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0.

‘중남미 경제성장률 1위’ 국제무대에 복귀한 베네수엘라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원하는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다른 나라와 넓은 협력으로 통합하여 나아갑니다. 베네수엘라라고 불리는 이 축복받은 땅이 역경 속에서도 계속 번영하고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어서 갑시다!”
-지난 11월 6일부터 11월 8일(현지시각)까지 이집트에서 열린 27차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총회(COP27) 정상회의에 참가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요즘 국제무대를 분주하게 오가는 ‘우고 차베스의 후계자’ 마두로 대통령의 발걸음이 바쁘다.

 

 

▲ COP27에 참가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출처 : 마두로 대통령 페이스북 공식계정

 


COP27에 참가한 마두로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미아 모틀리 바베이도스 총리 등 다른 국가 정상들과 정상회담을 하는 사진을 잇달아 올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마두로 대통령을 반갑게 맞은 회동 장면도 눈에 띈다.

 

 

▲ 마두로 대통령이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출처 : 마두로 대통령 페이스북 공식계정
▲ 마두로 대통령이 미아 모틀리 바베이도스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출처 : 마두로 대통령 페이스북 공식계정
▲ 마두로 대통령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동했다. 출처 : 마두로 대통령 페이스북 공식계정


그런데 이는 미국이 마두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베네수엘라를 ‘국제 왕따’로 내몰던 지난날과는 완전히 달라진 광경이다. 특히 과거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의 편에서 마두로 대통령을 향해 “전례 없는 인도주의적 어려움을 대가로 치르면서 연명하려는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달라진 베네수엘라의 모습은 또 있다. 원유 수출 재개와 물가 안정에 힘입어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깜짝 반전’을 선보인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경제위원회(ECLAC)는 10월 19일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2년 중남미 국가의 평균 성장률을 3.2%로 추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률은 12%, 2023년 경제성장률은 5%로 다른 중남미 국가의 평균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CEPAL)에서도 중남미 국가들의 202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중남미 국가 중 베네수엘라가 1위(10%), 파나마가 2위(7%), 콜롬비아가 3위(6.5%)로 나타났다.

베네수엘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2021년까지 27분기 연속으로 역성장을 했지만 2022년 들어 성장세로 전환했다. 올해 베네수엘라의 성장률은 1분기 기준 12.3%, 2분기 기준 16.6%로 조사됐다.

한때 천정부지로 치솟던 물가도 잡혔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BCV)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2019년 기준 연간 35만%로 굉장히 높았지만 2022년 4월 기준 222%로 크게 내렸다.

이런 베네수엘라의 모습은 조중동 같은 국내 보수 언론이 ‘미국의 제재를 받고 국제사회와 연결이 끊긴 베네수엘라 경제가 폭망했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동안 베네수엘라를 둘러싸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국 패권의 약화와 재개된 원유 수출



본래 베네수엘라가 지닌 경제 잠재력, 성장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약 3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 전 세계 1위다. 과거 베네수엘라는 막대한 석유 매장량을 바탕으로 수출에 나서며 경제를 지탱해왔다.

하지만 지난 1998년 집권한 차베스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서 전횡을 부려온 미국 기업을 쫓아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후 20여 년 동안 미국의 무지막지한 제재를 받은 끝에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한때 전성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거꾸러졌다. 원유의 수출길이 막히니 생산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랬던 베네수엘라의 숨통이 트이게 된 건 결정적으로 미국의 패권이 약화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파장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원활하지 않고, 유럽 등 우호 국가의 반발 기류가 확산하면서 미국은 어쩔 수 없이 베네수엘라에 가하던 제재를 거둬들여야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3월 4일(현지시각) 후안 곤잘레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국장과 제임스 스토리 주베네수엘라 미국 대사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찾았다. 이들은 마두로 대통령과 델리 로드리게스 부통령을 만났다. 그동안 전 국회의장 후안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정식 대통령으로 인정해오던 미국이 완전히 반대되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에 관해 지난 3월 14일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가한 제재가 완화되면 미국의 석유합작법인 셰브론이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미국으로 실어나를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파장으로 부족해진 원유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미국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마두로 정부를 인정한 셈이다.

마두로 정부는 EU 아메리카지역 외교 담당관과 만나 논의를 이어가는 등 적극 행보에 나섰다. 이미 EU 소속 일부 국가에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출이 재개됐고, 앞으로 다른 유럽 각국에도 점차 원유가 수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에서 베네수엘라의 달라진 상황을 다룬 보도는 거의 찾기 힘들다. 관련 보도로는 지난 4월 5일 머니S가 보도한 현지 국회의원과 대담을 나눈 기사 「“베네수엘라, 러에 고마움… 美, 석유 청하기 전 내정간섭 멈춰라”[김태욱의 세계人터뷰]」가 거의 유일하다.

베네수엘라의 여권 인사인 데니스 소토 국회의원은 지난 3월 17일 머니S와 진행한 비대면 대담에서 베네수엘라와 미국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확실한 점은 이번 양국 간의 만남이 철저히 상업적 관계라는 것이다. 미국이 친선 혹은 외교적 관계를 도모하기 위해 (카라카스에)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베네수엘라 미 대사관은 오랜 기간 사실상 폐쇄상태를 유지했다. 베네수엘라 국민을 억압한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도움이 필요해지자 카라카스로 달려왔다.”
-소토 의원이 전하는 말

 

 

마두로 정부는 베네수엘라에서 운영되는 법인의 운영 자율권을 셰브론으로 넘겨달라는 미국 측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급히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길을 터준 미국으로선 제대로 체면을 구긴 셈이 됐다.

 


스스로 힘을 키운 베네수엘라와 국제정세의 지각변동

 

 

▲ COP27에서 다른 나라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마두로 대통령. 출처 : 마두로 대통령 페이스북 공식계정

 


베네수엘라가 국제무대에 복귀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미국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길러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2021년 5월 기준 53.1만 배럴에 머물렀던 베네수엘라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2022년 2분기 기준 70만 배럴로 36%나 치솟았다. 그런데 소토 의원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원유량은 그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소토 의원은 “우리의 생산능력이 75만 5,000배럴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가혹한 제재 속에서도 일일 원유 생산능력을 300만 배럴 혹은 그 이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라며 “물론 이는 미국의 불법적인 제재에 맞서 러시아 등 이웃 국가들과 협력하며 석유 생산능력을 유지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위 주장이 사실이라면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알려진 것보다도 훨씬 많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통해 마두로 정부에서 주력산업인 석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힘을 길러왔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이에 관해 지난 11월 6일 마두로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대한 금수 조치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우 존엄하게 나아갈 수 있었고 국민들에게 무료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라고 적었다.

마두로 대통령의 위 말은 극심한 경제 위기에 빠진 베네수엘라 정부가 국민의 삶을 등한시했다는 서방 진영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 진보·반미 진영의 힘이 커지는 격변기 속에서 연대와 단결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왔다. 

지난 6월 20일(현지시각) 줄곧 친미 정권이 들어섰던 베네수엘라의 이웃 국가 콜롬비아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반미 게릴라’ 출신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자 2017년에 끊겼던 양국 외교도 곧 복원됐다. 당시 마두로 대통령과 새로 부임한 베네수엘라 주재 콜롬비아 대사가 와락 부둥켜안은 사진이 화제가 됐다.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각) 브라질에서는 전 대통령 출신 ‘룰라’ 후보가 당선됐다. 이로써 중남미 주요국에 모두 마두로 정부를 인정하는 진보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우크라이나, 한반도 등으로 전선을 뻗친 미국으로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남미 정세의 지각변동을 마두로 정부에 힘이 실린 또 다른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베네수엘라는 중남미를 넘어 중국, 이란, 러시아 등 미국과 엇서는 국가들과 꾸준히 연대하며 위기를 뚫어낼 방도를 찾아왔다. 베네수엘라가 혼자였다면 식재와 생필품 같은 기초 물자 반입마저 사사건건 방해해온 미국의 가혹한 제재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진실을 알게 된 한국의 한 누리꾼은 다음과 같이 댓글을 남겼다.

 

 

“베네수엘라 상황에 대해 언론에서 너무 과장해서 보도한 게 아닌가 합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베네수엘라인 이런 뉴스 영상들도 있던데 똑같이 한국도 폐지 줍는 노인들 영상 올리면 졸지에 전 세계 최빈국으로 보여질 수 있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의 제재와 가짜뉴스에 시달려오던 베네수엘라가 앞으로 국제사회의 당당한 주요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 앞날이 주목된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