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29.

북한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교재는 북한 헌법이다.
헌법을 분석하다보면 북한 사회의 기본 이념과 국가 정체성,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 국가 정책과 노선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nk투데이 편집부는 북한 헌법을 하나하나 파헤쳐보는 연재를 기획하였다.
분석할 북한 헌법은 현재 한국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최신판인 2019년 8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수정보충한 헌법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표기법은 한국의 맞춤법을 따르되 불가피한 경우 북한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북한 헌법은 통일부, 법무부, 법제처가 공동 운영하는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https://unilaw.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제1장 정치
제1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통 헌법 1조에는 그 나라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 그 나라의 성격을 한 마디로 보여주는 문구가 들어간다. (주요 나라의 헌법 1조 내용을 아래에 첨부한다.)

 

북한 헌법 1조에는 국호와 함께 국가의 성격을 보여주는 내용이 들어있다.

 

여기서는 국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담긴 의미를 살펴본다.

 

북한의 국호는 1948년 9월 9일 정부 수립을 선포하면서 확정되었다.

 

 

1. 조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세력 내에서는 해방 후 세울 나라의 이름으로 주로 ‘조선’과 ‘(대)한’, 두 가지가 대두되었다.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기 직전 국호는 대한제국이었다.

 

1897년 10월 고종은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꿨다.

 

중국의 제후국을 탈피해 황제국이 되겠다는 명분이었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조선’이란 이름은 과거 중국 기자(箕子)가 세운 나라인 기자조선에서 따온 것으로 제국으로 전환하는 취지와 맞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오늘날 ‘기자조선’ 학설은 남북학계 모두 낭설로 보고 있다.)

 

그래서 과거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있던 마한, 변한, 진한 등 삼한에서 이름을 따 ‘대한’이라는 국호를 지었다. (오늘날에도 일부 역사학자들은 ‘한’이 한반도 북부를 포괄하지 못하는 부적절한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한일병합을 발표하면서 국호를 다시 ‘조선’으로 바꿔버렸다.

 

독립국이 아닌 일제의 일개 지역으로 격하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직전 국호가 ‘대한’이며 ‘조선’은 일제가 부활시킨 이름이므로 해방 후 세울 나라 이름을 ‘대한’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논리로 임시정부 이름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되었다.

 

하지만 반론도 있었다.

 

1910년 4월 10일 임시정부 구성을 위한 임시의정원 제1회 회의에서 여운형 선생은 “대한 때에 우리는 망했다. 일본에 합병되어버린 망한 나라 대한의 국호를 우리가 지금 그대로 부른다는 것은 감정상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비록 다수의 의견에 밀려 ‘대한’이란 명칭을 채택했지만, 여운형 선생의 주장은 해방 후 1945년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당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보다 ‘조선’을 선호했다.

 

일반 백성에게는 10여 년 정도 유지된 대한제국보다 ‘조선’이 훨씬 친숙한 국호였기 때문이다.

 

1925년 4월 서울에서 창립된 조선공산당, 1927년 8월 만주에서 김일성 주석이 결성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1930년 김일성 주석이 카륜회의에서 발표한 논문 「조선혁명의 진로」를 보면 대체로 ‘조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한’이 조선 말기 몰락한 나라 이름이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친미 성향에다가 부정부패, 분열로 인해 제대로 된 독립운동도 못 했다고 여겼기 때문에 ‘대한’이라는 국호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사회주의 계열이 주류였던 북한에서 국호를 ‘조선’으로 지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2. 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은 국호에 “계급적 본질과 함께 우리 혁명의 근본 목적과 당면임무가 뚜렷이 반영”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조선백과사전편찬위원회 편, 『광명백과사전 3: 정치, 법』, 백과사전출판사, 2009, 152쪽.; 박영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 제정과정 연구」, 『북한학연구』 14권 1호,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2018. 121쪽 재인용.)

 

이와 관련해 김일성 주석은 1945년 8월 20일 군사정치간부들 앞에서 한 연설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건설에 대하여」에서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계급의 영도 밑에 광범한 농민대중과 지식인, 양심적인 민족자본가 등 각계각층의 민주 역량을 망라하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여야 하며 이에 토대하여 인민정권을 수립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통일전선은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설을 위한 통일전선이므로 여기에는 나라의 참다운 주인들인 노동자, 농민을 비롯하여 근로 인텔리, 도시 소자산계급, 양심적인 민족자본가 등 민주주의적 독립국가의 건설을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애국적 민주 역량이 망라되어야 하며 친일파, 민족 반역자 등 일체 반동 세력들이 기어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국호에 담긴 계급적 본질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해방 후 한반도에는 여러 정당, 단체가 등장하였는데 이 가운데 자주독립국 건설을 지향하는 세력들의 공통점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들 정당, 단체가 연합하여 탄생한 조직도 이름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남),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북) 등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두 연합체가 통합하여 창립된 단체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약칭 조국전선)이다.

 

이처럼 당시 북한 정부 수립 과정에서 내세운 공통의 임무가 민주주의였기에 국호에 민주주의를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국호에 사회주의를 넣을 수도 있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다.

 

북한은 1961년 9월 조선노동당 제4차 당대회에서 사회주의 개조를 완성했음을 공식 선언하였다.

 

또한 1972년 사회주의헌법을 채택, 국가 차원에서 사회주의를 공식 선언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국호에 사회주의를 넣지 않았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라고 국호에 사회주의를 반드시 넣는 것은 아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쿠바공화국,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처럼 국호에 사회주의를 넣지 않는 나라도 있다.

 

현존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국호에 사회주의를 넣은 나라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유일하다.

 

따라서 북한이 국호에 사회주의를 넣지 않은 것이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북한은 국호에 사회주의를 넣지 않고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이유를 분단 상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북한은 정부 수립부터 이승만 정권의 단독선거 방침과 달리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겠다는 입장을 계속 보여 왔다.

 

그래서 국호 역시 사회주의 제도가 들어선 북한지역만 반영하지 않고 분단 상황을 고려해 국호에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이다.

 

또, 국호에 ‘인민’을 넣은 이유는 “인민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 것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존엄 높은 인민의 나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공화국은 공화제를 채택한 나라를 뜻한다.

 

공화제란 왕이 없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체제다.

 

반대로 왕이 다스리는 제도를 군주제라 부르며 일본,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이 여기에 속한다.

 

 

※ [참고 자료] 주요 국가의 헌법 1조

 

한국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미국(수정 1조)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교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일본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로부터 나온다.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 계급이 지도하고 노동자·농민 연맹을 기초로 하여 인민 민주 전제정치를 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사회주의 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근본 제도이다. 중국 공산당의 영도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어떠한 조직이나 개인이든지 사회주의 제도를 파괴하는 것은 금지된다.

 

러시아
① 러시아연방, 즉 러시아는 공화국 통치 형태를 가진 민주 연방 법치국가이다.
② 러시아연방과 러시아라는 명칭은 동일하게 사용된다.

 

프랑스
① 프랑스는 불가분적, 비종교적, 민주적, 사회적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출신, 인종 또는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시민이 법 앞에서 평등함을 보장한다. 프랑스는 모든 신념을 존중한다. 프랑스는 지방 분권화된 조직을 갖는다.
② 법률은 남성과 여성이 선출직 및 그 임기 그리고 직업적, 사회적 책무에 동등하게 접근하도록 한다.

 

독일(기본법)
①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지 아니한다. 모든 국가권력은 이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
② 그러므로 독일 국민은 이 불가침·불가양의 인권을 세계의 모든 인류공동체, 평화 및 정의의 기초로 인정한다.
③ 다음에 열거하는 기본권은 직접 적용되는 법으로서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을 구속한다.

 

베트남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은 육지, 부속 도서, 영해, 영공을 포함하는 완전한 영토를 가진 독립·주권·통일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