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6.

북한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교재는 북한 헌법이다. 
헌법을 분석하다보면 북한 사회의 기본 이념과 국가 정체성,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 국가 정책과 노선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nk투데이 편집부는 북한 헌법을 하나하나 파헤쳐보는 연재를 기획하였다. 
분석할 북한 헌법은 현재 한국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최신판인 2019년 8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수정보충한 헌법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표기법은 한국의 맞춤법을 따르되 불가피한 경우 북한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북한 헌법은 통일부, 법무부, 법제처가 공동 운영하는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https://unilaw.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제17조 자주, 평화, 친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외 정책의 기본이념이며 대외 활동 원칙이다. 국가는 우리나라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 완전한 평등과 자주성, 호상(상호) 존중과 내정불간섭, 호혜의 원칙에서 국가적 또는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를 맺는다. 국가는 자주성을 옹호하는 세계 인민들과 단결하며 온갖 형태의 침략과 내정간섭을 반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적, 계급적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나라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 성원한다.

‘자주·평화·친선’ 이념은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자주·친선·평화’를 대외 정책 이념으로 공식 천명했다. (국토통일원, 『조선로동당대회자료집』 제4집, 국토통일원, 1989, 73~75쪽) 

김일성 주석은 1988년 9월 ‘공화국 창건’ 40주년 경축 보고대회 연설에서 ‘자주·평화·친선’으로 순서를 바꿔 새롭게 제시하기도 했다. 

이후 북한 문헌을 보면 ‘자주·평화·친선’과 ‘자주·친선·평화’가 혼용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자주’는 북한 대외 활동의 근본원칙이며 대외 정책 결정, 집행 과정에서 자주성을 가질 것과 제국주의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지킬 것을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다. 

또한 다른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도 존중해야 하며 국제관계 발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을 자주성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평화’는 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적극 추진하여 제국주의의 멸망을 촉진하며 침략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공동위업에 적극 기여하는 노선이다. 

이 노선은 군사블록 해체, 침략적 군사기지 철폐, 외국군대 철수, 비핵지대·평화지대 창설과 확대, 노동계급과 피압박 민중의 투쟁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친선’은 나라와 민족들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다방면으로 교류와 협조를 확대,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자주성을 지향하는 진보적인 나라와의 단결을 강조한다. (이상 자주·평화·친선에 대한 설명은 허문영, 「북한의 대외정책 현황과 전망」, 『북한의 대외관계 변화와 남북관계 전망』(제22회 국내학술회의 발표논문집), 민족통일연구원, 1996, 12쪽 참조)

 

2018년 북한에서 진행한 국제민주여성연맹 연대성 행진.


북한의 이런 대외 이념은 궁극적으로 세계 자주화를 실현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헌법에서 명시한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적, 계급적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나라 인민들의 투쟁”도 결국 세계 자주화를 위한 투쟁으로 연결된다. 

북한은 “모든 나라와 민족이 자기 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자기 나라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세계 진보적 인민들과의 유대와 연대성을 강화하고 선린우호 관계를 적극 발전시켜나감으로써 자주성에 기초한 친선 협조 관계의 폭을 더욱 넓혀 나가야” 하며 여기서 북한이 앞장서야 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2015년 기준 160개국과 수교한 상태라고 한다. 

대륙별로 보면 아시아 42개국, 아메리카 24개국, 유럽 49개국, 아프리카 45개국 등이다. 

북한의 대외 정책은 철저히 자주·평화·친선의 원칙에 따른다. 

최근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철저히 러시아를 지지하였다. 

2022년 3월 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이 채택될 때 반대표를 던진 5개국 가운데 하나가 북한이었다. 

이는 러시아를 침략국으로 규정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한국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얼핏 러시아가 주권국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므로 자주, 평화, 친선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태를 분석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북한의 첫 공식 발표는 2022년 2월 28일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나왔다. 

여기서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하게 된 근원은 전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대한 강권과 전횡을 일삼고 있는 미국과 서방의 패권주의 정책”에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서방은 법률적인 안전담보를 제공할 데 대한 러시아의 합리적이며 정당한 요구를 무시한 채 한사코 나토의 동쪽 확대를 추진하면서 공격무기체계 배비 시도까지 노골화하는 등 유럽에서의 안보 환경을 체계적으로 파괴”하였다고 주장했다.

즉,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움직임은 우크라이나의 자주적 판단이 아닌 미국의 나토 동진 정책의 일환이며 러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므로 자주·평화·친선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긴다. 

이런 판단 아래 북한은 중국 등 다른 어떤 나라보다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2022년 연말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보고를 통해 북한의 대외 정책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북한은 국제 정세를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었다고 판단하였으며 대외 사업 원칙을 “국위 제고, 국권 수호, 국익 사수를 위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철저히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미국의 동맹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국가의 신성한 존엄과 자주권을 찬탈하는데 발을 잠그기 시작한 나라들에도 경종”을 울렸다고 하였다. 

여기서도 확인되듯 북한은 자국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나라와는 친선을 도모하지만, 자주권을 위협하는 나라를 향해서는 철저히 강경한 자세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