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1.


최근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화보를 발간하고 남북 정상 간 친서를 교환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사일 발사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이 다소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동시에 하는 것에는 어떤 의도가 있을까? 또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고 곧 한미정상회담이 진행된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1. 화보와 미사일 발사

최근 남북관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일이 벌어졌다.

5월 4일 북한이 2018년에 있었던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담은 화보를 출간했다. 언론들은 4년이 지나서 화보를 발간하는 것이 이색적이라며 퇴임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한 배려라거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대북강경책을 예고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 저마다 그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같은 날 합동참모본부는 낮 12시 3분 쯤 평양 순안 일대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5월 7일에도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잠수함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SLBM)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한편 청와대가 5월 6일 다큐멘터리 ‘문재인의 진심’을 공개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굉장히 솔직했습니다”라며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또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더 발전하지 못한 원인으로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을 꼽으며 “너무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하노이 노딜’의 책임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당시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제재 중 일부를 해제하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했는데 제재는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지만 핵시설 복구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제안은 미국에 유리하다는 평들이 있었다. 북한은 이 제안을 두고 위험을 무릅쓴 ‘일대 모험’이었다고 자평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협상을 결렬시켰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2019년 3월 10일 정치전문매체 ‘더힐’ 기고문에서 “북한의 제안을 수용했어야 한다”라고 탄식했다.

그래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하노이 노딜’을 언급한 것은 남북관계를 개선하지 못한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말을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4월 20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고 다음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답 친서를 보내는 일이 있었다. 청와대가 공개한 회답 친서엔 “임기 마지막까지 민족의 대의를 위해 마음 써온 문 대통령의 고뇌와 수고, 열정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경의를 표하며, 문 대통령을 잊지 않고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존경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북한과 문재인 전 대통령 사이에 “존경”을 나누는 좋은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어떤 의미일까? 친서와 화보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한 거라면 미사일 발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 연장선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할 거라는 예측도 많다. 5월 7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북한 핵실험 시기를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사이”로 추정했다.

미국식 표현으로 북한의 ‘비둘기파’ 정책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하고 ‘매파’ 정책은 미국 바이든 정부와 윤석열 새 정부를 향해 펼쳐지는 것 같다.


▲ 평양출판사가 출판한 ‘북남관계의 대전환’ 중에서



2. 바이든 방한

바이든 대통령은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한국을 방문한다. 21일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고 22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매우 독특하다.

1) 한미정상회담

정부 출범 11일 만에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역대 가장 빠른 기록이다. 첫 한미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이뤄지는 것 또한 이례적이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김에 한국도 방문하는 것이라며 특별할 게 없다는 듯 말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행동하는 나라가 아니다.

예를 들어 2021년 3월 미·중 고위급회담 때를 보자. 회담 전날 미 국방장관과 국무장관은 일본에 이어 한국을 방문 중이었다. 그렇다면 다음날 두 장관이 중국으로 가서 고위급회담을 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미국은 그러지 않았다. 두 장관은 한국에서 미국 땅인 알래스카로 갔고 중국이 쫓아가서 고위급회담을 했다. 미국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회담장소를 회담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미국이 역대급 빠른 시일에 직접 한국까지 와서 한미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은 윤석열 정권 출범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바라는 건 뭘까?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하지 않고 윤석열 대통령은 하겠다고 한 것, 대북강경책일 것이다.

대표적인 대북강경책은 한미연합훈련 ‘정상화’이다. 한미 당국은 2018년부터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해 대규모 실기동훈련을 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인수위는 5월 3일 차기 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한미 군사동맹 강화를 꼽으며 “한미 전구급 연합연습의 명칭을 변경하고 22년 하반기부터 연합연습과 정부연습을 통합 시행하며, 연대급 이상 연합 야외기동훈련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폴 라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3월 10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자신은 가능한 한 모든 부대에서 많은 훈련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조짐이 매우 좋아 보인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한, 한미 당국은 ‘대북확장억제력’을 갖추겠다는 표현을 한다. 말이 복잡하지만 결국 북한 선제타격을 뜻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월 3일 대선 토론에서 “핵 맞고 나서 보복하면 뭐 합니까?”라면서 핵무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선제타격밖에 없다는 생각을 드러낸 바 있다.

한미연합훈련 ‘정상화’와 대북선제타격의 공식화, 이것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주목할 지점이다. 이 두 가지를 공식화해야 미국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이례적으로 추진하는 의미가 충족된다.

물론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무기 구매나 한미경제협력 강화, 쿼드 가입 같은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 의제들은 문재인 정부 때도 하던 이야기다. 미국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에 맞춰 서둘러 한국으로 달려올 만한 사안은 아니다.

그러면 한미정상회담에서 실제로 한미연합훈련 ‘정상화’와 대북선제타격을 공식화할 수 있을까? 4월에 진행된 한미연합훈련을 보면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남북관계 개선을 바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그래서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4월 한미연합훈련에서 실기동훈련이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했다. 크리스틴 워머스 미 육군장관 또한 3월 15일 “훈련을 확대하기로 한다면 미군은 언제든 준비가 돼 있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한국 국방부는 3월 22일 북한이 ICBM을 발사하면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출격시키고 한미연합 야외실기동훈련을 추진하겠다고 윤석열 인수위에 업무보고했다. 한국 국방부가 멋대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므로 미국과 사전협의한 내용일 것이다.

북한은 3월 24일 보란 듯이 화성포 17형을 발사했다. 그러나 한미 당국은 4월에 실기동훈련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있었던 훈련 중에서도 가장 조용히 지나갔다. 사람들이 한미훈련을 했는지도 잘 모를 정도다. 그나마 미국이 항공모함 링컨함을 동해에 투입한 것이 좀 알려졌는데, 링컨함은 공식적으로 한미연합훈련에 참여한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 도리어 대북 대응이 더욱 약화되는 분위기다. 화성포 17형 발사 땐 군 당국이 맞대응 성격의 훈련을 제안했으나 미국이 거절하는 바람에 한국군 혼자서 진행했다.

 

2017년만 해도 미국은 이렇지 않았다. 예컨대 북한이 7월 4일 화성포 14형을 발사하자 다음날 한국과 함께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으로 대응했다. 원래 미국답다고 하는 태도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완전 파괴”, “화염과 분노” 같은 폭언을 퍼붓고 한미연합훈련을 대대적으로 벌여 압박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한미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북한이 군사행동을 해도 대화를 촉구하며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걸 보면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연합훈련 ‘정상화’와 대북선제타격을 과연 공식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 문재인 전 대통령 회동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5월 5일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 측 요청이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며 “퇴임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현직 미국 대통령한테 만나자고 할 수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친문인사로 알려진 김어준은 4월 2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미국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남북관계에서) 차기 정부에서 강경 일변도로 간다든지 할 때 돌파구가 필요할 수 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구축한 신뢰 관계가 그런 시국에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한국 전직 대통령을 만나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굳이 만날 이유도 없고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에게 무례하게 비칠 수 있어 모양새도 좋지 않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활용하려 한다는 분석은 일리가 있다.

미국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트럼프식 ‘화염과 분노’나 대북선제타격 같은 대북강경책에 활용하진 않을 것이다. 미국이 바라는 ‘조건 없는 대화’를 추진하고 북한에 강대강으로 나서지 말아달라고 피력하는 역할을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맡기려 할 것이다.

최근 미국이 문재인 카드의 실효성을 느낄만한 일이 있었다. 4월 15일 태양절 110주년에 즈음해서 북한이 핵실험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 무성했다. 미국은 핵실험을 막고자 북한에 여러 차례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지만, 북한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친서를 보냈더니 놀랍게도 답신이 왔다. 그 영향인지 북한은 여태껏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 이를 본 미국은 문재인 카드의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을 수 있다.

종합하면 미국은 한 손에는 북한에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패를, 다른 한 손에는 강대강을 피하기 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는 패를 쥐고 있으려는 듯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 굳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는 걸 보면 둘 중에 문재인 카드를 더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북한과의 강대강 대결만큼은 결단코 피하겠다는 ‘레드라인’(금지선)을 설정해놓은 것 같다. 강대강 대결을 피하는 방법은 바로 미국이 강하게 나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문재인 카드 또한 ‘레드라인’을 지키는 데 이용하고 있다. 북미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면 이를 해소할 수단인 것이다.

원래 ‘레드라인’이란 상대방에게 넘지 말라고 그어놓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모습은 자기 쪽에 ‘레드라인’을 그어놓고 스스로 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굉장히 특이하다.

미국이 이런 모습까지 보이는 건 그만큼 북한의 미사일을 겁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괌 안보당국은 4월 17일 오전 1시 반에 북한에서 미상의 발사체가 발사됐다는 소식을 한국 정부보다 6시간 이상 빨리 알렸다. 괌 보안당국이 북한 미사일에 대해 매우 민감히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본토에서도 북한 미사일을 두려워하는 여러 현상이 보인다. 1월 11일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하자 미국 정부는 본토 공격을 우려해 서부지역 공항에 이륙 금지명령을 내렸다. 4월 4일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해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핵 프로그램보다 더 큰 위협은 없다”라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한편 4월 12일엔 미국 민간단체 ‘미사일방어옹호동맹’이 미사일 방어 임무를 소홀히 한다며 미군을 질타하기도 했다.

이렇게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 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계속 활용하려는 형국이다.

3) 북한 변수

종합하면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늘 하던 통상적인 합의를 할 뿐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운 한미연합훈련 ‘정상화’, 대북선제타격을 공식화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특별한 게 없고 뻔한 이야기만 하게 될 수 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별 내용이 없으면 국내외 언론의 관심은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급격히 쏠릴 것이다. 그러면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마치 문재인이 여전히 대통령인 것처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 보이고 윤석열 대통령은 그 아래 총리급 정도로 영향력과 중요성이 낮아 보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정치적 상황을 만든 건 다름 아니라 북한 변수다.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과 연줄이 있느냐에 따라서 정치인의 값어치가 달라지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북한 변수가 아니었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퇴임 후에 만나려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3. 북한 입장

1) 윤석열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에겐 미사일을 보내고 문재인 전 대통령에겐 친서와 화보를 보냈다.

이상근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은 2015년 보고서 ‘김정은 리더십 연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익을 철저히 계산하여 실리를 추구하는 리더십 성향”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북한은 굉장히 현실적인 나라다. 현실적으로 계산하고 자기 이익을 극대화한다. 최근 모습을 봐도 그렇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건 선제타격 같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강경발언에 대응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북강경발언을 했는데 침묵하면 북한이 밀렸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자존심 강한 모습을 보여온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맞서리라는 건 익히 예상된 바였다.

또한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처지인지 보고 있을 것이다.

한국 갤럽이 5월 3~4일 여론조사를 한 결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41%였다. 취임 전 대통령 지지율로는 역대 최저다. 집무실 용산 이전, 공약 후퇴, 장관 후보들의 각종 비리 등으로 논란을 거듭하며 지지율이 오를 기미 없이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벌써 반윤석열 집회가 열리고 있다. 레임덕도 아니고 취임덕 이야기가 나온다.

한편 같은 기간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한 여론조사에서 김건희가 영부인처럼 역할을 하지 말고 내조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66%를 넘겼다. 보수층에서도 57%, 심지어 대구·경북에서도 52.9%가 이같이 답했다.

경제도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언론은 온통 “전례 없는 복합 위기”(연합뉴스, 2022.4.24.), “백척간두의 위기에 봉착”(헤럴드경제, 2022.4.25.), “모든 지표에 빨간불”(서울신문, 2022.5.4.)이라며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앞길엔 악재만 줄 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고자 할까.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공언했던 대로 한미연합훈련을 대대적으로 벌일 수 있다. 그러면서 언론을 총동원해서 북한을 상대로 승기를 잡고 있는 듯 ‘쇼’를 할 수 있다. 이것이 윤석열다운 행보다. 이러면 윤석열 정권이 힘을 과시하면서 조금이나마 지지율이 올라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 한국은 대북강경책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태도를 봤을 때 오히려 문재인 정권 때보다도 더 후퇴하게 생겼다.

지금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하반기에 실기동훈련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하지만 전례를 봤을 때 실제로 실기동훈련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하지 못하고 저자세면 윤석열 정권은 지지기반을 잃고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살길을 찾아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7일 VOA 인터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것을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기 때문에 문화와 체육 교류는 조금 원활하게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명박이 겹쳐 보인다.

이명박은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2010년 남북교류를 원천 차단한 5.24조치 등 대북적대정책을 폈다. 하지만 동시에 이명박은 2009년 10월, 2010년 6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남북정상회담을 열자며 북한과 비밀 접촉을 했다.

그중 정점은 2011년 5월 9일에 있었던 비밀 접촉이다. 이날 김태효 당시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현 국가안보실 1차장 내정자) 등은 2010년에 일어난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포격전에 대해 “제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달라며 “‘제발 좀 양보하여달라’라고 애걸”했다고 한다. 심지어 정상회담을 추진하자며 북한에 돈봉투까지 내밀었다고 한다.

박근혜는 한술 더 떠 인수위 시절부터 북한과 비밀접촉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2013년 1월 18일 박근혜 인수위의 최대석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이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와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최대석 위원과 동행한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는 “북한과의 접촉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을 설명하고 북한의 협력을 촉구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이란 취지를 주변에 설명”했다고 한다.

박근혜 측의 대북접촉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일은 원래 묻혔어야 했는데 국정원 때문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정원이 대북비밀접촉 사실을 포착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결과 최대석 위원이 인수위에서 사퇴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처럼 겉으로는 강한 척하면서 뒤로는 물밑접촉을 시도할 수 있다. 권영세 국힘당 의원을 통일부 장관에 임명하려는 것만 봐도 이런 기류가 느껴진다.

대선 전후 통일부는 폐지가 거론될 정도로 입지가 흔들렸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권영세 의원을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윤석열 정권 내에서 통일부의 위상이 확 바뀌었다. 권영세 의원은 4선 중진에 국힘당 실세이며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 최측근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4월 16일 연합뉴스는 “일각에서 보수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별로 관심이 없다, 북한과 대결만 추구”한다고 하지만 권영세 장관 후보자 지명으로 “윤 당선인이 북한이나 남북관계에 아주 관심이 많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과 싸우라고 권영세 의원을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한 건 아닐 것이다. 권영세 후보자는 4월 14일 “(통일부는) 남과 북의 관계를 잘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부서”라며 “대화를 시작하고 남북관계의 의미 있는 진전, 획기적 진전이 이뤄지도록 초석이라도 놓겠다는 각오”라고 밝혔다.

윤석열 국힘당은 반통일세력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시작부터 위기에 빠진 채 대북강경책을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처지다. 그러면서 살길을 찾아 남북대화를 추진하려 한다. 이런 윤석열 정권은 북한 입장에서 딱 좋은 상대로 보일 것이다.

북한은 강대강으로 압박하면 윤석열 정권을 파멸시킬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또는 압박하는 중에 윤석열 정권이 대화를 간청하면 커다란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다. 윤석열 정권이 궁지에 몰릴수록 북한은 더 큰 양보를 받게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북한이 윤석열 정권을 압박할 때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북한은 강대강으로 윤석열 정권을 몰아세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대강 대결에서 북한에 맞서 승기를 잡으면 정권 지지율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을뿐 아니라 미국이 북한과의 강대강 대결에 나서지 못하게 윤석열 대통령을 통제할 것이다.

2) 문재인 전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

윤석열 대통령과는 반대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북한의 친서와 화보를 받았다. 북한은 “문 대통령을 잊지 않고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존경”하겠다고도 했다.

미국은 북한과 관계를 잇길 간절히 바라므로 북한과 “존경”을 나누는 관계인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매달리게 될 수 있다. 그러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한 역대 한국 대통령 중 가장 주목받는 대통령이 된다.

이런 비슷한 사례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보다 퇴임 후 활동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90년대 북미 교섭에 나섰고 그 덕에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과 같은 역할에 욕심을 갖고 의욕적으로 나설 수 있다. 그러면 그 누구보다 ‘성공한 전임 한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할 때까지도 지지율이 높았다. 5월 3~4일 한국 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율은 45%에 달했다. 퇴임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율이 새로 취임하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41%보다 높았다.

물론 이 지지율은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도 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아픔을 가진 국민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방패가 되어주기 위해 보내는 지지도 있다.

어쨌든 북한으로선 지지율이 높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주목할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면 문재인 지지자들을 토대로 한국 여론이 남북관계 개선에 우호적으로 형성될 것이다.

다큐멘터리 ‘문재인의 진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지도자에 대해 좋게 이야기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여전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극찬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인물이 한국 내에서 영향력이 있으면 북한으로서 나쁠 게 없다.

최근 민주당 선대위 총괄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거둬 입지를 다지면 문재인+이재명이 윤석열 대통령보다 더 영향력 있는 세력이 될 수 있다. 그러면 북한 입장에서 윤석열 대통령보다 문재인 전 대통령 및 이재명 전 지사와 관계를 갖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미국에 퇴로를 열어주는 효과도 있다. 손자병법은 위사필궐(圍師必闕), 포위된 적에 반드시 도망갈 길을 열어주라고 가르친다.

4. 국내 진보진영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 진보진영 내엔 반정부투쟁이냐 반보수투쟁이냐를 두고 얼마간 이견이 있었다. 지금은 반정부투쟁이 곧 반보수투쟁이기 때문에 갈등이 사라지고 한데 뭉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개혁진영 내에서 진보진영과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줄어들 수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과 협력 관계이면 개혁진영도 평화통일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남북관계에서 진보진영과 개혁진영이 손을 잡을 기회가 열리게 된다. 진보진영이 국민과 함께 자주·민주·통일을 실현해나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