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10월 16일
기사 제목 : [팔-이 전쟁] ① 최근 상황과 국제정세
1.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막상막하?…달라진 양상
지난 10월 7일(현지 시각) 가자지구의 집권 세력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했다. 10월 16일 기준 양측의 사상자가 2만여 명을 넘어선 가운데 전쟁이 언제 끝날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전쟁은 과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맨주먹이나 돌멩이로 이스라엘에 대항하다가 진압됐을 때와는 양상이 크게 다르다.
70여 년 동안 당하기만 했던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영토를 직접 공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군사 충돌 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의해 일방적으로 밀렸던 때와 달리 이번 전쟁에서는 하마스가 밀리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이 자신하던 대공 방어망 아이언돔은 하마스가 발사한 5,000발이 넘는 로켓포 앞에서 무기력했다. 아이언돔은 한번 미사일을 막아낸 뒤 다시 대비 태세를 갖추려면 한동안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하마스가 틈을 주지 않고 미사일을 한꺼번에 발사하는 전략으로 이스라엘의 방어망을 뚫은 것이다. 일부에서는 하마스가 기존의 로켓포를 뛰어넘는 첨단 무기를 동원해 이스라엘의 허를 찔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또 하마스는 행글라이더 등으로 1,000명이 훌쩍 넘는 대원을 이스라엘로 보내 군사 작전을 전개했다. 하마스는 대원들을 투입시키기 전에 무인기와 폭발물 등으로 이스라엘의 감시탑과 통신 시설, 장벽 일부를 무너뜨렸다. 2021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국경을 따라 세운 64킬로미터에 달하는 높이 6미터의 방어 장벽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이에 관해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당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스라엘은 북부 레바논 국경에서 군사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고 판단해 이곳에 병력을 집중해뒀다. 그런데 하마스가 북부 국경 지대가 아닌 곳의 초소 등을 노리면서 이스라엘이 큰 피해를 봤다고 한다. (박상현, 「이스라엘의 오판」, OTTER LETTER, 2023.10.12.)
10월 9일 AP통신은 이스라엘이 전자 장비를 동원해 감청을 시도하자 하마스는 대원들끼리 직접 만나 정보를 주고받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했다. 또 이스라엘이 그동안 군사 전략 측면에서 하마스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안일하게 대응해왔다고 진단했다.
10월 10일 뉴스1 보도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김봉자 씨는 “예루살렘에 30년을 살았는데 (팔레스타인이)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처음 들은 일이다. 공습 첫날이 유대교 명절이었는데 하루에만 로켓 3,000개가 떨어졌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팔레스타인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로 나뉘어 7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침탈을 견뎌야 했다.
이런 점에서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촉발된 이번 전쟁이 그동안 없던 이례적인 사건임을 알 수 있다.
2. 전쟁 흐름 분석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고 길어질 것이란 견해가 많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쟁의 흐름은 어떻게 진행될까.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10월 13일 페이스북에서 “하마스가 이렇게까지 준비하고 치밀하게 이스라엘의 정보망을 뚫고 공격을 했을 때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초토화 대량보복을 당연히 예상했을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이라면서 “이스라엘 지상군 병력이 가자지구로 직접 들어올 것을 예상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스테이지(무대) 2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또 “하마스는 가자지구로 진공해 들어오는 이스라엘 지상전 병력에 대한 치밀한 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라면서 “선제공격을 저 정도 치밀하게 질렀다면 다음 단계 역시 그림을 그리고 있을 공산이 크다”라며 이란이 하마스에 군사적 지원을 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한설 전 육군군사연구소 소장은 10월 10일 페이스북에서 “지금 당장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중동 전체의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지금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러시아, 중국에게 유리하고 미국에게 불리하다”라면서 전쟁이 국제전으로 번지면 미국이 패배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군사·안보 전문가 김종대 전 국회의원은 10월 11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라면서 “시가전이 진행됐을 때 레바논 등에서 분명히 반응이 있을 것 같다. 지상전에 대해선 (중동의) 주변국에서 민감하게 바라볼 것”이라며 전쟁이 국제전으로 번져 장기화될 가능성을 높게 봤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전폭 지지하며 무기를 지원했고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라고 규탄했다. 하지만 확전을 반대하며 전쟁에는 최대한 발을 빼려는 분위기다.
미국으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데 갑자기 중동에서 또 다른 우방 이스라엘이 공격받는 전쟁이 터졌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해도 별다른 성과가 없는 미국이 또 다른 전쟁에 말려들게 될 처지가 된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힘이 약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켜줄 힘이 있었다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힘이 빠진 미국은 더욱 곤혹스러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해서는 미 유력 언론도 인정한다. 10월 9일 뉴욕타임스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을 두고 미국이 패권을 잃으면서 국제질서가 다극화 체제로 전환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했다.
3. 국제사회의 분위기
미국과 영국 등 일부 서방 국가는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국,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 곳곳의 시민들 사이에선 ‘팔레스타인 지지’, ‘이스라엘 지지’로 의견이 나뉘고 있다.
이 가운데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했다가 이스라엘을 지지하겠다고 입장을 바꾼 사례가 눈에 띈다. 10월 7일 하버드대 학생들이 모인 팔레스타인 연대 그룹이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하버드 국제 앰네스티’ 등 하버드 내 34개 단체도 공동 서명했다.
그런데 10월 11일 미국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하버드 내 학생단체 중 4개 단체가 지지를 철회했다. 이에 관해 미국의 인기 직장인 월가 등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단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자 학생들이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포스트는 전했다.
미국, 영국과 달리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내놓은 국가들도 있다.
10월 11일 이집트에서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 외교부 장관 회의가 긴급하게 열렸다. 회의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를 규탄하는 한편, 팔레스타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공정하고도 항구적이며 포괄적인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아리프 알디 파키스탄 대통령,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시아 부총리 등 각국의 지도자들도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10월 14일 파이산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부 장관과 한 통화에서 “중국은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이 민족의 권리를 회복하는 정의로운 일을 계속해서 지지”한다면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를 규탄했다.
유엔과 유럽연합(EU)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는 국제법상 불법이라며 이스라엘을 향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고통에 빠트리는 행위를 관두라고 경고했다.
이 밖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여당, 인도네시아 외교부 등에서도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옹호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북한은 리광성 국제문제 평론가 명의로 10월 13일 발표한 논평 「중동 사태는 미국의 더 큰 전략적 패배를 예고한다」를 통해 “이번 사태 발발의 근원이 팔레스티나[팔레스타인] 영토를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팔레스티나인들의 이익을 무참히 유린하여온 동맹국(이스라엘)을 공공연히 비호 두둔하며 가장 반동적인 대중동 정책을 추구하여온 미국에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내린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전쟁에 관한 세계 각국의 반응으로 봤을 때 예전처럼 팔레스타인 악마화가 통하지 않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그동안 이스라엘을 비호해온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크게 요동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계속)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