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4.

9월 평양공동선언 1년을 맞아 그간 연재하던 [세계의 대격변이 다가오고 있다] 4편 발표를 1주일 미루고 특집글을 준비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또한 원래 4편으로 예정했던 연재 기획을 보완해 5편 ‘대격변의 미래’를 추가할 계획입니다.  
 
2018년 9월 18~20일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였다.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은 여러 측면에서 매우 뜻깊은 방문이었다.  
 
1. 9월 정상회담 주요장면 
 
9월 18일 평양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 일행은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평양시내 카퍼레이드를 하였다. 남북 정상이 무개차를 함께 타고 수많은 평양시민의 환호를 받으며 카퍼레이드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한이 얼마나 예우를 다해 준비했는지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특히 출발 전이나 카퍼레이드 중간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을 직접 만나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는 등 파격적인 장면도 나와 더욱 감동을 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카퍼레이드에 대해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오늘 오전에 저희 평양시민들이 앞으로 겨레, 북과 남의 인민을 위해 우리가 더 훌륭한 성과를 더 많이 만들어 내기를 바라는 그런 기대에 섞인 환호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그런 환대였습니다”라며 “열렬한 동포애를 보여주신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화답하였다. 

이튿날 저녁 문재인 대통령은 대동강수산물식당을 방문하였다. 일반 식당에서 대통령 일행이 평양시민을 만나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참으로 신선했다. 또 원래 남측 대표단만 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참석해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 일행에게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식사 후 남북 정상은 대집단체조 관람을 위해 5.1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놀랍고도 역사적인 장면이 나왔다. 공연이 끝나자 김정은 위원장이 연설을 하는가 싶더니 문재인 대통령을 소개해 주인공으로 내세워준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소개로 연단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7분 정도 연설을 하였다. 한국 대통령이 수많은 북한 국민 앞에서 연설을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 절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습니다”라고 하였고 평양시민의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마지막 날은 더욱 놀라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북 정상이 백두산 천지에 오른 것이다. 백두산을 오르고 싶다던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일정이었다. 변덕 심하기로 유명한 백두산 천지도 화창한 날씨로 남북 정상을 맞이하였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남북 정상이 통일을 다짐하는 모습은 온 겨레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백두산 천지의 물이 마르지 않듯 이 천지 물에 새 역사의 붓을 담가서 북남 간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야겠습니다”라며 뜻깊은 말을 남겼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정숙 여사가 천지 물을 담기 위해 자세를 낮추자 리설주 여사가 옷이 젖지 않도록 재빨리 옷깃을 잡는 장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 다시 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면모

9월 평양남북정상회담은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한국과 전 세계에 북한 현지와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이 생중계로 공개되었고, 4·5월에 있었던 정상회담과 달리 3일이나 지속된 일정이어서 다양한 모습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동안 머릿속에 있었던 조작된 북한의 모습이 아닌 현실의 발전한 북한 모습에서 사람들은 놀랐고,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본 김정은 위원장의 면모 역시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렸기에 사람들은 더욱 충격을 받았다. 

한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를 감탄하게 한 김정은 위원장의 면모 가운데 주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김정은 위원장의 자신감을 보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5.1경기장 연설을 보며 많은 이들이 ‘당연히 연설 내용은 남북이 사전 조율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15만 명이나 되는 평양시민 앞에서 한국 대통령이 최초로 연설을 하는데, 더구나 불과 3년 전만 해도 전면전 위기까지 갔던 관계인데 아무런 조율 없이 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은 폐쇄적이고, 일상적인 통제가 이루어지는 억압적 사회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2018년 10월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달라거나 어떤 말은 하지 말아 달라거나 이런 요구가 없었다. 사전에 연설 내용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연설의 시간도 전혀 제약하지 않았다”며 “대단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라고 회고했다.

사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도 2018년 전까지 남북관계는 긴장과 대결의 연속이었다. 정권교체의 여파로 사회 곳곳에서 적폐청산의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유독 남북관계에서는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이 크게 바뀌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에 ‘대단한 신뢰’를 보여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감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감이 있으면 억압과 통제가 필요 없고, 폐쇄적일 이유도 없다. 생중계로 지켜본 북한에서 별다른 억압과 통제의 분위기나 폐쇄성을 느끼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다. 첫날 카퍼레이드를 하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과 접촉할 때 아무런 제지도 없었고 눈치 보는 분위기도 없었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감이 있기에 김정은 위원장은 통 큰 모습, 열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 김정은 위원장의 겸손성을 보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 기간 내내 겸손한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첫날 백화원영빈관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먼저 내려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맞이하였고 그 자리에서 “발전된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가 좀 초라하다”고 하였다. 목란관 환영만찬에서 서울 답방을 권하는 이들에게 “서울 시민들한테 환영받을 만큼 일을 많이 못 했다”고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겸손성은 두 가지 면에서 눈길을 끌었다. 

먼저, 원래 정상외교가 겸손성 보다는 국력을 과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대비되었다. 국익을 위해 어떻게든 상대 국가보다 우위에서 협상을 이끌어가려는 게 정상외교의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반대로 자신을 낮추고 문재인 대통령을 높이 내세워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천성이 겸손하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남북문제,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는 서로 대결하고 ‘내 것’만 챙기기보다는 양보하고 협력해야 풀린다는 점을 신념으로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이보다 더 주목할 부분이 있다. 당시, 2018년 9월의 북한이 세계적으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었느냐와 연결된다. 기나긴 북미대결 끝에 2017년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은 미국을 제압하고 북중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연달아 하며 승승장구하였다. 세계 최강을 자처하던 미국의 대통령이 연일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극찬하며 잘 보이려 하였다. 국제 사회에 꿀릴 것 없는 최고 경지에 오른 시기가 바로 2018년 9월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은 권세에 빠져 안하무인의 자세를 보인다. 예를 들어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대통령들은 미국 중심의 ‘세계 신질서’를 선언하고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시하며 이라크,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했고 각종 국제협약들을 파기하였다. 이런 막무가내 폭군 행패에 친미 동맹국들조차 고개를 젓고 미국과 거리가 멀어질 정도였다. 

한 나라의 국제 위상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그 나라의 지도자가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도, 한국 국민의 마음도, 8천만 겨레의 마음도, 전 세계의 탄복도 한 품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김정은 위원장의 민족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보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남측 대표단에게 보인 최상의 배려와 최고의 정성에서 우리는 남북관계를 어떻게든 발전시켜야 한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대표단 일행이었던 김재현 산림청장도 기자간담회에서 “남북교류에 대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상회담 환영만찬사에서 “역사와 민족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과 의무를 더욱 절감”하였다고 했으며 기자회견에서는 “(9월 평양공동선언에) 새로운 희망으로 높뛰는 민족의 숨결이 있고 강렬한 통일의지로 불타는 겨레의 넋이 있으며 머지않아 현실로 펼쳐질 우리 모두의 꿈이 담겨져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민족을 위해, 통일을 위해 정상회담을 한다는 의미다. 

또 서울 방문에 대해서 “태극기부대 반대하는 것 조금 있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며 강한 의지를 피력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한 대집단체조도 원래 명칭인 ‘빛나는 조국’을 쓰지 않았고 내용 역시 기존의 70%를 수정해가며 체제선전 부분을 빼 남측 대표단이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과 체제대결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9월 평양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북한 국민 전체가 통일에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모든 일정은 통일을 위한 것으로 일관되었다. 대표단 일행이었던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모든 일정을 김정은 위원장을 정점으로 북한 주민 모두가 온 정성을 다해 준비했고, 대표단을 환영해줬습니다”라고 하였다. 

우리 언론은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북한을 이야기할 때는 소수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권력자들이 사리사욕에 여념이 없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극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된 1% 대 99%의 양극화 사회가 당연시되다보니 그 기준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것 아닐까싶다. 하지만 생중계로 직접 본 북한의 모습은 달랐다. 수많은 카메라가 흠집을 잡으려고 주시하는 속에서는 조작도 연출도 먹힐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사리사욕이나 개인을 돋보이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반북세력의 공격 빌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을 할 때도 자기 이야기는 없이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을 높이는 데에만 모든 시간을 투여하였다. 방북 대표단에 따라간 걸 치적으로 내세워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과 비교된다. 

이제는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볼 때가 되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체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었는지 단서를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도자가 사심이 없고 민족을 위한 일념만 가지고 있기에 국민과 통일단결을 실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3. 오늘의 과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부푼 꿈을 꾸었던 1년 전에 비해 지금 우리의 처지는 매우 열악하다. 서민 경제는 힘들고 적폐 청산은 멈췄고 남북관계는 정체됐으며 일본은 경제공격하고 미국은 뭐라도 더 강탈할 게 없나 두리번거린다. 내외 적폐세력들은 하나로 뭉쳐 촛불의 성과를 뒤엎고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의 상황에 아랑곳 않고 지역 정세와 국제 질서는 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북한의 ‘새로운 계산법’ 요구에 트럼프 미 대통령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해임하고 새로운 협상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한미군 철수와 대북제재 무력화는 머지않아 현실이 될 듯하다. 이는 한반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한국에도 엄청난 격랑을 일으킬 것이다. 

이런 속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익을 우선하고 민생을 향상시키는 데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급변하는 시기에는 어영부영 적당히 타협하는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의 촛불 자존심을 극대화하려면 이제라도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해야 한다. 북미대화에 기대서 뭔가 얻어 보려는 얕은 수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주변 눈치 보지 말고, 주변국에 기대지 말고 자기 할 일을 줏대 있게 해나가야 한다. 여기에 우리 민족과 한국 경제, 민생의 활로가 있고 미래가 있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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