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12월 06일
기사 제목 : [기득권 심판] ‘기득권 중심 세계’에 파열구를 낸 투쟁하는 민중들
엄혹한 시절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또다시 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변이를 일으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 가운데 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촌 북반구는 한겨울로 접어들어 혹한이 닥쳐오고 있다. 코로나 사태 방역에 급급한 상황에서 민생과 살림살이도 휘청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싹 날려버릴 만한 뜨거운 희망·가능성이 있다. 바로 ‘세상을 바꾸자’며 들불처럼 떨쳐 일어선 전 세계의 위대한 민중들이다.
① 한국 : 각계각층의 민중 투쟁은 코로나 사태를 뚫고
“오늘을 싸워 승리하리라. 내일은 웃으리라. 동지여 나의 몸이 쓰러져도 멈추지 말아라. 나의 피, 피 끓는 나의 영혼은 투쟁을 멈추지 않으리!”
지난 2003년 노래패 우리나라가 낸 4집 음반 ‘달려달려’에 담긴 <투쟁을 멈추지 않으리>의 노랫말이다. 18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나라의 각계각층 민중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함께 어깨 걸고 투쟁의 고개를 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우리 사회를 휩쓰는 통에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표되는 불평등, 사회 혼란은 더더욱 심화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결정적으로 적폐 기득권과 맞서 세상을 바꾸려는 민중들의 투쟁이 거세다.
바이러스 확산세가 극심하다지만 적폐 기득권의 방해를 뚫고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민중의 열망과 기세가 훨씬 더 강하다. 그 누구도 민중의 투쟁을 막을 수 없다. 이 시대 민중은 세상의 주인, 민주주의의 주역, 투쟁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삼성은 최대 수출 실적을 달성했고 직장인들은 그다지 힘들 게 없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꾸준한 월급과 정년이 보장되는 평생직장은 그리 많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사태에도 한국이 역대 최대 수출 실적, 준수한 성장률 수치를 이뤘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몇몇 대기업이 천문학적 이익을 벌어들여도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빈부격차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막대한 이익 대부분은 한 줌도 되지 않는 일부 대기업과 기득권으로 흘러갈 뿐, 대다수 민중·노동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대출 빚이 천정부지로 늘어나면서 각 가정의 가계부채는 왕창 높아졌다. 허리띠를 질끈 졸라매는 우리네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을 줄이고 대기업의 세금은 감면해주는 비상식 작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민중을 위하는 세력이 아님을 증명한다.
코로나 사태로 택배 물량이 쏟아진 가운데 택배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과로사도 잇따랐다.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자 대다수는 너나 할 것 없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에서도 대국민 복지 지출이 낮고 사회 안전망마저 부실하다. “촛불혁명 계승”을 자임한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민중의 직접 투쟁은 지극히 정당하며 당연한 권리다.
그렇기에 민중이 직접 세상을 바꾸기 위한 투쟁에 앞장선 것이다. 정부가 ‘국민의 심부름꾼’으로서 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의 진정한 주인인 민중이 나설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는 전국 곳곳 각계각층에서 벌어진 투쟁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려 한다.
코로나 사태가 강타했던 지난해에는 한동안 민중 투쟁이 주춤했다. 그러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수칙이 마련되면서 투쟁이 다시 기지개를 켜게 됐다. 방역 수칙을 숙지하고 마스크와 얼굴 가리개로 ‘무장’한 민중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춰 거리로 나섰다. 이런 흐름은 백신 접종이 본격화된 올해에도 이어졌고 투쟁은 노동자, 청년 등 각계각층의 민중이 앞장서는 전면 투쟁으로 발전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민중 투쟁의 본격 포문이 열린 건 지난 7월 3일 전국노동자대회였다. 이후 광복절에 ‘민주노총 8.15 노동자대회’가 열렸고 10월 20일에는 민주노총이 주도한 총파업이 뒤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광장에 모이거나, 직장에서 한 시간 파업을 벌이는 등 다양한 형태로 파업에 동참했다. 노동자들은 ‘불평등 타파’를 외치면서도 안전과 방역을 지키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집회 이후 방역 당국이 대면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를 벌였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된 노동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노동계의 ‘투쟁 모범’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이후에도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투쟁이 잇따랐다.
지난 11월 13일에는 ‘전태일열사 정신 계승 2021 전국노동자대회’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필수·공공 서비스 좋은 일자리 국가가 책임져라 ▲사회공공성 역행하는 기획재정부 해체하라 ▲비정규직 철폐하고 차별을 없애라 같은 구호가 나왔다.
11월 14일에는 서울 청계천과 청와대 인근에서 ‘2022 대선대응 청년행동’이 <분노의 깃발행동>을 펼쳤다. 방역 수칙에 따라 1부, 2부, 3부로 나뉘어 진행된 깃발행동에서는 1,000명에 이르는 청년·학생들이 집회와 행진을 이어갔다. 청년행동은 선언문에서 “대선후보들은 청년 팔아 표 사는 행위를 중단하고 우리의 요구에 먼저 진정성 있는 답을 해주어야 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년·학생들은 대선 주자들에게 ▲정규직 신규채용과 일자리 확대 ▲청년 주거권 보장 ▲사각지대 청년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보장 ▲청년 고독사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11월 17일에는 여의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2021 전국농민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신자유주의식 농업정책을 규탄했다. 농민들은 ▲농민기본법 제정 ▲식량주권 실현 ▲농지를 농민에게 ▲기후위기 대응 ▲공공농업으로 전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11월 23일에는 부산 서면에서 부산민중행동이 주최한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불평등을 쓸어버리자”, “낡은 정치를 쓸어버리자!”, “거대 양당 정치 쓸어버리자!”라고 외치며 집회와 행진을 이어갔다.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는 1만 명이 넘는 화물노동자들이 1차 총파업을 펼쳤다. 화물노동자들은 요소수 파동으로 생계에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 모든 차종·품목 확대 ▲운임인상 ▲산재보험 전면적용 ▲지입제 폐지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했다.
11월 28일에는 서울 도심에서 노동조합·한국 거주 외국인이 함께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참가한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 보장하라”라고 외치며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12월 2일에는 서울시청 근처에서 ‘2021 전국빈민대회’가 열렸다. 현장에는 “뼈 빠지도록 일을 해도 평생 적자 인생인데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노점상을 금지하고 있다”라며 “차별과 불평등을 갈아엎고 비정규직을 철폐해 가진 자들의 돈 잔치를 멈춰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 제정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 철폐 ▲강제퇴거 금지 ▲장기공공임대주택 확대 ▲장애인 탈시설 보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호소했다.
우리나라에서 민중들이 펼친 투쟁의 특징은 온라인 소통광장인 유튜브와 줌(ZOOM)을 통해서도 민심이 모여들었다는 점이다. 수십 곳에 이르는 진보민주개혁진영 유튜브 채널이 함께한 ‘검언개혁 촛불행동’ 집회가 대표 사례다. 이 온라인 집회에는 100만 명이 넘는 참가자와 수천만 원이 훌쩍 넘는 후원금이 모여들 만큼 여론의 반향이 뜨거웠다.
이밖에도 소규모 사업장 곳곳에서 권리를 높여나가기 위한 민중·노동자의 투쟁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집회와 시위는 허가와 검열의 대상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나 보장된 헌법상 권리다. 민중이 앞장서는 투쟁은 쭉 이어질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 국내에서는 올해 내내 쉴 틈 없이 투쟁이 펼쳐졌다. 새해가 밝은 이듬해 1월에는 각계각층이 함께 하는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다. 민중총궐기대회에서는 ‘노동권 강화와 불평등 해소’, ‘판문점선언 합의 이행을 머뭇대는 문재인 정부 규탄’, ‘한국을 식민지 취급하는 미국 반대’ 같은 다양한 목소리가 한데 뭉칠 것으로 관측된다. 민중총궐기대회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바로잡을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② 중남미 곳곳에서 번지는 반미·자주 투쟁
이번에는 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먼저 중남미 지역부터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중남미 지역의 빈곤층은 무려 2억 명을 넘어섰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중남미 민중은 무기력하게 있지 않았고, 투쟁의 주역으로서 전면에 나섰다. 말 그대로 민심이 폭발한 것이다. 중남미 민중의 투쟁은 미국을 맹종하는 친미 극우세력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중남미 곳곳에서 활발하게 펼쳐지는 민중 투쟁의 가장 큰 특징은 반미·자주다. 그동안 미국은 중남미 민중을 고통에 빠트린 만악의 근원으로 지탄받아왔다. 중남미에서는 미국의 침탈이 미치지 않은 지역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은 CIA와 군부를 동원해 진보 좌파 정권이 들어선 중남미 나라들을 전복, 친미·우파로 대표되는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다. 이후 미국식 신자유주의 도입에 따른 민영화와 사회 불평등이 중남미 전역을 휩쓸었다.
그런데 중남미의 정세는 극적으로 반전됐다. 중남미 곳곳에서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 정치를 갈아엎자’라며 친미·우파 적폐 기득권에 맞선 대규모 민중 투쟁이 펼쳐진 것이다. 그 결과 중남미의 친미 우파 세력이 차례차례 거꾸러지고 있다.
먼저 볼리비아의 상황부터 살펴보자. 볼리비아에서는 친미 우파 세력의 정치 쿠데타를 민중 투쟁으로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있었다. 우선 친미 우파 세력의 공작으로 임기 중 쫓겨나 해외로 망명했던, 원주민 출신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볼리비아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해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후보로 나선 모랄레스 정부의 경제재정부 장관 출신 루이스 아르세가 승리한 결과다. 승리의 밑바탕에는 친미 우파 세력을 규탄하는 볼리비아 민중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 즉 투쟁이 주효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진보 좌파 진영을 찍어누르려 했던 아녜스 전 상원 부의장 등 친미 우파 세력도 속속 구속과 기소의 대상이 됐다. 민중의 단결된 힘이 낭떠러지로 치달을 뻔했던 볼리비아를 구원한 것이다.
칠레에서는 친미 우파 정권의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민심이 폭발했다. 칠레 전국 곳곳에서 민중이 주도하는 대규모 투쟁과 집회가 열렸다. 곳곳에서 ‘독재자 피노체트가 만든 신자유주의 헌법을 갈아엎고 불평등을 없애자’는 목소리가 빗발쳤고, 그 결과 열린 제헌의회 선거에서는 친미 우파 세력이 참패했다. 개헌 논의가 한창인 칠레에서는 ▲민영화 폐지 ▲전 국민 의료보험 ▲보건의료 및 교육 부문의 영리 추구 제한이 화두가 되고 있다. 오는 21일로 다가온 총선, 지방선거, 대선에서도 민중의 뜻을 따르는 진보 좌파 진영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브라질에서는 진보 좌파 진영의 재집권이 시야에 들어왔다. 군부 출신이자 극우 성향이 명백한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코로나 사태 방치, 민영화 강행 등 모든 분야에서 민중을 기만했다. 이런 상황 속, 브라질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열렸다. 한때 친미 우파 야권과 사법부의 총공세를 받아 구속됐던 룰라 전 대통령도 민중의 지지에 힘입어 복권됐다. 진보의 기수로서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룰라의 승리는 일찌감치 확정된 분위기다. 여기에 보우소나루 정권의 무분별한 아마존강 유역 파괴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원주민들도 반정부 투쟁에 가세했다. 보우소나루 정권과 전면전에 나선 브라질 민중과 진보 좌파 진영은 힘을 모아 여러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월 쿠바에서는 미국 플로리다 내 반쿠바 세력의 입김을 받은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에는 미국이 깊숙이 개입했다. 미 국제개발처(USAID)에서는 ‘쿠바 전복 프로젝트’용 예산을 책정, 지난 9월까지 반쿠바 세력에 660만 9,000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쿠바 정부 당국은 반정부 시위를 “미국이 지원하는 연성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사주를 받은 친미 시위세력, 쿠바와 가까운 미국 플로리다의 반쿠바 세력이 합작한 반정부 시위는 잠깐 쿠바를 위협하는 듯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친미 우파 세력에 맞서 거리와 광장으로 나온 ‘친정부 반미 시위’의 단결과 기세가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중남미 국가들에 주권침해·내정간섭을 벌여온 미주기구(OAS)도 해체 직전 상황으로 내몰렸다. 민중이 선택한 중남미 각국의 진보 좌파 정권이 연대·협력하면서 점차 ‘범중남미 진보 좌파 연맹’이 큰 힘을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렇듯 중남미 민중은 끊임없이 친미 우파 기득권 세력과 직접 부딪히며 맞서 싸웠다. 그에 따라 차례차례 짜릿하고도 값진 승리를 일궈냈다. 또 더 큰 승리를 향해 진득하게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새해에는 반미·자주로 뭉친 중남미의 분위기가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③ ‘자본주의·제국주의 본고장’ 미국, 유럽의 투쟁하는 민중들
그런가 하면 민중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본고장’ 서구(미국과 유럽)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높이려는 민중 투쟁이 각지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서구에서 세계에 울림을 주는 민중 투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지난해 각지로 뻗어나 간 ‘인종 차별·불평등 반대’ 투쟁이다. 지난해 5월, 미국에서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살해당한 뒤 촉발된 인종 차별·불평등 반대 투쟁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곳곳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 미국과 유럽에서는 노동계를 중심으로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체제의 수혜자이기도 했던 서구 민중들 스스로 자성과 회복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투쟁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을 규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어둠을 상징하는 대기업을 꼽자면 그 1순위는 뭐니 뭐니해도 아마존이다. 작은 인터넷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점점 세력을 확대해나가면서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 됐다.
그런데 물류센터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하며 땀 흘리는 노동자들 덕에 몸집을 불린 아마존은 노동 존중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오히려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 민중을 착취하던 옛날 방식 그대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착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마존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나쁜 점만 골라 집대성한 세계를 대표하는 악성기업인 셈이다.
“회사에 가장 커다란 위협 중 하나는 부담스러운 조건을 요구하거나 파업을 벌이면서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에 지장을 준 노조원들처럼, 조직 내에서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며 늘 불만을 품고 있는 시간제 인력들.”
“만약 우리 회사의 이름이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 100곳’에 오른다면, 당신이 이곳을 망친 겁니다.”
위는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꺼낸 끔찍한 노동 혐오·노동자 비하 발언이다. 베이조스는 ‘사람은 쉴 틈을 주면 창의적인 생각을 못 한다’는 식의 몰상식한 가치관으로 유명했다. 그 가치관은 아마존의 경영, 운영 방식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아마존 사측은 노조 결성 여부를 투표하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심지어는 물류센터에 마스크와 손 세정제 같은 기본 방역 물품도 두지 않았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한 아마존 노동자들이 집단 확진됐지만, 아마존은 노동자의 탓으로 돌리며 발뺌할 뿐이었다.
이처럼 노동자를 멸시하는 대기업의 횡포는 큰 저항을 낳는 법이다. 올해 들어 아마존의 횡포에 더 이상 참지 못 하겠다는 움직임이 서구 곳곳에서 동시에 빗발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매해 11월 넷째 주마다 ‘블랙프라이데이’라는 대규모 할인 행사가 열린다. 이때를 틈타 대기업은 온갖 명품과 물품을 팔아치우며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인다. 사실 말이 좋아 할인 행사지, 소비 심리를 부채질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식 돈벌이 수법이다. 분명한 건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에는 블랙프라이데이가 그야말로 떼돈을 쓸어 담는 ‘대목’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올해 블랙프라이데이를 기점으로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25개국의 민중들이 반격에 나섰다.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50여 개 단체가 하나로 뭉친 ‘메이크아마존페이’(Make Amazon Pay) 연합이 주축이 됐다. 연합에 소속된 민중들은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을지언정 마음만큼은 하나였다. 수천 명이 훌쩍 넘는 민중들이 아마존 뉴욕 본사 앞에서, 영국과 독일의 아마존 물류창고 앞에서 아마존을 규탄하고 나섰다. 서구의 민중들은 아마존을 향해 ▲소비지상주의 반대 ▲노동 환경 개선 ▲노조 활동 존중 ▲환경파괴 중단을 촉구했다.
이러한 흐름은 서구 민중들이 직접 자본주의의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만약 ‘무노조 경영’을 원칙으로 고집해온 아마존 같은 초거대기업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부터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는 다른 대기업, 고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큰 파급을 끼칠 것이다.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을 무작정 반대하는 개인주의, 자유주의가 만연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투쟁 사례를 보듯 노동자·민중의 노동권과 기본 생존권을 쟁취하자는 긍정적인 움직임은 분명히 있다. 우리가 미국, 유럽 민중들의 투쟁을 꾸준히 주시해야 할 이유다.
④ ‘카스트 제도야 물렀거라’ 농업개악법 뒤집고 승리한 인도의 민중들
세계 제2위 인구 대국인 인도는 심각한 사회 양극화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민생 전반이 어려움에 빠졌다. 이렇게 된 가장 큰 배경은 ‘반민중’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장기집권에 있다. 모디 총리와 집권당 인도인민당은 7년에 이르는 장기집권 동안 인도 사회의 공공성을 여러 측면에서 후퇴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행해왔다. 여기에는 농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모디 정권이 추진한 농업개악법에는 ▲가격보장 및 농업서비스 계약법 ▲농산물 무역 및 상거래 촉진법 ▲필수식품법이 담겨있다. 해당 법안의 취지는 국가가 관리하던 농산물 유통과 가격 책정을 시장에 개방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도의 식량주권을 일부 대기업에 통째로 바친다는 뜻이었다.
모디 정권이 농업개악법을 굽히지 않자 민심이 크게 요동쳤다. 농민·노동자가 중심이 된 수십만 명을 훌쩍 넘는 대대적인 집회와 시위가 인도 곳곳을 뒤덮었다. 투쟁 현장에서는 인도의 오래된 병폐로 지목받는 카스트 제도의 신분 차별도, 극심한 여성 차별도, 험악한 종교 간 대립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반대로 오래도록 반목해오던 힌두교와 이슬람교 신도들이, 천대받던 여성들이 투쟁의 한복판에 서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일치단결한 인도의 민중들은 총리 관저가 있는 수도 델리를 봉쇄했고, 각지에서 숱한 총파업, 연좌농성에 결합했다. 모디 정권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 투쟁 진압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700명이 넘는 민중들이 학살당했다. 그런데도 민중들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자 이번에는 물, 전기, 통신을 차단하는 비열한 수법으로 민중을 고립하려 했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투쟁의 기세는 줄어들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민중 투쟁에 놀란 모디 정권은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지난 11월 19일, 모디는 농업개악법 철회를 약속했고, 여야 의회도 농민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승리는 또 다른 쾌거로 이어졌다. 1년 넘는 투쟁의 결과, 그동안 제한된 장소에서 정부에 허가받은 집회와 시위를 해야 했던 인도의 ‘투쟁 관행’이 사라진 것이다. 바야흐로 인도의 민중들은 언제 어디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투쟁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했다.
인도 민중들의 투쟁은 단순히 농업개악법 저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는 인도 곳곳으로 번지는 ‘인도인민당 심판운동’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더 이상 적폐 기득권 정치에 기대지 않고 민중이 앞장서 ‘직접 정치’를 일구겠다는 중대한 선언이다. 인도인민당 심판운동은 앞으로 있을 인도의 총선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도의 민중들은 굽힘없는 투쟁을 통해 인도 정치의 흐름을 좌우하는 장본인이 됐다.
“농민이 없으면 먹을 것도 없다!”
“의회의 결정은 언제든 거리에서 뒤집어질 수 있다!”
위 발언은 지난해부터 올해가 저무는 지금까지 1년이 넘도록, 인도의 민중들이 끊임없이 외쳐온 승리의 목소리다.
이처럼 지구촌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번진 투쟁은 민중이 세상을 바꿀 시대의 주역, 주인공임을 오롯이 증명한다. 남녀노소, 지역, 피부색과 상관없이 우리 민중은 세상의 진보를 이끌 주인으로서 앞으로도 투쟁의 제 몫을 다해갈 것이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