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30.

북한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교재는 북한 헌법이다.
헌법을 분석하다보면 북한 사회의 기본 이념과 국가 정체성,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 국가 정책과 노선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nk투데이 편집부는 북한 헌법을 하나하나 파헤쳐보는 연재를 기획하였다.
분석할 북한 헌법은 현재 한국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최신판인 2019년 8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수정보충한 헌법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표기법은 한국의 맞춤법을 따르되 불가피한 경우 북한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북한 헌법은 통일부, 법무부, 법제처가 공동 운영하는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https://unilaw.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2. 조국 통일 3대 원칙

 

북한은 헌법 9조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명시하였다.

 

여기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조국 통일 3대 원칙이다.

 

공동성명 1항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통일원칙들에 합의를 보았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이를 줄여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주의 원칙은 통일의 본질에 관한 원칙으로 가장 중요한 근본 원칙이다.

 

원래 하나의 나라였던 우리가 분단된 것도 외세 때문이며, 지금껏 통일을 방해한 것도 외세이기에 외세의 간섭을 받거나 외세에 의존해서는 절대 통일할 수 없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문제이므로 당연히 외세를 배제하고 우리 민족이 자체 판단과 자체 힘으로 통일해야 한다.

 

자주의 원칙은 이후 남북 합의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1항)

남과 북은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이에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2007년 10.4선언 1항 중)

양 정상은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2018년 9월평양공동선언 전문 중)

 

평화통일의 원칙은 통일의 방법에 관한 원칙이다.

 

전쟁의 방식으로 통일한다면 그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대화와 협상의 방법으로 통일하자는 것이 평화통일의 원칙이다.

 

최근 일각에서 북한이 전쟁을 통한 통일을 언급하였기에 평화통일의 원칙을 폐기했다는 식으로 분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북한의 표현을 정확히 들여다보면 ‘한국이나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경우 무력으로 통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2년 8월 25일 선군절 경축연회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만약 적들이 신성한 우리의 영토와 영해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즉시적인 섬멸적 반타격을 안기고 전군이 산악 같이 일떠서 조국 통일 대업을 성취하기 위한 전면적 반공격전에로 이행”할 것이라고 하였다.

 

즉, 평화통일의 원칙은 그대로지만 전쟁이 발발할 경우 무력 통일을 피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게 맞다.

 

나아가 북한은 자신들이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기에 한미 당국이 함부로 전쟁하지 못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통일의 본질과 원동력에 관한 원칙이다.

 

통일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갈라진 민족이 다시 만나 하나로 단합하는 문제다.

 

남북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의 차이가 있다.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가 분명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남과 북 둘 중 하나가 자기 체제를 포기해야 통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즉, 통일은 북한까지 자본주의가 되는 흡수통일 아니면 한국까지 사회주의가 되는 적화통일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대단결은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넘어 하나의 민족이라는 공통성에 기초해서 단결하여 통일을 이루자는 원칙이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지킨다면 남북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속에서 얼마든지 통일할 수 있다.

 

이것이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2항에서 합의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키는 방식이다.

 

조국 통일 3대 원칙은 남북이 합의한 것이므로 북한만의 원칙이 아닌 우리 민족 모두의 원칙이다.

 

북한은 남북이 합의한 원칙을 지켜 통일을 실현하자고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참고로 통일과 관련한 대한민국 헌법은 다음과 같다.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일반적으로 조국 통일 3대 원칙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순이지만 북한은 종종 자주, 민족대단결, 평화통일 순으로 표현한다.

 

1972년 5월 3일과 11월 3일 김일성 주석은 남북고위급 정치회담에 참여한 남측 대표와 담화하면서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설명하였는데 이때도 순서는 자주, 민족대단결, 평화통일 순이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별도의 해설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자주와 민족대단결은 통일의 본질에 관한 원칙이고 평화통일은 통일의 방법에 관한 원칙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6.15남북공동선언 1항에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자주와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압축해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우리 민족끼리’란 우리 민족의 뜻대로, 우리 민족의 힘으로 통일하자는 원칙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