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5.

후보 시절 ‘선제타격’ 논란을 빚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담대한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윤곽을 드러냈다. 

취임 초기 통일부를 해체할 것 같은 분위기와 반대로 권영세라는 중량급 인사를 통일부 장관에 앉히자 많은 이들이 윤석열 정권의 대북 정책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주목하였다. 

윤석열 정권의 대북 정책은 통일부 업무 보고, 77주년 광복절 경축사, 취임 100일 기자회견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우선 7월 22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업무 보고 내용을 살펴보자. 

통일부가 공개한 비전, 3대 원칙, 5대 핵심 추진과제는 다음과 같다. 

 


문재인 정부가 합의한 4.27판문점선언의 정식 명칭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여기서 평화·번영·통일을 윤석열 정권은 비핵·평화·번영으로 수정한 셈인데 그만큼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다. 

5대 핵심 추진과제의 첫 번째 과제도 ‘비핵화와 남북 신뢰 구축의 선순환’이다. 

통일부는 이에 관해 “담대한 계획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여 단계별로 제공할 수 있는 대북 경제협력 및 안전보장 방안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경제 보상을 맞바꾸는 계획이 사실상 윤석열 정권의 대북 정책인 ‘담대한 구상’의 핵심 내용인 것이다. 

나머지는 너무 대북 적대, 강경 일변도로 보이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넣어놓은 부차적인 내용일 뿐이다.

예를 들어 네 번째 과제인 ‘개방과 소통을 통한 민족 동질성 회복’을 보면 비핵화와 무관하게 “겨레말큰사전, 개성 만월대 등 순수 사회문화교류는 적극 추진”하고 “(북한 언론, 출판, 방송 등의) 단계적 개방”도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큰 틀에서 남북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실현되기 힘들다. 

즉, ‘담대한 구상’이 이행되지 않으면 나머지는 모두 ‘말 잔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은 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담대한 구상’을 반복하였다. 

 

77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


관련 내용을 보자.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전 세계의 지속 가능한 평화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저는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으로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프로그램,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하였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경축사의 내용을 반복한 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한치의 빈틈없는 안보태세를 지켜나갈 것”이라는 내용 정도를 추가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기는 했다. 

“저나 우리 정부는 북한 지역의 무리한, 힘에 의한 현상 변화는 전혀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여러 가지 경제적·외교적 지원을 한 결과, 북한이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면 그 변화를 환영하는 것뿐.”

“(담대한 구상은) ‘먼저 다 비핵화를 시켜라. 그다음에 우리가 한다’는 뜻이 아니다. (북한이) 확고한 의지만 보여주면 거기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도와주겠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종전과는 다른 이야기.”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선 비핵화’ 주장이 아니라며 종전과는 다른 정책이라고 강조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 시기 대북 정책인 ‘비핵·개방·3000’을 떠올린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1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명박 정부에서 실패했던 ‘비핵·개방·3000’과 대단히 흡사하다”, “본질적으로 당시나 지금이나 북한을 협상장으로 견인해 낼 방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라고 혹평했다. 

진보당도 16일 대변인실 논평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은 과거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의 재판으로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3축 체계 강화로 선제공격 및 전쟁 불사를 공언하는 데다 역대급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먼저 ‘비핵화’를 하라는 것이 얼마나 앞뒤가 안 맞는 비현실적인 주장인지…”라고 반문했다. 

민주노총은 16일 논평에서 ‘담대한 구상’을 “비핵·개방·3000 버전 02”라고 꼬집었다. 

미국 평화연구소(USIP)의 프랭크 엄 선임연구원도 미국의소리 인터뷰에서 ‘담대한 구상’이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3000’을 연상케 한다고 하였다. (「전문가들 “윤석열 ‘담대한 구상’ 제안, 북한 ‘관여 의지’ 가늠할 기회...실효성엔 한계”」, 미국의소리, 2022.8.16.)

또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한반도를 담당했던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과거 한미 당국은 대규모 식량 지원, 안보 보장, 군사훈련 축소, 유엔 안보리 제재와 미국 독자 제재의 전면적인 시행 자제 등을 시도했지만 비핵화에는 별 소용이 없었다며 ‘담대한 구상’의 실현 가능성이 작다고 보았다. 

이처럼 ‘담대한 구상’은 과거 정책의 ‘표절’에 실현 가능성도 없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부터 ‘담대한 계획’과 ‘담대한 구상’을 섞어 써서 이름조차 제대로 정리 안 된 엉터리 정책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미국 정부는 긍정 반응을 내놨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담대한 구상’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과 완전히 일치하는 계획”이라며 지지하였다. 

그렇다면 ‘담대한 구상’의 상대방인 북한의 반응은 어떨까?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19일 담화를 통해 “‘담대한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10여 년 전 이명박 역도가 내들었다가 세인의 주목은커녕 동족 대결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면서 “검푸른 대양을 말려 뽕밭을 만들어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맹비난하였다. 

또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에 맞춰 새벽에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한 것도 윤석열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한 답변이라 볼 수 있다. 

‘담대한 구상’을 비판하는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점은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이다. 

‘담대한 구상’에서 제시한 것과 같은 경제 지원으로 과연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낼 수 있겠냐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한반도 핵문제의 결론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담대한 구상’을 발표한 다음 날인 16일 합참은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안전 보장 문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기하는 것 중 하나가 한미연합훈련임을 감안할 때 윤석열 정권이 과연 ‘담대한 구상’을 진짜 실행할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북한이 일단 ‘담대한 구상’을 전면 거부한 만큼 이후 윤석열 정권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김민준 주권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