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09월 06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265] 북중, 북러 관계의 변화와 우리의 과제 ④
(이어서)
북중, 북러 협력 전망
1) 군사 분야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세계 최강급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핵보유국인 북한이 힘을 보태면 상당한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북중, 북러의 군사 분야 협력은 크게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전략·전술에서 협력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 꼭 연합사령부를 꾸리고 함께 전투하지 않더라도 작전상 직·간접적으로 공조하는 방법은 많다. 북한은 이런 경험이 풍부하다.
1936년 10월 25일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은 방공(반코민테른) 협정을 맺었다. 1937년 11월 6일에는 이탈리아도 협정에 동참한다. 이에 따라 어느 한 나라가 소련과 전쟁을 하면 협정에 참여한 나머지 나라들도 소련을 공격하게 되었다. 유럽 전선에서 독일이, 동아시아 전선에서 일본이 협공하면 소련은 몹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직전인 8월 23일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맺었지만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일제는 소련과 상호원조조약을 맺고 있던 몽골을 침공하는 할힌골 전투를 개시했다. 이 전투는 사실상 일제와 소련의 교전이었고 쌍방이 각각 1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대규모 전투였다.
1939년 5월 11일 시작한 이 전투는 9월 16일에야 끝이 났다. 당시 이 전투가 일제의 소련 침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 김일성 주석은 1939년 8월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에 일제의 후방을 공격해 소련을 지원할 것을 명령했다. 북한은 일제의 주요 군사 보급로와 후방 기지를 파괴하는 후방 교란 작전이 일제의 소련 침공 저지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산 모범’이라고 평가한다. (오미영, 「할힌골 전투에 대한 남·북한 역사 인식 비교」, 『몽골학』 제72호, 한국몽골학회, 2023.2., 157~158쪽.)
1964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파병 요구를 수락했다. 1964년 9월 12일 의료진과 태권도 교관이 1차로 베트남에 도착했으며 그 후로도 꾸준히 병력을 파병했다. 한국은 미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베트남전에 파병한 나라였다. 연도별 참전 병력은 다음과 같다.
1968년이 밝자 베트남은 1월 30일 설 연휴를 기해 이른바 ‘구정 공세’를 폈다. 미군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 구정 공세는 베트남 전쟁의 운명을 갈랐다. 베트남전 시작부터 1967년까지 미군 전사자 수와 1968년 한 해 미군 전사자 수가 거의 맞먹을 정도로 구정 공세 이후 미군 피해가 급증했다. 따라서 1968년 미국은 한국에 대규모 증파를 요구해야 했다. 그러나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 1968년에 한국군은 추가 파병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한국에 증파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무장 부대 31명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침투, 청와대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까지 침투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른바 1.21사태 혹은 김신조 사건이다. 베트남 구정 공세 9일을 앞두고 발생한 이 사건으로 한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거기다 이틀 후 23일에는 푸에블로호 사건이 터졌다. 한국은 베트남에 병력을 보내기는커녕 보냈던 군대를 소환해야 할 판이었다. 그해 10월 30일에는 울진·삼척 지구에 북한의 무장 부대가 침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1월 1일까지 무려 120명이 침투해 전쟁을 방불케 했다.
이 사건들의 배경으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중에는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 파병을 방해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1.21사태 당시 대간첩대책본부장(합참본부장)이었던 심흥선 육군 중장은 사태가 끝난 후 “(북한이) 한미 간 이간책을 꾀하는 동시에 미국의 전력 분산으로 북베트남을 직간접으로 돕는 보다 고차원적” 작전을 폈다고 분석했다. (김창규, 『국방사건사 제1집』,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2, 81쪽.)
실제로 국군 자료에 따르면 1960년대 북한의 ‘대남 도발’은 1966년 91건 210명에서 1967년 184건 694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으며 1968년에도 141건 601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베트남전과 관련 있을 수 있다.
이 밖에도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 위기가 고조될 때 북한이 무력시위를 통해 미국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등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략·전술적 협력으로 추정되는 일들은 과거에도 많았다. 최근에는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27일부터 연달아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시험발사를 단행한 것도 이런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당시 한미연합군은 북한이 이른바 ‘괴물 ICBM’으로 불리던 화성포-17형을 시험 발사한 것으로 파악하면서 잔뜩 긴장했다. 그리고 북한은 한 달 뒤인 3월 24일 진짜 화성포-17형을 시험 발사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하지 못하게 막은 것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식의 전략·전술적 협력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전장에 파병할 수 있다.
과거에도 북·중·러는 전쟁을 돕기 위해 공개적으로 때로 비공개로 파병한 사례가 있다.
공개적인 파병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이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군대를 보내 북한을 도운 사례가 있다.
비공개 파병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소련이 전투기 조종사를 파병한 사례가 있다. 올해 7월 27일 북한의 ‘전승절’을 기념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북한에 보낸 축전에는 “수만 회의 전투비행을 수행한 비행사들을 포함한 소련 군인들도 조선[북한]의 애국자들과 함께 어깨 걸고 싸우면서 원수를 격멸하는 데 무게 있는 기여를 하였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소련이 한국전쟁에 파병한 것을 공식적으로 공개한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북한도 베트남전에 비공개 파병을 한 사례가 있다. 지금은 북한과 베트남 모두 이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 북한은 1973년 4차 중동전쟁 당시 이집트에도 파병했다.
이런 전례를 볼 때 북한이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이미 군대를 파병했을 가능성도 있다. 바흐무트 탈환전에서 맹활약한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은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용병을 고용하고 있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특수부대 군인들을 민간인 신분으로 보내 바그너 그룹 소속으로 참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하나의 가설일 뿐 아직 아무런 근거도 나온 바 없다.
셋째, 무기 지원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한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이는 다른 나라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촉구하기 위한 명분 쌓기용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북한 무기가 러시아에 제공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7월 27일 북한의 ‘전승절’을 계기로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무장장비전시회를 참관하였다. 현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쇼이구 장관에게 무기에 관해 설명하였다. 이 장면을 보고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첨단 무기를 제공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간 북한 무기는 가성비와 효율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또 최근 공개된 무기들은 미·중·러가 개발한 최신 무기와 동급이거나 더 우월한 것으로 보이는 첨단 무기들이다. 언론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수십 년 된 무기들을 두고 매번 ‘게임 체인저’라고 부르는데 만약 북한이 러시아에 첨단 무기를 지원한다면 그게 진짜 ‘게임 체인저’가 될지도 모른다.
북한이 중국, 러시아의 첨단 무기를 구입할 수도 있다. 첨단 무기 판매, 구입은 신뢰도가 높은 나라끼리 가능하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최상급 전투기는 4세대 전투기인 MiG-29로 보통 미국의 F-16 파이팅 팰컨과 동급으로 본다. 그런데 2020년 12월 9일 러시아 항공 전문 온라인 매체 아비아 프로가 북한의 MiG-35 구입 움직임을 보도했다. MiG-29의 다음 세대(4.5세대) 전투기인 MiG-35는 2019년 러시아에 첫 실전 배치된 최신예 전투기다. 그런데 여기에 중국의 4.5세대 전투기인 J-10C가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끼어들었다. J-10C는 2017년에 처음 실험기가 노출될 정도의 최신예 전투기다.
애초에 북한은 2008년 J-10 구매를 추진했으나 중국이 거부한 적이 있다. 이후 Su-35를 구입하려고 러시아와 협상했지만 역시 불발되기도 했다. 이를 놓고 볼 때 과거 북한에 최신 전투기 판매를 꺼리던 중국, 러시아가 최근 들어 태도를 바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움직임을 보이자 러시아가 발끈하고 나선 적이 있다. 지난 4월 19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은 텔레그램에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제공 움직임을 비판하면서 “한국 국민들이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우리의 파트너인 북한의 수중에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이라 말할지 궁금하다”라고 하였다. 북한에 최신 무기를 판매했거나 혹은 판매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넷째, 무기 기술 협력도 할 수 있다.
미국과 서방에서는 북·중·러가 무기 기술을 공유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특히 북한이 첨단 무기를 공개할 때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기술이 흘러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하고 방해한 중국, 러시아가 첨단 무기 기술을 전해줄 이유는 없다. 세계 어느 나라도 첨단 무기 기술은 함부로 공유하지 않는다. 미국도 한국에 그렇게 많은 무기를 판매했지만 구식 무기 기술조차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한다.
그러나 북·중·러 사이의 신뢰가 쌓이면 무기 기술 협력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특히 북한은 오래전부터 ‘전 세계 도처에서 미국의 각을 뜨자’는 주장을 해왔으며 이를 위해 미국과 대치하는 반미 국가들에 여러 군사적 도움을 주었다. 여기에는 무기 기술 전수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정보기관은 1980년부터 북한의 미사일 기술자들이 이란에 상주하면서 기술 전수를 했다고 보고 있다. 또 이스라엘 국방부도 북한이 시리아에 미사일 생산 공장을 지어주고 기술자를 파견해 미사일 개발을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사 분야의 여러 협력 형태 중에는 연합훈련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껏 다른 나라와 연합훈련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연합훈련을 하려면 공동의 계획을 세우고 공동의 작전을 펼쳐야 한다. 또 하나의 전선에서 공동 작전을 수행하려면 연합 지휘부를 꾸려야 한다. 그런데 연합 지휘부를 꾸려 작전 지휘를 하는 방식에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전쟁철학과 관점, 이론이 다르면 작전을 짜고 지휘하는 과정에서 사사건건 충돌할 수가 있다. 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휘하는 식이 되면 주권 문제나 독자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연합훈련이나 연합작전을 비효율적으로 여기는 듯하다. 북한은 이런 형태보다는 각자가 자기 전선에서 자력으로 전쟁을 수행하며 다른 나라의 도움은 보조적인 수준에 머무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러시아에서 북러연합훈련에 관한 목소리가 연속해서 나왔다. 아마도 러시아가 북한에 연합훈련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북한이 이를 수용했다는 정보는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7월 북한을 방문한 쇼이구 장관을 조선노동당 중앙위 본부 청사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초대해 면담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노동당 집무실을 방문한 외국인은 쇼이구 장관이 처음일 것이다. 북한의 기밀 공간에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들어간 것을 보면 북러 사이의 군사 협력 수준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북·중·러 군사 협력이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시해야 하겠다.
(계속)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