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2년 09월 04일
기사 제목 : [기획연재] 서민들은 죽어나는데 자화자찬만 늘어놓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말들을 보면 자화자찬으로 가득하다. 민생 경제와 관련한 언급들을 보면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경제정책 운용 기조를 바로잡고, 서민들을 두텁게 지원했다고 한다. 그 어느 정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집값 안정화를 단 100일 만에 이뤄내는 기적을 창조하기도 했다.
부자감세, 낙수효과...과거로 회귀한 경제정책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소주성과 같은 잘못된 경제정책을 폐기했습니다”라며 “경제 기조를 철저하게 민간 중심, 시장 중심, 서민 중심으로 정상화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경제정책 기조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게 바꾸었”으며 “상식을 복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간 중심’, ‘시장 중심’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철 지난 부자 감세와 낙수효과에 기댄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으로의 회귀를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 정부는 뒤로 빠지고 민간기업들이 알아서 하도록 둔다면 그 경쟁에서 승자가 누가 될지는 뻔한 일이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상식’은 무엇인지도 의문이다. 적어도 국민이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에 서명했다(이 법의 대외적 영향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논외로 한다). 이 법안의 핵심은 부자증세를 통한 정부지출 확대다. 구체적으로 연간 수익 10억 달러가 넘는 대기업에 최소 15% 법인세 부과(10년간 2,580억 달러, 약 340조 원), 주식 환매에 대한 1% 소비세 부과, 고소득 가구 대상 국세청 집행 강화 등 부자증세를 통해 7,400억 달러(약 961조 원) 재원을 확보해 기후변화 대응에 3,693억 달러, 처방 약 인하를 위한 전 국민건강보험 640억 달러 등 4,300억 달러(약 564조 원)를 지출한다.
윤 대통령 본인은 우리 경제정책 기조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게 바꾸었다고 하는데, 당장 미국부터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반대되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자화자찬에 속을 국민은 없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라는 부정 평가가 61%로 나타났다(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수행, 8~10일 만 18세 이상 1,008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18.4%).
재벌에겐 퍼주기, 서민에겐 ‘허리띠를 졸라매야’
윤 대통령은 “민간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세제를 정상화시켰습니다”라며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도록 법인세제를 정비하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존 25%의 법인세 세율을 적용받던 3,000억 원 초과 과세표준 구간을 없애고 22%로 하향 조정했다. 즉,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린 것이다.
2020년 기준 3,000억 원 초과 과표구간에 해당하는 기업 수는 법인세 신고 법인 83만 8,000개의 0.01%, 법인세 납부 대상이 되는 흑자 법인 53만 2,000개의 0.02%에 불과한 약 80여 개다. 극소수 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장석우 변호사(회계사)의 분석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과표구간 조정으로 인해 혜택을 보는 기업(과세표준 3,000억 원 이상 기업)에 돌아가는 법인세 감세효과는 매년 약 4조 3,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가 1조 2,670억 원으로 전체 혜택의 30%가량을 가져간다. SK하이닉스 4,230억 원, 포스코 2,210억 원, 삼성디스플레이 1,080억 원, 국민은행 1,050억 원 등의 순이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정부가 우리 국민의 혈세를 허투루 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며 “공적 부문의 긴축과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정을 최대한 건전하게 운용하고, 이를 통해 확보된 재정 여력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는 데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재벌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법인세를 깎아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공공부문 긴축과 구조조정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겠다고 한다. 모순이다.
윤석열 정부의 보유세 완화와 법인세·소득세·상속세 등 감세 정책으로 향후 5년간 60조 원이 넘는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이렇게 세수가 줄어들면 누가 그만큼 세금을 더 내든지 또는 그만큼의 서비스를 못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100일간의 윤석열 정부 행보를 봤을 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돌아올 것은 자명해 보인다.
또한 윤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욱 고통받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주력해”왔다고 하지만 이를 체감하는 국민은 없어 보인다.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것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손실보전금 25조 원 지원이다.
하지만 손실보전금은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다가 마지못해 집행한 일회성 지출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과 같은 ‘민간주도’, ‘시장중시’ 입장으로는 결코 소상공인을 보호할 수 없다. 소상공인의 이익이 재벌 대기업의 이익과 상충 될 때 윤석열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자명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지 않고서 당장 소상공인을 보호할 수단이 마땅치 않지만, 이런 식의 규제는 윤석열 정부에게는 기업 경쟁력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규제로 치부될 뿐이다.
일례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제도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주변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상징적이고도 대표적인 정책이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규제범위에서 온라인 배송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자본에겐 적용되지 않는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관계’
윤 대통령은 “노사 문제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 사건과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사건을 처리”했다며 “관행으로 반복된 산업현장의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노사를 불문, 불법은 용인하지 않으면서 합법적인 노동운동과 자율적인 대화는 최대한 보장하는 원칙을 관철했고 앞으로도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이 언급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 사건’과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사건’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 얼마나 후진적이고 반노동적인지를 여실히 입증한 상징적인 사건일 뿐이다.
윤 대통령은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과 관련해 “빨리 불법행위를 풀고 정상화시키는 것이 모든 국민이 바라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하청지회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당시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볼 수 없고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사법기관이 아닌 대통령이 나서 불법파업으로 규정한 것이다. 대통령이 불법파업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노사 간 대화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에게는 불법 딱지를 붙였지만, 20m 고공에서 안전 그물망도 없이 일하는 조선소의 열악한 작업 환경(산업안전보건법), 하청노동자를 향한 폭력행위와 협박(형법-특수상해, 협박) 등 사측의 불법행위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사건은 윤석열 정부의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파업의 핵심 쟁점은 안전 운임 일몰제 폐지였다. 안전 운임제는 매년 국토부 장관 산하 화물자동차 안전 운임위원회에서 논의되어 왔고, 일몰을 앞두고 국토교통부가 그간의 성과 등을 국회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노정 교섭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파업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노사 자율’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정부는 ‘법과 원칙’, ‘노사 자율’을 운운하며 책임을 미뤘다.
규제 풀면서 집값 잡았다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대통령은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켰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취임 100일 만에 역대 정부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웠던 집값을 안정시킨 것이다. 더군다나 “징벌적 부동산 세제, 대출 규제를 집중적으로 개선”해 집값을 안정시켰다는데, 세금 깎아주고 대출 늘려줘서 집값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윤 대통령은 경제학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이 정부가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그런 뜬금없기 짝이 없는 자랑을 늘어놓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라며 “그동안 이 정부가 해온 언동은 집값과 전셋값 안정과는 반대되는 방향 아니었나요?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대폭 줄여 계속 다주택 상태를 유지해도 되게 만들어 줬다든가, 투기를 억제하는 각종 규제를 완화시킨다는 등의 조처 말입니다”라고 비판했다.
현재 집값 폭등세가 멈춘 것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금리 인상 기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주장한 것이 사실이라면 현재의 집값 안정은 거래가 늘어나며(공급이 늘어나며) 집값 안정세가 함께 나타나야 한다. 공급이 늘어서 그만큼 가격이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수많은 언론에서 나오고 있는 것처럼 거래가 얼어붙어 있는 국면이다.
또한 윤 대통령은 주거급여 확대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거복지 강화에 노력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계약갱신요구권, 전월제 인상률 상한제 등 무주택 서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들이 폐지 또는 개정될 위기에 처해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 100일 동안 민생경제는 파탄의 길로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는 비전이란 것이 구시대적 감세, 낙수효과 같은 것뿐이어서 앞으로도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박영준 자주시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