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1.

(이어서)

 

미국은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다

 

ⓒ 주한미군 사령부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 약속을 수십 년간 확인하며 ‘미국이 한국을 지켜줄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도와줄 것이다’ 등의 믿음을 굳게 가져왔다.

하지만 실상은 미국이 한국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는가?”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1961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했던 말이다. 당시 미국은 소련 핵공격을 핵우산으로 막아주겠다며 프랑스의 핵개발을 만류하고 있었다.

이 물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한국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희생할까?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전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는 3월 4일 공개된 경향신문과의 대담에서 “미국은 (한국을) 북한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핵심 군사 자산을 확장 제공할 여력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한미 간 확장억제를 둘러싼 근본적인 비대칭이 존재한다”라며 “미국이 좋은 동맹이 되고자 한다면 한국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모든 옵션을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콜비 전 부차관보는 4월 23일 중앙일보와의 대담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재래식 전력 지원에 대한 기대를 줄이고, 직접 한반도를 방어해야 한다”라며 “‘워싱턴 선언’은 동맹인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의 여러 도시와 3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을 북한의 보복 핵공격 위협에 노출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다. 미국인 중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단언컨대 미국은 이 약속을 지킬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핵공유 역시 한국의 (핵사용에 대한) 의사 결정권이 없다면, 북한은 최종 결정권자인 미국에 보복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핵공유는) 미국인 다수가 위험에 노출되는 (불완전한) 핵우산이나 다름없다”라고 주장했다.

콜비 전 부차관보는 5월 6일 연합뉴스와의 대담에선 “미국 국방부는 우리가 여러 대규모 전쟁을 동시에 치를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과 싸우면 대규모 전쟁이 된다”라며 “(한반도 유사시) 한국에 대규모 미군 전력을 전개한다는 작전계획은 우리가 중국에 대응할 능력을 소모할 것이라는 점에서 수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또 “한국군은 한국에 대한 직접 공격을 방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에게 혼자서 최대한 버티라고 요청해야 한다”라며 “헤비급 복싱 챔피언(미국)은 미들급 경기(한반도 전쟁)에서 뛰면 안 된다. 미들급 경기에서 이기겠지만 너무 상처를 입고 피로해서 다음 헤비급 경기(중국과의 전쟁)를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헤비급 경기를 위해 힘을 보존해야 한다. 그 경기를 지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콜비 전 부차관보는 5월 18일 공개된 KBS와의 대담에선 “문제는 미국이 본질적으로 군비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미군은 중국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주한미군은 북한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과 큰 충돌에 휘말릴 만한 여유가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미국이 모든 군사력을 한국 방어에 투입해야 한다는 말은 없다. 미국은 원조나 지원을 제공한다고만 나와 있다. 이건 자살 조약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한반도에서 북한과 전면전을 벌일 만한 군사적 자원이 없다. 나는 미국이 전면전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을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 한국과의 동맹은 유지하되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라며 북한과의 전면전은 자신 없지만 한국을 포기하기도 아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콜비 전 부차관보는 “미국이 북한의 모든 핵무기가 미국 본토를 타격하는 걸 실제 차단할 수 있을 거라고 보긴 어렵다”라며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구조 때문에 한국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도시 여러 개를 잃어야 한다고 미국 국민을 설득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확언했다.

크리스토퍼 밀러 미국 전 국방부장관 직무대행은 3월 13일 동아일보와의 대담에서 “이제 한국은 미국의 무기 체계나 안보 지원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라며 “확장억제에서도 미국은 주도하는 게 아니라 지원하는 역할이어야 한다. 미국이 동맹에게 제공해야 할 핵심적인 도구는 정보력과 외교력”이라고 언급했다. 더는 확장억제라는 이유로 군사적 지원을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더그 밴도우 케이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6월 21일 미국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실은 글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실패했다”라며 “한국은 북한과의 핵전쟁 발생 시 미국이 자기희생을 감내할 것으로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는 것을 안다”라고 밝혔다.

밴도우 선임연구원은 6월 27일 미국의 소리(VOA)와의 대담에선 “북한의 역량이 커지고 궁극적으로 북한이 미국을 겨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미국인들은 왜 북한과 핵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확장억제가) 더 이상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쉽게 정책을 바꿀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2023년 12월 14일 칼럼에서 “북한은 머지않아 미 본토를 핵공격할 다탄두 미사일까지 개발할 것이라고 미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 그 경우 미국은 한국을 위해 자국민 목숨을 걸고 북한과 핵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하지 못한다. 핵우산은 허울만 남는다”라고 인정했다.

또 “핵우산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는 것을 미국도 안다. 그래서 ‘확장억제’라는 개념이 나왔다. 핵만이 아니라 재래식 전력까지 총동원해 핵우산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민을 위해 미국민 수천만 명의 목숨을 걸 것이냐는 근본적 물음에 대답은 되지 못한다. 어떤 책임 있는 미국 관리도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예상대로 북한은 얼마 전 다탄두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

 

북한은 확장억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확장억제의 목적은 실제 대응에 있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4월 28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워싱턴 선언과 관련해 “핵을 사용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분명히 인식시킴으로써 핵 사용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말한 데 답이 있다.

만약 핵무기를 사용하면 몇 배로 핵보복을 받을 것이란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핵공격 시도 자체를 단념시키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핵우산에 이어 확장억제까지 한국과 약속했지만 어떠한 효과가 있었을까? 일각에선 이러한 측면과 더불어 확장억제와 연결하려는 한국형 3축 체계의 실효성 역시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상훈 주필은 앞서 언급한 칼럼에서 “한국군의 북핵 대응 ‘3축 체계’는 탁상공론에 가깝다. 핵을 가진 상대에게 선제공격을 한다는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이다. 어떤 한국 대통령도 그런 결심을 할 수 없다”라며 “(미국) 핵우산의 남은 용도가 있다면 한국을 향해 ‘미국 핵우산이 있으니 핵개발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한국에 오는 미국 항공모함, 핵잠수함, 전략폭격기가 “억제에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라며 “미국 전략자산[전략무기] 전개 역시 북한 억제보다는 한국에 핵개발을 하지 말라고 달래는 용도로 변질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콜비 전 부차관보는 앞서 언급한 KBS와의 대담에서 “아시아에서의 핵 비확산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 한국과 대만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걸 막는 데는 성공했는데, 북한과 중국엔 실패했다. 특히 우리의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비확산 정책을 추구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한미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대화가 생기고 정부 간 새 대화 그룹이 생겼지만, 그게 뭘 바꾸진 않았다. 미국이 탄도미사일 잠수함을 부산으로 보냈다. 그게 뭔가.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안 한 것이다. 그 잠수함은 원래 숨겨져 있어야 한다. 북한이 우리가 거기 핵무기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부산에서 그걸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마이크 터너 미국 하원 정보위원장은 6월 20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핵무기와 외교정책 관련 대담에서 “(확장억제의) 의도는 우리 동맹국들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적들이 핵무기를 확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기도 했다”라며 “문제는 이러한 효과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또 “확장억제는 우리가 의도했던 적들의 반응을 유도하는 데 실패했다”라며 “동맹국들이 점점 더 커지는 위협을 바라보면서, 한국이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을 보면서 이러한 의문을 가지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국 국민조차 확장억제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2024년 4월 5일 발표한 「미국 동맹국들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 비교」라는 글에서 “2023년 12월,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한국인의 신뢰는 39.3퍼센트였다”라며 “이는 2023년 3월 본원 조사 대비 6퍼센트 포인트 이상 감소한 수치이다. 2023년 4월 워싱턴 선언,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 등 한미 양국의 북핵 위협 대응 강화에도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한국인의 신뢰가 줄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미국 핵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는 미국 핵전략에 따른 점진적 조치가 아니라 일시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라고 짚었다.

이백순 한국 외교부 전 북미국장은 6월 25일 아주경제에 게재한 칼럼에서 “미국이 지난 70년간 절대적 열세에 있던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도 제대로 된 군사 보복을 한 적이 없다”라며 “막강 도전자 중국을 앞에 두고 제2전선을 열어 북한에 핵을 사용하면서까지 한국을 구해줄 것 같지 않다는 점을 미국 전문가들도 이제 고백하고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 핵개발에 성공했고 핵능력은 고도화되어 전략핵무기, 전술핵무기를 실전에 배치하고 있다. 핵무력법도 채택하며 확장억제에 두려워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12월 3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적들의 광란적인 전쟁연습 책동에 압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술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발사 훈련들을 비롯한 중요 군사 활동들이 공세적으로 조직 진행되고 무인정찰기와 다목적 무인기들이 개발되었으며 새로 건조한 잠수함의 진수식을 통해 공화국 무력의 무비한 임전 태세와 발전상을 유감없이 과시하였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적들이 무엇을 기도하든 그를 초월하는 초강경 대응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을 압도하는 강력한 실력 행사로 제압해 나가는 것은 우리의 드팀없는 대적 투쟁 원칙이고 방식”이라고 밝혔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올해 1월 2일 담화를 통해 “누구에게 겁을 준다고 미국의 핵항공모함이며 핵잠수함, 핵전략폭격기들을 숨 가쁘게 끌어들인 덕에 우리는 명분 당당하고 실효성 있게 자기의 군사력을 고도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2월 7일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과의 대담에서 “한미 당국이 확장억제력과 북한을 향한 다른 도발적 조치들을 계속 고수한다면, 미국 핵잠수함이 한반도에 입항한다면,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계속 날아다닌다면, 북한 지도부는 국방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핵시험을 진행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만약 북한이 미국의 확장억제에 두려움을 느꼈다면 한국과 미국을 타격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한국은 ‘미국이 보장하는 확장억제’라는 환상에 빠져 미국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다.

(계속)

 

이인선 주권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