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10.

북한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교재는 북한 헌법이다.
헌법을 분석하다보면 북한 사회의 기본 이념과 국가 정체성,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 국가 정책과 노선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nk투데이 편집부는 북한 헌법을 하나하나 파헤쳐보는 연재를 기획하였다.
분석할 북한 헌법은 현재 한국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최신판인 2019년 8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수정보충한 헌법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표기법은 한국의 맞춤법을 따르되 불가피한 경우 북한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북한 헌법은 통일부, 법무부, 법제처가 공동 운영하는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https://unilaw.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6) 통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는 조국통일 위업 실현에 불멸의 업적을 쌓으신 민족 만대의 은인이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나라의 통일을 민족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온갖 노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공화국을 조국통일의 강유력한 보루로 다지시는 한편 조국통일의 근본원칙과 방도를 제시하시고 조국통일운동을 전 민족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시어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 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열어놓으시었다. [서문11~13]

 

이 부분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 관련 사업을 표현한 것이다.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다.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 (통일의 근본원칙)

 

1970년대 들어 미국과 중국이 화해하고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는 등 국제질서에 일정한 변화가 생겼다.

 

이에 김일성 주석은 1971년 8월 6일 “(한국의) 민주공화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 인사들과 아무 때나 접촉할 용의”가 있다며 남북대화를 제안했다.

 

여기에 박정희 정부가 응하면서 그해 9월 20일 비밀리에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열렸다.

 

이후 남북 간 여러 회담과 밀사 교환을 통해 마침내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은 “쌍방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공통된 염원을 안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라면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을 담았다.

 

7.4 남북공동성명은 1945년 분단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정부가 조국통일 문제에 관한 합의를 내왔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통일의 방도)

 

김일성 주석은 1980년 10월 10일 6차 당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였다.

 

남과 북에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다른 두 제도가 존재하는 것을 인정한 조건에서 연방 형식의 통일 국가를 건설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를 집약한 표현이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이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는 연방 형성의 원칙, 연방기구, 연방국가의 명칭과 성격, 10대 시정방침 등이 담겨 있다.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 (통일의 동력)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이하 10대 강령)은 1993년 4월 7일 최고인민회의 9기 5차 회의에서 강성산 총리의 의안 보고를 통해 발표되었다.

 

북한은 이 강령을 김일성 주석이 작성하였다고 한다.

 

1993년 4월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을 발표하는 김일성 주석

 

10대 강령이 발표될 당시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비핵화공동선언 등으로 열린 대화 국면이 끝나고 정세가 다시 격화하는 상황이었다.

 

북한은 한반도에 급격히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전체 민족 구성원이 힘을 모아 위기를 타개하고 조국 통일로 나가자는 취지에서 10대 강령을 발표했다고 주장한다.

 

10대 강령은 통일을 위해 민족 전체가 단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를 위한 원칙과 방도가 들어 있다.

 

10대 강령은 “힘 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어 모두 다 나라의 통일과 통일된 조국의 융성번영을 위하여 특색 있는 기여를 함으로써 민족분열을 끝장내고 통일된 7천만 겨레의 존엄과 영예를 세계에 떨쳐야 한다”라고 하였다.

 

 

조국통일 3대 헌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6년 11월 24일 판문점을 방문하고 ‘조국통일 3대 헌장’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하였다.

 

1996년 11월 판문점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국통일 3대 헌장은 조국통일 3대 원칙,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 등 세 가지를 묶은 개념이다.

 

이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통일사업 성과를 이어가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국통일 3대 헌장’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2001년 8월 14일 평양 통일거리 남쪽 입구에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세우기도 했다.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6.15 남북공동선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분단 역사상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하였다.

 

여기서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이 탄생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항에 직접 나가 김대중 대통령 일행을 맞이하는 등 정상회담 기간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통일의 원칙과 방도, 당면 과제를 담고 있어 ‘통일의 이정표’로 꼽힌다.

 

남북은 2007년 6월까지 고위급회담만 20차례, 이산가족 상봉도 15차례 진행했으며, 평양 방문객은 4만 명, 금강산 관광은 200만 명에 이르렀다.

 

또한 휴전선 일대 개성에 주둔한 군대를 뒤로 물려 개성공단을 개발했으며, 경의선과 동해선을 연결하고 바닷길 하늘길도 모두 이어놓았다.

 

폭발적인 남북교류협력사업으로 남북 국민은 서로 한민족임을 느끼고 통일에 한층 다가가게 되었다.

 

 

10.4 선언

 

노무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장관급회담으로 남북관계 발전을 이끌어 가기가 어려워지면서 더 높은 급에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서게 되었고 이에 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결단한 듯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7년 10월 2일 4.25 문화회관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했다.

 

남북 정상은 10월 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을 채택하였다.

 

10.4 선언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내용을 재확인하면서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방대하면서도 세부적인 계획을 담았다.

 

10.4 선언은 ‘6.15 이행선언’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이듬해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10.4 선언은 이행되지 못하였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국의 문익환 목사, 정주영 명예회장, 언론사 사장단 등 여러 민간인을 만나 통일에 힘써 달라고 당부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