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09월 07일
기사 제목 : [브릭스 짚어보기] ② 네 가지 측면으로 본 과제
머리말 지난 8월 22~24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5차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렸다. 잠재력이 높은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이 모인 브릭스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대항마'로 거론되는 등 입지가 부쩍 커졌다. 정상회의에서 나온 주요 내용과 브릭스의 과제 등을 두 편으로 나눠 싣는다. ① 미국 겨눈 '세계 다극화'…국제질서가 요동친다 ② 네 가지 측면으로 본 과제 |
1. 전망: 높아진 입지, 늘어난 회원국
이번 남아공 브릭스 정상회의는 신흥국들이 뭉쳐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질서를 겨냥해 ‘세계 다극화’라는 도전장을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내년부터 11개국이 함께하는 브릭스의 경제 규모는 구매력 평가 기준 세계에서 36%를 차지해, G7(29.9%)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8월 24일(현지 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브릭스에 추가될 6개국은 주요 석유 수출국이자, 인구가 급증하고 전략적인 위치에 있는 국가들”이라며 “브릭스의 미래 보장을 도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상회의 직후에는 브릭스의 ‘탈달러’ 행보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8월 28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유튜브를 통한 ‘대통령과 대화’ 대담에서 “다음(2024년) 브릭스 정상회의를 앞두고 회원국 재무장관들 간에 수출결제 통화를 만드는 것에 관한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우리는 달러로 거래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브릭스 회원국 간 거래 통화에 대해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통화로 거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관해 브릭스 신개발은행(NDB) 부행장을 지낸 브라질 경제학자 파울로 노게이라 바티스타 주니어는 8월 21일 러시아 언론과 대담에서 “최근 러시아 측이 브릭스 국가들의 통화는 앞에 알파벳 ‘R’이 붙기 때문에 새로운 공동 통화를 ‘R5’(R-five)로 명명하자고 제안했다”라면서 “매우 흥미로우며 R5를 통합 계정으로 시작한 다음 후속 단계를 개발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신개발은행은 브릭스의 통화 정책을 관장하는 기구로 현재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이 총재를 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룰라 대통령이 탈달러에 힘을 싣고 있어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가능성이 있다.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는 8월 25일 방송에서 산유국인 이란·사우디·UAE가 브릭스에 들어와서 거래하게 되면 달러에 상당히 위협이 된다며, 달러 체제의 구멍이 앞으로 더욱 커지게 되리라고 관측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브릭스의 회원국 확대에 관해 “중국 등 기존 회원국들이 브릭스의 영향력을 확대해 세계 경제와 무역, 특히 달러화 사용에 있어 미국에 대항하려는 성격이 크다”라면서 “특히 브릭스가 주요 석유 수출국과 수입국을 모두 회원으로 확보하게 된 만큼 석유 시장의 달러 지배력에 더 초점을 맞춰 대응할 수 있게 됐다”라고 짚었다.
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외교부에 해당)는 22개국이 브릭스에 공식 가입을 신청했고, 비공식으로 가입 의사를 타진한 국가까지 포함하면 가입 희망국은 40여 개국에 이른다고 밝혔다.
브릭스에 가입 의사를 밝혔거나 가입을 추진하는 국가들을 보면 모두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이다. 이들 국가들은 과거 서방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식민 지배와 수탈을 받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입 의사 표명국은 대륙별로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아프가니스탄, 카자흐스탄, 태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팔레스타인 ▲아메리카에서는 멕시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쿠바, 니카라과, ▲아프리카에서는 알제리, 나이지리아, 세네갈, 가봉, 콩고민주공화국 등이다.
브릭스 정상회의를 통해 제시된 포용적 다자주의는 국제사회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
9월 4일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이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언급된 “포용적 다자주의”와 표현이 비슷한 “포용적 다자무역 체제”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자간 무역을 통한 혜택으로 경제를 발전시킨 부유한 국가들은 이젠 공정하게 경쟁하길 윈치 않으며 규칙이 아닌 힘에 기반한 체계로 전환하길 원한다”라고 꼬집었다.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미국을 겨눠 “최근 일부 선진국의 일방적인 보호무역주의 조치와, 다자간 무역시스템·WTO에 대한 전반적인 거부감은 개발도상국에겐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브릭스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브릭스의 입지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2. 과제: 미국의 방해와 중국 쏠림현상
그렇다면 브릭스의 미래는 장밋빛이기만 할까. 네 가지 측면에서 브릭스의 미래가 꼭 밝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첫째로, 브릭스에 저마다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국가들이 모인 만큼 여러 이견이 분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 때문에 촉발됐다고 강조한 반면, 다른 회원국들은 평화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 국경에서의 긴장 완화를 약속한 것과 달리, 양국 국경에서는 또다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대선 국면인 아르헨티나의 친미 극우 성향 후보는 내년에 자신이 당선되면 브릭스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둘째로, 미국의 견제를 뚫어내야 한다.
프랑스 아에프페(AFP)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8월 29일 자신의 영향력이 강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재정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IMF 격인 긴급외환준비협정(CRA)과, 세계은행 격인 신개발은행을 설립해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을 지원해온 브릭스의 행보를 의식한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에 접근해 브릭스의 영향력을 낮추려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브릭스 회원국들이 이른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진국의 함정은 잠재력을 높게 평가받던 개발도상국·신흥국들이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한다는 경제 용어다. 브릭스 회원국이 각 대륙에서 입지가 상당한 국가임은 틀림없지만, 이들 국가가 G7을 넘어서는 선진국 모임으로 발돋움하기엔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넷째는, 다른 회원국을 압도하는 중국의 존재감이다.
이와 관련해 브릭스 내 중국의 국내총생산 비중이 2001년 47%에서 2022년 들어 70%로 급증한 점이 눈에 띈다. 다른 국가들의 성장세가 미미한 가운데 중국 쏠림 현상만 심각해지면, 국제사회의 다자주의와 평등을 내세운 브릭스 정신과 배치된다는 시각도 있다.
이를 볼 때 브릭스의 앞날은 소속 국가들이 약속한 포용적 다자주의, 상호 존중 등의 가치가 얼마나 잘 이행될 수 있느냐에 달린 듯하다. 각국의 국익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회원국이 함께 상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 브릭스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브릭스의 확장세가 만만찮은 것은 사실이지만, 브릭스가 미국 중심 국제질서를 대체하게 되리라는 관측은 아직 섣불러 보인다.
러시아가 의장국을 맡게 되는 내년, 브릭스는 11개국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브릭스가 어려운 과제를 함께 극복한다면 앞으로 세계 다극화의 시대가 본격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끝)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