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8.


1. 현재 상황

미국의 인플레이션, 물가 오름이 심각하다. 미국의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아래 물가상승률)는 3월 8.5%, 4월 8.3%, 5월 8.6%로 3개월 연속 8% 이상을 기록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전년 동월 대비) ⓒ연준경제데이터(Federal Reserve Economic Data)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2008년 이후로 5%를 넘은 적이 없고 대부분 2.5%를 밑돌았다. 그러던 물가가 2021년 치솟기 시작해 현재 8.6%까지 뛰었다.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섰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올해 3월 기준금리를 0.25% 인상했다. 미국 물가상승률은 3월 8.5%에서 4월 8.3%로 다소 하락했다. 많은 전문가가 금리 인상으로 물가상승률이 정점을 찍고 내림세로 돌아섰다고 생각했다. 연준도 자신감을 얻은 듯 물가를 분명하고 확실히 잡겠다며 5월 4일 금리를 0.5% 인상했다. 

금리를 올릴 때 통상 0.25% 단위로 올린다. 그래서 한 번에 0.5%를 올리는 걸 한 단계를 건너뛰었다고 해서 ‘빅 스텝’(큰 걸음)이라고 부른다. 미국이 빅 스텝을 한 건 2000년 5월 이후 처음이다. 

그런데 6월 10일 발표된 5월 물가상승률은 8.6%였다. 잡히는 줄 알았던 물가상승률이 다시 올랐다.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알리안츠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수석 경제고문은 “지금은 완전히 통제력을 잃은 상태”라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공포에 빠진 미국은 더 강한 대응책을 갈구했다. 연준은 6월 15일 빅 스텝을 넘어 한 번에 금리를 0.75%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연준은 5월 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었는데, 5월 물가상승률을 보고 태도를 바꿨다. 심지어 연준은 7월에도 연속으로 자이언트 스텝을 할 거라고 예고했다. 자이언트 스텝을 한 것도 1994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인데, 두 번 연속으로 자이언트 스텝을 한다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다.

자이언트 스텝은 전 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주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월 19일 미국 경제학자 5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이 44%로 집계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때의 38%보다 높은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미 경기침체가 왔거나 그 직전에나 볼 수 있을 높은 수치”라고 우려했다.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가 5월에 전 세계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임원 750명을 조사한 결과 60%가 2023년 말이면 경기침체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

0.75%라면 1%도 안 되는데 그 정도 금리를 인상한 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걸까? 이에 대해선 미국이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던 1980년과 1994년의 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980년 자이언트 스텝은 1970년대 석유파동을 계기로 촉발됐다. 석유 가격이 폭등하며 1976년 5%를 밑돌던 물가상승률이 1979년 11%로 치솟았다. 한국도 타격을 받아 1973년 3.5%였던 물가상승률이 1974년 24.8%가 되었으며 1979년 18%를 지나 1980년 30% 가까이 올랐다.

이때 미국이 1979년 11%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1981년까지 19%로 올리는 과정에서 자이언트 스텝을 했다. 자이언트 스텝이 비상상황에서 이뤄지는 조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이언트 스텝의 여파는 컸다. 1982년이 되자 물가가 진정됐지만, 실업률이 10%대로 치솟고 기업들이 줄도산하는 등 급격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980년 -0.3%를 기록했다. 1981년 2.3%로 반등했지만 1982년 다시 -2.1%로 떨어졌다. 

미국은 1994년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1994년부터 1년 동안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빠르게 인상했다. 당시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에도 충격을 주었지만, 더 주목해서 들여다볼 점은 세계적인 경제 파국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미국 금리가 낮았을 때 미국 자본은 이자율이 높은 신흥국에 대거 들어갔다. 그런데 미국 금리가 급격하게 대폭 오르자 빠르게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1994년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돈을 돌려주어야 했는데 당장 가지고 있는 달러 보유량이 부족해 달러를 내어줄 수 없어 국가가 부도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 외환위기는 1990년대 후반에 이르자 아시아까지 번져 한국의 IMF사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이언트 스텝을 할 정도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다른 나라에 치명상을 입힐 만큼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6월 28일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세 차례 인상된 결과 1.5~1.75% 수준이 됐다. 연준은 최근 공개한 반기 통화정책보고서에서 기준금리를 올해 안에 4~7%까지는 올려야 물가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4%에 도달하려면 최소 자이언트 스텝을 1번, 빅 스텝을 3번 해야 한다. 7% 같은 경우엔 남은 6개월 동안 매월 자이언트 스텝을 한다 해도 도달할 수 없다. 기어이 기준금리를 7%까지 올려놓고자 한다면 기준금리를 1%씩 올리는 조치를 3번은 해야 한다. 그런데 기준금리 1% 인상은 시장에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연준이 공개한 반기 통화정책보고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조치를 해야 물가를 잡을까 말까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기침체 가능성을 감수하더라도 물가를 잡겠다”라고 선언한 상황이다.

자이언트 스텝을 미국과 서방 경제가 전반적인 파국으로 가는 신호탄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금리 인상으로 미국의 경기침체가 촉발되면 세계적으로 수요를 위축시키고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려 세계 경기침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스리랑카는 이미 국가부도를 선언했고 잠비아와 레바논도 국가부도 직전이다.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파키스탄도 심상치 않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물가상승률이 연 60%에 달했고 이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52%로 올렸다. 미국의 금리가 올라가는 데 따라 이런 위기가 더 심해지고 더 많은 나라로 퍼질 수 있다.

 

 

 

 

 

2. 돈 문제

미국의 경제 상황이 어떻게 해서 이 지경까지 된 것일까.

1) 인플레이션(Inflation)이란?

인플레이션이란 시중에 돈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돈이 늘어나는데 살 수 있는 상품의 양은 그대로면 물건 가격이 올라간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은 물건 가격이 오른다는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물가가 급격하게 오르면 사람들이 돈을 적게 쓰게 되어 경제 불황을 일으킬 수 있다. 또 급격한 물가 오름은 물가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정권을 붕괴시켜 한 나라에 정치적 위기를 불러오기도 한다.

물가 오름을 해소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양을 줄이거나 상품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유통되는 돈을 줄이는 것을 긴축이라고 한다. 자이언트 스텝 같이 금리를 올리는 것이 바로 긴축통화정책이다. 

금리는 쉽게 말하면 이자율이다. 금리가 높으면 은행에 돈을 예금했을 때 받는 이자 그리고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때 내야 하는 이자가 늘어난다. 

예를 들어 2020년 6월 한국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2~4%대였다. 금리가 4%일 때 2억 원을 대출받았다면 이자는 1년에 8백만 원, 한 달에 67만 원이다. 

현재 미국 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한국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8%를 돌파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분석대로 대출 이자가 8%가 된다면 2억 원에 대한 대출 이자는 연 1,600만 원, 월 130만 원으로 늘어난다. 

 

이자 부담이 무거워지면 대출을 갚으려는 경향이 커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금리 인상을 통해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한다. 돈이 줄면 물가상승률도 내려갈 것이다.

문제는 이자율을 높이면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는 과정에서 미국 경제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돈이 늘어난 이유

지금 물건 가격이 심각하게 오를 만큼 많은 돈이 풀린 건 무엇 때문인가.

돈이 늘어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제성장이 일어날 때다. 취직도 잘되고 월급도 오르고 기업들의 이윤도 늘어나면 나라에 돈이 많아진다. 이때 경기가 너무 과열되지 않도록 금리를 올리는 조치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 물가가 이런 이유로 오르는 건 아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2020년 3월 보고서에서 18세에서 64세 사이의 미국인 중 44%가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위 20% 미국인의 임금은 2008년 4,351달러에서 2020년 4,001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좋은 일자리/나쁜 일자리’로 표현할 수 있는 고용의 질 지표(Job Quality Index)도 2008년 1월 87.29에서 2021년 7월 81.85로 악화했다.

이 자료들은 미국에서 일자리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인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에서 알바로 전락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미국에서 고용률이 높다고 하지만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든다. 최근에도 테슬라는 정규직의 3.5%, 약 6,000명을 감축하겠다고 예고했고 인텔은 모든 고용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으며 미국 자동차회사 스텔란티스는 무기한 정리해고를 선언했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미국인은 건당 임금을 받는 배달노동 같은 불안정한 일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미국이 물건 가격이 심각하게 비싸질 정도로 경제 호황을 맞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고용의 질 지표(Job Quality Index, JQI) ⓒ미국 번영을 위한 연합 (Coalition for a Prosperous America)



그러면 미국의 통화량은 어떻게 늘어났을까? 경제성장을 하지 않고도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빚을 내는 것이다. 

부자나 유수의 기업들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빚도 많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자산은 2012년 181조 원에서 2022년 3월 439조 원으로 늘어났는데, 부채도 60조 원에서 124조 원으로 늘었다. 미국 기업 애플은 총자산 457조 원 중 자기 자본은 86조 원뿐이고 나머지는 빚이다. 부채 비율이 431%가 넘는다. 

부자와 큰 기업들은 왜 빚을 낼까? 100억 원을 가진 사람이 자기 재산을 담보로 100억 원을 대출받으면 200억 원짜리 건물을 사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돈이 많으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대출은 특혜와도 같다. 그래서 빚도 자산이라는 말이 있고 실제로 자산으로 집계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사람들이 돈을 많이 써야 한다.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돈을 많이 쓰려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은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대출을 권장했다. 기업이 대출을 받아 공장을 새로 짓는 등 투자를 늘리면 그만큼 일자리가 창출되어 국민의 소득이 늘어난다. 국민도 대출을 받아 소비하면 기업이 성장하고 그러면 일자리가 창출된다. 대출을 권장하는 건 이런 선순환을 끌어내겠다는 논리다.

한국에서 빚을 내어 소비를 늘리게 하는 정책을 시도한 사례가 있다. 1997년 IMF사태로 경기침체가 일어나자 1999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신용카드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이다. 이번 달 월급이 100만 원이면 원래대로라면 100만 원만큼만 소비할 수 있지만, 신용카드를 갖게 되면 미래에 받을 임금을 당겨와 150만 원, 200만 원도 지출할 수 있게 된다.

신용카드 규제가 풀리자 은행들은 신용카드를 마구잡이로 발급했다. 번화가에 가판을 설치해 소득이나 신용을 따지지 않고 사은품이나 현금 지급, 연회비 대납을 해줘 가며 신용카드를 살포했다. 미성년자도 서명만 하면 신용카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며 소비를 조장하는 카드회사 TV광고가 쏟아지던 것도 바로 이때다. 그 결과 1998년에서 2002년까지 오는 동안 경제활동인구 1인당 보유 카드 수는 2.0장에서 4.6장으로 늘어났고 신용카드 사용액은 64조 원에서 623조 원으로 10배 급증했다. 

그러나 신용카드 사용액이 10배 증가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소득이 10배로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지 않아 카드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카드빚을 다른 카드로 메우는 소위 ‘돌려막기’도 횡행했다. 결국 2002년부터 신용카드 연체율이 치솟았고 2004년 신용불량자가 361만 명에 이르렀다. 외환위기가 온 1997년 신용불량자가 143만 명 정도였으니, 엄청나게 폭증한 것이다.

미국도 경기부양을 위해 빚을 늘리는 걸 장려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달러를 대량으로 뿌리는 정책을 폈다. 미국은 이런 돈 뿌리기를 '양적완화'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그 결과 총 달러 통화량이 2008년 1월 3조 5,000억 달러에서 2022년 1월 7조 7,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14년 만에 달러 통화량이 2배로 껑충 뛰었다. 

달러를 뿌린다고 해서 재난지원금처럼 국민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는 것은 아니다. 연준이 발행한 달러는 금융기관으로 들어가고 금융기관이 대출을 통해 기업과 국민에게 유통한다. 

미국은 2010년 4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기준금리를 0.75%로 유지했고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 4월부터 최근까지는 금리를 0.25% 수준으로 더 낮췄다. 이 정도면 실질 이자율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해서 ‘제로금리’라고 부른다. 더 나아가 유럽이나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기도 했다. 예금을 하면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야 한다. 저축하지 말고 대출받아서 소비를 늘리라는 뜻이다. 

이런 정책에 따라 미국의 빚이 늘어났다. 미국의 가계+정부+기업 부채*는 2020년 1월 미국 GDP 대비 747%에서 2021년 3월 856%까지 늘어났다. 1년 만에 미국 GDP만큼의 빚이 늘어난 것이다.

*연방 정부 및 주 정부 부채, 가계 및 비영리단체 부채, 비금융기업 및 일부 금융기업 부채

 

 

 

▲실질 시중 통화량 ⓒ연준경제데이터

 

▲미국 국가 총부채: 연방 정부 및 주 정부 부채, 가계 및 비영리단체 부채, 비금융기업 및 일부 금융기업 부채 ⓒCEIC

 

 

이렇게 빚으로 경기부양을 하면 천문학적인 돈이 급격하게 유입되어 필연적으로 물건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러 전문가가 조만간 폭탄이 터질 것으로 예측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의 소득이 늘어서 돈이 많아지는 건 건강한 경제성장이지만, 소득은 줄어드는데 빚이 늘어나서 물건 가격이 오르면 거품이고 유해하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를 잡겠다고 이자율을 높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 집을 샀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5억 원이 있고 5억 원을 대출받아 10억 원짜리 집을 샀다. 그런데 금리가 대폭 인상되어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면 집을 파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너도나도 집을 팔려고 내놓으면서 집값이 떨어진다. 만약 집값이 10억 원에서 5억 원으로 하락하면 어떻게 되는가. 집을 판 돈으로 대출 원금을 갚고 나면 빈털터리가 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 일본도 장기 불황을 겪으며 부동산 거품이 꺼졌다. 1990년 3,600만 엔이던 아파트가 2010년 450만 엔으로 하락하는 식이었다. 절반도 아니고 거의 1/8 수준으로 낮아졌다. 

일본처럼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있었다.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이 한껏 과열된 상태에서 대대적인 금리 인상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번에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만약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여 사람들이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할 정도로 집값이 폭락한다면 대출을 내준 은행까지 무너질 수가 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바로 이렇게 해서 일어났다. 당시 금융위기의 신호탄을 쏜 리먼 브라더스는 부실 주택담보대출을 남발했다가 부동산 거품 붕괴로 부채 700조 원을 남기고 파산했다.

이래서 빚이 증가함으로써 유발되는 물가 오름은 매우 위험하다. 물가 오름세가 워낙 가팔라서 이대로 둬도 경제가 파탄 나고,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인상한대도 파국을 맞을 수 있다.

3) 늘어난 돈은 어디 쓰였나

미국이 공급한 돈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 대부분 부동산, 가상화폐, 주식시장에 투자했다.

사람들이 빚을 낸 돈을 생산적인 분야에 썼으면 미국 경제가 어느 정도 버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 제조업 기업에 투자했고 그 기업은 투자받은 돈으로 공장을 확장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설사 기업이 망하더라도 공장이라는 실물은 그대로 남는다. 그러면 누군가가 공장을 인수해서 생산설비를 가동할 수 있다. 이 경우 주식이 하락할 수는 있어도 0이 되진 않는다. 물론 주식도 휴짓조각이 될 수 있지만 되살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주식투자를 해도 서비스업에 투자했으면 공장 같은 실물이 없어 피해가 커질 수 있다.

특히 가상화폐는 실체가 없다. 가상화폐의 가치를 떠받쳐줄 실물이 없다. 가상화폐에 아무리 많이 투자해봤자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상품이 생산되는 건 아니다. 가상화폐는 완전히 뜬구름, 신기루다. 길을 걷다 발에 차이는 돌멩이를 사고파는 것보다도 못하다. 

가상화폐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나타난 게 루나 사태다. 가상화폐 중 하나인 루나는 5월 초까지만 해도 개당 14만 원대에 거래되었지만, 급격히 가치가 하락해서 한 달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28만 명이 투자했던 시가총액 30조 원의 가상화폐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상화폐 시장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1천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것도 2021년 11월에는 4천조 원 정도였던 게 가치가 절반 이상 증발한 상태인데도 아직 규모가 거대하다. 이 가상화폐 시장이 붕괴하면 상당한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

부동산으로 들어간 돈은 어떨까? 부동산은 땅과 건물이라는 실체가 있기는 하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다고 해서 가상화폐처럼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부동산도 부동산 자체로는 생산성이 없다. 땅에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물건을 생산해야 비로소 부동산이 유의미한 기능을 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그 자체로 어떤 가치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졌을 때 리먼 브라더스는 속수무책으로 파산할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세계적인 경제 충격으로 이어졌다. 만약에 리먼 브라더스가 돈을 투자해서 공장을 지었으면, 설령 파산하더라도 공장 설비를 팔아 피해를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부동산 거품은 2008년에도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할 만큼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2008년보다 더 많은 돈이 부동산 시장에 들어가 있다. 현재 미국 주택 가격은 거품이 최대로 끼었던 2007년 2월의 1.6배다. 

 

 

▲S&P/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 2000년 1월 주택가격을 100으로 삼은 지수이다 ⓒ연준경제데이터



2008년은 부동산만 터졌지만, 지금은 가상화폐와 주식시장도 부풀어 있어 같이 붕괴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 2008년보다 훨씬 큰 충격이 올 수 있다.

거기다 지금은 거품 붕괴만이 아니라 물건이 부족한 현상도 같이 발생하고 있다. 물건 가격은 돈이 많아져도 오르고 물건이 부족해져도 오른다.

 

현재 물건 부족 현상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대중·대러 제재로 원자재와 부품, 장비를 제대로 수급할 수가 없다는 점 등의 요인이 영향을 주었다. 

구체적으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리용품 대란을 보자. 텍사스에 가뭄이 나면서 면화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면화 생산에 필요한 비료가 공급되지 않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분유 품절률이 43%까지 오르는 바람에 사람들이 분유를 구하기 위해 몇 시간씩 운전하며 상점을 돌아다니는 일도 일어났다.


여러모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2008년보다 더욱 심각한 악성 경제 파국을 맞닥뜨릴 것이다.

 

 

 

(계속)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