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3월 10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75] 4.15 총선 평가-운동장이 기울어졌다
4.15 총선 결과
21대 총선 결과 민주개혁세력이 대승을 거두었고 보수적폐세력은 참패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180석으로 전체 의석의 60.0%를,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103석으로 34.3%를 차지하였다. 민주개혁세력은 역대 최고 수준의 성적을 거두며 향후 국정을 확실히 주도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였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지역정당으로 전락하였고 황교안, 나경원, 오세훈, 민경욱 등 주요 후보, 차기 주자들이 대부분 낙선하였다.
이번 선거는 민주개혁세력 대 보수적폐세력의 총력전이었다.
미국은 해리스 주한미대사와 국무부가 나서서 노골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며 미래통합당을 지원해주었고, 일본도 친일적폐정당의 승리를 바라며 언론을 동원해 총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였다. 검찰은 정부여당에 맹공을 퍼부으며 보수적폐세력의 돌격부대를 자처했고, 언론 역시 정부여당을 물어뜯기 위한 왜곡 편파보도는 기본이고 공갈협박 등 범죄에도 가담하였다.
이처럼 국내외 보수적폐세력의 정권재찬탈을 노린 총공세에 맞서 민주개혁세력은 사력을 다했으며 저들의 기도를 완전히 파멸시켰다. 이번 총선이 더욱 커다란 의의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인
(1) 운동장이 거꾸로 기울어졌다
가. 안보와 경제, 양대 기둥이 허물어졌다
지금까지 친미친일 보수적폐세력은 안보와 경제를 양대 기둥으로 하여 한국사회를 주도해왔고 기득권을 유지해왔다. 그들은 안보에서 친미친일 반북대결노선을, 경제에서 친미친일 의존성장노선을 주창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양대 노선이 완전히 맥을 추지 못하게 됐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17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안보·시장 보수가 시대 흐름을 놓쳤다고 봐야 한다”라며 안보와 경제로 한국 사회를 주도한 보수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신용호, 「“보수 이미 비주류 됐는데, 그들만 스스로 주류인 줄 알아”」, 중앙일보, 2020.4.17.)
먼저 안보 영역을 살펴보자.
보수적폐세력의 노선인 친미친일 반북대결노선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북한은 악의 세력이며 인간이 살 수 없는 생지옥이고 한국을 침략해 지옥으로 만들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우리의 적이라는 국민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특히 2018년 연이은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며 북한에 대한 위와 같은 왜곡된 부정적 인식이 완전히 사라졌다.
북한에 대한 인식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지도자에 대한 인식 변화다.
북한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강하게 뭉친 사회다. 따라서 분단냉전세력은 북한의 지도자에 대한 왜곡선전에 매달린다. 언론의 반북왜곡보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북한 지도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보도다. 그런데 2018년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며 북한 지도자에 대한 국민 인식이 180도 바뀌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직후 KBS 여론조사 결과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지도부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이 22.3%,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이 57.7%로 무려 80%의 국민이 긍정적인 변화를 했다고 답했다. MBC 여론조사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에 매우 신뢰가 간다는 응답이 17.1%, 신뢰가 간다는 응답이 60.5%로 무려 77.5%가 신뢰한다는 응답을 하였다. 9월 평양 정상회담 직후 KBS 여론조사 결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대해 87%가 찬성하기도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북한 지도자에 대한 비난이나 부정적 표현이 급격히 사라지고 대신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표현이 급증하였다.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기원하는 행사를 하였고 북한 지도자를 다시 봐야한다는 학술행사도 열렸다. 심지어 서울 거리 한복판에 북한 지도자에 대해 존칭을 쓰며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하였다.
북한 사회와 사람들을 직접 보면서 선입견이 사라지기도 하였다.
9월 평양 정상회담 기간에 생중계로 들여다본 북한의 모습은 ‘굶주린 인민이 노예처럼 사는 사회’가 아니었다. 기존 인식과는 달리 사람들이 나름의 발전한 문명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 공연을 보며 음악 수준에 감탄하기도 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자유롭게 연설할 기회를 주는 모습을 보며 우리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내세워준다는 것을 뜨겁게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북한에 대한 인식이 바뀌니 더 이상 북한을 악의 세력으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레 친미친일 반북대결노선의 첫 번째 전제조건이 무너졌다.
둘째 전제조건은 미국의 압박과 공격으로 북한이 멸망한다는 인식이다.
90년대 중후반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많은 이들이 미국의 봉쇄와 압박으로 북한은 곧 붕괴할거라 이야기했다. 그러나 북한은 위기를 극복했고 빠른 성장을 이뤘다. 보수적폐세력의 대북인식이 아직도 20년도 더 지난 ‘고난의 행군’ 시기에 머물러있는 동안 국민은 북한이 미국에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현실을 보고 있었다. 북한 붕괴론은 허구였고 실제로는 미국도 쩔쩔매는 그런 나라로 성장해있었던 것이다.
북한은 올 2월 말부터 미사일 발사와 포사격 훈련 등 각종 군사훈련을 연이어 진행했다. 총선을 앞둔 시기였기에 예전 같았으면 보수적폐세력이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며 응징을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조용히 넘어갔다. 미국도 통상훈련일 뿐이라며 최대한 대응을 자제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친서인지 러브레터인지를 보내고는 신나서 자랑하였다.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대선이 코앞이다, 지금 훈련은 대응하지 않겠다, 제발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만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총선 전날인 14일에도 순항미사일을 여러 발 발사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특별히 큰 미사일은 아니다”라며 도발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언론은 이런 내용을 크게 다루지 않고 김남국 후보 이슈만 대서특필했다. 만약 미 합참이 ‘도발이다, 응징하겠다’라고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면 언론도 대대적으로 다뤄 투표장에 나온 유권자에게 최대한 영향을 주려 했을 것이다.
미래통합당도 총선 당일 북한과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그다지 국민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간 별다른 목소리도 못 내다가 막판 이슈화를 노렸던 듯하지만 실패했다. 미국도 쩔쩔매는 북한에게 큰소리치는 미래통합당의 모습은 국민의 눈에 허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두 번째 전제조건도 사라졌다.
다음으로 경제 영역을 살펴보자.
보수적폐세력이 내세워온 친미친일 의존성장노선은 급격히 힘을 잃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을 보면 양적으로 따져볼 때 미국보다 중국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미국보다 중국과 더 많은 경제 교류를 한다. 기업인들 속에서도 ‘미국과 경제가 단절되면 한국 경제는 암에 걸린다. 하지만 중국과 단절되면 즉사한다’는 말이 나온다. 암에 걸리는 것도 치명적이지만 어떻게든 치료하려고 시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즉사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미국에 큰 영향을 받지만 중국에 비할 정도는 아닌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실정이니 미래통합당이 코로나19 사태를 이용해 문재인 정부를 ‘친중정부’로 공격했지만 생각만큼 먹히지 않았다.
두 번째 이유는 미국, 일본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에 의존해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자는 주장은 미국, 일본이 잘 살 때나 통하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밑천이 다 드러나 버렸다. 넘쳐나는 노숙자의 모습, 파산하는 지방 도시들, 미국 내에서 끊이지 않는 경제위기 경고의 목소리,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한심한 대처 모습 등은 미국에 경제를 의존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허물어버렸다. 일본 역시 장기 불황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일본 경제가 앞으로 나아질 가망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현재도 어렵지만 미래도 불투명하다. 미국, 일본에 경제를 의존할 수 없는 이유다.
세 번째 이유는 미국, 일본이 한국 경제를 도와주기는커녕 약탈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동맹국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불공정한 한미 FTA를 한국에 더 불리하게 개정하고, 애플을 살리기 위해 삼성을 공격하고, 한국 가전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고, 주한미군 지원금을 5배로 올리라고 압박한다. 일본 역시 강제징용 재판을 명분으로 경제공격을 감행하였다. 이런 나라들에 경제를 의존하자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자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친미친일 의존성장노선은 더 이상 국민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미국, 일본에 의존할 수 없다면 중국은 어떨까? 실제로 한국 경제는 중국의 영향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고 미일의존에서 중국의존으로 갈아타는 게 경제 대안이 되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중국을 새로운 판매시장, 저가생산기지 정도로 치부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첨단과학기술 분야, 신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5G 기술, 전기자동차, 양자통신, 3D 프린팅 등 중국이 세계 선두에 있는 영역이 한두 개가 아니다. 현재는 여러 산업기술 영역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를 중국에 의존하자는 것은 그냥 중국의 경제식민지로 들어가자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이 이제 와서 갑자기 자급자족, 자립경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조건에서 가장 확실하고 선택 가능한 대안은 남북경제협력이다. 남북경제협력은 단순히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보조수단이 아니다. 출로가 없는 한국 경제의 현실적 대안이다. 그래서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남북경제협력을 이야기하고, 기업인들은 남북경제협력을 빨리 허용하라고 재촉하며, 국민도 남북경제협력에 찬성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침햇살30] 남북통일경제가 답이다」를 참조
이와 같은 이유로 보수적폐세력이 만병통치약처럼 활용한 양대 기둥인 친미친일 반북대결안보론, 의존성장경제론은 파산했다.
나. 몰락한 집안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기둥이 사라지면 집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보수적폐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네거티브에만 매달렸다.
자신들의 주력 정책이 모두 무너진 조건에서 제대로 된 정책이나 대안이 나올 수 없다. 그러면 그저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선거에만 매달리게 된다. 황교안이 민부론이라는 경제정책을 내놨지만 과거 정책의 재탕이라는 비판만 받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감세 정책 등을 이야기했지만 이 역시 전부터 주장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연장일 뿐이라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가짜뉴스와 억지, 왜곡, 음모론 등을 동원한 정부여당 공격에 매달린 것이다.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17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선거 메시지가 전략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얼마나 여의도연구원에서 제대로 된 걸 안 쥐어줬으면 그런 게 나왔겠습니까?”라고 개탄했다. 당에서 제대로 된 정책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도 그런 건 제시하지 못했다. 미래통합당을 포함해 보수적폐세력 내에서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정책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보수적폐세력을 대변하는 조선일보도 17일 분석기사를 통해 미래통합당이 대안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하면서 “당내에서도 ‘이번 선거 과정에서 탈원전·소주성 폐지를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대안 제시에는 실패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하였다. (김형원, 「“아직도 보수가 다수라 착각.. 강경 지지층에 휘둘려 중도층 잃어”」, 조선일보, 2020.4.17.)
그렇다면 만약 미래통합당이 시대 변화를 반영해 남북협력 평화안보경제를 주장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국민은 ‘미래통합당이 남북협력을 주장해? 웃기고 있네, 사기 쳐도 안 속는다’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남북협력, 평화경제, 이런 건 민주개혁세력이 더 잘하지’라고 여기고 민주개혁세력을 더 지지하게 된다. 즉, 평화통일로 프레임을 옮겨도 보수적폐에겐 여전히 불리하다. 그러니 미래통합당은 남북협력 평화안보경제를 이야기할 수 없다. 물론 지난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 후보가 남북경협을 주장한 것처럼 부분적으로 나올 수는 있어도 중앙당 차원의 정책 대안으로는 제시할 수 없다.
둘째, 분열과 갈등, 대립이 심각했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하는데 보수가 분열하지 않은 이유는 잘나갔기 때문이다. 보수는 부귀영화를 차지하려고 뭉친, 이기주의에 기초한 집단이다. 그 동안에는 부귀영화가 눈앞에 있으니 그걸 차지하기 위해 분열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잔치는 끝났다. 부귀영화는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니 뭉칠 이유가 없다. 이번 총선에서 공천 갈등이 심각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 지도부는 서로 자기 사람을 공천하려고 호떡 뒤집듯 공천 결과를 뒤집으며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 박성민 대표는 “2016년 공천이 최악의 공천인 줄 알았는데 2020년이 최악의 공천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분열과 갈등, 대립은 일시적인 게 아니다. 보수적폐세력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셋째, 인재가 사라지고 ‘일베화’되었다.
망해가는 집안에 인재가 모일 이유가 없다. 미래통합당은 일찌감치 인재영입을 시도하며 백종원, 이국종, 강형욱, 박찬호, 김연아 등 유명인들을 야심차게 꼽았다. 그러나 모두 거부했다. 수구꼴통 이미지에다가 망해가기까지 하는 정당에 들어갈 이유도 없고, 자신들이 주도해서 당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박찬주 같은 극우꼴통만 들어갔다. 이번에 당선된 인물들을 봐도 대구경북 지역에 곽상도, 주호영, 김용판, 김석기 등, 서울에 태구민(태영호), 배현진 등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극우꼴통들로 가득 차 있다. 보수 쪽에 희망적인 인물이라 할 사람이 없다.
앞으로도 미래통합당의 인적 구성은 점점 극우, 꼴통화, 일베화 될 것이다. 오세훈, 정병국, 유승민, 박형준 등 중도이미지, 보수의 외연을 넓힐 인물들은 영향력을 잃고 위축될 것이다.
다. 운동장이 역으로 기울었다
보수적폐세력이 안보와 경제를 기둥으로 삼아왔다면 민주개혁세력은 민주, 개혁, 복지를 전통적으로 내세워왔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에 더해 안보와 경제도 자기 무기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개혁세력은 안보 영역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에 기초한 평화안보를, 경제 영역에서는 남북경제협력에 기초한 평화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안보와 경제 영역도 이제는 민주개혁세력이 주도하는 형국이 됐다.
이렇게 된 것은 운동장이 역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는 보수적폐세력에 유리하게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었기에 민주개혁세력은 뭘 해도 안 먹혔다. 그러나 이제는 운동장이 반대로 기울어졌다. 보수적폐세력은 뭘 해도 안 먹히는 반면 민주개혁세력은 매우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게 됐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 정치 지형이 완전히 변했다.
지난해 11월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세연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은 “당이 세상이 바뀐 줄 모르고 과거에 안주”했다고 질타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앞의 조선일보 기사도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이 바뀌어, 이제는 보수보다 진보층이 두꺼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박성민 대표는 “이념 지형 자체가 다 넘어간 상태에서 보수가 아직 주류인 줄 착각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 정치 지형의 변화, 이것이 이번 총선에 기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라. 무엇이 운동장을 움직였나
운동장을 역으로 기울어지게 한 핵심 요인은 북한의 변화다.
먼저, 북한의 힘이 커지고 이에 따라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피동에 빠졌다. 북한이 북미 대결을 주도하면서 한반도에서 북한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미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트럼프 대통령이 러브레터를 보내는 것 때문에 한국 국민의 대북인식이 바뀐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태도 변화 역시 북한의 힘이 커진 것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본질적으로는 북한의 힘이 커지면서 모든 변화가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북한은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미국은 끝없이 추락하는 추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의 주도권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될 것을 보여준다. 즉, 2018년 북미정상회담이나 미국의 한미연합훈련 취소 등이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반도 질서의 근본적 변화는 한국 사회에도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끝으로, 북한이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에 접근하는 데서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북한이 한반도 질서를 주도하면서 패권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한국 국민들의 경계심을 더욱 키웠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자기 힘을 과시하지 않고 존중과 배려로 일관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국민의 대북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였다.
이처럼 북한의 힘이 커지고 한반도 질서가 바뀌면서 친미친일 보수적폐가 펼치는 논리의 전제조건이 모두 무너졌고 이에 따라 정치 지형도 변화하였고 민주개혁세력의 대승으로 이어졌다. 한국 사회 민주개혁세력의 발전은 북한의 성장, 발전과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2) 국민의 주권의식 성장과 분별력
보수적폐세력들은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은 흔들리지 않았다. 선거 직전 마지막 주말에 있었던 미래통합당의 이른바 ‘n번방 폭로’ 해프닝도 민주개혁진영에서 사전 경고를 통해 미래통합당의 공작을 원천 차단하면서 막아낼 수 있었다. 국민은 이제 뉴스, 방송에 나오는 것이나 검찰이 발표하는 것에서 진실을 가려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국민의 주권의식이 성장하고 분별력이 커진 것도 운동장이 역으로 기울어진 것과 연결된다. 그동안에는 친미반북 논리가 사회 전반에 팽배했기에 오직 친미반북의 시각으로만 모든 것을 봐야 했다. 그러니 당연히 진실을 가려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친미반북 논리가 힘을 잃으면서 진실을 보는 눈도 떠졌다.
기존의 수단과 방법이 통하지 않자 보수적폐세력들은 무리수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쉽게 진실이 폭로됐다. 대표적인 게 조국 사태다.
처음에 보수적폐세력은 조국 장관을 사회주의자로 공격했다. 황교안은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자기 별명에 걸맞게 “국가전복을 꿈꾸는 조직에 몸담은 사람이 법무부 장관에 앉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얘기인가”라고 공격했다. 과거 같으면 이 정도 공격하면 국민이 동요하여 쉽게 낙마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국 장관이 스스로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이야기했음에도 색깔론은 먹히지 않았다. 정치 지형이 변해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황한 보수적폐세력이 부랴부랴 꺼내든 게 표창장 사건이다. 여기서부터 무리수가 시작됐고 국민은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3) 코로나19 영향
한국 사회를 휩쓴 코로나19 사태가 총선에 큰 영향을 준 건 사실이다. 그런데 민주개혁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는지, 보수적폐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일단 코로나19 사태의 덕을 본 것은 미래통합당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에 미래통합당의 공천 파동은 2016년보다 훨씬 심각했다. 10배는 더 심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슈에 묻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미래통합당 입장에서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고 비교적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게 코로나19는 분명한 악재였다. 일단 전염병이 확산되고 이로 인해 경제가 위축되면 정부여당에 타격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정부가 타격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래통합당은 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전방위적인 공세를 펼치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괴롭혔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사태가 민주개혁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정부가 대처를 잘 해서 성과를 냈고 국민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즉, 원래 여당에 불리한 악재가 닥쳤지만 대처를 잘 해서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잘 대처할 수 있었던 요인이 중요하다. 미래통합당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총선에 이용할 궁리를 하는 등 코로나19 사태를 정쟁의 도구로 사용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했다. 아마 선거를 위해 확진자 수를 축소하자는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일본 아베 정권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비난을 받더라도 방역에 모든 힘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국민은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상당히 발전한 긍정적 면모로 볼 수 있다.
민중당
(1) 응분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민중당은 21대 총선에서 비례득표율 1.05%에 그쳤으며 지역구에서도 모두 낙선해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정책적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점이다.
민중당은 이번에 여러 분야별 정책을 발표했는데 국민에게 가장 대표적인 정책으로 다가간 것은 ‘부와 빈곤의 대물림을 끝내자’는 구호다. 이와 관련한 공약으로는 ▲30억 상속·증여상한제로 불로소득 환수 ▲종합부동산세 강화,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페이퍼컴퍼니 규제 강화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대표 정책은 한국 사회의 당면한 과제, 민중의 절박한 요구와 맞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민중이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보수적폐청산이었다. 이는 선거 결과로도 드러난다. 압도적 다수 국민이 보수적폐청산에 표를 던졌다. 4.19 혁명 직후를 제외하면 이처럼 압도적인 선거 결과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보수적폐청산에 표를 던진 국민의 대다수는 노동자 민중이다.
노동자 민중이 따로 있고 국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민중당이 노동자 민중을 대변하는 당이라면 당연히 국민이 가장 절박하게 요구한 보수적폐청산을 전면에, 제1정책으로 내걸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민중당은 이번 총선에서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대변하지 않았다. 이는 총선 결과를 두고 국민이 승리를 이야기하고 기뻐할 때 민중당이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은 국민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지 않는 정당을 자신의 당으로, 자신을 대변해줄 당으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민중당 일부에서 보수적폐청산을 전면에 내건 자기당 후보를 문제시하는 현상도 있는데 이는 대단히 심각한 반민중적 행태로 비판받을 것이다.
(2) 유의미한 현상도 있었다
첫째, 이번 총선에서 민중당에 대해 가장 많은 국민에게 영향을 준 것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동영상이었다. 4월 8일 민중당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4월 19일 기준 조회수 12만3160회를 기록하였다. 900개가 넘는 댓글은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또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상당수의 언론들이 이 영상을 소개하였다. 민주개혁진영에서도 이 영상을 주목하면서 이정희 전 대표가 제시한 ‘전국민고용보험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반응이 나왔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진보세력의 대표 정치인은 바로 이정희 전 대표임이 확인되었다.
둘째, 민중공천제를 통해 당의 대중적 기반을 확대할 수 있었다. 민중당 비례대표후보 선출을 위해 당원과 각계각층 국민 16만 명이 선거인단에 참여했다. 16만 선거인단은 향후에도 민중당을 지지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셋째, 민주노총과 연대를 이어나갔다. 민중당 중앙, 지역, 후보들과 민주노총 산하 여러 노조들이 정책협약을 맺었으며 또 후보들이 민주노총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넷째, 일부 후보들이 보수적폐청산을 전면에 내걸고 선거 투쟁에 나섰다. ‘찍지 말자 미래통합당’ 피켓을 든 선거운동원 사진 등이 인터넷 공간에서 돌면서 민심의 반향을 일으켰다. 부산의 이대진 후보는 단 한 표라도 미래통합당 후보를 떨어뜨리는 데 쓰여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투표용지가 인쇄되기 전에 사퇴하였는데 인터넷 공간에서 이 사연이 돌면서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 후보들의 활동은 한국 사회에서 참된 진보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민중과 함께하는 민중당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3) 과제
이번 총선을 통해 살펴볼 때 민중당이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중과 소통하고 민심을 바로 읽을 수 있는 지도력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민중의 요구를 대변하는 민족적이고 민주적인 정책 방향을 확립해야 한다.
대진연
이번 선거는 민주당 대 미래통합당 싸움이면서 또 한 축으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대 미래통합당의 싸움이기도 했다. 대진연과 미래통합당의 싸움은 전국적인 영향력을 주었다.
과거 선거 공간에서도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치활동을 하였다. 링 안에서 정당이 싸웠다면 링 밖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싸웠다. 이들의 활동은 주로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유권자운동,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낙선운동 형태였다. 특히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이 주도해 진행한 낙선운동은 시민사회단체의 선거참여 활동에서 큰 획을 그었다. 낙선운동은 모든 정치인이 긴장할 만큼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번 총선도 링 밖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다양한 정치활동을 하였다. 심지어 보수적폐세력들도 광화문 집회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였으나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아베규탄 시민행동,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촛불국회만들기 2020년 총선시민네트워크, 국회국산화운동본부, 광화문촛불연대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낙천낙선대상자 명단을 발표하며 보수적폐후보들을 떨어뜨리기 위한 활동을 유의미하게 벌였다. 지역 차원에서도 이런 활동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서도 대진연의 활동이 단연 돋보였다. 대진연은 낙선대상자들을 찾아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이를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올려 많은 국민의 호응을 얻었다. 대진연의 활동은 언론에도 자주 등장했으며 시민들은 대진연 회원들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는 등 지지를 보냈다.
이들의 활동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오세훈 후보는 대진연을 막아주지 않은 경찰을 규탄하는 1인시위를 했고 나경원 후보와 미래통합당 차원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김진태 후보는 대학생들이 나타나면 유세를 중단하고 파출소로 도망가는 추태를 보였다. 차명진 후보는 페이스북에 자신도 대진연 낙선대상자라며 “근데 왜 내 선거운동은 방해않는 거지? 내가 그만큼 비중감이 떨어진다는 건가?”라며 은근히 아쉬워했다. 여러 미래통합당 후보들이 유세 중에 대학생이 다가오면 “너 대진연이지?”라며 경계하였다고 한다. 미래통합당 선대위 회의에서도 대진연 활동이 의제에 오를 정도였다.
실제로 대진연이 집중 낙선운동을 한 후보들 가운데 오세훈, 나경원, 민경욱, 김진태, 황교안 등 많은 후보들이 선거에 패배했다.
이처럼 대진연은 총선 기간 링 밖에서 영향력 있는 활동을 벌였다. 이번 총선에서 새롭게 형성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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