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8월 18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139]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골치 아픈 한일관계
지금 세계정세에는 근본적인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를 주도해 온 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였다. 그런데 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이 위기를 극복하려 북한, 중국, 러시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한,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반제자주 국가 사이의 신냉전 대결 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향한 제재와 봉쇄를 강화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내세운 ‘가치동맹’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 가치동맹엔 신냉전 대결 체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에 맞서 북·중·러가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주의·반제자주 진영은 세 나라가 각각 자기 힘을 키우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를 향해 공세를 펴고 있다. 그리고 세 나라가 서로 연대와 공조, 지원과 지지의 기운을 높이고 있다.
이 대결에선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반면, 북·중·러가 공세를 펴며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형세가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살펴보려 한다.
1. 들어가며
“한일관계가 추락한 점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걱정스럽다.”
지난 4월 15일, 백악관 당국자가 미일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브리핑한 말이다. “한일 사이의 정치적인 긴장이 동북아의 역량을 저해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미국을 매우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했다”라며 한일관계를 우려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 기본 축은 바로 한미일 동맹이다. 한미일 동맹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선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한일관계는 좋지 못하다. 서로를 원수 보듯 적대한다.
미국은 오랫동안 한미일 동맹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이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에게 한일협정을 체결하도록 한 게 1965년이다. 하지만 그 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한일동맹은 실현되지 않았다. 2016년 탄핵 직전의 박근혜 정권을 시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를 체결하게 했지만 미국이 원하는 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한일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자위대가 한반도에 자유롭게 진출하도록 군사동맹을 맺기 위해서 갈 길이 먼데 도리어 한일관계는 악화하고 있으니 미국으로선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미국이 말하는 한일관계 ‘정상화’란 일본의 친한화가 아니라 한국의 친일화를 뜻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미일 동맹 구상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고 일본은 현지 거점이며 한국은 일본 아래의 돌격대로 삼는 것이다. 즉, 미국은 한미일 관계를 미국-일본-한국 순의 수직적 관계를 형성해 일본은 미국에, 한국은 일본에 복종하길 바란다.
예를 들어 일본 안에서 반미여론이 생겼다고 해보자. 그러면 미국은 일본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고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이 갑이고 일본이 을이기 때문에 일본에 있는 반미 감정을 제거하려 든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반일 여론이 생기면, 미국은 일본이 변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반일 여론을 없애려고 든다.
미국은 주한미대사에 해리 해리스라는 일본계 미국인을 임명했었다. 해리스는 2019년 일본의 경제공격 때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라는 대응조치를 하자 “보기 참 불편하다”, “한국에 실망했다”라며 한국을 비난했다. 그리고 기업인들을 만나 한일 갈등을 중재하라면서 주한미대사라기 보다는 주한일본대사와 같은 친일행보를 펴 한국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한국 국민은 미국이 주한미대사를 잘못 임명했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일본에 반감을 갖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9년 지소미아 종료 논란 때도 일본 기업이 한국 법원 판결에 따라 배상을 하면 해결되지만 미국은 일본을 놔두고 한국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라고 압박했다.
이처럼 한일 갈등의 원인은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군국주의를 부활하려는 데 있지만 미국은 언제나 일본 편을 든다. 미국이 바라는 건 한국의 친일화이기 때문이다.
올해 출범한 미국의 조 바이든 정권도 한일동맹을 실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바이든 정권은 국제적으로 여러 나라와 연대해 반북·반중·반러 전선을 구축하려고 한다. 바이든 정권은 이를 위해 민주주의, 인권, 자유를 말하는 ‘가치동맹’을 내세운다. 올해 12월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부와 시민사회 대표를 모아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열고자 준비 중이다. 그중 동북아에서의 반북·반중·반러 전선 핵심은 한미일 동맹이다.
그래서 바이든 정권은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2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 3월 한미 외교장관 및 국방장관 회담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문재인 정부에 한일관계 ‘정상화’를 주문했다. 그리고 미국은 지난 5월엔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7월엔 한미일 외교차관 회담을 열었다.
최근 시도했던 건 도쿄올림픽 때 한일정상회담을 성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7월 한일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중요 화제로 떠올랐다. 일본 언론은 7월 초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할 거라는 보도를 쏟아내 정상회담 개최 분위기를 잡아갔다.
당시 한국 국민은 한일정상회담 추진 분위기에 어리둥절해 했다. 일본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아니고 거꾸로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홈페이지에 독도를 자기 땅으로 표시해 한국 국민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심지어 7월 15일에는 주한 일본 대사관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가 “문재인 대통령이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라며 막말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인지 공감하지 못했고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정상회담을 추진했던 이유는 바로 미국이 한일정상회담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반일 여론이 거세자 끝내 한일정상회담을 강행할 수 없게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을 가지 않겠다고 결정할 때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다 수차례나 “아쉽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듯 한일관계 ‘정상화’가 좌절되자 미국의 전략은 차질을 빚고 있다. 예를 들자면 8월 현재 한반도에서는 미국이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면서 곧 북한이 대응조치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만약 지금 한미일 동맹이 실현되어 있다면 미국은 자위대를 한반도에 진출시켜 한미일 군사력을 총동원해 북한에 맞설 것이다.
하지만 한미일 동맹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위대는 한국에 진출할 수가 없다. 미국은 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영국을 투입했다. 영국에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를 파견하도록 한 것이다. 영국 퀸 엘리자베스호는 8월 말 부산에 들어올 예정이다. 지금은 퀸 엘리자베스호 소속 핵추진 잠수함인 ‘아트풀’이 부산에 점검 차 입항해 있다. 만약 한일동맹이 체결되었다면 미국은 영국 항공모함을 데려올 필요 없이 자위대를 한반도에 출격시켰을 것이다. 일본 자체가 거대한 미국의 항공모함 아닌가. 동북아의 반대편에 있는 영국은 동북아 전선의 보조수단일 뿐 핵심수단은 될 수 없다.
미국이 한일관계 ‘정상화’에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세력은 문재인 정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단순히 문재인 정부의 성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미국은 과거 박정희나 박근혜 때는 한국 국민의 반발이 있어도 우격다짐으로 한일관계 ‘정상화’를 관철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이 자기 요구를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 촛불국민의 주권의식이 높아지는 반면 미국과 일본의 힘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북한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패권이 급격히 약화되며 생기는 구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 한국에서 촛불 민심의 영향력이 커졌다
한일관계가 ‘정상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로 촛불 민심 때문이다. 국민은 촛불로 민족적 자존심, 주권의식이 높아지면서 반일의식 또한 강화됐다. 그래서 한국 정치권은 함부로 친일로 가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스스로의 의지로 반일을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라며 친일보수세력이 하던 주장과 비슷한 연설을 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식민지 민족의 피해의식을 뛰어넘는 참으로 담대하고 포용적인 역사의식”을 강조하며 일본에 대화를 제안했다.
오늘날 한일 갈등은 ‘식민지 민족의 피해의식’ 때문에 빚어진 게 아니다. 일본이 제국주의·군국주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이런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들은 매우 우려스러운 내용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실제로 한일관계를 ‘정상화’시키진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 국민의 반일 여론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2019년을 되돌아보자. 당시 일본은 한국에 수출 규제 조치를 하면서 경제공격을 해왔다. 당시 자유한국당이나 조중동은 대일 외교를 잘못해서 큰 피해를 보게 됐다며 문재인 정부를 맹공격했다. 하지만 국민은 일본을 옹호한 자유한국당과 조중동을 토착왜구로 규정했다.
국민은 친일적폐세력의 행태에 크게 분노했다. 그래서 국민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토착왜구 청산에 나섰다. 민주당의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은 2019년 “여론에 비춰 볼 때 총선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며 반일 여론이 총선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0년 총선에선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며 승리를 거뒀다.
지금이야 친일행적이 욕을 먹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좀 달랐다. 나경원은 2004년 자위대 창설 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도 논란은 있었지만 나경원은 2008년, 2014년, 2016년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친일이 선거 당락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친일을 함으로써 친미친일보수적폐 동맹에 동참함으로써 권력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박근혜도 친일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이제는 친일행보를 하면 토착왜구로 찍혀 정치계에서 퇴출된다. 나경원은 지금은 완전히 친일 정치인으로 찍혔다. 나경원은 국힘당 기성 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기 때문에 총선이나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을 하면 항상 초반에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하지만 친일로 찍힌 탓에 마지막엔 여론에 밀려 번번이 고배를 맛보고 있다. 철옹성 같은 반일 민심의 벽에 부딪힌 나경원은 SNS에 “뭘 해도 안 되는 좌절과 외로움”을 느낀다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국민의 반일 기세가 거세자 문재인 정부는 아무리 미국의 요구라고 해도 차마 일본과 결탁할 수는 없게 됐다.
이처럼 촛불민심은 민족 자존, 주권의식으로 발현되어 확고한 반일의식을 형성했다. 촛불민심은 아직 미국에 대해서는 일면 비판을 하면서도 전면적인 반미를 하진 못하고 있다. 전면적으로 반미를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식민지 근대화론의 영향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이 강하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일본에 의해서 근대화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오늘날 미국이 강하기 때문에 미국 말을 들어야 하며 미국에 의존해서 경제 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직 미국 의존성을 넘지는 못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반일여론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촛불로 인한 확고한 반일의식은 미국의 한미일 동맹 전략을 파탄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3. 일본이 몰락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둘째 이유는 일본이 몰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반도를 장악하는 수단 중 하나로 일본을 이용했다. 미국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버거웠기 때문에 일본과 그 부담을 나눠 한국의 군사, 경제에 관여했다.
1965년에 체결한 한일협정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고 국민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며 민주화운동과 함께 통일운동에 불을 지폈다. 미국은 통일의 기운이 급속도로 커지고 한국이 친북화되는 걸 막고자 했다. 그래서 일본을 내세워 한일협정을 체결하게 하고 일본 자본을 한국에 투입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이 몰락하고 있다. 한국을 장악하는 미국의 주요 축 중 하나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다.
일본은 왜 몰락하게 되었나. 일본은 스스로를 경제 동물(economic animal)이라고 한다. 국제 사회에서 오로지 경제적인 실리만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일본을 넘어뜨린 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1980년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동시에 겪는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게 됐다. 그러자 미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1985년 플라자합의를 맺는다.
플라자합의란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의 가치를 강제로 상승시키고 달러 가치를 낮춘 것이다. 플라자합의 직전 엔화 환율은 1달러당 235엔이었는데 1년 후에는 1달러에 120엔이 되었다. 엔화의 가치가 두 배 정도 상승한 것이다.
엔화 가치가 상승하자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졌다. 일본에서 240엔짜리 상품을 미국에 판다고 가정해보자. 이 똑같은 물건이 1985년엔 1달러였는데 1986년엔 2달러로 변했으니 판매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국은 달러 가치가 하락한 결과 미국 상품을 일본에 수출하기 유리해졌다. 플라자합의는 한마디로 미국이 자신의 경제 위기를 일본에 떠넘긴 조치였다. 일본은 플라자합의 이후 30년 동안 경제침체를 맞게 되었다. 일본은 이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플라자합의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미국 중심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딪혀서 생긴 결과이다. 다시 말해 미국 중심 자본주의는 이미 30년 전에 구조적인 한계를 맞닥뜨렸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미국 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이 몰락하니 미국 중심 자본주의 체계에 속한 일본 경제도 살아날 수가 없다.
경제가 안 좋으면 정치에서는 보통 혁명이 일어나거나 극우파쇼화가 일어난다. 일본은 경제가 몰락하면서 흔들리는 정치권력을 혐한을 통해 강화하고 있다. 이제 혐한이 일본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한국 보수적폐세력이 선거철만 되면 반북 색깔론을 펴듯 일본에서는 혐한을 조장한다.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일본은 한국 국민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게다가 일본이 경제공격을 하고 극우혐한 정치를 펴고 독도 강탈 같은 군국주의 부활 야욕을 벌이고 있으니 한국인이 일본을 좋아하려 해도 좋아할 수가 없다.
일본의 경제 몰락과 극우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반일기운이 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되돌릴 수 없다.
4. 북한의 영향
북한은 아주 강한 반일 태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8.15광복절에도 조선중앙통신은 “침략행위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올바로 반성하고 깨끗이 청산하는 것은 회피할 수도, 모면할 수도 없는 일본의 법적 책임이고 도덕적 의무”라며 “피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고야 말 것”이라고 반일강경 입장을 밝혔다.
또 일본이 도쿄올림픽에서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의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쓰인 한국 선수단의 현수막을 문제 삼고 도쿄올림픽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게시하는 등의 혐한 행동을 하자 북한은 7월 26일 “민족적 의분으로 피를 끓게 하는 후안무치한 망동”이라고 일본을 규탄했다. “올림픽 경기 대회마저 추악한 정치적 목적과 재침 야망 실현에 악용하는 왜나라 족속들이야말로 조선 민족의 천년 숙적이고 악성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평화의 파괴자”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한국 민심은 북한의 반일 강경 행보에 열광했다. 인터넷 기사에는 “북한이 일본 때리기를 잘한다”, “일본의 태도를 바로잡아주기 위해서라도 남북통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은 한민족”, “한 핏줄을 나눈 우리 편”,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국가이어야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주류 정치권이 친일행위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지금 한국 정치인이 친일행위를 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들의 입지는 급속도로 축소될 것이다. 그리고 반일을 내세운 정치세력의 입지가 급속도로 확대될 것이다. 그 반일세력이란 민족자주세력이고 통일지향세력이다. 자주통일 세력은 반일 강경태세를 보이는 북한과 손잡고 반일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민심과 결합해 한국 정치를 주도할 가능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한국의 주류 정치권이 미국의 압박에도 섣불리 친일 행보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승인’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한일관계 ‘정상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민심으로부터 배척받게 될 것 같아서이다. 문재인 정부는 아마 미국에도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 하면 자칫 자주통일세력에 정권을 내줄 수 있다고 하소연했을 것이며 미국도 이를 잘 알고 있으니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더 들어보자. 만약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는 군사작전을 실행한다고 가정해보자. 극단적인 사례 같지만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일본에서 2008년 나카무라 아키라 도쿄대 명예교수가 독도 탈환론을 주창한 바 있고 육상자위대 간부학교 교관 출신인 다카이 사부로는 독도 강습작전 시나리오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시나리오에는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기 위해 동원할 군사력과 작전이 상세히 기재돼 있다. 또 시나리오에는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면 한국은 대마도를 점령한 후 독도와 대마도의 맞교환을 시도할 것이라는 예측도 담겨 있다. 실제로 일본은 1995년 이후 꾸준히 섬 탈환 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도 2020년 12월 일본의 독도 침공 작전 시나리오와 이를 방어할 대응전략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한국 군 당국도 일본이 독도를 침략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한국군이 독도 수호 작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거나, 독도를 수호하는 데 실패하면 한국 민심은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은 평소 독도 문제에서 일본 편을 들어 왔고 한국군의 전시작전권도 가지고 있다. 만약 일본이 독도를 침략해오는데 미국이 일본 편을 들면서 한국군 출병을 불허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이 스스로 출동시킬 수 있는 건 해경밖에 없는데 해경만으로 일본 자위대를 막을 수가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한일 분쟁이 일어나도 한국 편을 들지 않을 것이고 한국군의 전면적인 대응을 억제할 것이기 때문에 일본으로선 독도 침략을 꺼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한반도엔 북한이 함께 존재한다. 일본이 독도를 침략하고 미국이 한국군을 저지해 일본을 도와주고 있을 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일본 군함을 격침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 국민은 북한의 군사력을 반일을 하는 군사력, 즉 민족의 군사력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과 북은 반일로 커다란 공감대를 이루고 머잖아 통일로 가게 될 것이다.
지금도 일본이 독도 도발을 할 때마다 인터넷 기사에는 북한에 핵미사일을 쏘아달라는 댓글이 달리곤 한다. 2월 11일 다음 포털에 있는 연합뉴스 <북한, 日 독도영유권 주장에 "적반하장 날강도 행위..천년숙적"> 기사에는 “왜구가 독도에 쳐들어오면 북에서 미사일이 날아갈 수도 있다”, “핵무기 하나 시원하게 부탁한다”, “일본에 설 선물로 핵폭탄을 보내 달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 민심은 반일에 있어선 이미 북한 핵을 민족의 무기로 여기는 것이다. 반일이라는 공감대에서는 북핵에 대한 거부감이 완화되고 앞으로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루면 북핵은 우리의 것이 될 거라며 친밀하게 여기고 있다.
북한은 2018년~2019년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 연달아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일본과는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이때도 한국 민심은 북한의 반일 행보를 좋아했다. 만약 북한이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고 관계를 개선했으면 한국 민심 속 북한에 대한 연대감이 다소 덜해졌을 것이다.
지금 북한의 철저한 반일태세는 한국 민심에 강력한 영향을 주고 남북 동질감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한국 정치권,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함부로 일본에 저자세를 취하는 걸 막는 작용을 하고 있다.
5. 결론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 상 북한, 중국, 러시아가 모여있는 동북아시아는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한미일 동맹 체제를 동북아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가 나쁘기 때문에 한미일 동맹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한일관계 개선을 저지하는 힘은 촛불민심으로 높아진 주권의식과 일본의 몰락 그리고 핵을 가진 북한의 반일공세와 이에 대한 한국 민심의 호응에서 나오고 있다.
한일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미국의 동북아 주도 체제가 구조적으로 약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촛불민심의 주권의지와 북한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시대를 저물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