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0.

북한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교재는 북한 헌법이다.
헌법을 분석하다보면 북한 사회의 기본 이념과 국가 정체성,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 국가 정책과 노선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nk투데이 편집부는 북한 헌법을 하나하나 파헤쳐보는 연재를 기획하였다.
분석할 북한 헌법은 현재 한국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최신판인 2019년 8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수정보충한 헌법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표기법은 한국의 맞춤법을 따르되 불가피한 경우 북한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북한 헌법은 통일부, 법무부, 법제처가 공동 운영하는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https://unilaw.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세계 사회주의체계의 붕괴와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 압살공세 속에서 선군정치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고귀한 유산인 사회주의 전취물을 영예롭게 수호하시고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었으며 사회주의강국건설의 휘황한 대통로를 열어놓으시었다. [서문8]

 

이 부분은 김정일 시대에 북한 사회 전면에 등장한 선군정치에 관한 내용이다.

 

1990년대 초 소련 해체와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 중국의 시장경제 편입으로 인해 북한은 고립되었다.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 물물거래 형태로 이루어지던 구상무역이 중단되었고 비축 달러가 없던 북한은 무역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또 이들 나라들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북한과 거리를 두었다.

 

특히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이 각각 한국과 수교를 하였는데 “소련과 중국이 한국에 손을 내미는 것은 북한에게 크나 큰 배신행위였다. 북한은 이제 ‘홀로서기’를 다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라고 한다. (김동성, 「국제 이슈: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한반도 위기 - 한국의 대응방향」, 경기연구원, 2018.3.7.)

 

여기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경제제재까지 하였다.

 

당시 미국은 실제로 전쟁 개시 시간까지 정해놓고 준비하였다. (김민상, 「“94년 북핵 때 전쟁 검토했지만 100만명 사망 우려로 접어” 기밀문건 공개」, 중앙일보, 2017.12.10.)

 

나아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서거와 잇따른 대규모 자연재해로 북한 사회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된다.

 

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를 전면에 들고 위기에 대처하였다.

 

북한은 선군정치를 “군사를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인민군대의 혁명적 기질과 전투력에 의거하여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고 전반적 사회주의 건설을 힘 있게 다그쳐나가는 혁명 영도방식이며 사회주의 정치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선군정치는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 조치가 아니며 사회주의체제에서 ‘혁명의 주력군’을 새롭게 규정하는 전략적인 문제라고 북한은 설명한다.

 

즉, “혁명적 기질과 전투력”으로 볼 때 군대가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고 전반적 사회주의 건설을” 하는 주력군이라는 것이다.

 

선군정치에 따라 북한은 군대가 국방은 물론 경제건설에도 앞장서며 나아가 시대정신(‘혁명적 군인정신’)을 만들고 문화(‘혁명적 군인문화’)까지 창조하는 말 그대로 ‘주력군’이 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 노선을 구현하기 위해 무려 2,150여 개의 부대와 최전방 초소를 방문하였다.

 

이는 “육군으로 치면 16개의 군단 사령부, 26개의 사단 사령부, 41개의 여단 사령부는 물론 모든 연대 사령부를 방문하고 대대 수준의 주둔지까지 방문”한 셈이다. (김기협, 「북한의 ‘선군정치’ 호전성으로 이해한다면…」, 프레시안, 2014.8.11.)

 

그만큼 군인이 주력군으로 제 역할을 하도록 격려하고 지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농업, 전력, 석탄, 철도운수, 건설 등 경제 핵심 분야에 투입된 군대는 북한 경제를 살려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는 데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98년에 들어서면서 ‘고난의 행군’ 종료를 선언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1990년대 초에 시작하여 1998년에 절정에 달한 북한경제의 위축은 1999년에 일단 멈추었으며, 북한의 GDP는 1999년 이후 2005년까지 7년 연속 플러스 성장”을 했다고 한다. (양문수 외, 「2000년대 북한경제 종합평가」, 『정책자료』, 2012.)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핵개발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1차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이후 북한은 수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를 이루고 수소폭탄까지 개발하였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폭탄을 실어 나를 미사일 개발에도 힘을 쏟아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개발하였다.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도 개발하지 못한 차량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 등을 개발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컴퓨터수치제어(CNC) 공작기계와 같은 첨단 산업 개발에도 많은 투자를 하였다.

 

북한은 높은 수준의 CNC 개발을 통해 공장 현대화, 자동화, 무인화를 실현하게 되었다며 이를 ‘새 세기 산업혁명’(4차 산업혁명과 유사한 개념으로 추정)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북한의 CNC 공장

 

또 2002년 개천-태성호 물길을 시작으로 대규모 자연흐름식 관개수로를 건설해 농업 발전의 토대를 닦았기도 하였다.

자연흐름식 관개수로란 별도의 동력을 쓰지 않고 물을 공급하는 수로를 말한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자연흐름식 관개수로 건설을 계속해 2019년까지 1만1400여 km에 달하는 수로를 확보하였다.

 

이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 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토대를 구축했다는 게 북한의 평가다.

 

황해남도물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강성대국’ 건설을 국가 목표로 제시하였다.

 

‘강성대국’은 이후 ‘강성국가’를 거쳐 지금은 ‘사회주의 강국’으로 표현이 바뀌는데 개념 상 차이는 없는 듯하다.

 

‘사회주의 강국’이란 “국력이 강하고 모든 것이 흥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 없이 사는 나라”를 의미한다.

 

북한은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을 이루면 ‘사회주의 강국’이 실현된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