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05월 10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245] 미국인의 치유할 수 없는 절망 ①
■ 미국 체제의 한계 봉착
미국의 차기 대선에서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관해 지난 4월 14~17일(이하 날짜는 모두 현지 시각) 야후뉴스와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가 미국 유권자 1,53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중복 응답 가능)를 한 결과 응답자의 38%가 “피로를 느낀다”라고 하였고 29%는 두려움을, 23%는 슬픔을 느낀다고 하였다. 반면 23%는 희망을, 8%는 긍지를, 7%는 감사를 느낀다고 하였다.
부정적 응답이 90%, 긍정적 응답이 38%로 미국인들은 바이든 대 트럼프 대선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같은 조사에서 바이든의 차기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응답자는 70%, 트럼프의 출마를 반대하는 응답자는 60%였다. 한마디로 대선 후보로 둘 다 싫다는 것이다.
이런 미국인의 여론은 단순히 바이든, 트럼프 개인을 향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미국 민주당, 공화당에서는 두 사람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다른 후보군은 경쟁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이다. 따라서 미국인의 여론은 민주당, 공화당 다 싫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만약 미국인이 현재에 만족한다면 여당인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을 선호할 것이다. 현재에 불만이 있지만 더 나은 미래를 바란다면 야당인 공화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런데 둘 다 아니라는 건 현재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에도 기대나 희망이 없다는 의미다. 지금의 미국 체제가 한계에 봉착했다고 할 수 있다.
■ 중국을 포위하려다 역포위당한 미국
미국인이 체제의 한계를 피부로 느끼는 영역은 아무래도 경제 분야가 가장 클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예금 대량 인출(뱅크런) 사태가 주요 관심사다.
지난 3월 실버게이트 캐피탈, 실리콘밸리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이 파산하면서 미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데 이어 이번엔 미국에서 14번째로 규모가 큰 은행인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이 파산했다.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자산 규모가 무려 2,330억 달러나 돼 미국 역사상 2번째로 큰 은행 파산으로 기록되었다. 미국 금융당국은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JP모건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을 인수하도록 하였다.
연방준비은행이 1천억 달러(130조 원)를 긴급 대여하고 미국 내 11개 은행이 긴급자금 300억 달러를 예치했음에도 파산을 막지 못한 이유는 예금 대량 인출 사태 때문이었다.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고객의 68%는 예금보장 한도 25만 달러를 넘는 고액 자산가였다. 이들은 은행 위기 소문이 퍼지자 한도 이상의 예금을 날릴까 봐 4월에만 1천억 달러 이상의 예금을 서둘러 꺼내 갔다.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전체 예금의 40%가 사라진 것이다.
이 때문에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1일 예금보장 한도를 올려야 한다고 의회에 권고하기도 했다.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파산 후 팩웨스트 뱅코프, 웨스턴 얼라이언스 뱅코프의 주가가 각각 43%, 27%씩 떨어지는 등 ‘뱅크런’에 이어 ‘스톡런(증권회사의 파산을 우려해 주식 투자자가 증권회사에서 한꺼번에 돈을 인출하는 현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은행 파산의 배경에는 미중 경제전쟁도 있다. 미중 경제전쟁의 여파로 미국 국채 최대 고객이던 중국이 미국채를 계속 팔았고, 미국 재무부와 연준은 미국 은행에 중국 대신 미국채를 사라고 권했다. 일단 미국채는 미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가격이 보장되는 안전 자산이므로 미국 은행들은 너도나도 미국채 비중을 높였다.
그런데 미국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미국채 가격은 반대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그리고 각 은행에 예금 대량 인출 사태가 발생하자 은행은 고객의 예금을 돌려주기 위해 자산을 팔아치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미국채를 팔려고 보니 가격이 내려가 있다. 물론 만기까지 기다리면 제값을 받겠지만 당장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손실을 보면서 팔아야 했다.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 과정에서 이 은행이 보유한 대부분의 손실 자산은 미국채였음이 드러났다.
은행뿐 아니라 부동산도 불안하다. 상업용 부동산이 비어있는 비율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모건스탠리는 상업용 건물의 평가 가치가 최고치 대비 40%나 급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미국 경제가 불안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불안감도 크고 현실에 불만이 쌓이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경제 위기가 처음도 아니고 당연히 언젠가는 좋아질 것으로 여길 만한데 이번엔 그렇지 않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투기 전문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7일 연례 주주 모임에 참석해 폭넓은 경기 하강을 이유로 올해 경제 침체가 예상된다고 하였다. 버핏은 지난 1분기 동안 보유 중인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다. 같은 날 블룸버그통신도 고금리, 정부 부채 한도 초과,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의 요인을 꼽으며 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런 단기적 전망 외에 장기적으로도 미국 경제는 내리막길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 미국 경제의 주된 관심사는 중국이다.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면 결국 중국에 경제 주도권을 빼앗기고 미국은 2등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게 미국의 우려다.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가로막는다거나, 탈동조화 혹은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통해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에서 중국을 고립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세계 경제에서 ‘도전자’ 중국을 추방하고 미국이 확고한 1위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안에서는 중국과의 경제 분리가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4월 20일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워싱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한 강연에서 “미국은 중국 경제와 탈동조화하려 하지 않는다. 두 경제의 완전한 분리는 양 국가에 재앙이 될 것이다”라면서 기간의 대중 경제 고립 정책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또 같은 날 일본을 방문 중이던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 대표도 기자회견에서 “중국 경제의 큰 규모와 중요성을 고려할 때 중국과의 관계를 흔드는 것은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바이든 정부의 모든 구성원이 중국 경제를 분리하는 탈동조화의 의도가 없음을 매우 분명히 하고 있다”라고 몸을 사렸다.
전쟁이든 경제든 원래 포위는 강자가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포위하면 성공할 수도 없고 오히려 약자가 역포위당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이 꼭 그 꼴이다. 탈동조화니 공급망 재편이니 하는 말을 풀어 설명하면 결국 중국을 경제적으로 포위해서 고립하겠다는 말이다. 미국이 강자고 중국이 약자인 줄 알았는데 막상 경제적 포위를 해보니 반대임이 드러났다. 미국과 함께 중국을 포위해 줄 것으로 기대한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미국이 역포위될 형국이 되었다.
그러니 인제 와서 ‘우리는 중국을 포위할 생각이 없었다’는 식으로 발뺌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중국 포위망을 푼다고 해서 미국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애초에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국을 포위한 것인데 포위를 푼다고 경제가 살아날 리는 없다. 그러니 아마도 지금 미국 내에서는 포위를 풀지 계속할지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미국 경제의 장래가 암담함을 느낄 것이다.
경제뿐 아니라 군사 영역에서도 미국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탈레반에 쫓겨 야반도주하듯 기습 철수하면서 미군이 대망신을 당했다. 2022년에도 우크라이나를 지켜줄 것처럼 호언장담하다가 막상 전쟁이 터지니 참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무기만 제한적으로 지원하면서 또 한 번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미국인들은 미국 군사력이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경제도 암담한데 군대도 엉망이라는 사실에 미국인은 슬픔과 절망,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 인간 생지옥으로 변화하는 미국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유럽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 원주민을 내쫓고 약탈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에서 원래 살던 원주민은 이제 거의 없고 대부분이 약탈자의 후손이거나 노예로 끌려간 사람들의 후손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이민 혹은 불법 이주를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인에겐 미국이 조국이 아니다.
조국은 조상 때부터 살아온 나라를 말하며 영어로는 파더랜드(fatherland·아버지 나라) 혹은 마더랜드(motherland·어머니 나라)다. 하지만 미국인은 돈을 위해 모였기 때문에 마더랜드 대신 ‘머니랜드(money land)’가 있다. 돈이 곧 조국인 셈이다.
그래서 나라에 돈이 많으면 애국심이 생기지만 나라에 돈이 없으면 애국심도 사라진다. 그리고 애국심 뒤에 감춰진 ‘애돈심’이 드러난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시카고대 여론조사센터가 지난 3월 1~13일까지 미국인 1,010명을 대상으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그 결과 ‘돈’이 1위(43%), ‘애국심’이 2위(38%)였다. 돈을 위해서는 나라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한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다. 사회를 이뤄야만 살아갈 수 있고 따라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 있을 때 안정을 느낀다. 국가라는 공동체의 소속감을 잃어버린 미국인은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총기 사건과 마약 범람이다.
미 질병통제센터는 지난해 하루 평균 총기 관련 범죄·사고 사망자는 무려 124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이는 1차 세계대전(92명)보다도 많은 수다.
4월 13일 미 미주리주의 16세 소년이 주소를 잘못 찾아 엉뚱한 집 초인종을 눌렀다가 집주인이 쏜 총에 맞아 다치는 일이 있었다. 84세의 집주인은 경찰에 “누군가 침입한다고 생각해 무서웠다”라고 진술했다. 15일 뉴욕에서는 20세 여성이 차를 타고 길을 헤매다 어떤 집 앞에서 집주인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18일 자정 텍사스주의 한 주차장에서는 10대 여성들이 실수로 엉뚱한 차 문을 열었다가 차 주인이 쫓아와 총을 난사, 2명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이처럼 사소한 실수가 총격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위의 84세 집주인 말처럼 미국인이 일상적인 공포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공포는 다름 아닌 이웃에 대한 공포다. 자기 이웃이 언제 적으로 돌변해 자기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가 먼저 이웃을 쏴죽이고 있는 것이다. 만인을 향한 만인의 전쟁이다. 자기 주변의 모든 이가 적이라면 이야말로 생지옥이 아닐까 싶다.
(계속)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