 3자 고위 외교 당국자 회담은 위키리크스를 통해 세상에 공개되었다. 2008년 7월 16~17일 일본에서 열린 3자 군사 회담과 이후 거의 매년 열린 3자 국방 회담도 나중에야 우연히 그 존재가 드러났다. 한국에서는 3자 국방 회담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3자 국방 ‘대화’라는 이상한 번역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미국은 동북아시아 조약 기구와 유사한 형태의 범태평양 안보협의체(PAPSU)를 설치할 구상을 하였다. (「한·미 동맹 6단계 로드맵 실체를 밝힌다」, 시사인, 2008.4.7.) 범태평양 안보협의체는 한·미·일을 축으로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하며 대만, 러시아를 참관으로 결합하는 구상이었다. 동북아시아 조약 기구든 범태평양 안보협의체든 핵심은 한·미·일 삼각동맹이다.
2010년 7월 한미연합훈련 ‘불굴의 의지’에 일본 자위관이 참관으로 참가하고, 그해 10월 중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훈련에 한·미·일·호주가 함께했으며, 12월 3~10일 실시한 미일 통합훈련에 한국군이 참관으로 참가했다. 12월 17일 개정된 일본 방위계획 대강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 협력을 위해 미국, 한국, 호주와 다자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 명시되었다.
2014년 7월 1일 워싱턴에서 3자 합참의장 회담이 열렸고 그해 12월 29일에는 3자 정보공유약정(TISA)도 체결되었다. 2016년 11월 23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이 체결되며 한일 군사협력은 한층 동맹에 근접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소미아 종료 논란이 일자 미국이 압력을 넣어 복귀시킨 것도 지소미아가 한일 군사협력의 상징적인 협정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로 3국이 준 동맹체가 된 것은 이처럼 길게는 70년에 걸친 미국의 한·미·일 삼각동맹 추진에 따른 것이다.
한편 21세기 들어 미국은 기존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동맹체를 만드는 등 무너지는 패권을 지키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일단 나토 회원국을 늘리며 유럽에서 러시아 방향으로 동진을 하는 한편 나토의 관할 범위를 아시아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나토 회원국 군대가 아시아에 와서 일본과 연합훈련을 하는가 하면, 한국과 일본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아시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려고 시도하는 등 나토를 유럽 기구에서 세계 기구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또, 미국·일본·인도·호주의 4자 회의인 쿼드(QUAD·2017년), 미국·영국·호주의 삼각동맹인 오커스(AUKUS·2021년)를 만드는 등 새로운 동맹체 창설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신생 동맹체는 아직 미국의 구상만큼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쿼드의 회원국인 인도는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7일 “한·미·일 협력은 오커스, 쿼드 등과 함께 역내외 평화와 번영을 증진하기 위한 강력한 협력체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한·미·일 삼각동맹이 오커스, 쿼드와도 연동됨을 의미한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한 후 이를 모체로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고 나토와 연결해 친미동맹을 만들고자 한다. 물론 친미동맹의 목적은 북·중·러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국제 질서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로지 미국, 일본만 맹목적으로 따르며 돌격대를 자처한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극히 우려된다. 우리는 이미 유럽에서 비슷한 처지의 나라를 목격하고 있다. 바로 우크라이나다. 지금이라도 윤석열 정권을 멈춰 세우지 않으면 한국은 제2의 우크라이나, 동아시아의 우크라이나가 될지도 모른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