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3월 04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37] 경제공격을 자행하는 일본의 숨겨진 의도②
(앞 글에 이어서)
3. 미국과 일본의 충직한 앞잡이, 자유한국당
(1) 친일하면 삼대가 흥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8월 14일 청와대 오찬에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사라지게 하겠다”고 하였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대대로 잘 살고 있는 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이런 현실을 보며 누가 친일을 거부하고 반일을 하려 하겠는가. 그러나 누구보다 훌륭한 우리 국민은 일본의 경제도발에 맞서 ‘독립운동은 안 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면서 반일운동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친일하면 삼대가 흥하는 현실은 누가 만든 것일까?
바로 미국이 만들었다. 1945년 해방 후 이 땅에 진주한 미군은 일제를 위해 일한 친일파를 그대로 등용했다. 일제 관료들이 본국으로 돌아갔으니 미국에게 잘보이기만 하면 다들 승진하게 되었다. 친일파에게 해방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었던 셈이다. 이런 축복을 만든 건 미국이다. 친일파들은 태생적으로 친일과 함께 친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완용이 죽기 전 자식에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라는 유언을 남길 만도 하다.
일본 역시 친일파 삼대가 흥하는 데 일조했다. 한일협정 체결 당시 박정희가 열성 친일분자였음을 확인한 일본은 거액의 정치자금을 후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특별문서에 따르면 박정희는 일본 기업에게서 66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친일파들이 계속 득세할 수 있도록 후원해준 것이다.
일본은 한국 지식인에게도 거액을 후원하며 국내에 친일 논리를 유포하도록 유도한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가 설립한 일본재단이 연세대에 출연한 75억 원으로 1995년 만들어진 아시아연구기금이 있다. 일본에서도 양심 있는 지식인은 일본재단 돈을 받지 않을 정도로 악명 높은 재단의 돈으로 여러 교수들이 지금도 연구를 하고 있다. (「20년째…일본 우익 기금으로 연구하는 교수들」, 한겨레, 2015.8.19.)
이런 미국과 일본의 지원 아래 친일파들은 한국을 친일파 세상으로 만들어나갔다. 일단 권력을 잡은 친일파들은 대대로 자손들이 기득권을 누릴 수 있도록 법,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 분위기를 왜곡시켰다. 이들은 해방 직후 반민특위를 습격해 끝내 해체시켰고, 친일재산환수법 재정에도 무더기 반대표를 던지며 방해했다. 친일파들은 자신의 과거를 덮기 위해 반공반북에 매달렸고 이를 명분으로 국가 훈장을 받고 현충원에 묻힌 이들이 부지기수다. 친일 정치인, 친일 기업인, 친일 언론인이 서로 결탁해 대대로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이 키워준 친일파는 자신들의 운명이 미·일에 있음을 잘 알고 그들의 충실한 앞잡이가 되었다. 미·일을 위해 국익을 팔아먹으며 대대로 부와 권력을 누리는 게 친일파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다.
(2) 박정희
자유한국당이 신처럼 떠받드는 박정희는 한국 정치에서 친일결탁의 큰 획을 그은 자다. 박정희는 거물 친일파이면서도 쿠데타로 권력을 틀어쥐어 한국을 친일파의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이승만까지만 해도 친일파가 득세하기는 했어도 이승만 자신은 반일독립운동 경력을 내세웠기에 노골적인 친일 정책을 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거침없는 친일행각을 벌였다.
원래 박정희는 일본에 ‘개와 말처럼’ 충성하겠다고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자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반일독립부대를 토벌한 악질 친일파였다. 그는 평소 말이 없다가도 토벌명령만 떨어지면 “요시(좋아)!”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그랬던 자가 쿠데타로 대통령이 되더니 술에 취하면 일본 군복을 입고 청와대 뜰을 거닐며 일본 군가를 불렀다. 이처럼 박정희는 과거 자신의 친일 행적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였다.
당연하게도 일본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반겼다. 일본군 장교였던 ‘타카기 마사오’가 한국의 대통령이 됐으니 한국이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1961년 11월 12일 박정희가 일본을 방문해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등 일본 내 자기 인맥을 만나 유창한 일본어로 자신의 친일 성향을 드러냈고 특히 만주군관학교 시절 교장인 나구모 신이치로 중장에게는 큰절까지 올려 일본의 환심을 샀다. 1962년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식에 특사로 참석한 오노 반보쿠 자민당 부총재는 기자들에게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지간을 자인할 만큼 친한 사이”라면서 “대통령 취임식에 가는 것은 아들의 경사를 보러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박정희가 대통령 집권 기간 범국민적 반발을 진압하며 강행 처리한 게 바로 한일협정이다. 1965년 6월 22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체결된 한일협정은 여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일본은 한일협정에 1910년 한일합병이 합법적이라는 단서를 남겼다. 즉, 한반도 강점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배상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 배상도 아니고 보상도 아닌 ‘경제협력자금’을 줬을 뿐이다. 이를 토대로 일본은 지금까지도 자신의 과거사를 미화하고 있다. 예컨대 1995년 와타나베 외상은 “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이 있지만, 식민지 지배라는 말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의 공문서에는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다. 한일병합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으로, 무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망언을 하였다.
다음으로 한일협정은 일제강점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을 어렵게 만들었다. 박정희는 일본에게 받은 돈의 5%를 개인보상에 사용했는데 부상자는 아예 제외했고 사망자도 총 8552명에게만 보상했다. 그리고 박정희는 ‘대일 재산청구권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서 모든 청구권이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명시한 사실을 숨겼다. 한일 청구권 협정의 세목이 공개된 건 40년 만인 2005년 노무현 정부 때다. 이렇게 박정희는 일제강점 피해자의 청구권을 막아버렸다. 이로 인해 일본 본토에 연행된 한국인 72만 명과 한반도에서 고통 받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피해자들은 아무런 구제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박정희는 한일어업협정을 통해 한국 어장을 일본에게 내어주었다. 또 일본 어민이 한국 영해에서 불법 어로작업을 해도 일본법에 따라 일본 법정에서 재판하는 ‘기국주의’에 합의해버렸다. 이를 통해 우월한 장비를 갖춘 일본 어선은 일방적으로 동해를 휩쓸 수 있었다.
또 한일협정은 재일동포의 권리를 포기해버렸다. 당시 65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아있었다. 일본에서 재산을 가지고 나갈 수 없게 금지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재일동포 문제가 자신의 한반도 강점에서 비롯됨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대우를 하였다. 박정희는 이 문제를 일본 정부에게 알아서 하도록 맡겨버렸다.
이렇게 박정희는 일본에 대한 예속과 굴종의 터전을 닦았다. 오늘날 한일 사이의 모든 문제는 그 뿌리를 여기에 두고 있다. 한일 군사 결탁을 바라는 미국 입장에서 박정희는 이승만보다 훨씬 유용한 인물이었으며,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일본 입장에서도 박정희는 자기에게 충성하던 신하의 본분을 계속 간직한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였다.
(3) 박근혜
박정희를 그대로 이어받은 박근혜 역시 한일 관계에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물론 박근혜 정권 초기에는 일본의 망언 등으로 반일감정이 고조되어 정부 간 교류가 막히기도 했다. 그러나 겉으로 냉랭해 보인 것과 달리 박근혜는 한일 결탁을 위한 심각한 조치들을 과감히 추진하였다.
2015년 박근혜는 이른바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일본에 면죄부를 주었다. 이 합의는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를 철저히 배제하고 정부 마음대로 결정한 것이며,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도 없었고(이듬해 아베 총리는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 없다는 망언을 또 했다), 10억 엔이라는 ‘푼돈’을 배상이 아닌 지원금 형식으로 받았고, 그럼에도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합의해버렸다. 게다가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을 철거하는 등 굴욕적인 합의까지 하였다. 당시 우리 국민은 이 합의를 을미늑약(2015년이 을미년)이라 불렀다.
이와 함께 박근혜는 일본 기업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양승태 대법원장을 통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판결에 개입하기도 했다.
2016년 11월 23일 박근혜는 이명박이 실패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을 강행했다. 박근혜는 조약이 아닌 행정협정으로 처리해 국회 비준 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했다. 이 협정은 한일 사이의 첫 군사협정으로 이후 한일 군사 결탁의 시작을 알리는 성격을 갖는다. 실제로 이 협정 이후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도 논의하기로 하였다. 이 협정으로 일본은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받는 효과를 보았고 평화헌법 개정에 유리한 조건을 얻게 되었다. 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에도 한 걸음 다가갔다.
이처럼 한일 군사 결탁의 길로 빠르게 진입하던 박근혜는 끝내 국민의 분노를 받아 탄핵 당했다. 그러나 박근혜가 구속된 후에도 박근혜의 후예들은 친일 행각에 여념이 없다. 이번 일본의 경제도발을 두고 온 국민이 일본을 규탄하는데도 유독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친일정치인들은 일본의 논리로 일본을 비호하기 바쁘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정부의 대응이) 구한말의 쇄국정책과 다를 게 없다”며 수출제한을 한 일본이 아닌 문재인 정부를 공격했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위안부 합의를 뒤집었기 때문”이라며 일본편을 들었다. 자유한국당 소속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아예 “지금은 우리나라가 마땅히 친미, 친일을 해야”한다고 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도 “경제와 안보를 위해서는 협력해야 할 이웃이 일본”이라며 자신이 친일파임을 숨기지 않았다.
(4) 토착왜구부터 척결해야
위기의 순간에는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위험하다. 일본이 우리를 업신여기며 경제도발을 하는 배경에는 우리 내에서 일본편을 들 우군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군, 즉 친일적폐세력의 중심에는 자유한국당이 있고 그 주위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같은 적폐언론 등이 있다. 지금 친일적폐세력은 일본과 공동작전을 진행 중이라고 봐야 한다.
자한당은 미국, 일본의 지지를 받고 지원을 얻어야 자신들이 집권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한일 경제전쟁에서 일본편을 든다. 아무리 정부와 대립하는 야당이라도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거국적으로 힘을 모으는 일반적인 현상이 자한당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자한당은 대한민국의 야당이라기보다는 일본 자민당의 한국지부에 가깝기 때문이다.
자한당은 문재인 정부를 공격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자한당의 태도를 보면 정부 공격보다 일본 비호에 더 집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지난 7월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회동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소재·부품산업 지원책을 제안했다. 소재·부품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면 국력도 키울 수 있고 일본의 경제도발에 면역력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황교안 자한당 대표는 소재·부품산업 지원책을 반대했다. 설사 자신이 여론의 지탄을 받더라도 일본에 불리한 내용은 합의할 수 없다는 것일까?
국내에서 자유한국당 같은 친일적폐세력이 사라지면 일본이 함부로 우리를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자유한국당 해체 투쟁은 대일 경제전쟁의 승패가 달린 굉장히 중요한 투쟁이다.
4. 결론
일본의 경제공격은 미국, 일본, 자한당의 합작품이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촉구하고, 일본은 군국주의화 부활을 위해 한일 갈등을 유도하고, 자한당은 국내에서 열심히 일본을 대변하고 있다.
한일 경제전쟁은 내년 총선으로 이어진다. 미국과 일본은 총선에서 자한당을 밀어줘 압승하게 만든 뒤 202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일 군사결탁을 완결하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 그 힘으로 북미 대결에서 승리하고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여 동아시아를 완전히 자신들 손아귀에 넣겠다는 게 미국의 꿈이다. 아마도 일본은 경제도발을 통해 문재인 정부를 흔들고 경제를 악화시키면 정부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자한당에게 유리한 상황이 펼쳐지리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이처럼 똘똘 뭉쳐 반일행동에 나설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은 저들의 예상과 달리 우리 주도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족하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아직 미국의 구상은 변하지 않았고, 일본의 경제공격은 끝나지 않았으며, 자유한국당은 건재하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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